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착취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모든 커플이 똑같이 말한다. "저는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정작 사랑받는다는 사람은 숨이 막힌다고 한다. 도망가고 싶다고 한다. 이게 사랑일까.
아니다.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 뒤엔 치명적인 착각이 숨어 있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상대를 사랑한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상대를 이용했다는 거다. 100% 전부. 사실이 그렇다.
나폴레옹을 보라. 유럽 대륙을 정복한 그가 한 여자의 마음은 정복하지 못했다.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들은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 "당신이 내 전부다"라는 말들로 가득하다. 언뜻 보면 열정적인 사랑 고백 같다. 하지만 조세핀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기록에 남아있다. "황제의 사랑은 때로 감옥 같았다". 이게 바로 이거다. 나폴레옹은 조세핀을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착취한 거다.
심리학자 이수영 교수가 정확히 짚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사랑이 사랑받는 사람에게 흡족하고 '행복한 느낌'을 느끼도록 전달되는지, 아니면 '부담이나 아쉬움'으로 전달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이수영, 2023: 238). 나폴레옹의 사랑이 바로 후자였다. 조세핀은 사랑받은 게 아니라 사랑 당한 거다.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이 공포를.
사랑이라는 감옥의 메커니즘
나폴레옹을 다시 보자. 그는 제국을 경영하듯 사랑을 했다. 조세핀이 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강요했다. 편지를 보면 명확하다. "내가 원하는 건" "나를 위해서"라는 표현이 계속 나온다. 조세핀의 마음보다 자신의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는 데 집중했다. 조세핀은 수단이었다. 나폴레옹의 불안을 처리하는 도구였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여성을 보자. 남자친구와 6개월째 사귀고 있었다. 그날 밤 남자친구가 회식한다고 했다. "11시쯤 끝날 것 같아". 그녀는 "그래, 조심해"라고 답했다. 하지만 10시부터 불안하기 시작했다. 카톡을 보냈다. "재밌어?". 읽음 표시가 안 떴다. 11시가 됐다. 여전히 읽음 표시가 없었다. 심장이 뛰었다.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12시가 됐다.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받지 않았다. 그녀는 집에서 잠을 못 잤다. 새벽 1시에 남자친구가 전화했다. "미안, 회식 끝나고 2차 가서 폰 못 봤어". 그녀는 폭발했다. "나 걱정되는 줄 알아? 죽는 줄 알았잖아!". 남자친구는 당황했다. "나 괜찮은데 왜 그래?".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못했다. 평소에 쌓였던 서운함을 모조리 쏟아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남자친구가 걱정돼서가 아니라 자신이 불안해서 전화한 거였다. 남자친구를 확인해야 안심이 됐다. 남자친구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이게 사랑일까. 아니다. 착취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착취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대상상실의 두려움이라고 한다. 의지할 대상이 사라질까봐 느끼는 불안. 겉으로는 상대방을 걱정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불안을 처리하려는 거다. 나폴레옹의 편지를 보라. 조세핀이 자신을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계속 나온다. 전쟁터에서도 "당신이 바람피울까봐 잠이 오지 않는다"며 의심했다. 조세핀을 감시하기 위해 부관까지 보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소유다. 통제다. 감옥이다.
상담실에서 이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모두. 예외가 없다. "저는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해요"라고 말하면서 정작 상대방은 숨 막혀한다. 왜 그럴까. 그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용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자신의 불안을 달래는 수단으로 쓰는 거다. 산소처럼 필요하다고 착각한다. 산소 없는 곳에서 숨 쉬는 것처럼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건 환상이다. 상대방은 산소가 아니다. 독립된 인격체다. 이게 팩트다.
사랑 당함의 학습, 어머니라는 첫 번째 감옥
사랑 당함의 패턴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다. 틀림없다. 한 30대 여성을 보자. 그녀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미술 학원에 다녔다. 선생님은 "재능이 있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나 미대 가고 싶어". 어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미대? 미대 나와서 뭐 할 건데?".
어머니는 이혼 후 혼자 딸을 키웠다. 밤낮으로 일했다. 딸이 대학 가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미대는 안 됐다. "좋은 회사 취직해야지. 안정적인 직장 다녀야지. 그래야 나중에 네 아빠 만나도 떳떳하지". 딸은 입을 다물었다. 영문과에 지원했다. 합격했다. 어머니는 기뻐했다. "역시 내 딸이야". 딸은 웃었다. 하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여기서 핵심을 놓치면 안 된다. 이 어머니도 분명히 딸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 사랑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딸의 행복보다 자신의 체면을 우선시했다. 딸을 통해 전남편 앞에서 떳떳해지고 싶었던 거다. 딸은 어머니의 자존심을 회복해주는 수단이었다. 도구였다. 뼛속까지 느꼈을 것이다. 이 폭력을.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사랑이 진정으로 그 사람을 위한 사랑인지, 아니면 당하게 하는 사랑인지를 한번쯤 심사숙고해 볼 만하다"(이수영, 2023: 238). 이 어머니는 사랑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딸을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데 사용했다. 그래서 딸은 평생 진짜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살아왔다. 40살이 된 지금도 모른다. 누가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한다. "저는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패턴이 연인 관계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100% 반복된다. 그 여성은 대학 때 만난 선배와 사귀었다. 선배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는 선배가 혼자 있으면 불안했다. "왜 나랑 안 만나려고 해?". 선배는 당황했다. "만나고 싶은데 오늘은 좀 혼자 있고 싶어". 하지만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랑 있으면 싫어?". 결국 선배는 그녀를 만났다. 하지만 표정이 어두웠다. 그녀는 화가 났다. "억지로 만나는 거지?".
알고 보니 그녀는 선배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선배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선배가 조금만 차갑게 굴어도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아 두려워"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의존이다. 전쟁터다. 매일 전투를 치른다. 선배의 표정 하나하나가 지뢰밭이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애착의 문제가 여기서 드러난다. 어린 시절 조건부 사랑만 받으면서 자란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조건부로만 사랑할 줄 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기준에 맞춰 사랑하려 든다. 그게 바로 사랑 당함의 시작이다. 어머니가 딸에게 한 것처럼.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한 것처럼. 그 여성이 선배에게 한 것처럼. 바로 이거다.
한 40대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저한테 한 게 사랑이 아니라는 걸 50살에 알았어요. 저는 엄마의 자존심을 위한 도구였어요. 그래서 저도 남편한테 똑같이 했더라고요. 남편을 사랑한 게 아니라 남편을 통해 제 빈 공간을 채우려 했던 거죠". 몸으로 실감했다. 이 진실을.
진짜 사랑으로 가는 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랑 당하는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 남성의 이야기를 보자. 아내와 20년을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나를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어요. 당신이 원하는 아내를 사랑했을 뿐이죠". 그는 충격받았다. "저는 아내를 사랑했어요".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놀라운 일이 발견됐다. 그는 아내가 원하는 것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남편의 기준에 맞춰 행동했을 뿐이었다. 열심히 돈을 벌었다. "당신 먹고 싶은 거 다 사줬잖아". 아내 명의로 아파트도 샀다. "이제 안정적이잖아". 하지만 아내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물었다. "당신은 진짜 뭘 원하는 거야?". 아내는 한참을 침묵했다. 20년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다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이 퇴근하면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 얘기하고 싶어요. 주말에 함께 산책하고 싶어요. 당신이 내 손을 잡아주면 좋겠어요".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내는 돈이 아니라 시간을 원했다. 아파트가 아니라 함께하는 순간을 원했다.
그는 변화했다. 퇴근하면 아내와 산책을 나갔다. 처음엔 어색했다. "오늘 뭐 했어?" 물었다. 아내가 말했다. 그는 들었다. 중간에 해결책을 주려다가 참았다. 아내는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들어주길 원했다. 주말에는 아내 손을 잡고 동네를 걸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함께. 아내가 웃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처음 보는 진짜 웃음이었다.
1년 후 아내가 말했다. "이제야 당신한테 사랑받는 것 같아요". 그는 울었다. 20년을 함께 살면서 아내를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피부로 느꼈다. 진짜 사랑이 뭔지를.
다른 사례를 보자. 한 여성은 남편과 15년을 살면서 늘 불만이었다. "남편이 나한테 관심이 없어요.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안 해요". 상담을 하다 보니 문제가 보였다. 남편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그녀가 일어나기 전에 설거지를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을 사다 놨다. 그녀의 차에 기름을 넣어줬다. 그게 남편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 건 당연한 거잖아요. 사랑한다는 말이 중요하죠". 아니다. 남편에게는 그 행동이 사랑이었다. 그녀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그녀는 변화했다. 남편의 행동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설거지해준 거, 정말 고마워요. 사랑받는 느낌이에요". 남편은 처음엔 어색해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걸 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말로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도 당신 사랑해". 15년 만에 처음 들은 말이었다. 그녀는 울었다.
또 다른 남성의 이야기를 보자. 그는 여자친구에게 매달렸다. 하루에 열 번씩 전화했다. "뭐 해?" "보고 싶어" "사랑해". 여자친구는 처음엔 좋아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자 지치기 시작했다. "나 좀 혼자 있고 싶어". 하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랑 있으면 싫어?". 결국 여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를 소유하려고 했어요".
그는 충격받았다. 상담실에서 1년을 보냈다.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여자친구를 사랑한 게 아니라 여자친구를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려 했다는 것을. 여자친구가 원하는 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힘들어할 때가 아니라 자신이 외로울 때만 연락했다. 여자친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자신이 주고 싶은 만큼 과도하게 사랑을 퍼부었다.
2년 후 그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이번엔 달랐다. 먼저 물었다. "당신은 어떤 게 편해요?". 상대방은 놀랐다. "하루에 한 번 정도 통화하는 게 좋아요. 주말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요". 그는 그대로 했다. 상대방이 원하는 만큼만 연락했다.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1년이 지났다. 상대방이 말했다. "당신한테 사랑받는 게 이렇게 편한 줄 몰랐어요". 그는 웃었다. 이제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링컨의 경우를 보자. 그의 아내 메리 토드는 히스테리와 우울증으로 유명했다. 백악관 직원들은 메리를 피했다. 언제 폭발할지 몰라서. 하지만 링컨은 달랐다. 메리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메리가 메리다운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도왔다. 메리가 화낼 때 참고 들어줬다. 메리가 우울할 때 곁에 있어줬다. 메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메리는 화려한 파티를 좋아했다. 링컨은 파티를 싫어했지만 메리를 위해 참석했다. 메리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메리는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에이브는 내 마음의 폭풍을 잠재워주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만 있으면 안심이 돼요". 이게 진짜 사랑이다. 상대방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 하지 않는 것. 상대방이 상대방다운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돕는 것. 상대방이 원하는 걸 주는 것. 상대방이 원하는 때에.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당신의 사랑은 어떤가. 상대방이 당신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은가. 상대방이 당신의 사랑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상대방이 숨 막혀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물어보자. "당신은 뭘 원하나요?". 그리고 들어보자. 진짜로. 당신이 생각하는 답이 아니라 상대방이 말하는 답을. 그때 비로소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로운 사랑으로 갈 수 있다. 가능하다. 100% 가능하다. 틀림없다.
이수영 외(2023). 모신엄마. 대구: 달구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