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대 중반의 한 남자가 상담실을 찾았다. 회사에서 폭언으로 징계를 받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상사도 아니고 동료에게, 그것도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일로 버럭 화를 냈다는 것이다. HR 팀에서는 분노조절 상담을 받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남자는 충격 속에서 심리상담 전문가를 찾아 헤맸다.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의 말을 듣다 보니 한 가지가 명확해졌다. 화살을 쏜 건 그 남자가 맞다. 하지만 과녁이 잘못됐다. 진짜 화난 대상은 따로 있었는데, 애꿎은 사람을 맞힌 것이다. 조지프 버고는 이런 현상을 정확히 짚어냈다. "어떤 감정이 생겼을 때 그 감정의 진원지가 아닌 애꿎은 곳으로 분노의 화살을 쏘는 것"(버고, 2020: 88). 이게 전치다.
더 무서운 건 자신도 모르게 정반대 얼굴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증오를 사랑으로 포장하고, 욕망을 금욕으로 감추고, 수치심을 뻔뻔함으로 덮는다. 마음속 깊이 들끓는 감정을 견딜 수 없어서, 그 감정과 정반대되는 모습을 만들어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안의 진짜 감정과 한밤중에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전쟁터에서 패배하면 남은 건 병뿐이다.
니체: 분노를 철학으로 쏘아버린 남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누가 뭐래도 19세기 독일 철학의 이단아였다. 1844년 작센주 뢰켄이라는 시골 마을, 목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에 아버지 잃고, 여자들만 있는 집에서 자랐다. 할머니, 어머니, 여동생, 고모 둘. 남자는 니체 혼자였다.
스물네 살에 바젤 대학 고전문헌학 교수가 됐지만 몸이 망가졌다. 편두통, 눈병, 위장병. 의사들은 쉬라고 했지만 니체는 쉴 수 없었다. 1879년, 서른다섯 살에 대학을 그만뒀다. 직업도 없고 건강도 없는 떠돌이가 됐다. 스위스 알프스, 이탈리아 해안, 프랑스 니스. 하숙집을 전전하며 하루 열여덟 시간을 두통과 싸우면서 글을 썼다.
친구 파울 도이센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고통 그 자체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니체는 자기 고통을 개인적 불운으로 보지 않았다.
서양 형이상학 전체의 병으로 확장시켰다. 자기 우울증이 니힐리즘이라는 시대 진단이 됐다. 소크라테스를, 플라톤을, 기독교를 향해 분노의 화살을 쐈다.
자기 몸의 병을 인류 정신의 병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진짜 괴로운 건 자기 머리와 눈과 위장이었는데, 그 고통을 이천 년 전 철학자들을 향한 비판으로 옮겨놓았다. "나한테 화풀이하지 마!"라고 외칠 사람은 없었다. 니체가 화낸 대상은 이미 죽은 철학자들이었으니까. 감정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니체는 살아남았다.
그런데 니체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초인'이라고 불렀다. 약하고 병든 몸을 가진 사람이 강함과 건강을 찬양했다.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고통을 극복하라고 외쳤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게 반동형성이다. 자기 안의 연약함을 견딜 수 없어서, 그 정반대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1889년 1월 3일, 이탈리아 토리노 광장에서 마부에게 채찍질당하는 말을 보고 그 목을 껴안고 울다 쓰러졌다. 정신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어머니가 독일로 데려갔고, 니체는 십일 년을 식물인간처럼 살다 1900년에 죽었다. 마흔다섯부터 오십여섯까지, 한 글자도 못 썼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가 침묵하자 세상이 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초인,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니체가 고통 속에서 쏘아 올린 개념들이 20세기 사상의 중심이 됐다. 자기 고통을 직접 호소했다면 아무도 안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철학이라는 보편적 언어로 옮겨놓자 백 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읽는다. 감정을 다른 대상으로 옮기는 게 늘 나쁜 건 아니다. 때로는 그렇게 해서 위대한 것이 탄생하기도 한다.
카프카: 증오를 자기혐오로 뒤집은 남자
프란츠 카프카한테 물어보자. 아버지는 누가 아버지냐. 헤르만 카프카, 키 180센티미터에 목소리 우렁차고 밥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남자지. 아들은 누가 아들이냐. 프란츠 카프카, 키 171센티미터에 체중 50킬로그램대,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더듬거리는 약골이지. 왜 그렇게 작아졌냐. 아버지 앞에서 1밀리미터도 자랄 수 없었으니까.
1883년 프라하 구시가지 유대인 지구. 헤르만은 가난한 행상에서 시작해 포목점을 성공시킨 자수성가형 사업가였다. "내가 이만큼 일궈냈는데 너는 뭐 하냐!" 그 소리에 카프카는 움츠러들었다. 스물일곱 살에 쓴 일기.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나는 벌레가 된다."
서른여섯 살에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썼다. 백 페이지짜리 긴 편지였다. "아버지는 내게 소리쳤습니다. '대답하지 마! 입 다물어!' 저는 그때부터 말문이 막혔습니다." 하지만 카프카는 이 편지를 아버지에게 보내지 않았다. 어머니가 말렸으니까.
그럼 카프카는 어떻게 했냐. 소설을 썼다.
『변신』.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벌레가 되어 깨어난다. 아버지는 사과를 던져 아들의 등껍질에 박아 넣는다. 그레고르는 천천히 죽어간다. 여기서 묘한 일이 벌어진다. 카프카는 아버지를 증오했다. 하지만 그 증오를 직접 표현하지 못했다. 유대인 가정에서 아버지를 증오한다는 건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카프카가 선택한 건 자기 자신을 벌레로 만드는 것이었다. 증오의 화살을 밖으로 쏘는 대신 안으로 돌린 것이다. 아버지를 공격하는 대신 자기를 공격했다.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을 그 정반대로 바꿔버린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로. 이게 반동형성이다.
그런데 카프카는 한편으로 극도로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직장 상사에게도, 동료에게도, 심지어 하급 직원에게도 정중했다. 친구들은 카프카를 "너무 착해서 질릴 정도"라고 표현했다. 약혼녀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는 오백 통이 넘는다. 한 통 한 통이 극진한 배려와 친절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녀와 결혼하지 못했다. 두 번이나 약혼을 파기했다.
왜일까? 카프카 안에는 견딜 수 없는 적개심이 들끓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세상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하지만 그 분노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반대의 얼굴을 쓴 것이다. 극도로 친절한 사람, 지나치게 예의 바른 사람. "극단적이고 과도한 '친절함' 역시 적개심에 대한 반동형성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버고, 2020: 101). 카프카의 친절함은 계산적인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착한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안에서 적대감이 커졌다.
1917년, 서른네 살에 폐결핵 진단. 의사는 요양을 권했지만 카프카는 보험회사 직원으로 계속 일했다. 낮에는 서류 처리, 밤에는 소설. 1924년, 마흔한 살에 오스트리아 키얼링 요양원에서 죽었다. 체중 40킬로그램 미만. 목구멍이 너무 아파 물도 못 삼켰다.
죽기 전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부탁했다. "내 원고 모두 태워달라." 브로트는 안 지켰다. 소설들을 출판했고, 그게 20세기 문학의 고전이 됐다. 『변신』, 『심판』, 『성』.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한 모든 것이 거기 있다. 감정을 정반대로 바꿔서 예술이 된 것이다.
전치와 반동형성이 손을 잡을 때
니체는 자기 병을 철학으로 바꿨고, 카프카는 아버지 증오를 소설로 바꿨다. 하나는 감정을 다른 대상으로 옮겼고, 하나는 감정을 정반대로 뒤집었다. 그런데 더 위험한 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할 때다.
상담실에 온 한 여자를 보자. 사십대 중반, NGO에서 일한다. 동물보호 운동을 십오 년째 하고 있다. 유기견 구조, 불법 번식장 고발, 동물학대 근절 캠페인. 누가 봐도 착한 사람이다. 그런데 남편과 이혼 직전이었다. 이유가 뭐냐. 가정폭력.
"제가요? 제가 폭력을 썼다고요?"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진술은 명확했다. 그녀는 집에서 물건을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 앞에서 남편을 모욕했다. "당신은 쓰레기야. 인간도 아니야." 그런 말을 서슴없이 했다.
조목조목 물어봤다.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는 폭력적이었다. 어머니를 때렸고, 그녀도 때렸다.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아이들이 나뭇가지로 새를 찔러 괴롭혔다. 그녀는 울면서 새를 구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약한 존재를 보호하는 사람이 될 거야."
하지만 그 결심 아래에는 견딜 수 없는 분노가 깔려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세상에 대한, 폭력에 대한 증오. 그 증오를 직접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었다. 동물을 사랑하고, 약자를 돌보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 이게 반동형성이다.
그런데 그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갈 곳이 필요했다. 동물을 향할 수는 없었다. 자기 정체성이 무너지니까. 그럼 어디로 갔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안전한 과녁에게. 남편에게. 이게 전치다.
"이 '좋은'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법으로 자신의 공격성을 표출하기 위해 그 감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풀지 않고, 낯선 사람이나 사회적 대의로 옮겨놓는다"(버고, 2020: 96).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동물보호 운동가. 보수주의자를 맹렬히 증오하는 '마음이 물렁한' 자유주의자. 겉으로는 선한 대의를 위해 싸우지만, 집에서는 가족을 학대한다.
전치와 반동형성이 손을 잡으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자기 안의 분노를 착함으로 포장하고, 그 포장된 분노를 엉뚱한 곳에 푼다. 본인은 자기가 착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지친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지나치게 친절하고, 지나치게 헌신적이고, 지나치게 도덕적인 사람을 보면 웬지 모르게 그 사람의 적대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게 신호다.
당신의 화살은 어디로 날아가는가
상담실에서 만난 그 남자는 조목조목 자기 이야기를 했다. 알고 보니 문제는 동료가 아니었다. 신입사원 때부터 자기를 무시한 팀장이었다. 십 년 동안 참았는데, 그날 동료가 사소한 실수를 하자 터진 것이다. "나한테 화풀이하지 마!"라고 동료가 말했을 때, 그제야 깨달았다고 했다. 자기가 엉뚱한 사람을 때렸다는 걸.
"팀장한테는 왜 안 했어요?"
"...직장 잃을까 봐요."
그게 바로 그거다. 정확한 과녁을 향하면 자기가 위험해지니까 안전한 과녁을 찾는다. 약한 사람을, 반격 못 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때린다. 감정은 원래 있어야 할 곳을
떠나 갈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그게 가장 비겁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진짜 과녁을 찾는 수밖에 없다. 팀장한테 화가 났으면 팀장한테 말해야 한다. 직접 말하기 어려우면 HR에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차라리 이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애꿎은 동료를 때리면서 "나는 팀장한테 화난 게 아니야"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건 가장 최악의 선택이다. 그건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전가다.
자기 안의 욕망이나 증오를 인정하지 못해서 정반대로 포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저는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열심히 말하는 사람일수록 무의식에서는 분노가 들끓고 있을 확률이 크다. "저는 욕심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욕망에 시달리고 있다.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과 속마음이 정반대일 때, 그 사람은 자기 자신과 한밤중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진짜 감정이 뭔지는 어떻게 알아요?"
몸이 알려준다. 특정 상황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나고, 숨이 가빠진다면 그게 신호다. 머리로는 "괜찮아"라고 해도 몸은 거짓말 못 한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귀 기울여봐야 한다. "내가 지금 정말 화난 사람은 누구지?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물어보는 거다. 답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니체는 초인 철학을 만들었지만 정신이 무너졌고, 카프카는 위대한 소설을 썼지만 마흔한 살에 죽었다. 감정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정반대로 뒤집는 건 당장의 고통을 피하게 해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를 병들게 만든다. 진짜 과녁을 향하지 않는 화살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게 법칙이다.
당신의 화살은 지금 어디로 날아가고 있는가? 진짜 과녁을 맞히고 있는가, 아니면 애꿎은 사람을 맞히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다. 바로 이거다. 거기까지다.
참고문헌: 조지프 버고(2020).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 서울: 더퀘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