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병원 앞을 지나다 본 광경이다. 70대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진료실에서 나오며 처방전을 꼭 쥐고 있었다. "이 약 먹으면 나을 거예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드시면 좋아지실 겁니다." 그 순간 할머니 얼굴이 환해졌다. 약을 받기도 전인데 말이다.
주위를 보면 너나없이 이런 모습이다. 병원에서, 약국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찾는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희망만으로도 실제로 나아진다는 거다. 하하카기 호세이는 "희망을 좋아하는 뇌가 심신에 큰 치유력을 발휘한다"(호세이, 2025: 147)고 했다.
약이 아니라 희망이 먼저 작동한 것이다. 뇌는 희망만으로도 몸을 치유할 수 있다. 그게 바로 플라세보 효과다.
할머니의 처방전에 담긴 것
며칠 뒤 약국 앞에서 그 할머니를 다시 봤다. 약봉지를 들고 나오는 길이었다. "약 드시고 어떠세요?" 물었다. 할머니는 웃었다. "좋아졌어요. 의사 선생님이 이 약 잘 듣는다고 했잖아요. 정말 그래요."
그 할머니는 고혈압약을 받았다고 했다. 20년 넘게 먹어온 약인데 최근에 병원을 옮겼단다. "전에 다니던 병원 의사는 맨날 걱정만 시키더라고요. '혈압이 또 올랐네요. 나이가 있으셔서 조절이 안 돼요. 약을 더 드셔야겠어요.' 그 말 듣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요. 약 먹어도 안 나아지는 것 같고요."
그래서 동네 내과로 병원을 바꿨단다. "거기 젊은 선생님은 달라요. '혈압 관리 잘하고 계시네요. 이 나이에 이 정도면 아주 좋아요. 이 약 계속 드시면 충분합니다.' 그 말 듣고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신기하게 혈압도 안정됐어요."
할머니 얘기를 들으면서 바로 이거다 싶었다. 약은 똑같았다. 성분도, 용량도 같았다. 달라진 건 의사의 말 한마디였다. 전 병원 의사는 불안을 심었고, 새 병원 의사는 희망을 줬다. 할머니 뇌는 그 차이를 정확히 감지했다.
호세이에 따르면 뇌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면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 희망적으로 해석하려 한다(호세이, 2025: 147). 의사가 "안 돼요"라고 하면 뇌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치유를 멈춘다. "좋아요"라고 하면 뇌는 희망을 발견하고 치유 시스템을 가동한다.
실제로 연구 결과도 그랬다. 원인 모를 두통이나 피로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의사가 "별 문제 없습니다"라고 확신 있게 말한 그룹은 64%가 나았다. 반면 "원인을 알 수 없군요"라며 고개를 가웃거린 그룹은 43%만 나았다. 진단명을 알려주는 것, 확신을 주는 것이 약보다 중요했다.
할머니는 계속 말했다. "요즘은 약 먹는 게 기분이 좋아요. 아침에 약 먹으면서 '오늘도 건강하게 보낼 수 있겠구나' 생각해요. 전엔 약 먹으면서 '이거 먹어도 소용없는데' 했거든요."
그게 바로 플라세보와 노시보의 차이다. 같은 약인데 희망을 품고 먹으면 플라세보 효과가 일어나고, 절망을 품고 먹으면 노시보 효과가 일어난다. 할머니 뇌에선 지금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있을 것이다. 희망이라는 스위치가 전전두피질을 켰고, 전전두피질이 치유 물질을 만들라고 명령하고 있을 것이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알려준 것
택시를 탔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기사님이 말을 걸었다. "요즘 당뇨 환자가 정말 많더라고요. 저도 그래요." 혈당이 높아서 약을 먹는다고 했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가 5년 전이에요. 그때 첫 번째 병원 의사가 이러더라고요. '당뇨는 완치가 안 됩니다. 평생 약 먹어야 해요. 합병증 조심하세요.'"
아저씨는 그 말 듣고 충격을 받았단다.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니. 합병증은 또 뭐고. 겁이 나서 인터넷을 찾아봤어요. 실명할 수도 있고, 발 절단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날부터 약 먹어도 불안했어요. '이거 먹어도 될까, 나는 이미 늦은 거 아닐까' 그런 생각만 들더라고요."
아저씨는 약을 먹었지만 혈당이 잘 안 잡혔다고 했다. 6개월 뒤 다른 병원을 찾았단다. "거기 의사는 완전히 달랐어요. '당뇨는 관리하는 병입니다. 약 드시고 식단만 조절하시면 건강하게 사실 수 있어요. 제가 본 환자 중에 70, 80까지 아주 건강하게 사시는 분들 많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 말이 아저씨를 바꿨다.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아, 나도 건강하게 살 수 있구나. 그때부터 약을 성실히 먹게 됐어요. 전엔 약 먹을 때마다 '이것도 소용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빼먹었거든요. 지금은 '오늘도 관리 잘하자' 하면서 챙겨 먹어요."
아저씨는 실제로 혈당이 안정됐다고 했다. "신기해요. 같은 약인데 말이에요. 지난번 검사에서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아주 잘 관리하고 계시네요. 이대로만 하세요.' 그 말 들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바로 이거다. 호세이는 환자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의사는 실제 약을 처방해도 플라세보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노시보 효과만 일으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호세이, 2025: 170). 의사의 태도가 약을 독으로 만들 수도, 명약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첫 번째 의사는 절망을 심었다. "완치 안 됩니다", "합병증 조심하세요". 그 말들이 아저씨 뇌에 노시보 효과를 일으켰다. 약을 먹어도 "소용없다"는 믿음이 실제로 약효를 떨어뜨렸다. 두 번째 의사는 희망을 줬다. "건강하게 사실 수 있어요", "잘하고 계세요". 그 말들이 플라세보 효과를 일으켰다. 약을 먹으면서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이 실제로 약효를 높였다.
실제로 수술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1950년대 협심증 환자들에게 유행했던 수술이 있었다. 가슴 안쪽 동맥을 묶는 수술인데, 91%가 좋아졌다고 보고됐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짜 수술(피부만 살짝 절개)을 받은 환자들도 진짜 수술을 받은 환자들만큼 좋아졌다. 수술을 받았다는 희망, 그것만으로 증상이 개선된 것이다.
희망이라는 연료, 절망이라는 독
그런데 잠깐, 희망의 반대는 뭘까? 절망이다. 그리고 절망도 뇌에 강력하게 작용한다. 이게 노시보 효과다. 노시보는 '해를 끼치겠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다. 약효에 대한 불신이나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실제로 부정적인 결과를 만드는 현상이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생각했다. 할머니도, 택시기사 아저씨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희망이 약이 된다는 것. 절망이 독이 된다는 것.
호세이에 따르면 가짜 약이 희망을 좋아하는 뇌를 자극해서 뇌 깊은 곳과 체내 자연 치유 메커니즘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친다(호세이, 2025: 171). 희망은 연료다. 희망 없는 치료는 작동하지 않는 엔진이다.
플라세보 효과를 일으키는 필수 조건은 '의미 부여'와 '기대'다. "내가 지금 치료받고 있구나"라는 느낌, "병이 좋아질 거야"라는 기대가 있어야 뇌가 희망을 발견하고 몸을 치유의 방향으로 이끈다. 반대로 "이거 소용없어"라는 절망이 있으면 뇌는 치유를 멈춘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병원에서, 약국에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서 희망을 찾았거나 잃었을 것이다. 그 순간 당신 뇌는 이미 반응했다. 희망을 만나면 엔도르핀을 쏟아냈고, 절망을 만나면 치유를 멈췄다.
약을 먹기 전에, 병원에 가기 전에, 한 가지만 기억하자. 희망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뇌가 작동하려면 희망이 필요하다. 그게 플라세보와 노시보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실이다
하하카기 호세이/ 황세정 역(2025). 소극적 수용력. 서울: 끌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