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감을 느껴본 적 있는가. 있다. 예외가 없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소외감을 안다. 친구들과 있을 때, 가족과 있을 때, 연인과 있을 때도 느낀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거다. 실제로 소외당한 게 아닌데도 소외감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따돌리지 않았는데 혼자인 것 같다.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않았는데 투명인간이 된 것 같다.
한 어머니가 찾아왔다. 고등학생 아들이 게임만 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요즘 수업 시간에 멍하니 있는 경우가 많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충격받았다. 아들에게 물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어?". 아들은 "아무 일 없어"라고만 했다. 왕따를 당하는 것도 아니었다. 성적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최근 몇 달간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게임 속에서만 존재감을 느꼈다. 현실에서는 투명인간 같았다. 누구에게나 소외감은 있다. 문제는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정신분석가 성유미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토요일 저녁 당신을 포함하여 세 명의 친구들이 함께 즐거운 식사 모임을 가졌다. 처음에는 즐겁게 모임을 시작했는데 점점 시간이 흘러수록 당신은 이상하게 뭔가 불편해졌다. 나중에는 알 수 없는 '소외감'까지 느껴지는 순간 '내가 왜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꽤 당황스러웠다"(성유미, 2021: 226). 소외감은 예외가 없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느낀다. 바로 이거다.
몸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다
한 30대 여성이 상담을 신청했다. 3개월째 잠을 못 잔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다고 했다. "스트레스성 불면증"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었다. 직장도 안정적이고 남편과의 관계도 좋았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았다. 누우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숨이 막혔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났다. 그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갔다. 새 학교에서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한 학기 내내 혼자 밥을 먹었다. 혼자 쉬는 시간을 보냈다. "별거 아니었어요. 그냥 좀 외로웠던 것뿐이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웃고 있지 않았다.
이게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전환이다. 억압된 감정이 신체 증상으로 바뀌는 것. 19세기 말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마비, 경련, 실명을 호소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프로이트는 발견했다. 심리적 갈등이 신체 증상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로 간다. 분명하다. 프로이트는 이를 전환 증상이라고 명명했다. 마음이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이 몸의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몸으로 말한다. 뼛속까지 파고든다.
그 여성의 불면증이 그랬다. 20년 전 느꼈던 소외감을 억압했다. "별거 아니야" "다 지나간 일이야"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숨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불면증으로 돌아왔다. 몸으로 실감한다. 이 진실을.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가들은 이를 확장했다. 감정을 억압하면 두 가지 경로로 간다. 첫째, 생각이 왜곡된다. "나는 항상 버림받아" "사람들은 나를 싫어해". 이런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어린 시절 반복된 부정적 감정이 사고방식을 만든다.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산소처럼 필요하다고 착각한다.
둘째, 몸으로 넘어간다. "마음 안에서 풀지 못한 감정은 몸으로 넘어가고 삶의 태두리에 남는다"(성유미, 2021: 223). 만성 피로, 원인 모를 통증, 소화불량, 두통.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전환 증상이다. 마음의 고통이 몸의 언어로 번역된 것이다. 그렇게 작동한다.
한 40대 남성을 보자. 회사에서 승진했다. 연봉도 올랐다. 그런데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을 다섯 군데 갔다. 디스크도 아니고 근육 문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통증은 계속됐다. 상담을 하다 보니 알게 됐다. 승진 후 그는 부하 직원들과 거리가 멀어졌다. 예전엔 동료였는데 이제는 상사가 됐다. 점심을 함께 먹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피했다. 혼자 밥을 먹기 시작했다.
"외롭진 않았어요. 리더는 원래 외로운 거죠". 그는 웃었다. 하지만 그의 어깨는 웃지 않았다. 어깨가 무거웠다. 그 무게는 소외감이었다. 말하지 못한 외로움이 어깨 통증으로 나타난 거였다.
프로이트가 발견한 핵심은 이거다. 몸은 기억한다. 의식이 잊어도 몸은 잊지 않는다. 억압된 감정은 증상으로 돌아온다. 가슴 두근거림, 호흡 곤란, 근육 긴장. 이게 다 말하지 못한 감정의 목소리다. 한 가지는 명백하다. 시간은 약이 아니다. 시간은 감정을 숨기는 것뿐이다. 일시적으로는 고통에서 해방된 것 같지만 조금씩 병들어 간다. 줄어들 수 없다. 감정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표현된다.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는 방식
한 직장인이 있었다. 회사 회식 자리였다. 여섯 명이 모였다. 처음엔 즐거웠다. 맥주를 마시고 농담을 했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동료들이 자기를 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들 골고루 대화했다. 하지만 그는 점점 불편해졌다. 혼자인 것 같았다.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생각했다. "내가 왜 이랬지?". 아무도 자기를 따돌리지 않았다. 아무도 자기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소외감이 올라왔다. 알고 보니 그 소외감은 지금 여기서 온 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서 온 거였다.
그는 다섯 형제 중 셋째였다. 부모님은 맏이와 막내에게만 관심을 쏟았다. 맏이는 장남이라서, 막내는 귀여워서. 그는 늘 중간이었다. 부모님이 형과 동생 얘기만 할 때 그는 밥만 먹었다. "내가 투명인간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별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그 감정이 30년 후 회식 자리에서 올라온 거였다. 동료들이 자기를 소외시킨 게 아니었다. 과거의 소외감이 현재로 소환된 거였다. 이게 감정의 작동 방식이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사실 과거에서 온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반복 강박이라고 불렀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에서 반복된다. 의식하지 못한 채 같은 패턴을 되풀이한다. 예를 들어보자. 어린 시절 부모님이 형제들에게만 관심을 쏟았다. 당신은 늘 뒷전이었다. 그때 느낀 감정은 "나는 중요하지 않아"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였다. 이 감정이 무의식에 자리 잡는다.
이제 당신은 40대 직장인이다. 회의 시간이다. 상사가 다른 사람 의견만 듣는다. 객관적으로 보면 상사가 당신을 무시한 게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 먼저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당신의 무의식은 작동한다. "또 나는 무시당해" "나는 중요하지 않아". 30년 전 그 감정이 지금 여기로 온다. 전쟁터다. 매일 전투를 치른다.
프로이트가 말한 대로 무의식은 시간을 구분하지 못한다. 30년 전 일이든 어제 일이든 똑같이 반응한다. 유사한 자극만 있으면 과거의 감정이 현재로 소환된다. 이게 반복 패턴이다. 그래서 같은 상황에서 같은 감정이 올라온다. 모임만 가면 소외감, 회의만 하면 무시당한 느낌, 연인 관계에서는 버림받을 것 같은 불안. 상황은 다르지만 감정은 같다. 왜?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한 여성이 있었다. 남자친구와 3년째 사귀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불안했다. "나 없이 재밌게 놀면 어떡하지". 남자친구는 "금방 올게"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잠을 못 잤다. 카톡을 수십 번 확인했다. 남자친구가 답장을 안 하면 불안이 치솟았다.
알고 보니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동생만 챙겼다. 동생이 아플 때 어머니는 밤새 옆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플 때는 "언니니까 참아"라고 했다. 그때 느낀 감정이 "나는 소외됐다"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였다. 그 감정이 지금 남자친구 관계에서 올라오는 거였다. 남자친구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어린 시절 동생에게만 관심 쏟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나는 버려졌다". 피부로 느꼈다. 이 공포를.
감정은 움직인다. 억압되지 않고 살아서 작동한다. 현실적 차이나 배제 상황이 없어도 소외감은 느껴질 수 있다. 일종의 법칙이다. 그런 식이다.
제일 먼저 떠오른 그 말을 적어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제일 먼저 떠오른 말에 주목하는 것이다.
회식 후 집에 와서 잠을 설쳤다. 여러 감정이 있었다. 불편, 당황, 적적함. 그런데 표면 위로 쑥 올라온 건 "소외감"이었다. 그게 신호다. 그게 핵심이다. 확실하다.
프로이트는 이를 의식화라고 불렀다.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무의식을 의식으로 만들라". 억압된 감정을 인식하는 순간 그 감정은 당신을 지배하는 힘을 잃는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변화가 시작된다. 막연한 불편함이 구체적인 감정이 된다. "나 지금 불편해"가 아니라 "나 지금 소외감 느껴"라고 말하는 순간 감정과 거리가 생긴다. 더 이상 감정에 압도되지 않는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제 회의에서 불편했다면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뭐였나. "내 의견이 무시당했다"였나, "나는 투명인간이다"였나, "나는 이 팀에 필요 없다"였나. 그 첫 번째 말이 당신의 진짜 감정이다.
스마트폰 메모장에라도 적어두라. "오늘 회의 - 소외감" "가족 모임 - 투명인간" "친구 만남 - 혼자인 느낌". 정확히 알지 못해도 괜찮다. 일단 메모하는 게 중요하다. 그 메모들이 쌓이면 패턴이 보인다. 아, 나는 이런 상황에서 소외감을 느끼는구나. 어린 시절 형제들 사이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지금도 작동하는구나.
한 남성은 이렇게 했다. 3개월간 매일 밤 감정을 적었다. "오늘 팀 회의에서 소외감" "오늘 친구들과 술 마시는데 혼자인 느낌" "오늘 가족 저녁 식사에서 투명인간".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특히 사람들이 다른 사람 얘기만 할 때. 알고 보니 어린 시절 식탁에서 부모님이 형 얘기만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느꼈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감정이 지금도 반복되는 거였다.
그게 보이기 시작하면 당신은 더 이상 그 감정의 노예가 아니다. "아, 지금 이 소외감은 상사가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 부모님께 무시당했던 기억 때문이구나". 이렇게 인식하는 순간 감정과 거리가 생긴다. 무의식의 자동 반응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한 여성은 1년간 감정 일기를 썼다. 처음엔 막연했다. "오늘 기분이 안 좋다". 하지만 3개월쯤 지나자 구체적으로 쓸 수 있었다. "오늘 남자친구가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소외감이 올라왔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동생만 챙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렇게 적으니 감정이 명확해졌다. 남자친구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러자 남자친구에게 다르게 반응할 수 있었다. 예전엔 "나 빼고 놀면 재밌어?"라고 따졌다. 하지만 이제는 "나 지금 소외감 느껴. 어릴 때 기억 때문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남자친구는 이해했다. "금방 올게. 사랑해". 그 말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1년 후 그녀는 말했다. "이제 남자친구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도 괜찮아요. 제 감정이 뭔지 아니까요".
오늘 밤 잠들기 전에 물어보라. "오늘 어떤 감정이 있었나?". 제일 먼저 떠오른 말을 적어보라. 그게 시작이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들여다보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말자. 당신의 몸이, 당신의 마음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보자. 변화는 온다. 반드시 온다. 거기까지다.
성유미(2021). 당신이 아니라고 말할 때. 파주: 다산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