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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매일 반복하는 그 행동의 진짜 이유

by 홍종민

당신이 모르는 증상의 언어


당신은 누군가의 이상한 행동을 보면서 "저 사람 왜 저래?"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매일 같은 시간에 커피를 마셔야 하는 동료,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다섯 번씩 확인하는 친구, 특정 숫자를 병적으로 피하는 상사.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이상한 습관'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간다.

그게 팩트가 아니다.

모든 반복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본인조차 모를 뿐이다. 프로이트가 강박신경증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건 바로 이것이다. 증상은 그냥 증상이 아니다. 증상은 언어다. 그 사람이 겪은 인생의 어떤 장면을 말하고 있는 언어.

이건 단순한 관찰이 아니다. 혁명적 선언이다.

당신의 모든 이상한 행동, 설명할 수 없는 집착, 멈추고 싶지만 멈출 수 없는 반복—그 모든 게 당신 인생의 어떤 장면을 말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문제는 그 언어를 해독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다.


우리 안의 강박


먼저 확실히 해두자.

강박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당신도 있다. 나도 있다.

매일 아침 같은 순서로 준비하지 않으면 불안한 것. 특정 번호를 피하거나 선호하는 것. 중요한 일 전에 꼭 하는 루틴. 메시지를 보낸 후 계속 확인하는 것. 집을 나서고도 문을 잠갔는지 다시 확인하러 가는 것.

이게 다 경미한 강박이다.

"나는 그냥 습관일 뿐이야"라고? 그래, 습관이다. 그런데 그 습관은 어디서 왔나? 왜 하필 그 습관인가? 왜 그걸 안 하면 불안한가?

거기에 답이 있다. 당신의 무의식이 말하고 있는 것.

강박신경증을 가진 사람들은 지적 수준이 평균 이상이고, 활력이 넘치며, 윤리적으로도 성숙한 사람들이다. 오히려 천재들 중에 강박증을 가진 이들이 많다. 에밀 졸라 같은 천재도 일생 동안 강박적 습관에 시달렸다.

그러니까 강박은 병이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다. 우리 모두가 과거의 어떤 장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며 살아간다. 차이는 단지 그 강도와 우리가 그걸 얼마나 의식하느냐일 뿐이다.


탁자 위 얼룩의 비밀


자, 이제 진짜 이야기를 하겠다.

서른 살쯤 된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상한 행동을 반복했다. 자기 방에서 나와 옆방으로 달려간 다음, 방 한가운데 놓인 탁자 옆에 기대서서 초인종으로 하녀를 불렀다. 그런 후에 사소한 심부름을 시키거나 아무 지시도 없이 하녀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이게 뭐가 문제인가? 별거 아닌 것 같다. 그냥 좀 이상한 습관 아닌가?

아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놓치는 지점이다.

프로이트가 "왜 그런 행동을 합니까?"라고 물을 때마다 그녀는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본인도 몰랐다는 거다. 그런데 어느 날, 치료 과정에서 그녀의 근본적인 의심이 해소되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자기 행위의 의미를 알아챘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렇다.

10년 전, 그녀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했다. 신혼 첫날밤, 남편이 성불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남편은 수없이 자기 방에서 나와 그녀의 방으로 달려들어왔지만, 매번 실패했다.

아침이 됐다. 남편은 화가 났다. 그리고 말했다. "하녀가 아침에 잠자리를 치울 때 창피를 당할 수는 없다"면서, 붉은 잉크를 집어들어 침대보 위에 부었다. 처녀막이 찢어지면서 생긴 피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런데 그는 엉뚱한 곳에 잉크를 부어버렸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이제 보이는가?

그녀가 탁자로 달려가서 하녀를 부른 이유가. 그녀는 프로이트를 탁자로 인도했다. 덮개 위의 커다란 얼룩을 보여줬다. 그녀는 불려 들어온 하녀가 그 얼룩을 알아챌 수 있도록 탁자에 기대서곤 했다고 말했다.


증상이 말하는 진실


이제 해독이 시작된다.

그녀는 남편을 재연하고 있었다. 방에서 방으로 달려가는 행위를 흉내 내면서 남편의 역할을 대신했다. 침대는 탁자가 됐다. 침대보는 탁자덮개가 됐다. 꿈의 언어에서 탁자와 침대는 모두 결혼을 상징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녀는 단순히 과거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과거를 고쳐나갔다. 바로잡았다. 어떻게?

남편은 말했다. "하녀 앞에서 망신스러울 수는 없단 말이야." 그래서 엉뚱한 곳에 잉크를 부었다.

그녀의 강박 행위는 그 반대를 한다. 하녀를 불러서 제대로 된 위치의 얼룩을 보게 한다.

의미가 뭔가?

"아닙니다. 남편은 하녀 앞에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성불구가 아닙니다."(프로이트, 2022: 376)

이게 바로 증상의 언어다.

증상은 소망을 말한다. 남편이 정상이기를 바라는 소망. 그날 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소망. 강박 행위는 남편을 과거의 불행에서 구해내려는 심리적 의도를 반영한다.

그녀는 몇 년째 남편과 별거 중이었다. 법적 이혼을 고민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남편에게 충실할 수밖에 없었고,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살았다.

왜?

그녀의 병 가장 깊은 곳에는 남편을 나쁜 소문에서 보호하려는 욕망이 있었다.

강박증이 그녀를 가두고 있었던 거다. 남편을 떠나지 못하게.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하게. 신혼 첫날밤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당신도 재연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저렇게까지는 아닌데"라고 생각했는가?

천만에.

우리 모두 뭔가를 재연하고 있다. 단지 그 방식이 덜 극적일 뿐이다.

당신이 매일 아침 커피를 세 모금 마시고 나서야 일을 시작하는 것—그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어떤 시기,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했을 때 안전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 안전함을 재현하고 있는 거다.

당신이 중요한 미팅 전에 꼭 같은 노래를 듣는 것—그 노래가 과거 어떤 성공의 순간과 연결돼 있다. 당신은 그 성공을 다시 불러오려고 한다.

당신이 특정 사람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내는 것—당신은 과거 누군가에게 제대로 전하지 못한 말을 지금 이 사람에게 하고 있다.

예외가 없다.

우리 모두의 일상은 미세한 강박으로 가득하다. 그 강박들은 모두 과거의 어떤 장면을 재연한다. 이번엔 다르게 끝나기를 바라면서.

탁자로 달려가는 여자와 당신의 차이는 정도일 뿐이다. 본질은 같다. 우리 모두 과거를 현재에 끌어와 다시 쓰려고 한다.


예리한 통찰: 반복의 진짜 의미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보자.

왜 사람들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나?

표면적 답은 간단하다. "해결이 안 됐으니까." 맞다. 하지만 절반만 맞다.

진짜 답은 이거다. 반복은 해결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재현을 원하는 거다.

그 여자를 다시 보라. 그녀는 10년 동안 매일같이 탁자로 달려갔다. 10년이다. 그 시간 동안 남편과 이혼할 수도 있었다. 새로운 남자를 만날 수도 있었다. 치료를 받을 수도 있었다.

안 했다. 왜?

무의식은 해결을 원하지 않는다. 무의식은 반복을 원한다.

프로이트는 이걸 "반복 강박"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해결되지 않은 과거를 계속 재현한다. 왜? 이번엔 다르게 끝나기를 바라면서.

그녀가 탁자로 달려가는 건, 신혼 첫날밤을 다시 살아내는 거다. 단, 이번엔 성공하는 버전으로. 얼룩이 제대로 된 곳에 있는 버전으로. 남편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버전으로.

당신도 마찬가지다.

같은 유형의 사람과 계속 연애하는 것. 그건 우연이 아니다. 당신은 첫 사랑, 혹은 부모와의 관계를 재연하고 있다. 이번엔 당신이 버림받지 않는 버전으로.

같은 패턴의 갈등을 직장마다 겪는 것. 당신은 과거 권위자와의 갈등을 재연하고 있다. 이번엔 당신이 이기는 버전으로.

같은 종류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 당신은 과거 실패의 순간을 재연하고 있다. 이번엔 당신이 성공하는 버전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현재로 불러온다. 그리고 다시 쓰려고 한다. 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면, 같은 결말만 반복된다.


더 예리하게: 증상의 이중 메시지


증상은 이중 메시지를 보낸다. 동시에 두 가지를 말한다.

그 여자의 강박 행위를 다시 보자.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남편은 정상이에요. 증거 보세요, 얼룩이 여기 있잖아요."

하지만 깊은 층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남편은 성불구예요. 그래서 나는 매일 이 행동을 반복해야 해요. 왜냐하면 진짜가 아니니까."

증상은 동시에 부정하고 확인한다.

당신의 일상도 들여다봐라.

"나는 괜찮아"라고 반복하는 사람을 보라. 그 말은 동시에 두 가지를 뜻한다. "나는 괜찮다"와 "나는 괜찮지 않다." 왜 그럴까? 정말 괜찮으면 말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계속 말하는 사람을 보라. 그 말은 정확히 반대를 뜻한다. "그 사람은 여전히 나에게 중요해."

"나는 전혀 신경 안 써"라고 강조하는 사람.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다.

증상의 언어는 역설의 언어다. 부정이 확인이고, 확인이 부정이다.

이걸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당신 자신에게서도, 다른 사람에게서도.


대화의 혁명


이제 이걸 대화에 적용해보자.

누군가 당신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면? 같은 불만을 늘어놓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만 좀 해." 혹은 "내가 해결책 알려줄게. 이렇게 저렇게 해봐."

틀렸다. 둘 다.

그 사람은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니다. 들어주길 원하는 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도 모르는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 거다.

탁자로 달려가서 하녀를 부르는 여자처럼.

그녀가 프로이트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냐"고 물었을 때 "모릅니다"라고 답했던 것 기억하는가? 그녀는 정말 몰랐다. 의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의식은 알고 있었다. 증상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친구가 연애 이야기를 열 번째 반복한다면, 그건 단순히 연애 이야기가 아니다. 그 밑에 뭔가 다른 게 있다. 동료가 상사 불평을 매일 한다면, 그건 상사 문제만이 아니다.

정신분석적 듣기는 이걸 본다.

표면 아래를 본다.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을 본다. 반복되는 패턴을 본다. 그리고 묻는다. "이 사람은 정말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우리 안의 미세한 강박들


일상을 들여다보자. 당신의 하루를.

아침에 일어나서 핸드폰을 확인하는 순서. 커피를 마시는 타이밍. 출근길에 듣는 음악. 책상을 정리하는 방식. 점심 메뉴를 고르는 패턴. 퇴근 후 하는 루틴.

다 이유가 있다.

"그냥 편해서"라고? 왜 그게 편한가? 왜 하필 그 순서가 편한가? 왜 그걸 안 하면 하루가 불안한가?

거기에 답이 있다.

우리는 모두 미세한 강박들로 하루를 구성한다. 그 강박들은 우리에게 안전함을 준다. 통제감을 준다. 예측 가능성을 준다.

왜 그게 필요한가?

과거 어느 순간, 세상이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작은 것이라도 통제하려고 한다. 그게 우리의 강박이다.

직장에서 이메일을 보낸 후 계속 확인하는 것. SNS에 글을 올리고 반응을 확인하는 것. 중요한 만남 전에 거울을 여러 번 보는 것. 집을 나서고도 가스불을 확인하러 돌아가는 것.

이 모든 게 강박이다. 미세하지만 강박이다.

그리고 이 강박들은 모두 뭔가를 말하고 있다. 당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으로부터 안전함을 느끼는지.


치유는 해석에서 시작된다


그 여자는 자신의 증상을 해석하는 순간, 변화가 시작됐다. "이처럼 아무런 위험이 없는 듯이 보이는 강박 행위의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병적 증상의 깊숙한 핵심에 바로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프로이트, 2022: 376)

핵심에 도달한다는 건 뭔가? 진실을 본다는 거다.

그녀의 진실은 이거였다. 남편을 떠나고 싶으면서도 떠날 수 없다. 왜? 남편을 보호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왜 보호해야 하나? 신혼 첫날밤에 남편이 수치심을 느꼈기 때문에.

이 연결고리를 보는 순간, 강박 행위는 의미를 얻는다. 의미를 얻는 순간, 힘을 잃는다.

왜?

증상은 무의식이 말하는 방식이다. 의식이 알아듣지 못할 때만 계속 말한다. 의식이 알아들으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미세한 강박들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왜 매일 아침 같은 순서로 준비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 왜 특정 상황에서 불안해지는지 이해하는 순간. 왜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지 깨닫는 순간.

그때 변화가 시작된다.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듣는 법을 모른다.

친구가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답을 준비한다. 조언을 생각한다. 비슷한 경험을 떠올린다.

그게 아니다.

정신분석적 듣기는 다르다.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 너머를 듣는다. 반복을 주목한다. 모순을 포착한다. 회피를 감지한다.

"나는 괜찮아"라고 열 번 말하는 사람은 괜찮지 않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계속 말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은 여전히 중요하다. "나는 신경 안 써"라고 강조하는 사람은 신경 쓰고 있다.

증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의식은 부정하지만 무의식은 진실을 말한다.

프로이트가 발견한 게 바로 이거다. "신경증 증상들은 환자가 지배받고 있는 무의식적 관념들의 표현"이라는 것(프로이트, 2022: 368).

당신이 상대방의 증상을—그들의 반복, 집착, 회피를—읽을 수 있다면, 당신은 그들의 무의식을 읽는 거다. 그들이 의식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걸 듣는 거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증상도 읽어야 한다. 당신의 반복, 집착, 회피가 무엇을 말하는지.


통찰의 순간


증상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있다.

그 여자가 자기 행동의 의미를 갑자기 알아챈 순간 말이다. 프로이트는 그냥 물었을 뿐이다. "왜 그런 행동을 합니까?" 그녀는 몰랐다. 계속 몰랐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녀의 "근본적인 의심"이 해소됐을 때, 갑자기 알아챘다.

이게 핵심이다.

통찰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준비가 됐을 때 온다. 그 준비는 뭔가? 방어가 내려갈 만큼 안전함을 느끼는 것.

프로이트가 그녀에게 준 건 정보가 아니었다. 안전함이었다. 자기 진실을 마주해도 괜찮다는 안전함. 그제야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자기가 매일 재연하고 있던 장면을.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당신의 증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에게 안전함을 줘야 한다.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자책하지 말고, "이 행동은 뭔가를 말하고 있구나"라고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그 호기심이 안전함을 만든다. 그 안전함 속에서 통찰이 온다.


변화는 이해에서 온다


당시 정신의학의 문제가 뭐였나? 이름만 붙였다. 분류만 했다. 이해는 하지 않았다.

우리도 똑같이 한다.

"저 사람 강박증 있어." "저 사람 집착 심해." "나 완벽주의 성향이야."

라벨만 붙인다. 거기서 끝이다. 왜 그런지는 안 물어본다.

프로이트는 물었다. 그래서 발견했다. 증상 뒤에 이야기가 있다는 걸. 그 이야기를 이해하면 증상이 사라진다는 걸.

당신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그 행동은 달라진다. 판단을 멈추고 듣기 시작하는 순간, 관계가 바뀐다.

왜?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라 이해받는 거니까.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누군가 이해해주는 것. 그게 치유다.

당신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강박을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그 강박은 조금씩 느슨해진다.


마지막으로


탁자로 달려가 하녀를 부르는 여자의 이야기를 기억하라.

그녀의 행동은 이상해 보였다. 무의미해 보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10년간의 고통이, 신혼 첫날밤의 트라우마가, 남편을 향한 복잡한 감정이 모두 들어 있었다.

우리 모두 그렇다.

우리의 이상한 행동, 반복되는 패턴, 설명할 수 없는 집착—그 모든 게 뭔가를 말하고 있다. 우리 인생의 어떤 장면을. 해결되지 않은 어떤 문제를. 이루지 못한 어떤 소망을.

차이는 정도뿐이다. 그녀는 극단적이었고, 우리는 일상적이다. 하지만 메커니즘은 똑같다.

우리 모두 안에 작은 강박들이 있다. 그 강박들은 모두 과거를 현재로 불러와 다시 쓰려는 시도다.

문제는 우리가 그 언어를 못 읽는다는 거다.

정신분석적 대화는 바로 그 언어를 읽는 법이다. 증상을 듣는 법이다. 표면 아래를 보는 법이다.

프로이트는 물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처럼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강박 행위가 우리를 환자의 가장 내밀한 영역으로까지 안내했는지 이상하지 않습니까?"(프로이트, 2022: 377)

이상하지 않다.

가장 작은 증상이 가장 깊은 진실로 통한다. 가장 사소한 반복이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는다.

그걸 읽을 줄 아는 게 정신분석적 대화의 기술이다.

당신의 탁자 위엔 어떤 얼룩이 있는가? 그 얼룩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듣기 시작하라. 자기 자신의 증상을. 다른 사람의 증상을.

그게 치유의 시작이다.


참고문헌

지그문트 프로이트/ 임홍빈 외 역(2022). 『정신분석 강의』.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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