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기억하는 죄책감의 무게

by 홍종민


주위를 보면 너나없이 몸이 아프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한다. 검사는 정상인데 통증은 계속된다. 이상한 일이다.

한 50대 여성이 있었다. 극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날짜를 확인하니 정확히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사망한 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더 기가 막힌 건 통증 부위가 어머니의 암 발생 부위와 정확히 일치했다는 것이다.

확실하다. 몸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기억을 품고 있다. 특히 가족의 고통과 죽음을 몸으로 기억하고 재현한다. 정신분석학자 대리언 리더는 이를 "무의식적 동일시"라고 불렀다. 사망한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증상, 생각보다 흔하다(리더, 2011: 18).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신 후 담배를 피우지도 않는데 기침이 멈추지 않는 사람,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진 후부터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 그들의 몸이 고인과의 연결을 유지하려는 무의식적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거다.


아픔으로만 닿을 수 있다고 믿었던

20세기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 6살에 소아마비, 18살에는 끔찍한 교통사고. 척추가 세 군데 부러졌고 평생 30번이 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의사들이 주목한 건 따로 있었다. 수술 후에도 계속 새로운 증상을 호소했다는 점. 통증이 의학적 설명을 넘어섰다. 한 의사는 "그녀가 고통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고 기록했다.

왜 그랬을까.

프리다의 아버지는 간질을 앓았다. 발작이 올 때마다 가족들은 공포에 떨었다. 어머니는 만성 우울증이었다. 프리다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도 아픈 것이었다."

가슴이 쓰렸다. 자신의 육체적 고통이 부모와의 정서적 연결 수단이었다는 것. 사고 이후 프리다는 더 위험한 행동들을 반복했다. 의사의 만류에도 무리한 활동을 하고,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움직였다. 아픔을 통해서만 부모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었던 거다.


건강한 것이 죄가 되는 사람들

안젤리나 졸리를 보자. 어머니가 난소암으로 56세에 사망한 후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BRCA1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자 예방적 유방 절제술과 난소 절제술을 받았다. 의학적으로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수술 후 인터뷰에서 한 말. "이제야 어머니께 미안하지 않다. 나만 건강한 것이 늘 죄스러웠다."

바로 그거다. 건강한 것이 죄가 되는 심리.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몸을 공격하게 만든다. 유전자가 아니다. 가족의 트라우마를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나만 멀쩡한 게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스스로를 벌한다.

대리언 리더가 연구한 39세 여성도 똑같았다. 언니가 유방암 진단을 받자 안정된 공무원직을 버리고 임시직을 전전했다. 위험한 성관계와 음주운전으로 자신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암에 걸리지 않았을까?" 그 질문이 그녀를 괴롭혔다(리더, 2011: 48).


몸이 기억하는 날짜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증상은 특정 날짜에만 나타나는가.

의사들은 종종 놓친다. 환자의 증상이 시작된 날짜가 가족의 사망일이나 진단일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만약 진료실에서 "정확히 언제부터"를 물었다면 많은 미스터리가 풀렸을 것이다.

심리학자 니콜라스 에이브러햄과 마리아 토록은 이를 '유령 효과'라고 불렀다. 가족의 숨겨진 비밀이나 트라우마가 다음 세대의 몸과 마음에 유령처럼 나타난다는 이론. 의식은 모르지만 무의식은 정확한 날짜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날이 되면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30대 중반의 한 CEO. 매년 3월마다 극심한 복통으로 입원한다. 검사 결과는 늘 정상. 알고 보니 3월은 그의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자살을 시도했던 달이었다. 아버지는 살았지만 아들은 매년 그 트라우마를 몸으로 기념하고 있었다.


사랑인가, 동일시인가

미국의 팝스타 데미 로바토. 디즈니 채널 출신 배우이자 가수. 10대 시절부터 거식증, 약물 중독, 자해로 여러 차례 재활원에 입원했다. 2018년에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겪어 생사의 기로에 섰다.

그녀의 자기 파괴 행동 뒤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였고 조울증을 앓았던 아버지. 데미는 자서전에서 고백했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어서 나도 똑같이 해봤다. 술을 마시고, 약을 하고, 자해를 했다. 그래야 아버지가 왜 우리를 떠났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현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자기 파괴로 이어진다. 증상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자신과 타인이 한 운명임을 표현하는 몸의 언어다.

앞서 본 39세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언니가 암에 걸리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버렸다. 클럽을 전전하며 언니의 자리에서 언니처럼 행동했다(리더, 2011: 48). 무의식은 이렇게 말한다. "나만 건강한 것은 불공평해. 나도 아파야 해. 그래야 진짜 가족이야."


이제 그만 놓아도 된다


그렇다면 이 무의식적 동일시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심리학자 얼빈 얄롬의 말이 떠오른다. "애도되지 않은 상실은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감정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의식적 분리'다. 고인과 나를 구분하고, 그들의 고통과 내 삶을 분리하는 작업.

39세 여성은 새로운 관계를 만나면서 변화의 계기를 맞았다. 아이를 원하는 남자를 만난 것.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이 죽음과의 동일시를 깨뜨렸다. 미래를 향한 욕망이 과거의 유령을 밀어냈다.

에이브러햄과 토록의 연구가 시사하듯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트라우마는 그것을 인식하고 직면할 때 비로소 치유될 수 있다. 가족의 유령과 작별하려면 먼저 그 유령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말해야 한다.

"당신의 고통은 당신의 것이고, 내 삶은 내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처럼 아플 필요는 없습니다."

치유는 여기서 시작된다. 나와 가족을 분리하고, 그들의 운명과 내 운명을 구분하는 것. 사랑은 동일시가 아니라 건강한 거리두기에서 온다는 깨달음. 그것이 진짜 애도고, 진짜 사랑이다.

당신의 그 원인 모를 통증. 혹시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그것이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죄책감일까.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여볼 때다. 거기에 답이 있다.


대리언리 리더/ 배성민 역(2011). 우리는 왜 아플까. 파주: 동녘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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