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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적 제 3 자 : 프롤로그

by 홍종민

사주를 보다가 사람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담자가 "이 사업 해도 될까요?"라고 물으면, 사주를 펼쳐보고 "하세요" 혹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게 상담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을 읽어주는 것. 길을 알려주는 것. 답을 주는 것.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천간지지를 외웠다. 신살을 익혔다. 격국을 분석했다. 대운을 계산했다. 고전을 뒤졌다. 선배들의 강의를 수백 시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공부하면 할수록 답이 안 보였다. 사주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해석은 늘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확신이 안 섰다.

'내 실력이 부족한가?' '더 공부해야 하나?' '고전을 더 읽어야 하나?'

밤마다 불안했다. 내담자 앞에 앉을 때마다 긴장됐다.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건가?' '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건가?'


그런데 신기한 건, 내가 이렇게 불안해하는데도 내담자들은 계속 찾아왔다는 것이다.

"선생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게 맞았어요." "선생님 덕분에 결정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 마음이 정리됐어요."

이상했다. 나는 확신 없이 말했는데, 그들은 만족하며 돌아갔다. 나는 답을 못 줬는데, 그들은 답을 얻었다고 했다.

뭐가 맞는 거지?


전환점은 대학원에서 라캉 정신분석을 만나면서였다.

브루스 핑크의 책을 읽었다. 렘마의 책을 읽었다. 프로이트를 다시 읽었다. 비온을 읽었다. 위니캇을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번쩍 깨달았다.

내담자가 원하는 건 답이 아니었다.

그들은 답을 구하러 온 게 아니었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온 것이었다. 자기 마음을 알아줄 사람을 찾아온 것이었다. 자기 선택을 승인해줄 사람을 찾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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