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질문은 거짓말이다
내담자의 첫 질문은 거의 항상 진짜 질문이 아니다.
이건 사주상담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정신분석에서 오래전부터 알려진 원리다.
프로이트는 꿈을 분석할 때 '표면 내용'과 '잠재 내용'을 구분했다. 꿈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진짜 의미가 아니다. 진짜는 그 밑에 숨어 있다. 이 원리는 꿈뿐 아니라 증상에도, 내담자의 첫 호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내담자가 처음 꺼내는 이야기는 표면이다. 잠재된 진짜 이야기는 그 밑에 있다.
라캉은 '요구'와 '욕망'을 구분했다. 내담자가 요구하는 것과 욕망하는 것은 다르다. 내담자가 "이 남자랑 궁합 봐주세요"라고 요구하지만, 진짜 욕망은 "나 혼자 괜찮을까요"일 수 있다. 요구는 의식이 하고, 욕망은 무의식이 한다. 상담사는 요구 너머의 욕망을 읽어야 한다.
라캉파 분석가 브루스 핑크도 같은 말을 했다. 내담자의 첫 호소를 액면 그대로 받지 말라고. 그건 입장권일 뿐이다. 진짜 이야기는 분석 과정에서 드러난다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왜 그럴까?
첫째, 진짜 문제는 너무 뜨겁기 때문이다. 진짜 고민은 대부분 수치스럽거나 무섭거나 고통스럽다. "나 혼자 먹고살 수 있을지 불안해요"라고 말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덜 뜨거운 걸로 시작한다. "남자친구 문제요." 이건 누구나 하는 고민이니까. 안전하니까.
둘째, 상담사를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가장 깊은 이야기를 바로 꺼내는 사람은 없다. 일단 가벼운 걸로 테스트한다. 반응을 본다. 판단하지 않는구나, 싶으면 그때 조금씩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낸다.
셋째, 이게 가장 중요하다. 내담자 본인도 진짜 문제가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상담하다 보니까 진짜 문제는 돈이었다. 무의식은 알고 있었지만, 의식은 몰랐던 거다.
첫 질문은 의식의 질문이다. 진짜 질문은 무의식에 있다.
그래서 상담사는 첫 질문을 액면 그대로 받으면 안 된다. 첫 질문은 입장권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기 위한 티켓이다.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에 나온다.
입장권
"인연이 있는지 궁금해서요."
복덩이님이 처음 보낸 메시지였다. 92년생 여자, 82년생 남자. 올해 5월에서 6월쯤 만났단다. 둘이 잘 맞는지 궁합을 봐달란다.
평범한 시작이다. 사주 상담에서 가장 흔한 의뢰. 궁합 봐주세요. 이 사람이랑 인연이 될까요.
그런데 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두 분이 지금 어떤 상황이세요?"
이 질문이 중요하다. 첫 질문에 바로 답하면 안 된다. 첫 질문은 거의 항상 위장이니까.
"인연이 있는지 궁금해서요"는 복덩이님의 입장권이었다. 이걸 액면 그대로 받아서 "네, 궁합 좋네요" 하고 끝내면, 복덩이님은 진짜 질문을 꺼내지도 못하고 돌아간다. 상담비만 내고, 마음은 여전히 답답한 채로.
그래서 되물어야 한다. "어떤 상황이세요?" "왜 궁금하세요?"
이 되묻기가 문을 연다. 입장권 뒤에 숨은 진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문을.
명분 찾기
복덩이님이 답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메시지가 왔다.
"남자분 바람끼 있는지."
나는 멈췄다. 뭔가 걸렸다.
좋아하는 사람의 바람끼를 묻는 건 보통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의심이 가는 정황이 있을 때. 다른 하나는 이 관계를 정리할 명분을 찾고 있을 때.
"이 남자가 바람끼가 있대요. 그러니까 헤어져도 되는 거죠? 제 잘못이 아닌 거죠?"
무의식은 이런 논리를 짠다. 내가 떠나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이 나쁜 거다. 그래야 죄책감이 줄어든다.
나는 사주를 봤다. 이 남자는 배우자 자리에 도화살이 있었다. 젊은 시절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을 타입이다.
그런데 나는 바로 "바람끼 있어요/없어요"로 답하지 않았다.
"남자 바람끼는 왜 궁금하신 거죠?"
또 되물었다. 왜 궁금한지를 물으면 진짜 고민이 나온다.
복덩이님이 답했다.
"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라서요. 궁금하니까 상담 신청을 하지 않았을까요."
약간 방어적인 답이다. "왜 물어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이런 뉘앙스. 하지만 괜찮다. 방어는 곧 풀린다.
나는 사주에서 본 걸 말해줬다. 이 남자, 젊은 시절에 여자들한테 인기 많았을 거라고.
복덩이님이 답했다. "헉."
그리고 이어서.
"이 분이랑 끊어지는 게 쉽지가 않네요."
거기서 나는 알았다. 이 사람은 궁합을 보러 온 게 아니구나.
수동태의 비밀
"끊어지는 게 쉽지가 않네요."
이 문장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수동태다.
"끊어지는 게" — 끊는 게 아니라 끊어지는 거다. 마치 저절로 일어나는 일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처럼.
사람들은 자기 선택을 수동태로 말할 때가 있다. "헤어지게 됐어요." "그만두게 됐어요." "그렇게 됐어요."
이건 책임을 흐리는 언어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든 거다. 내 탓이 아니다. 어쩔 수 없었다.
복덩이님의 "끊어지는 게 쉽지 않다"도 그렇다. 사실은 "끊지 못하고 있다"인데, 그렇게 말하면 자기 무능력이 드러난다. 그래서 수동태로 바꾼다.
이럴 때 상담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꿔서 되묻는 거다.
"정리하고 싶으신 건가요?"
내가 물었다. "끊어지는 게 어렵다"를 "정리하고 싶다"로 바꿨다. 수동에서 능동으로. "상황 때문에 안 된다"에서 "당신이 원하는 건 뭐냐"로.
이 질문이 핵심을 찌른다. 복덩이님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직면해야 한다.
복덩이님의 답이 쏟아졌다.
"아뇨. 매일 싸우고. 끝나고. 다시 붙고. 연락 오고. 완전 정리하라 했는데. 계속 연락 오잖아요."
"아뇨"로 시작했지만, 그 뒤에 나온 건 "네"의 내용이다. 매일 싸운다. 끝난다. 다시 붙는다. 완전 정리하라 했다. 이건 정리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계속 연락 오잖아요"라고 했다. 또 수동태다. "연락이 온다." 마치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남자가 일방적으로 연락하는 것처럼.
하지만 연락이 오면 안 받으면 된다. 차단하면 된다. "계속 연락 온다"는 건 "나는 그 연락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왜 받을까? 여기에 복덩이님의 양가감정이 있다. 끊고 싶은데 끊지 못한다. 버리고 싶은데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세 문장이 한 호흡에 나왔다.
"각자 내년은 어떨까요. 새로운 이성 생기나요. 재물운은 어떨까요."
마지막에 나온 게 진짜다
나는 그 순서를 봤다. 내년 운세, 새로운 이성, 재물운. 세 개 중에 마지막에 나온 게 재물운이다.
사람은 가장 궁금한 걸 마지막에 말한다. 그게 팩트다.
왜 그럴까? 제일 중요한 건 제일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너무 간절하면 티 내기 싫다. 너무 부끄러우면 바로 못 꺼낸다. 그래서 앞에 다른 걸 깔아둔다. 쿠션처럼. "이것도 궁금하고, 저것도 궁금하고, 아 그리고 이것도요." 마지막에 슬쩍 던진다.
복덩이님에게 재물운은 그런 질문이었다.
상담사는 이 순서를 봐야 한다. 세 개를 다 물으면 세 개를 다 답해야 하지만, 시간과 에너지의 배분이 다르다. 마지막에 나온 질문에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거기가 진짜니까.
방향을 추적하라
상담이 이어졌다. 복덩이님이 또 물었다.
"내년 각자 재물운이나 이성운은 어떨까요."
또 재물운이다. 이번에는 재물운이 먼저 나왔다. 아까는 마지막이었는데 이번에는 처음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방어가 풀리고 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재물운을 마지막에 슬쩍 던졌다. 부끄러우니까. 돈 이야기를 대놓고 하면 속물 같으니까. 그런데 상담이 진행되면서 편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재물운을 먼저 꺼냈다.
이게 "방향"이다. 내담자가 A 이야기를 하다가 자꾸 B로 흘러가면, B가 진짜 문제다. 예외가 없다.
복덩이님은 남자 이야기로 시작했다. 궁합, 바람끼, 헤어짐. 그런데 자꾸 돈 이야기로 흘러간다. 재물운, 내년 운세, 돈. 남자 → 돈 → 남자 → 돈. 방향이 계속 돈을 가리키고 있다.
이 방향을 추적해야 한다. 표면 주제에 속으면 안 된다.
이 사람 사주가 개인 사업 팔자였다. 자영업을 한단다.
"올해보다 내년이 나을까요?"
"내년이 더 좋아요."
"올해 좀 힘들었거든요."
거기서 나는 봤다. 이 사람의 진짜 불안을. 올해 힘들었다. 자영업이 힘들었다. 돈이 힘들었다. 그게 이 상담의 밑바닥이었다.
남자 이야기는 입구였다. 재물운이 본론이었다.
두 개를 같이 묻는다
복덩이님은 계속 남자 이야기와 돈 이야기를 오갔다.
"이 남자랑 별로 좋은 인연 아닌가요."
"뭔 미련을 가지세요. 헤어져도 되는지, 새로운 인연 언제 열리는지 궁금해서 오셨잖아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복덩이님이 또 물었다.
"저 재물복 있어요? 남자복이나."
여기서 멈춰야 한다. 두 개를 같이 물었다. 재물복, 남자복.
이 사람에게 이 둘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남자복이 재물복이고, 재물복이 남자복이다.
내담자가 두 개를 같이 물으면, 그 두 개는 연결되어 있다. 내담자의 무의식 속에서 하나로 묶여 있다.
나는 덧붙였다.
"사주적으로 오늘 진짜로 궁금했던 것, 남자 문제가 아니에요. 재물운, 머니. 내년 5월부터 좋아지니까 그때까지 잘 버티세요."
복덩이님은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저 앞으로 재물은 어때요. 내년 말고. 결혼은 잘할까요. 재물복 없어요?"
세 문장. 재물, 결혼, 재물복. 결혼이 중간에 끼어 있지만, 앞뒤가 다 돈이다. 결혼조차 재물의 맥락 안에 있다.
정곡 찌르기
상담 막바지에 나는 말했다.
"내년부터 재물운이 머니가 보인다니까요. 재물의 시작은 내년부터예요."
그리고 덧붙였다.
"외제차에 자가는 계속해서 유지하실 거예요."
복덩이님은 "외제차"도 "자가"도 한 번도 말한 적 없다. 내가 먼저 꺼냈다.
복덩이님의 답이 왔다.
"헐. 어떻게 아셨어요."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정곡을 찔렀구나.
"어떻게 아셨어요"의 의미
"어떻게 아셨어요"가 나오면 확신해도 된다. 틀림없다.
이 반응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놀라움. "어, 내가 그 얘기 한 적 없는데?" 안도. "드디어 누군가 알아줬다." 약간의 부끄러움. "들켰다." 그리고 해방감. "이제 숨기지 않아도 되겠다."
이 반응이 나오면 핵심을 찔렀다는 증거다. 내담자 스스로도 몰랐던, 혹은 알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 지점을 건드렸다는 증거.
반대로, "아뇨, 그건 아닌데요"가 나오면 빗나간 거다. 그러면 수정해야 한다. "아, 그게 아니군요. 그럼 뭐가 제일 걱정이세요?"
복덩이님은 "어떻게 아셨어요"를 했다. 맞았다.
나는 복덩이님의 사주를 보고 외제차와 자가를 말한 게 아니다. 상담의 흐름을 보고 말한 거다.
이 사람은 자영업을 한다. 올해 힘들었다고 했다. 재물운을 집요하게 물었다. 남자 이야기를 하다가도 자꾸 돈 이야기로 흘러갔다. "재물복 있어요?"를 여러 번 물었다.
이 모든 게 가리키는 곳이 있다. 생활 수준에 대한 불안.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움.
자영업자에게 외제차와 자가는 단순한 재산이 아니다. 그건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라는 증명서다. 사업이 잘 되고 있다는 신호다. 이게 무너지면 자기 정의가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외제차에 자가는 계속 유지하실 거예요."
그리고 복덩이님은 들켰다. "어떻게 아셨어요."
다섯 번의 질문, 하나의 진실
복덩이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첫 번째 — "인연이 있는지 궁금해서요."
이건 입장권이다. 사주 상담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무난한 의뢰. 연애 상담. 누구나 한다. 부끄럽지 않다. 그래서 이걸로 문을 연 거다.
하지만 입장권은 입장권일 뿐이다. 본론이 아니다.
두 번째 — "남자분 바람끼 있는지."
이건 명분 찾기다. 이 남자를 버려도 되는 이유를 찾고 있는 거다. "바람끼가 있다"라는 판결을 받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버려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셈이니까.
그런데 왜 허락이 필요할까? 왜 스스로 결정 못 할까?
답은 간단하다. 확신이 없어서다. 버리고 싶은데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다. 뭔가 잃을 것 같아서다.
세 번째 — "끊어지는 게 쉽지가 않네요."
이건 고백이다. 드디어 속마음이 나온 거다. 정리하고 싶은데 못 하고 있다. 매일 싸우고, 끝나고, 다시 붙고. 그 반복.
여기서 봐야 할 건 이거다. 왜 못 끊는가?
사랑 때문인가? 아니다. 사랑이면 매일 안 싸운다. 미련 때문인가? 미련이면 "끊고 싶다"는 말 자체가 안 나온다.
그렇다면 뭔가?
네 번째 — "재물운은 어떨까요."
여기서 본론이 시작된다. 남자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재물운. 흐름이 끊긴 것 같지만 사실 연결되어 있다. 무의식에서는 하나다.
사람은 가장 궁금한 걸 마지막에 말한다. 그게 팩트다.
다섯 번째 — "외제차에 자가는 유지되나요."
이건 핵심이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불안. 밑바닥.
다섯 번의 질문. 하나의 진실.
복덩이님이 진짜로 묻고 싶었던 건 이거다.
"선생님, 저 혼자 힘으로 지금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외제차 계속 탈 수 있을까요? 자가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요? 이 남자 없이도요?"
남자와 돈은 같은 문제다
복덩이님에게 남자 문제와 돈 문제는 같은 문제다.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 남자가 바람끼가 있는지"를 물은 건, 이 남자를 버려도 되는지 허락을 구한 거다. "새로운 이성 생기나요"를 물은 건, 버리고 나서 다른 안전망이 생기는지 확인한 거다.
복덩이님에게 남자는 연애 상대이기 이전에 경제적 변수다. 이 남자가 "잘해줄 때는 별도 따다 주는 극진함"이 있다고 했다. 그 극진함이 복덩이님을 붙잡고 있다. 사랑이 아니라 안전망이.
"매일 싸우고 끝나고 다시 붙고"를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남자를 완전히 놓으면 안전망이 사라진다. 그런데 이 남자와 계속 있으면 소모된다.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한다.
복덩이님의 무의식이 계산하고 있는 건 이거다.
'내 재물운이 좋아지면, 내 사업이 잘 되면, 내가 혼자서도 외제차와 자가를 유지할 수 있으면 — 그러면 이 남자를 버려도 된다.'
'하지만 내 재물운이 안 좋아지면, 내 사업이 안 되면 — 그러면 이 남자를 옵션으로 남겨둬야 한다.'
그래서 재물운을 그렇게 집요하게 물은 거다. 그건 돈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독립에 대한 질문이었다.
심리의 세 층위
복덩이님의 심리 구조는 세 층으로 되어 있다.
맨 위, 표면에는 "남자 바람끼 있는지"가 있다. 이건 가장 말하기 쉬운 이야기다. 연애 상담. 누구나 한다. 부끄럽지 않다.
그 아래에는 "재물운이 어떨까요"가 있다. 이건 조금 더 민감하다. 하지만 자영업자가 재물운 물어보는 건 자연스럽다. 아직 괜찮다.
가장 밑바닥에는 이게 있다. "나는 혼자 힘으로 이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할지도 몰라요. 그게 무서워요."
복덩이님은 밑바닥을 말하지 않았다. 못 했다. 너무 무섭고 너무 수치스럽고 너무 불안하니까. 그래서 표면과 중간을 맴돌았다. 남자 이야기, 재물운 이야기. 빙빙 돌면서 힌트만 흘렸다.
나는 그 힌트를 모았다. 그리고 밑바닥을 건드렸다. "외제차에 자가는 유지됩니다."
그 한마디가 번역이다. 복덩이님의 표면 언어를 밑바닥 언어로 바꿔준 거다.
"당신이 진짜 걱정하는 건 남자가 아니에요. 지금 생활 수준을 잃을까 봐 그게 무서운 거예요. 괜찮아요. 유지돼요."
그 번역을 듣고 복덩이님은 놀랐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리고 아마 안도했을 거다. 드디어 누군가 내 진짜 걱정을 알아줬다고.
정곡 찌르기의 타이밍
정곡 찌르기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너무 일찍 쓰면 저항이 온다. 상담 시작하자마자 "당신 진짜 문제는 이거죠?"라고 하면 내담자는 움츠러든다. "이 사람 뭐야? 무섭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깊은 이야기를 들으면 방어벽이 올라간다.
충분히 들어야 한다. 내담자가 이야기를 풀어놓을 시간을 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신뢰가 쌓인다. "이 사람은 내 이야기를 듣고 있구나. 판단하지 않는구나."
그리고 흐름이 읽혔을 때, 확신이 섰을 때, 그때 찌른다.
찌르는 방식도 중요하다. 내담자가 직접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해줘야 한다.
복덩이님은 "재물운", "돈", "사업"은 말했다. 하지만 "외제차", "자가"는 말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구체적이고 너무 민감하니까. "나 외제차 계속 탈 수 있을까요?"라고 묻기엔 너무 속물스러워 보인다.
내가 먼저 말해줬다. "외제차에 자가는 유지됩니다."
이게 번역이다. 내담자의 표면 언어를 밑바닥 언어로 바꿔주는 거다. 내담자가 차마 묻지 못한 질문에 답해주는 거다.
틀리면 어떡하나
많은 상담사가 이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정곡 찌르기를 안 한다. 안전하게 가려고 한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하지만 틀려도 괜찮다.
틀리면 내담자가 알려준다. "아뇨, 그건 아닌데요." 그러면 수정하면 된다. "아, 그렇군요. 그럼 어떤 게 제일 걱정이세요?"
틀린 해석도 쓸모가 있다. 내담자에게 "그건 아니다"라고 말할 기회를 주니까. 그러면 진짜가 뭔지 더 선명해진다.
정곡을 안 찌르는 게 더 위험하다. 내담자는 40분 동안 빙빙 돌다가, 진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아, 네, 감사합니다" 하고 나간다. 마음은 여전히 답답한 채로.
찔러야 한다. 틀릴 각오를 하고. 맞으면 "어떻게 아셨어요"가 나온다. 틀리면 수정한다. 어느 쪽이든 상담은 진전된다.
내담자는 자기가 뭘 묻고 있는지 모른다
복덩이님의 "헐, 어떻게 아셨어요"가 귓가에 남았다.
그 한마디에 다 들어 있었다. 놀라움, 안도, 그리고 약간의 부끄러움. 들켰다는 느낌. 하지만 동시에 드디어 누군가 알아줬다는 느낌.
내담자들은 대부분 자기가 뭘 묻고 있는지 모른다. 입으로는 남자 이야기를 하지만 마음은 돈을 향해 있다. 입으로는 궁합을 묻지만 진짜 궁금한 건 "나 혼자 괜찮을까요"다.
이게 팩트다. 예외가 없다.
상담사의 일은 그 간극을 읽는 거다. 말과 마음 사이의 거리를. 표면과 밑바닥 사이의 층위를.
그리고 적절한 순간에 그걸 언어로 만들어주는 거다. "외제차에 자가는 유지됩니다"처럼. 내담자가 차마 묻지 못한 질문에 답해주는 거다.
그러면 내담자는 놀란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 순간이 상담의 시작이다. 그 전까지는 인사였다.
요약
복덩이님 상담에서 배운 것들을 정리한다.
첫 질문은 입장권이다. 바로 답하지 말고 되물어라. "왜 궁금하세요?" "어떤 상황이세요?"
마지막에 나온 게 진짜다. 세 개를 물으면 세 번째에 집중하라.
방향을 추적하라. A 이야기 하다가 자꾸 B로 가면, B가 진짜다.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꿔 되물어라. "끊어지는 게 어렵다"를 "정리하고 싶다"로.
두 개를 같이 물으면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고리를 짚어줘라.
"어떻게 아셨어요"가 나오면 맞은 거다. "아뇨, 그건 아닌데요"가 나오면 수정하라.
정곡은 타이밍이다. 충분히 듣고, 신뢰 쌓은 후에, 확신이 섰을 때 찔러라.
내담자가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해줘라. 그게 번역이다.
틀릴 각오를 해라. 안 찌르는 게 더 위험하다.
해담 사주 명리 상담 : 네이버 엑스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