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깨달았다. 왜 중요한 순간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면접 때마다 길을 헷갈리고, 발표 날이면 USB를 놓고 오고, 마감 직전엔 파일이 날아간다. 정말 우연일까?
아니다. 실수는 무의식의 편지다. 유범희는 "무의식 속 내용이 의식화되려고 하면 의식은 일단 그것을 억누르려 애쓴다"(유범희, 2016: 21)고 했다. 그 억눌린 것들이 실수로 튀어나온다.
바로 이거다. 당신이 놓친 USB에도, 헷갈린 길에도, 잊어버린 약속에도 메시지가 있다.
빨간불 착각 속에 숨은 진실
결혼 앞둔 남자가 파란불을 빨간불로 본다면? 유범희가 분석한 경호 씨가 그랬다. 예복 찾으러 가다가 신호등을 착각한 거다(유범희, 2016: 22).
하지만 이건 경호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다. 승진 면접 날 알람을 못 듣고, 이직 제안 메일을 스팸함에서 발견하고, 중요한 미팅 장소를 헷갈리고.
그게 다 신호다. "정말 이걸 원해?" 무의식이 묻는 거다.
최근 만난 30대 디자이너가 그랬다. 이직 면접을 세 번이나 놓쳤다. 지각, 날짜 착각, 장소 헷갈림. "제가 바보 같아요"라고 자책했지만, 나는 물었다. "정말 그 회사 가고 싶어요?"
침묵이 흘렀다. "사실... 지금 회사가 편해요. 단지 주변에서 계속 옮기라고 해서..."
그렇다. 실수가 그녀를 지켜준 거다.
말실수에 담긴 속마음
병수 씨처럼 "시작합니다" 대신 "마칩니다"라고 말한 적 있는가(유범희, 2016: 23)?
나도 있다. 기업체 강의 첫날, "이번 강의가 마지막 시간입니다"라고 했다. 직원들은 웃었지만, 나는 알았다. 정말 끝내고 싶었다는 걸.
동네 카페 사장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오픈 첫날, "오늘로 문 닫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손님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6개월 후 정말 문을 닫았다. "처음부터 알았나 봐요. 이 일이 맞지 않다는 걸."
말실수는 가장 정직한 고백이다. 의식의 검열을 피해 진실이 튀어나오는 거다.
프로이트가 발견한 실수의 비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를 '실수 행위'라고 불렀다.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무의식과 의식의 타협점이라는 거다.
당신이 연인 이름을 헷갈렸다면? 전 애인 이름을 불렀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신호다.
중요한 서류를 집에 놓고 왔다면? 그 계약을 하고 싶지 않은 거다. 회의 시간을 착각했다면?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은 거다.
일상 속 무의식의 신호들
버스에서 본 20대 취준생이 있었다. 면접 가는 길인데 반대 방향 지하철을 탔다. "아, 또!" 하며 내렸지만, 표정에 안도감이 스쳤다.
헬스장에서 만난 40대 주부는 PT 예약을 매번 잊는다고 했다. "제가 건망증이 심해요." 하지만 친구와의 브런치 약속은 한 번도 안 잊는다.
헬스장 막내는 보고서 제출 때마다 파일이 날아간다. "컴퓨터가 이상해요"라고 하지만, 게임 데이터는 완벽하게 보관한다.
이게 다 무의식의 선택이다. 진짜 원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의 갈등. 그 틈새로 실수가 나온다.
실수와 대화하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범희는 "무의식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다"(유범희, 2016: 28)고 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실천법:
실수 일기 쓰기 (매일 5분) 오늘 무슨 실수를 했는지 적어본다. 깜빡한 것, 놓친 것, 헷갈린 것. 패턴이 보이면 메시지도 보인다.
실수했을 때 "고마워" 말하기 자책 대신 "알려줘서 고마워"라고 속으로 말한다. 실수는 적이 아니라 친구다.
실수로 얻은 것 찾기 그 실수로 피하게 된 게 뭔지 생각해본다. 거기에 진짜 당신이 있다.
실수가 가르쳐준 자유
앞서 언급한 30대 디자이너는 이직을 포기했다. 대신 현 직장에서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가 원한 건 변화였지, 떠나는 게 아니었어요."
동네 카페 사장님은 카페를 접고 원래 꿈이던 베이킹 클래스를 열었다. "말실수가 진짜 내 마음을 알려줬어요."
나도 그 기업체 강의를 마지막으로 강의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일방적 강의 대신 대화형 강의로.
그런데 신기한 건, 실수를 인정하고 나니 실수가 줄었다는 거다. 아니, 정확히는 실수를 해도 괜찮아졌다.
당신은 어떤가?
오늘 무엇을 깜빡했는가? 커피를 쏟았는가? 이름을 헷갈렸는가? 약속을 잊었는가?
그것들이 모두 당신의 진짜 목소리다.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나는 지쳤어"
"다른 걸 하고 싶어"
실수는 당신을 망치려는 게 아니다. 구하려는 거다. 가짜 삶에서, 남의 기대에서, 자기 배반에서.
오늘부터 실수와 친구가 되어보라. "왜 또 이래?"가 아니라 "뭘 말하고 싶니?"라고 물어보라.
거기에 자유가 있다. 진짜 당신이 있다.
그게 바로 진실이다.
유범희(2016). 다시 프로이트, 내 마음의 상처를 읽다. 서울: 더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