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인에게서 톡이 왔다. "요즘은 뒤숭숭해서, 답장이 늦었네요." 회사 구조조정 때문일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니 사업부도 영향 있나봐?"
그런데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회사가 아니라 아버지 몸이 안 좋아져서... 회사가 나빠지든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신경 안 써요."
이상한 문장이었다. 아버지 건강이 어쩔 수 없는 게 맞지, 회사 구조조정이 어쩔 수 없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 말은 거꾸로 나왔다. 그레고리 바우어는 "전이 감정은 다양하게 위장된 방식으로 전달된다. 예컨대, 그것은 전치(displacement)되어 표현되기도 한다"(바우어, 2023: 70)라고 했다.
바로 이거다. 마음은 정작 중요한 것은 숨기고, 덜 위협적인 것으로 말을 옮겨놓는다. 일상의 대화가 사실은 전치의 일상이다.
전치란 무엇인가: 말의 이면
"회사가 나빠지든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사실 말실수다. 아버지의 몸이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질서다. 회사 구조조정은 다른 사업부로 옮기면 된다. 즉, 어쩔 수 있다.
그런데 왜 말은 반대로 나왔을까. 이게 바로 전치(displacement)다. 전치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원래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놓는 심리 작용이다. 지인은 아버지에 대한 불안을 회사 이야기로 전치한 것이다.
우리 속담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말이 있다. 정확히 이게 전치다. 종로에서 맞은 뺨이 아프지만, 그 사람한테는 화를 못 낸다. 그래서 한강 가서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푼다. 정작 아픈 곳은 건드리지 못하고, 안전한 곳에서 감정을 터뜨리는 것이다.
바우어는 이렇게 설명한다. "치료자를 지배적이고 통제하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환자는 치료자 대신 가까운 친구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바우어, 2023: 70).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통제당하는 느낌을 간접적이고 덜 위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감정을 환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인에게 지금 멀리 있는 회사 문제가, 바로 여기 있는 아버지보다 덜 위협적인 것이다. 회사는 최악의 경우 그만두면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질문 앞에서 마음은 얼어붙는다. 생존의 최소 조건이 흔들리는 공포. 그걸 직면하느니, 회사 걱정을 하는 게 차라리 견딜 만하다.
대화는 이어졌다. "요즘 필드 자주 나가느냐"고 물었다. "요즘은 별로 안 나가요. 한 달에 두 번밖에 못 나가요." 취미 좋은 거 택했다고, 푸른 잔디 위에서 스트레스 풀면 좋지 않냐고 했다.
그의 답이 또 이상했다. "아니요, 마지막 홀에 가면 스트레스가 더 쌓여요. 요즘은 타수가 내리막이라..."
골프 타수가 내리막인 게 스트레스? 여기서도 전치가 작동한다. 아버지 생각 때문에 골프에 집중할 수 없고, 그래서 타수가 나빠지고, 그게 다시 스트레스가 되는 악순환. 정작 말하고 싶은 건 "아버지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다"인데, 말은 "골프 타수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다"로 나온 것이다.
이게 전치의 오묘한 팩트다. 마음은 진짜 문제를 직접 건드리지 않는다. 대신 그 문제를 다른 대상으로 옮겨놓고, 거기서 감정을 푼다. 휘발유 없는 자동차처럼 작동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정교하게, 너무 교묘하게 작동한다.
전치의 메커니즘: 왜 우리는 돌아서 말하는가
전치는 프로이트가 발견한 방어기제 중 하나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말(馬)에 대한 공포로 전치시킨 사례가 유명하다. 말은 피할 수 있지만, 아버지는 피할 수 없으니까. 마음이 선택한 우회로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사람이 떠오른다. 30대 남자였다. 그는 계속 직장 상사 이야기를 했다. "팀장이 저한테만 유독 까다로워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러는데." 그런데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슬픔이 배어 있었다.
한참을 듣다가 물었다. "요즘 다른 관계는 어때요?" 그제야 그가 말했다. "아버지랑 거의 대화를 안 해요. 제가 하는 일을 인정 안 하시거든요." 팀장에 대한 불만이 사실은 아버지와의 단절된 관계에서 온 상처를 전치한 것이었다.
전치의 메커니즘은 이렇다. 첫째, 원래 대상(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너무 위협적이다. 둘째, 그 감정을 직접 표현할 수 없다. 셋째, 마음은 비슷한 속성을 가진 다른 대상(팀장, 회사, 골프)을 찾는다. 넷째, 그 대상에게 원래의 감정을 쏟아낸다.
바로 이런 식이다. 정작 아픈 곳은 감추고, 덜 아픈 곳에서 감정을 터뜨린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우회해서 말한 것들을 잘 들어보면 진짜 문제가 보인다는 거다. 전치된 감정에는 흔적이 남는다. 강도가 맞지 않는 반응, 어색한 타이밍, 지나친 집착. 그런 신호들이 "여기 아니야,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어"라고 속삭인다.
전치를 알아차리기: 일상 속 신호들
그렇다면 어떻게 전치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내 대화에서, 상대의 말에서 전치의 신호를 포착하는 법이 있다.
첫째, 감정의 강도와 내용이 맞지 않을 때다. "회사가 나빠지든 어쩔 수 없다"는 말의 무관심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거기 다른 곳으로 옮겨진 큰 감정이 숨어 있다. 골프 타수가 나빠져서 스트레스라는 말이 너무 과하게 느껴진다면? 그 뒤에 다른 불안이 있다.
둘째, 대화의 흐름이 부자연스럽게 꺾일 때다. 아버지 건강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회사로 말을 돌렸다면, 무엇을 피하려고 하는 걸까. 그 꺾임의 지점에 진짜 문제가 숨어 있다.
동네 카페에서 만난 40대 사장님이 있었다. 그는 계속 직원 이야기를 했다. "요즘 직원들은 맘에 안 들면 바로 그만둬요. 충성심이라곤 없어요." 그런데 그의 표정이 묘하게 쓸쓸해 보였다.
한참을 듣다가 물었다. "사장님은 요즘 어떠세요?" 그제야 그가 말했다. "솔직히... 아들이 저랑 말을 안 해요. 대학 가면서부터."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들과의 단절된 관계. 그 고통을 직원들의 충성심 부족으로 전치한 것이다.
직원에 대한 불만은 말할 수 있다. 사업상 필요한 이야기니까. 하지만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아버지로서의 실패감은? 그건 입 밖에 내기가 너무 아프다. 그래서 마음은 안전한 우회로를 택한다. 종로에서 뺨 맞은 아픔을 한강에서 풀 수밖에 없는 것처럼.
셋째, 같은 불평이 반복될 때다. 헬스장에서 만난 50대 남자가 있었다. 운동할 때마다 직장 상사 욕을 했다. "우리 팀장이 진짜..." 매번 같은 불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요즘 말을 안 해요"라고 했다. 순간 모든 게 연결됐다. 팀장에 대한 분노가 사실은 아내와의 단절에서 온 좌절을 전치한 것이었다.
그는 몇 달째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운동하러 오면 상사 욕, 또 운동하러 오면 상사 욕. 그 반복 자체가 신호였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어요"라고 마음이 외치고 있었던 거다.
바우어는 "다른 관계나 상호작용에 대한 환자의 이야기는 지금-여기의 관계에 대한 상징적인 언급일 수 있다"(바우어, 2023: 69)라고 했다. 회사 이야기를 하는데 목소리에 슬픔이 섞여 있다면, 거기 다른 관계의 고통이 숨어 있다. 골프 이야기를 하는데 눈빛이 불안하다면, 거기 더 깊은 두려움이 전치되어 있다.
전치와 함께 살기
전치 자체가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전치는 마음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지혜다. 감당 안 되는 고통을 한꺼번에 마주하면 무너진다. 그래서 마음은 조금씩, 간접적으로, 전치라는 방법을 통해 고통을 다룬다.
버스에서 옆자리 할머니가 있었다. 손자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요즘 물가가 너무 올랐다고 했다. "계란값이 어떻게 이래요." 그런데 그 목소리에 분노보다는 슬픔이 배어 있었다. 손자를 자주 못 봐서 뭐라도 사주고 싶은데,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자괴감. 그게 계란값으로 전치된 것이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 당신이 불평한 게 뭔가. 교통이 막혔다고? 날씨가 덥다고? 음식이 짜다고? 정말 그게 문제일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온 짜증을 거기에 풀어놓은 건 아닐까.
지하철에서 스마트폰만 보던 회사원이 있었다. 연락이 안 오는 걸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러다 옆 사람이 살짝 부딪치자 화를 냈다. "좀 조심하시죠!" 부딪힌 건 작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진짜 화난 건 연락이 안 오는 것, 무시당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 감정이 옆 사람에게로 전치된 것이다.
"내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건 뭘까?"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것, 그게 전치를 알아차리는 첫걸음이다. 짜증이 날 때 멈춰서 물어보라. "지금 진짜 화난 건 이것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데서 온 감정일까?"
상대의 말을 들을 때도 표면만 듣지 말자. "이 사람이 진짜로 말하고 싶은 건 뭘까?" 그 질문을 마음에 품고 경청하는 것. 그것이 진짜 공감의 시작이다.
일상의 대화는 전치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 전치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진짜 마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말하지 않은 것을 듣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게 관계의 기술이다. 그리고 그건 기술이기 전에 마음이다. 상대의 우회로를 따라가 주는 마음, 그 길 끝에서 진짜 고통을 마주해 주는 마음. 그게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참고문헌: 그레고리 바우어/ 정남운 역(2023). 지금-여기에서의 전이 분석.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