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말을 한다."재미가 없다" ,"하고 싶은 게 없어요" "뭘 해도 공허해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100% 전부. 마음속에 독재자가 산다는 것이다.
이 독재자는 실제 인물이 아니다. 어머니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아버지의 눈빛일 수도 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딱 하나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24시간 작동한다는 것이다.
한 40대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제 안에서 뭐라고 하세요". 실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내면화된 아버지는 죽지 않았다. 더 강력해졌다. 진실은 이거다.
정신과 의사 성유미는 이런 존재를 VIP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저마다의 VIP를 한 명씩 모시고 산다. 이 사람 앞에서는 재미를 찾지 못한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움츠러든다"(성유미, 2021: 273). 나는 이를 심리적 독재자라고 부른다. VIP라는 표현은 너무 예의 바르다. 이들이 하는 건 독재다. 쿠데타로 집권해서 폭력적으로 지배한다. 어린 시절 생존을 위해 받아들인 규칙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전복되지 않는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50살, 60살이 되어도 여전히 독재 체제에서 산다.
독재자는 어떻게 집권하는가
독재자는 언제 집권하는가. 정확히 말하면 하루아침에 집권하지 않는다. 서서히 침투한다. 산소가 빠져나가듯 조금씩 빠져나간다. 한 30대 여성은 7살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친구 집에서 놀다가 저녁 6시에 집에 왔다. 어머니가 현관에 서 있었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6시면 몇 시야. 5시 30분까지 오라고 했지". 어머니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이게 첫 번째 침투였다. 그날부터 그녀는 시계를 보며 살기 시작했다. 5시 30분이 절대 시간이 됐다. 1분이라도 늦으면 심장이 뛰었다. 10살 때는 5시 20분에 집에 오기 시작했다. 15살 때는 5시에 집에 왔다. 20살 때는 아예 친구 집에 가지 않았다. 40살이 된 지금도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한다. 늦으면 몸으로 실감한다. 공포를. 어머니는 더 이상 화내지 않는다. 하지만 내면의 독재자는 여전히 작동한다. 30년 전의 규칙이 오늘도 집행된다.
프로이트의 초자아가 바로 이것이다. 양육자의 목소리가 내면화된 것.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초자아가 원본보다 더 가혹하다. 한 남성은 아버지가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한 번도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었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 이게 40년간 작동했다.
첫 아이가 죽었을 때도 울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아내는 통곡했지만 그는 서 있었다. 사람들은 "저 아버지는 강하다"고 말했다. 강한 게 아니었다. 울 수가 없었다. 독재자가 허락하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상담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 안에 돌덩이가 있어요. 심장 자리에". 그게 울지 못한 눈물이다. 독재자가 압수한 감정이다. 이게 전부다.
독재의 메커니즘은 자기 검열이다. 독재자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복종한다. 한 대학생은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경영학과에 갔다. 아버지가 반대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까" 생각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원서를 쓸 때까지 아버지는 음악 전공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경영학과 합격 통지서를 받고 나서야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 경영학 할래요". 아버지는 "그래, 네가 좋으면 돼"라고 말했다. 그는 그 순간 무너졌다. 아버지는 반대하지 않았다. 20년간 그를 지배한 건 아버지가 아니었다. 내면의 독재자였다. 이게 독재의 완성형이다. 외부의 명령이 필요 없다. 스스로 알아서 복종한다. 피부로 느낀다. 이 공포를.
독재 체제의 일상풍경
독재 체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학교도 다니고 직장도 다닌다. SNS에는 행복한 사진을 올린다. 하지만 내부는 전쟁터다. 지뢰밭이다. 한 직장인은 월요일 아침마다 구역질이 난다고 했다. 5년째 반복되는 증상이다. 병원에 가도 이상이 없다고 한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팀장이 그의 독재자였다. 팀장은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폭언을 하는 것도 아니고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팀장의 표정 하나하나를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신가" "내가 뭘 잘못했나" "저 한숨이 나 때문인가". 점심을 먹을 때도 팀장이 뭘 먹는지 확인했다. 이게 8시간 동안 반복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년째. 그는 말했다. "팀장님은 저한테 관심도 없으세요. 제가 알아서 이러는 거죠". 맞다. 팀장은 그에게 관심이 없다. 독재자는 그의 내면에 있다.
"VIP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된다. VIP가 싫어할까 봐 재미있는 걸 참는다"(성유미, 2021: 274). 이게 독재 체제의 일상이다. 자기가 사라진다. 예외가 없다. 한 20대 여성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때마다 30분씩 고민한다고 했다. "이 사진을 올리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사진을 찍을 때부터 이미 타인의 시선이 작동한다. 내가 좋아서 찍는 게 아니라 남들이 좋아할 만한 걸 찍는다.
여행을 가도 마찬가지다.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인증샷을 찍는다.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음식을 찍는다. 삶이 전시가 된다. 독재자는 복수다. 한 명이 아니라 수천 명의 팔로워가 독재자가 된다. 좋아요 숫자가 자기 존재의 가치가 된다. 댓글 하나에 하루가 좌우된다. 이게 현대판 독재다. 뼛속까지 파고든다.
라캉은 이를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 타자가 원하는 걸 원한다. 한 50대 남성은 회사에서 30년을 일했다. 임원까지 승진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해고 통보를 받았다. 구조조정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해고 통보를 받자마자 몸이 가벼워졌다. 30년간 짊어진 짐이 내려간 느낌이었다.
그날 밤 그는 처음으로 편히 잤다고 했다. 회사가 그의 독재자였다. 회사의 인정이 산소처럼 필요하다고 믿었다. 산소 없는 곳에서 숨 쉬는 것처럼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30년을 바쳤다. 하지만 회사는 그를 버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회사는 애초에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독재자는 실체가 없었다. 그가 만든 환상이었다. 이게 진실이다.
독재자를 축출하는 법
독재자를 축출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 100% 가능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이건 혁명이기 때문이다. 혁명에는 단계가 있다. 워크숍에서 만난 사람들이 증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독재자를 인식하는 것이다. 누가 나의 독재자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한 워크숍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누구와 있을 때 숨이 막히는가?". 20명 중 18명이 즉시 대답했다. 어머니, 시어머니, 남편, 상사, 친구. 숨이 막히는 사람이 독재자다. 그 사람 앞에서 진짜 자신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2명은 대답하지 못했다. "저는 모든 사람 앞에서 숨이 막혀요". 이게 더 심각한 상태다. 독재자가 내면화돼서 상시 작동한다는 뜻이다. 특정 인물이 없어도 독재 체제가 유지된다. 전부 독재자다. 이런 경우는 더 깊은 탐색이 필요하다.
두 번째 단계는 망명이다.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다. 한 여성은 어머니와 한 달간 연락을 끊었다. 처음엔 죄책감에 잠을 못 잤다. "엄마가 아프시면 어떡하지" "엄마가 나를 미워하시면 어떡하지". 악몽을 꿨다. 어머니가 죽는 꿈, 어머니가 자신을 저주하는 꿈.
하지만 한 달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잘 계셨다. 어머니는 딸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기 삶을 살고 있었다. 모든 건 그녀의 상상이었다. 독재자는 실체가 없다. 내 안의 환상이다. 한 달 후 어머니에게 전화했을 때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잘 지냈어?". 그게 전부였다. 이게 현실이다.
세 번째 단계는 혁명이다. 새로운 목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한 남성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싫어요"라고 말했다. 상사가 주말 근무를 요청했을 때 거절했다. "죄송하지만 이번 주말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몸으로 실감했다. 이 공포를. "해고당하면 어떡하지" "찍히면 어떡하지".
하지만 상사는 담담하게 "알았어. 그럼 다음 주에 하지 뭐"라고 말했다. 그게 전부였다. 40년간 쌓아온 공포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독재자는 생각보다 약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독재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만든 환상이었다. 그날 밤 그는 처음으로 편히 잤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네 번째 단계는 재건이다. 자기 목소리로 사는 것이다. 한 여성은 이혼 후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갔다. 남편과 20년을 살면서 여행지는 늘 남편이 정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산,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 남편이 좋아하는 숙소. 그녀는 한 번도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혼자 가는 여행에서 그녀는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숙소만 예약하고 갔다. 첫날은 당황스러웠다. "뭘 해야 하지" "어디를 가야 하지". 남편이 있으면 남편이 정해줬다. 하지만 이제 자기가 정해야 했다. 두 시간 동안 숙소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그냥 나가볼까".
거리를 걷다가 작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들어갔다. 케이크를 시켰다. 남편은 케이크를 싫어했다. 20년간 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케이크를 먹으면서 울었다. 피부로 느꼈다. "이게 내 삶이구나". 50살에 처음 만난 자기 자신이었다. 이틀째 되는 날 그녀는 바닷가에 앉아 하루 종일 바다를 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있었으면 "뭐 하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혼자였다. 하루 종일 바다를 봐도 된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게 자유다.
재미는 자유에서 나온다. 독재 체제에서 재미는 불가능하다. 예외가 없다. 모든 에너지가 검열과 복종에 쓰이기 때문이다. 한 청년은 군대 제대 후 1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방황한다"고 했다. 부모는 "취업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방황하는 게 아니었다. 회복하고 있었다.
20년간 부모의 독재 체제에서 살았다. 2년간 군대 독재 체제에서 살았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목소리로 살아본 적이 없었다.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독재자를 인식하고, 망명하고, 혁명하고, 재건하는 시간이. 그는 1년 동안 매일 산책을 했다. 책을 읽었다. 음악을 들었다. 그림을 그렸다.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 것들을 했다.
1년이 지나자 그는 알게 됐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부모는 그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부모의 욕망이었다. 그의 욕망이 아니었다. 1년의 시간은 낭비가 아니었다. 혁명의 시간이었다.
독재자 없는 삶은 가능하다. 틀림없다. 한 70대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60살에 남편이 죽었어요. 슬펐지만 동시에 자유로웠어요. 이상하죠? 40년을 같이 산 사람인데. 하지만 그분이 제 독재자였어요. 70살에 처음으로 재미있게 살고 있어요". 재미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의 문제다. 독재자를 인식하고, 망명하고, 혁명하고, 재건하는 것. 그게 재미있는 삶의 시작이다. 늦은 때란 없다. 지금이 바로 혁명의 시간이다. 이게 실존이다.
성유미(2021). 감정이 아니라고 말할 때. 파주: 다산 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