마음이 먼저 안다

by 홍종민


이런 사람들을 요즘 많이 본다. 약속에 늘 20분씩 늦는 직장인, 중요한 문서를 자꾸만 잊어버리는 팀장, 매번 같은 사람에게 상처받으면서도 또 만나는 지인들. 근래에 조용하고 빠르게 확산하는 현상 중 하나가 이런 반복 패턴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책망한다. "왜 이렇게 깜빡하지?" 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정말 이 모든 게 단순한 실수일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무의식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예외가 없다. 김서영 교수는 "무의식은 지금 '이렇게 싫은 걸 왜 해요.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거예요"(김서영, 2024: 67)라고 했다. 바로 이거다. 우리 마음이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거다.


무의식이 보내는 첫 번째 신호


내가 경험했던 사례처럼, 30대 중반 직장 여성이 있었다. 대학 동기들과의 정기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는데 매번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 못 갔네"라고 중얼거리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 회의가 길어져서 또 못 가겠어. 다음에 꼭..."

이런 경우 둘 중 하나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거나, 아니면 무의식이 그 약속을 거부하고 있거나. 그런데 신기한 건, 그녀가 지난 한 달 동안 같은 핑계를 댔다는 것이다. 매번 '갑작스러운 업무', '예상치 못한 회의', '상사의 긴급 지시' 때문이라고 했다. 진짜 그런가.


프로이트는 이런 현상을 '실언행위'라고 불렀다.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억압된 욕구가 드러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던진 위로는 의미 있는 정서적 파장을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무의식의 신호는 다르다. 생생하고 정확하다.

앞에서 언급한 그 지인이 털어놓은 얘기를 들어보니 더욱 명확해졌다. "사실 그 모임이 너무 부담스러워요. 가면 항상 누가 얼마 벌고, 누가 어디 이사 갔다는 자랑만 늘어놓거든요. 듣고 있으면 기분이 더 안 좋아져요." 그러면서도 "근데 관계를 끊기도 애매하고..."라고 말했다. 거기까지다. 마음은 이미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그 모임이 과연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나를 충전시켜주는 만남일까, 아니면 일방적으로 에너지만 소모하는 관계일까? 무의식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몸이 먼저 알려주는 진실


이후의 이야기는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비슷한 패턴을 동네 도서관 사서에게서도 봤다. 대학 동창들과의 정모에 참석하기로 했는데, 매번 그 날만 되면 몸살이 난다는 것이다. "처음엔 컨디션 관리를 못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6개월 동안 같은 일이 반복되니까 이상하더라고요."

그녀는 자신의 패턴을 분석해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정모 전날만 되면 이상하게 속이 더부룩해지고, 당일 아침에는 꼭 열이 나더라고요. 처음엔 정말 몸이 아픈 줄 알았는데..." 그런데 정모를 취소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멀쩡해졌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 이건 전형적인 마음의 저항이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 거다.


김서영 교수가 설명한 것처럼, 망각과 지연과 몸살은 마음의 저항 신호다. 우리가 정말 하기 싫은 일, 에너지가 빠지는 만남을 몸이 먼저 알아채고 브레이크를 걸어버린다. 학습이 필요한 일이다.

"한번은 정말 억지로 나갔어요. 몸이 아픈데도 약 먹고 버텨서. 그런데 가서 3시간 동안 앉아 있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다들 성공한 얘기만 하고, 저는 그냥 듣기만 하고..." 그날 집에 와서는 이틀 동안 누워 있을 정도로 몸살이 심했다고 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 허무하다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이다.

그런 이유일까. 요즘 이런 사람들을 자주 본다. 겉으로는 "깜빡했다", "실수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서 거부하고 있는 경우들. 무의식이 보내는 이런 신호들을 우리는 얼마나 무시하고 살까.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불신해왔다고.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무의식의 정확성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두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관계를 끊기도 애매하고"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유지하려는 관계들. 하지만 무의식은 이미 그 관계가 나에게 독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존재 그 자체가 거부하고 있었던 거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늘 누군가에게 사과하고, 변명하고, 다음번엔 꼭 하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이것 자체가 무의식의 신호다. 진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려고 할 때 나타나는 죄책감의 표현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런 패턴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과 형식적인 그것을 구분하는 무의식의 정확성. 그 직장 여성은 아이 학교 행사나 가족 일정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도서관 사서도 정말 읽고 싶은 책이나 의미 있는 강연은 절대 깜빡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상하죠? 정말 중요한 건 절대 안 잊는데, 형식적인 모임만 자꾸 깜빡해요." 딱 이거다. 무의식은 어떤 것이 진짜 중요하고 어떤 것이 형식적인 건지 정확히 구분하고 있었다. 진짜 자신을 위한 게 아닌 걸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행위 자체가 자기보호이고 지혜다.


무의식과 협력하는 삶으로


사실 오늘날 이런 현상은 더 이상 특별한 게 아니다. 너나없이 겪는 일상의 풍경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의 욕구를 내 것으로 착각한다. 부모의 기대, 사회의 압박, 타인의 시선을 내가 원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무의식은 정직하다. 진짜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받을 때,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자꾸 잊어버리고, 늦고, 실수하게 만들어서라도 우리를 보호하려고 한다. 김서영 교수는 "적어도 우리는 싫은 것, 싫은 사람, 불편한 사람,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김서영, 2024: 67)라고 했다.


정신분석의 궁극적 목표는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이다.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거부하는지를 명확히 아는 것. 그래야 진짜 선택이 가능해진다. 그게 전부다.

내가 만난 한 50대 회사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20년 넘게 회사 워크숍과 각종 모임에 성실히 참석했다고 했다. "의무감에서였죠. 안 가면 뒤처질 것 같고, 평가에 불이익이 있을까 봐서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자꾸 빠뜨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정말 스트레스였어요. 왜 이렇게 자꾸 깜빡하지 싶어서요."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고 했다. "아, 내 몸이 이제 그만하라고 신호를 보내는구나." 그 후로는 정말 필요한 것과 형식적인 것을 구분해서 선택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기한 건, 정말 중요한 건 절대 안 까먹어요. 진짜 배우고 싶은 세미나나 의미 있는 모임은 말이죠." 그는 이제 자신의 무의식을 신뢰한다고 했다. "내 몸이 거부하는 건 진짜 필요 없는 거더라고요." 무의식과 협력하는 삶이 그렇게 시작된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더 이상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깜빡하지?"라고 자책하는 대신, "내가 진짜 원하지 않는구나"라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신호에 귀 기울여서 진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바로 그 때문이다. 진짜 변화가 일어나는 건.


진짜 자유를 향한 신호


김서영 교수는 "일방적인 관계를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진짜 변화가 가능해질 수도 있어요"(김서영, 2024: 68)라고 했다. 정확히 그거다. 무의식의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우리 마음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관계가 나에게 독이 되는지, 어떤 일이 나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지, 어떤 선택이 진짜 나를 위한 건지.


실제로 이런 신호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의 변화는 놀랍다. 도서관 사서는 더 이상 억지로 동창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정말 만나고 싶은 친구들과 소규모로 만난다. "훨씬 편하고 의미 있어요. 왜 그동안 억지로 참았나 싶어요."

그 50대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형식적인 모임은 과감히 거르고, 정말 필요한 것만 선택적으로 참석한다. "업무 효율도 더 좋아지고, 스트레스도 많이 줄었어요. 뭔가 제 시간과 에너지를 제대로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들의 선택이 존재 그 자체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내 '실수'들을 다르게 본다. 자꾸 잊어버리는 약속이 있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 늘 늦는 모임이 있다면, 정말 그 시간이 나에게 의미 있는지 점검한다. 반복되는 실수가 있다면, 내가 정말 그 일을 원하는 건지 물어본다.

중요한 건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왜 이렇게 깜빡하지?"가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지 않는구나"로 관점을 바꾸는 것. 그리고 그 신호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 무의식은 그렇게 시작된다. 진짜 욕망을 찾는 것은 다른 사람의 욕망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지 말자. 우리 무의식은 생각보다 훨씬 정확하다. 그리고 현명하다. 예외가 없다. 당신이 자꾸 놓치는 그것, 혹시 정말로 필요 없는 일은 아닌가? 당신의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여보자. 그것이 진짜 자유로운 삶을 향한 첫걸음이다.


김서영(2024). 한 사람을 위한 정신분석. 서울: BIEN.

해담 사주 명리 상담 : 네이버 엑스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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