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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착함이 당신을 죽인다

by 홍종민

착한 사람이 무섭다. 진짜로.

내가 상담실에서 가장 경계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나 칭찬하는 사람, 모범적인 사람, 늘 웃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찾아올 때, 나는 안다. 곧 터질 거라는 걸. 그들의 그림자가 얼마나 거대해졌는지를.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우리는 착각한다. 좋은 사람이 되면 나쁜 면이 사라진다고. 이성적이 되면 충동이 없어진다고. 도덕적이 되면 욕망이 증발한다고.

틀렸다. 완전히.

융은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은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을 본래 이중인격자로 보았다. 한결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인격의 안정성이 아니라 "지나치게 지루하고 소진된 모습"이라고 했다.(최광현, 2025: 51) 왜? 인간은 하나의 모습만을 띨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더 선해지려 노력할수록, 당신 안의 어둠도 그만큼 자란다. 이게 인간이다. 피할 수 없다.

나는 이 진실을 수없이 목격했다. 20년 넘게 완벽한 아내로 살아온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가출한다. 모두가 존경하는 목사가 성추행으로 고발당한다. 모범생이던 아이가 학교에 불을 지른다.

왜? 빛이 너무 밝았기 때문이다. 그림자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짙어졌기 때문이다.

상담실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가장 힘든 케이스가 뭔지 아는가? 자기 문제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저는 문제없어요. 제 남편이 문제예요." "저는 괜찮은데 애가 이상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이들의 공통점은 평생 착하게 살아왔다는 거다. 너무 착해서 자기 안의 나쁜 면을 한 번도 직면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 나쁜 면은 어디로 갔을까? 사라진 게 아니다. 무의식 깊은 곳에 처박혀서 괴물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괴물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 튀어나온다. 남편에게, 아이에게, 부모에게. "당신이 문제야"라고 말하는 그 순간, 사실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있는 거다.


모든 소방관은 방화범이 되고 싶어 한다


"모든 소방관은 방화범이 되고 싶어 한다"는 속담이 있다. 실제로 상당수의 방화가 소방관에 의해 일어난다.(최광현, 2025: 52) 이것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핵심을 관통하는 사실이다.

불을 끄는 사람이 불을 지른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환자를 죽인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이들을 학대한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융은 자아가 커지면 그림자도 함께 커진다고 했다. 시소처럼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이 내려가는 게 아니라, "두 쪽이 나란히 움직이는 심리 작용 현상"이라고 말했다.(최광현, 2025: 52)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당신이 소방관이 되려고 애쓸수록, 당신 안의 방화범도 똑같이 자란다는 거다. 당신이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할수록, 아이를 망치고 싶은 충동도 커진다. 당신이 이상적인 배우자가 되려고 할수록, 배우자를 떠나고 싶은 욕망도 강해진다.

내가 만난 한 여성은 결혼 15년 동안 단 한 번도 남편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온순하고 헌신적인 아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은 충격에 빠졌다. "당신 뭐가 문제야?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든가!"

하지만 그녀는 말할 수 없었다. 15년 동안 한 번도 불만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니, 불만을 느끼는 것 자체를 금지했으니까. 그 결과 그녀의 그림자는 거대해졌고, 어느 순간 폭발했다. 이혼이라는 형태로.

이게 그림자의 작동 방식이다. 당신이 참을수록, 억누를수록, 없는 척할수록, 그림자는 자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터진다. 통제 불가능한 방식으로.


당신의 그림자는 언제 폭발하는가


그림자가 폭발하는 시점을 나는 안다. 대개 세 가지 상황에서다.

첫째, 중년이다.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 이 시기가 되면 자아가 극도로 발달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가정을 꾸리고, 인정받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하다. 바로 그때 그림자가 반란을 일으킨다. "나는? 나는 언제 살아?"

둘째, 큰 성공 직후다. 승진하거나, 사업에 성공하거나, 큰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이상하게도 그때 무너진다. 왜? 자아가 최고조에 달하면 그림자도 최고조에 달하니까. 균형이 깨진다.

셋째,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다. 부모의 죽음, 경제적 위기, 관계의 파탄. 이럴 때 평소에 억눌러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솟아오른다.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정말 원했던 게 뭐였는지, 그동안 참아왔던 게 뭐였는지.

상담실에서 만난 한 남성은 50세에 갑자기 회사를 그만뒀다. 임원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위치였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무 이유 없어요. 그냥 하루아침에 이 모든 게 싫어졌어요."

이게 그림자의 언어다. 이유가 없다. 논리가 없다.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움직인다. 그것이 바로 무의식의 힘이다.


중년의 위기는 그림자의 반란이다


40대가 되면 몸이 아프다고 한다. 50대가 되면 잠이 안 온다고 한다. 이유 없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배우자가 싫어진다고, 모든 게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이건 병이 아니다. 신호다.

당신의 그림자가 보내는 절규다. "나 여기 있어. 나를 좀 봐줘."

자아의식이 커질수록 그림자를 무시하기 쉽다. 그러다 자아와 그림자의 연결이 끊어지면 정신적 해리가 일어난다. 그게 중년의 위기다.

당신은 멀쩡해 보인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가정에서 존경받고, 사회에서 칭찬받는다. 그런데 당신의 내면은 산산조각 나 있다. 당신의 의식과 무의식이 따로 놀고 있다.

문제는 본인이 모른다는 거다.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 당신이 이중인격자처럼 행동한다는 걸. 집에서는 폭군이고 밖에서는 신사라는 걸. 가족에게는 차갑고 타인에게는 따뜻하다는 걸.

당신만 모른다. 당신의 그림자가 얼마나 커졌는지를.

내가 만난 한 여성은 완벽한 커리어우먼이었다. 회사에서는 냉철하고 이성적이었다. 그런데 집에 오면 이유 없이 울었다. 남편에게 화를 냈다.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또 완벽한 프로페셔널로 변신했다.

그녀는 자기가 이중인격자라는 걸 몰랐다. 단지 "요즘 예민해졌나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녀가 평생 회사에서 억눌러온 감정들이었다. 화, 짜증, 피곤함, 무력감. 이 모든 것들이 그림자가 되어 집에서 폭발한 거다.

이게 정신적 해리다. 자아와 그림자가 분리되어 각자 다른 시공간에서 작동한다. 낮에는 자아가 지배하고, 밤에는 그림자가 지배한다. 회사에서는 자아가 지배하고, 집에서는 그림자가 지배한다.


그림자를 죽이려 하지 마라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수한다. 그림자를 없애려고 한다. 더 착해지려고, 더 완벽해지려고, 더 강해지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면 그림자는 더 커진다. 당연하다. 자아가 커지면 그림자도 커지니까.

융이 말했다. 그림자를 없애려 하지 말고, 그림자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고.

이게 뭔 뜻인가? 간단하다. 인정하라는 거다. 당신 안의 어둠을. 당신의 나쁜 면을. 당신이 싫어하는 당신의 모습을.

당신은 완벽하지 않다. 당신은 늘 선하지 않다. 당신에게도 더러운 욕망이 있고, 파괴적인 충동이 있고, 비겁한 마음이 있다.

그게 정상이다. 그게 인간이다.

내가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당신도 나쁜 사람이 될 권리가 있어요."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놀란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설명한다. 당신이 가끔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가끔 화를 내도 된다고. 가끔 무책임해도 된다고. 그게 당신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자기 안의 나쁜 면을 인정하면 정말 나쁜 사람이 될까봐.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정반대다. 자기 안의 나쁜 면을 인정하는 사람이 더 안전하다. 왜? 그림자를 의식하고 있으니까. 그림자와 협상하고 있으니까.

반대로 자기는 절대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위험하다. 그 사람의 그림자는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서 언젠가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균형, 그것만이 답이다


내가 상담실에서 발견한 진실이 있다. 극단적으로 선한 사람은 위험하다는 것. 왜? 언젠가 극단적으로 악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의 어둠을 인정하는 사람은 안전하다. 왜? 이미 그림자와 협상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더 선해지는 게 아니다. 균형 잡히는 거다.

가끔은 이기적이어도 된다. 가끔은 화를 내도 된다. 가끔은 무책임해도 된다. 그게 당신의 그림자를 달래는 방법이다.

물론 조심해야 한다. 그림자에게 완전히 휘둘리면 안 된다. 그건 자아를 버리는 거니까.

필요한 건 대화다. 자아와 그림자의 대화.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내가 뭘 해주면 돼?" 이런 식으로.

내가 만난 한 남성은 평생 성실하게 살았다. 회사, 가정, 교회. 모든 곳에서 모범적이었다. 그런데 55세에 갑자기 오토바이를 샀다. 가족들은 충격을 받았다. "아빠가 왜 저래?"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가 그림자와 협상한 거다. 평생 억눌러왔던 자유에 대한 갈망, 반항하고 싶은 욕구, 위험을 감수하고 싶은 충동. 이 모든 것들을 오토바이로 풀어낸 거다.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한 후, 그는 오히려 더 안정되었다. 가족에게 더 다정해졌다. 회사 일도 더 잘했다. 왜? 그림자가 만족했으니까. 자아와 그림자가 균형을 이뤘으니까.

이게 그림자를 다루는 지혜다. 없애려고 하지 말고, 작은 창구를 내주는 거다. 일주일에 한 번 혼자 등산을 간다든지, 한 달에 한 번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든지, 1년에 한 번 혼자 여행을 간다든지.

이런 작은 일탈이 당신을 구원한다. 그림자에게 숨 쉴 공간을 주는 거다.


당신의 그림자를 만나는 법


중년이 되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자신의 그림자를 만나는 것.

당신이 평생 외면해온 것, 당신이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당신이 죽어도 감추고 싶은 것. 그게 당신의 그림자다.

용기를 내서 물어봐라. "내가 정말 싫어하는 내 모습은 뭘까?" "내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 뭘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뭘까?"

그 답이 당신의 그림자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다. 왜? 그림자는 무의식에 있으니까.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하나? 간접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서 견딜 수 없이 싫어하는 특성을 찾아라. 누구를 만나면 피가 끓어오르는가? 어떤 행동을 보면 참을 수 없는가? 바로 그게 당신의 그림자다. 우리는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다.

둘째, 당신이 절대 하지 않으려는 행동을 찾아라. "나는 절대 저렇게 안 살아." "나는 저런 사람이 되느니 차라리 죽겠어." 이렇게 말하는 것. 바로 그게 당신의 그림자다.

셋째, 당신의 반복적인 실수를 관찰하라.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다. 그림자다. 당신의 무의식이 당신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거다.

그리고 인정해라. "아, 나한테 이런 면도 있구나." "이것도 나의 일부구나." "이게 나를 완전하게 만드는구나."


그림자와 대화하는 기술


그림자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림자와 대화해야 한다.

어떻게? 간단하다. 두 의자 기법을 써라.

하나의 의자에는 자아가 앉는다. 당신의 의식적인 자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당신이 앉는다.

다른 의자에는 그림자가 앉는다. 당신의 무의식적인 자아, 충동적이고 본능적이고 이기적인 당신이 앉는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한다.

자아: 너는 왜 나를 힘들게 하니? 그림자: 너는 왜 나를 무시하니? 자아: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그림자: 그게 문제야. 너는 좋은 사람만 되려고 하잖아. 나는?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어색하다. 바보같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림자가 진짜로 말을 걸어온다. 당신이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한 여성은 이 대화를 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림자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쉬고 싶어. 완벽한 엄마, 완벽한 아내, 완벽한 직장인 노릇 그만하고 그냥 쉬고 싶어."

그녀는 평생 이 목소리를 무시해왔다. 게으르다고, 나약하다고, 책임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건 그녀의 정당한 욕구였다.

대화를 시작한 후, 그녀는 변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를 자기만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이 시간만큼은 나를 찾지 마."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편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남은 시간에는 더 좋은 엄마, 더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었다.


통합된 인간으로 살아라


융이 추구한 건 개성화다. 자기실현이다. 그게 뭔가? 자아와 그림자가 통합된 상태다.

더 이상 이중인격자가 아닌 것. 밖에서나 집에서나 똑같은 사람인 것. 의식과 무의식이 따로 놀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어른이다. 그게 성숙한 인간이다.

당신의 빛을 인정하고, 당신의 어둠도 인정하라. 당신의 선함을 사랑하고, 당신의 악함도 사랑하라.

그러면 당신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더 이상 완벽한 척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착한 척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으로 살 수 있다.

통합된 인간은 모순을 견딘다. 자기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걸 안다. 빛과 어둠이 함께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모순 속에서 균형을 찾는다.

통합된 인간은 예측 가능하지 않다.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이기적이다. 때로는 헌신적이고, 때로는 무책임하다. 그게 인간다움이다.

통합된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냥 인간이면 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기억하라.


당신의 그림자는 적이 아니다. 파괴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건 당신의 또 다른 절반이다. 당신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다.

그림자와 싸우지 마라. 그림자를 품어라. 그림자와 대화하라. 그림자에게 자리를 내줘라.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당신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당신의 내면이 깊어진다. 당신의 존재가 단단해진다.

중년은 그림자를 만나는 시기다. 피하지 마라. 맞서라. 그리고 함께 가라.

당신의 빛과 어둠이 함께 춤출 때, 당신의 삶은 비로소 진짜가 된다.

그림자를 품은 사람은 안다. 인간은 본래 불완전하다는 걸. 그 불완전함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는 걸. 완벽함이 아니라 온전함이 목표라는 걸.

완벽함은 한쪽만 보는 거다. 온전함은 양쪽을 다 보는 거다. 완벽함은 지루하다. 온전함은 풍요롭다.

당신은 완벽할 필요 없다. 온전하면 된다. 빛도 있고 어둠도 있는, 선함도 있고 악함도 있는, 강함도 있고 약함도 있는, 그런 온전한 인간으로.

이보다 더 진실한 말은 없다.


참고문헌

최광현(2025). 『나로 살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추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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