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모이면 무의식적으로 특정 역할에 갇힌다
재택근무 중이던 어느 날, 후배 상담가가 화상으로 나에게 물었다. 온라인 그룹 상담을 진행하는데, 한 내담자가 계속 말을 독점한다는 것이다. 다른 참여자들이 말할 틈이 없을 정도다. 처음엔 참여도가 높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다른 내담자들이 지쳐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런 경우는 어떤 상황인 거예요? 그냥 성격 문제인 걸까요?"
그때 떠올랐다. 세 명 이상이 모이는 순간, 집단 역동이 자동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심리학자 제프리 코틀러는 "많은 학자들이 그룹 안에서 사람들이 감당하는 전형적인 역할의 목록을 분류해 놓았다"(코틀러, 2008: 68)고 말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특정 역할을 맡는다. 그 역할을 이해하고 지배해야 집단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
집단 속 역할은 무의식의 신호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세 명 이상이 모이는 순간 집단 역학이 작동한다고 봤다. 회의든, 가족 모임이든, 친구와의 저녁 약속이든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집단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특정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이를 개인이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는 욕구로 설명했다. 문제는 이 욕구가 왜곡될 때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말하고, 누군가는 철저히 침묵하고, 누군가는 분위기를 망치고, 누군가는 중재에 나선다.
이런 역할들은 그냥 성격이 아니다. 그 사람이 집단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아들러가 말한 '우월성 추구'가 작동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형성된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무의식적 전략이 집단 안에서 특정 역할로 고착된다. 배터리 없는 휴대폰처럼, 이 욕구 없이는 집단 안에서 기능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룹 상담에서 말을 독점하는 내담자를 보자. 코틀러가 분류한 '독점주의자'다. "너무 자주 이야기를 해서 다른 사람들은 기여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코틀러, 2008: 69). 말을 많이 해야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침묵은 무시당하는 것이고,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다. 물 없이 사막을 건너는 것처럼, 말을 멈추면 자신이 말라 죽을 것 같은 공포.
반대로 회의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코틀러는 이를 '은둔자'라고 명명했다. "전혀 말하지 않는 은둔자의 목표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숨어있는 것이다"(코틀러, 2008: 69). 드러나면 공격받을 것 같고, 말하면 실수할 것 같다. 침묵이 안전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그는 점점 더 고립되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이 모든 역할은 결국 '나는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아들러는 이를 '소속감의 욕구'라고 불렀다. 집단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은 왜곡된 방식으로라도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그게 말의 홍수가 되기도 하고, 침묵의 벽이 되기도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집단 안에 들어가는 순간, 이 역학은 변함없이 작동한다.
아들러는 더 나아가 '생활양식(lifestyl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어린 시절 가족 내에서 형성된 자신만의 생존 전략이 평생 반복된다는 것이다. 형제 사이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떠들어댔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말로 자신을 증명한다. 조용히 있어야 칭찬받았던 아이는 침묵으로 안전을 확보한다. 필연적이다. 빠져나갈 수 없는 패턴이다.
동네 도서관에서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50대 남성이 있다. 여럿이 모이면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비판한다. "그건 비효율적이에요", "그 방법은 예전에 실패했잖아요". 처음엔 날카로운 분석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사람들이 의견을 내지 않게 됐다. 비판받을까 봐. 그는 코틀러가 말한 '비난자(blamer)'였다. "타인을 방어적으로 만드는
비판과 공격적 책략을 사용한다"(코틀러, 2008: 68).
그런데 신기한 건, 그 남성과 따로 이야기하면 다정하다는 것이다. 왜 집단 안에서만 공격적이 될까? 아들러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비판을 통해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한다. '나는 문제를 꿰뚫어 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존재감을 얻는 것이다. 인정받고 싶지만 칭찬으로는 불안하다. 비판이 더 확실한 증명처럼 느껴진다. 칼날처럼 예리한 한마디가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준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집단 안에서 역할은 바뀌지 않는다. 독점주의자는 계속 떠들고, 은둔자는 계속 숨고, 비난자는 계속 비판한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 역할이 자신의 정체성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아들러가 말한 '생활양식'은 그렇게 굳어진다.
핵심은 이거다. 집단이 형성되는 순간 역학이 발생하고, 각자는 무의식적으로 특정 역할을 맡는다. 그 역할을 의식하지 못하면 역동에 지배당한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알아차리는 순간, 역동을 지배할 수 있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역할 뒤에 숨은 불안을 봐야 한다
해리 스택 설리반은 인간을 '대인관계의 산물'로 봤다. 그는 특히 집단 안에서 여럿이 모일 때 나타나는 불안에 주목했다. 1:1 관계에서는 괜찮던 사람이 여럿 모이면 갑자기 달라진다. 말이 많아지거나, 침묵하거나, 공격적이 되거나, 지나치게 친절해진다. 질식할 듯한 답답함이 몰려온다.
설리반은 이를 '대인관계 불안'으로 설명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승인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집단이 형성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누구에게 맞춰야 하나?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 불안이 특정 역할을 만들어낸다. 어김없이 그렇다. 불가피한 작동이다.
말을 독점하는 사람은 침묵이 거절처럼 느껴진다. 말을 멈추면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아서 계속 떠든다. 침묵하는 사람은 말하는 순간 평가받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문다. 비판하는 사람은 먼저 공격해야 자신이 공격받지 않는다고 믿는다. 뿌리 없는 나무처럼,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하면 쓰러질 것 같은 공포다.
코틀러가 제시한 역할 분류를 다시 보자. "공격자(aggressor)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평정을 잃게 만든다. 독점주의자(monopolist)는 의사진행 방해자가 되어 통제하려고 한다"(코틀러, 2008: 69). 이들은 모두 집단 안에서의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통제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 태풍처럼 몰아치는 불안이다.
운동 동호회에서 만난 30대 남성이 있다. 여럿이 모이면 그는 항상 분위기를 띄운다. 농담하고, 웃기고, 긴장을 풀어준다. 언뜻 좋은 역할 같지만, 그 이면을 보면 다르다. 그는 코틀러가 말한 '무관심자(irrelevant member)'에 가깝다. "협조적으로 일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만하게 하고 성가시게 한다"(코틀러, 2008: 68).
설리반의 분석에 따르면, 그는 진지한 대화가 두렵다. 깊이 들어가면 자신이 드러날까 봐, 계속 표면만 맴돈다. 농담과 유머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집단이 형성되면 관계가 복잡해지고, 복잡해지면 통제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서 안전지대에 머문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1:1로 만나면 그가 진지한 대화도 잘한다는 것이다. 왜 집단 안에서만 달라질까? 설리반은 집단이 커질수록 '대인관계의 복잡성'이 증가한다고 봤다. 관계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불안도 증폭되는 것이다. 그 불안을 회피하는 방식이 바로 산만함이다.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것처럼,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집단 안에서 역할은 그 사람의 불안을 보여주는 신호다. 말을 독점하는 사람은 무시당할까 봐 불안하고, 침묵하는 사람은 거절당할까 봐 불안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무력해질까 봐 불안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은 깊이 들어갈까 봐 불안하다. 짓눌리는 압박감, 타오르는 분노, 녹아내리는 의지. 모두 불안의 다른 이름이다.
설리반은 이런 역할들이 '자기 시스템(self-system)'의 방어 작동이라고 설명했다. 불안을 피하려고 만든 가면이 본래 자신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역할에 갇힌 사람은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 독점주의자는 말을 멈추면 자기가 사라질 것 같고, 은둔자는 말을 하면 자기가 드러날 것 같다. 심장이 멈춘 채로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까. 여럿이 모이면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독점주의자는 계속 떠들고, 은둔자는 계속 숨고, 비난자는 계속 비판하고, 분위기 메이커는 계속 웃긴다. 집단 역동에 지배당하는 것이다. 추락하듯 떨어지는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집단 역동을 지배하는 법
설리반은 인간을 '대인관계의 산물'로 봤지만, 동시에 관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왜곡된 역할도 관계 속에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리반이 제시한 핵심은 '참여적 관찰(participant observation)'이다. 자신이 집단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찰하고, 그 역할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없어선 안 되는 과정이다.
첫 번째 단계는 멈추기다. 여럿이 모이는 순간, 자신이 어떤 패턴을 반복하는지 의식적으로 관찰하라. 말을 독점하고 있는가? 침묵으로 일관하는가? 누군가를 비판하고 있는가?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고 있는가? 일단 자각해야 한다. 설리반은 이를 '자기 시스템의 작동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불렀다. 기어가듯 천천히라도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명명하기다. 자신의 역할에 이름을 붙이라. "나는 지금 독점주의자 역할을 하고 있구나", "나는 은둔자로 숨어 있구나". 코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리더로서의 임무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으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모두에게 몇 가지 중요한 기능을 가르치는 것이다"(코틀러, 2008: 69). 자신의 역할을 명명하는 순간,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반드시 그렇다.
세 번째 단계는 느끼기다. 그 역할을 할 때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5분간 가만히 느껴보라. 불안한가? 외로운가? 화가 나는가? 설리반은 "불안은 대인관계에서 승인받지 못할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번개처럼 스치는 감정도 놓치지 말고 붙잡아야 한다.
실천 방법은 구체적이다. 말을 독점하는 사람이라면, 집단 안에서 자신의 발언 시간을 정해라. 3분 이상 말하지 않기. 침묵하는 사람이라면, 모임마다 한 가지 의견은 반드시 말하기.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비판 전에 먼저 긍정적 의견 한 가지 말하기. 분위기 메이커라면, 진지한 대화가 나올 때 농담으로 돌리지 않고 5분만 견디기.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헬스장 운동 모임에 참여하는 30대 남성이 있다. 여럿이 모이면 그는 항상 침묵했다. 모임 끝나고도 먼저 인사하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러다 어느 날, 자기가 '은둔자' 역할에 갇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고 한다. 그날부터 매 모임마다 한마디씩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오늘 운동 힘들었어요" 같은 말이었다. 3개월 후, 그는 이제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한다. 표류하던 배가 항구를 찾은 것처럼.
코틀러가 제시한 건강한 역할들을 보자. "촉진자(facilitator)는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문지기(gatekeeper)는 세워진 규범이 존중되도록 함으로써 사람들이 과제를 해 나가도록 지켜준다. 타협자(compromiser)는 갈등 시에 쌍방에게로 행동한다"(코틀러, 2008: 69). 이런 역할은 자신의 불안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집단의 목적에 기여하는 것이다. 기능하는 역할이다.
설리반은 '친밀감(intimacy)'이 불안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역할에 갇혀 있으면 친밀감이 불가능하다. 진짜 나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역할을 벗어던지고 진짜 자신으로 집단 안에 있을 때, 비로소 불안이 사라진다. 그리고 집단 역동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생명줄을 찾는 것이다.
바로 이거다. 여럿이 모이면 집단 역동이 발생한다. 그 역동 속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특정 역할을 맡는다. 독점주의자, 은둔자, 비난자, 구조자, 분위기 메이커. 이 역할들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오래된 불안이 만든 방어막이다.
하지만 역할을 의식하는 순간, 선택이 가능해진다. 나는 더 이상 이 역할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다. 말을 독점하는 대신 경청을 선택하고, 침묵하는 대신 한마디를 선택하고, 비판하는 대신 인정을 선택하고, 회피하는 대신 진지함을 선택할 수 있다. 멈춰 선 곳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당신은 집단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가? 회의에서, 가족 모임에서,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에서. 그 역할이 당신의 불안을 증명하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가?
오늘부터라도 관찰해보자. 여럿이 모일 때 자신이 어떤 패턴을 반복하는지. 그 역할을 의식하고, 이름 붙이고, 느껴보자. 그 순간, 당신은 집단 역동에 지배당하는 사람에서 집단 역동을 지배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그게 현실이다.
제프리 코틀러/ 오규훈 역(2008). 최고의 그룹 리더가 되는 길. 서울: 지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