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언어패턴-파트 2: 의식이 모르게 심는 말
by 홍종민 Dec 6. 2025 brunch_membership's
전제: 저항을 우회하는 언어
사람은 직접적인 설득에 저항한다. 이건 본능이다. 바뀌지 않는다.
"이거 해"라고 하면 "왜요?"가 돌아온다. "이게 좋아"라고 하면 "정말요?"가 돌아온다. "이렇게 생각해"라고 하면 "난 아닌데요?"가 돌아온다.
의식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검문한다. 논리를 따진다. 증거를 요구한다. 이득과 손해를 계산한다. 출처를 확인한다. 반박거리를 찾는다. 이게 의식이 하는 일이다. 24시간 가동되는 검문소다.
그래서 정면 돌파는 실패한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져도. 직접 설득하려고 하면 벽이 올라간다. 상대방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게 인간의 기본 설정이다. 누구나 그렇게 작동한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있다.
같은 내용인데 다르게 말하면 저항이 사라진다. 의식이 검문을 건너뛴다. 무의식이 그냥 받아들인다. 마치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마치 당연한 사실처럼. 마치 자기가 원래 생각하던 것처럼.
왜 그럴까?
메시지가 "주장"이 아니라 "전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배경으로 깔렸기 때문이다. 의식은 전면에 있는 것만 검사한다. 배경에 깔린 것은 그대로 통과시킨다.
이게 전제(Presupposition)의 힘이다.
전제란 무엇인가
전제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기술이다.
문장 안에 메시지를 숨겨 넣는다. 겉으로는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핵심이 이미 심어져 있다. 의식은 표면만 검사한다. 숨겨진 것은 그대로 통과한다.
비교해보자.
직접적인 주장: "최면이 효과가 있다고 믿어야 해."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은 즉시 방어 태세에 들어간다. "아니, 그렇지 않아." "증거가 있어?" "누가 그래?" "과학적 근거는?" 의식이 총동원된다. 반박 모드가 켜진다. 대화는 논쟁이 된다.
전제를 활용한 표현: "너도 알다시피, 최면은 우리가 무의식의 힘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 중 하나야."
이렇게 말하면 다르다.
"최면이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문장 안에 숨어 있다. 하지만 직접 주장하지 않는다. "너도 알다시피"라는 말이 앞에 붙어 있다. 이미 아는 사실처럼 취급된다. 합의된 전제처럼 제시된다.
의식은 "최면이 효과가 있는가?"를 검토하지 않는다. 그건 이미 결정된 문제로 취급되니까. 대신 "최면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생각한다. 핵심 메시지는 검문 없이 통과한다. 의식이 다른 데 정신 팔린 사이에.
이게 전제 기법의 본질이다.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전제된 사실로 만든다. 의심할 거리가 아니라 이미 합의된 것으로 만든다. 주장이 아니라 배경으로 깐다.
그러면 저항이 사라진다. 의식이 싸울 대상을 찾지 못한다. 싸울 대상이 없으니 싸우지 않는다. 그냥 받아들인다.
왜 이게 작동하는가
인간의 뇌는 효율을 추구한다.
모든 정보를 다 검증할 수 없다. 시간도 없고 에너지도 없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정한다. 전면에 있는 것, 새로운 것, 도전적인 것은 검증한다. 배경에 있는 것, 익숙한 것, 당연한 것은 그냥 넘긴다.
전제 기법은 이 특성을 활용한다.
핵심 메시지를 "전면"이 아니라 "배경"에 배치한다.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이미 합의된 사실"처럼 포장한다. 그러면 뇌가 검증 대상에서 제외한다. 에너지 절약 모드가 작동한다.
언어학에서는 이걸 "화용론적 전제(pragmatic presupposition)"라고 부른다. 문장이 참이 되기 위해 미리 가정되어야 하는 내용. 이게 의식의 레이더를 피해 무의식으로 직행한다.
이제 여섯 가지 구체적인 전략을 살펴보자.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전제를 심는다. 다른 상황에 다른 기법이 효과적이다.
전략 1: "또는"의 함정 – 선택이라는 착각
기본 원리
"계란을 드릴까요?"
이렇게 물으면 상대방은 두 가지 대답을 할 수 있다. "네" 또는 "아니요." 50 대 50이다. 거절당할 확률이 절반이다. 동전 던지기와 같다.
"계란 하나 드릴까요, 아니면 두 개 드릴까요?"
이렇게 물으면 게임이 완전히 달라진다. 상대방은 "하나"와 "두 개" 사이에서 고민한다. "안 살래요"라는 선택지가 사라진다. 질문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이 개입할 틈이 없다. 이미 "살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게 "또는(Or)" 전략의 핵심이다.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두 개 중에 고르라고 하니까. 자유롭다고 느낀다. 자기가 결정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두 선택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계란을 산다는 방향. 착각 속의 자유다. 정해진 결론 안에서의 선택이다.
왜 이게 작동하는가
심리학에서는 이걸 "인지적 부담(cognitive load)"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선택지가 많으면 피로해진다. 결정 자체가 에너지를 소모한다. 가능하면 쉽게 결정하고 싶어 한다.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연구에 따르면,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보다 한정된 선택이 주어질 때 더 빠르게 결정한다. 그리고 결정 후 후회하는 비율도 낮다. 왜? 선택의 피로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심이 줄어든다.
"또는" 전략은 이 심리를 활용한다.
두 개의 선택지를 제시한다. 둘 다 원하는 방향이다. 상대방은 쉽게 결정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 결정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느낀다. 자율성이 존중받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틀 안에서의 자유다.
인간의 뇌는 주어진 틀 안에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틀 자체를 의심하려면 추가 에너지가 필요하다. 대부분은 그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고른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 전략은 어디서나 작동한다. 눈을 뜨면 보인다.
아이에게 채소를 먹이고 싶다.
"브로콜리 먹을래?"라고 물으면 "싫어"가 돌아온다. 아이에게 "예/아니오" 선택권을 줬다. 아이는 당연히 "아니오"를 선택한다. 브로콜리를 좋아하는 아이는 드물다.
하지만 "브로콜리 먼저 먹을래, 아니면 당근 먼저 먹을래?"라고 물으면 다르다. 아이는 순서를 고민한다. 뭘 먼저 먹을지. 먹을지 말지는 이미 결정된 문제가 된다. 논쟁의 대상에서 빠진다. 전제로 깔린다.
한 엄마가 이 방법을 배우고 와서 실험했다. 평소 채소를 입에도 안 대던 5살 아들이 "당근 먼저!"라고 외치며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엄마는 충격받았다. 같은 채소인데, 질문만 바꿨을 뿐인데.
데이트를 신청하고 싶다.
"나랑 영화 볼래?"라고 물으면 거절당할 수 있다. "요즘 바빠서..." "영화 별로 안 좋아해서..." 거절할 구실이 많다.
하지만 "이번 주 금요일에 볼래, 아니면 토요일이 더 좋아?"라고 물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 됐다. 선택은 요일로 축소된다. 거절의 문이 좁아진다.
물론 상대방이 의식적으로 "아, 잠깐. 나 영화 볼 생각 없었는데?"라고 깨어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제시된 틀 안에서 움직인다. "음... 토요일이 나을 것 같아."
약속을 잡고 싶다.
"내일 만날래?"보다 "내일 점심에 만날래, 아니면 저녁에 만날까?"가 낫다. 만날지 말지가 아니라 언제 만날지를 고민하게 된다. 전제가 바뀌면 결과가 바뀐다.
판매의 현장
영업 사원들은 이걸 본능적으로 안다. 수천 번의 실전에서 터득한 것이다.
결제 유도: "현금으로 결제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카드로 결제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는 "결제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고객은 결제 여부를 고민하지 않는다. 결제 방법을 고민한다. "살까 말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까"로 생각이 흘러간다.
숙련된 영업 사원은 절대 "구매하시겠습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그건 "아니오"라는 대답을 초대하는 것이다. 대신 "언제 배송해 드릴까요?" "어떤 색상으로 하시겠어요?"라고 묻는다. 구매는 이미 전제됐다.
업셀링: "기본형을 선택하시겠어요, 아니면 프리미엄형을 선택하시겠어요?"
구매 자체가 전제된다. 고객은 등급 사이에서 고민한다. "안 살래요"라는 옵션은 질문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고객이 의식적으로 거부할 수는 있다. "아, 저 아직 결정 안 했는데요." 하지만 대부분은 제시된 선택지 안에서 움직인다. 틀을 벗어나려면 추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에너지를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동산 중개:
"이 집을 계약하시겠어요?"라고 물으면 고객이 망설인다. "좀 더 생각해볼게요."
"입주는 다음 달 초에 하시겠어요, 아니면 말에 하시겠어요?"라고 물으면 다르다. 입주 시점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계약은 이미 전제됐다.
주의할 점
이 기법을 쓸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잘못 쓰면 역효과가 난다.
첫째, 두 선택지가 모두 원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거 할래, 아니면 저거 할래?"에서 둘 중 하나가 원치 않는 결과라면 의미가 없다. "채소 먹을래, 아니면 굶을래?"는 안 된다. 아이가 "굶을래"를 선택할 수 있다.
둘째,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어조가 필요하다.
강압적으로 느껴지면 거부감이 생긴다. 상대방이 조종당한다고 느끼면 반발한다.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가 "자, 뭘로 할 거야?"보다 낫다. 존중의 느낌이 있어야 한다.
셋째, 상대방이 이미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상태여야 효과적이다.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선택지를 줘도 소용없다. "빨간 차 살래, 파란 차 살래?"라고 물어도 "저 차 안 사요"라고 한다. 문 앞까지는 데려와야 한다. 관심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넷째, 너무 노골적이면 들통난다.
"자, 오늘 계약할래, 내일 계약할래?" 이렇게 밀어붙이면 상대방이 눈치챈다. "잠깐, 저 아직 계약한다고 안 했는데요?" 자연스러워야 한다. 당연한 것처럼 던져야 한다.
상담에서의 활용
사주 상담에서도 이 기법은 유용하다. 자주 쓴다. 효과가 좋다.
망설이는 내담자:
내담자가 상담을 받을지 말지 망설일 때, "상담받으실 거예요?"라고 물으면 부담스럽다. "예/아니오"를 강요하는 것 같다. "좀 더 생각해볼게요"라는 답이 나오기 쉽다.
"오늘 상담받으실 거예요, 아니면 다음 주에 시간 잡을까요?"라고 물으면 다르다. 상담 자체는 전제된다. 시점만 선택하면 된다. 부담이 줄어든다.
조언을 할 때:
"이 방향이 좋을 것 같은데요"라고 직접 말하면 저항이 생길 수 있다. "선생님 생각이지, 제 생각은 달라요." 조언이 강요처럼 느껴진다.
"A 방향으로 가실 수도 있고, B 방향으로 가실 수도 있는데, 어떤 게 더 끌리세요?"라고 물으면 다르다. 내담자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낀다. 저항이 줄어든다. 조언이 아니라 자기 결정이 된다. 주인의식이 생긴다.
한 번은 진로 상담을 하는데 내담자가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몇 달째 고민하고 있었다. 취업할지 대학원 갈지. 직접 "이게 나아요"라고 했으면 반발했을 것이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취업하면 어떤 점이 좋을 것 같으세요? 대학원 가면 어떤 점이 좋을 것 같으세요?"
그녀가 스스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결정해준 게 아니다. 그녀가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내가 유도했다. 선택지의 틀을 제시했다.
실패 사례
물론 항상 통하는 건 아니다. 실패한 적도 있다.
한 번은 상담료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이 기법을 썼다. "1시간 상담으로 하실 거예요, 2시간 상담으로 하실 거예요?"
내담자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저 아직 상담받겠다고 안 했는데요?"
들통났다. 너무 성급했다. 아직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인 것이다. 문 앞까지도 안 데려왔는데 문을 열라고 한 꼴이다.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그날 배웠다. 기법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관계가 형성되고, 어느 정도 관심이 생긴 후에 써야 한다. 너무 이르면 역효과다.
전략 2: "그리고"의 마법 – 연결이 만드는 착각
기본 원리
"그리고(and)"는 가장 평범한 단어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이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두 문장을 "그리고"로 연결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논리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이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따로 노는 것들이 함께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의자에 앉는 것과 편안해지는 것은 아무 관계가 없다. 의자에 앉아도 불편할 수 있다. 딱딱한 나무 의자일 수도 있다. 서 있어도 편안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하지만 "그리고"라는 단어가 두 문장을 연결하는 순간, 무의식은 둘을 하나로 묶는다. 의자에 앉았으니까 편안해진다.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처럼 받아들인다. 인과관계가 없는데 인과관계처럼 느껴진다.
접착제로서의 "그리고"
"그리고"는 접착제다. 아무 관계없는 것들을 붙인다. 논리 없이 연결한다.
"지금 바람이 많이 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내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부는 것과 커피를 마시는 것은 별개다. 바람이 불어도 차를 마실 수 있다. 맥주를 마실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안 마실 수도 있다.
하지만 연결되면 "바람이 부니까 따뜻한 커피가 좋겠다"는 느낌이 든다. 커피가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화자가 유도한 것인데, 듣는 사람은 자기가 떠올린 것처럼 느낀다. 자기 생각인 줄 안다.
"숙제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숙제와 게임은 원래 별개다. 숙제 안 해도 게임할 수 있다. 부모 눈 피해서. 하지만 연결되면 연속된 행동처럼 느껴진다. 숙제를 하면 게임이 따라온다. 인과관계가 생긴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그냥 두 문장을 붙인 것뿐인데.
왜 이게 작동하는가
언어학에서는 이걸
"화용론적 함축(pragmatic implication)"이라고 부른다.
"그리고"로 연결된 문장들은 관련이 있다고 가정된다. 왜 굳이 연결했겠어? 관련이 있으니까 연결했겠지. 이런 추론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대화에는 "협력의 원칙"이 있다. 화자가 관련 없는 걸 말할 리 없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연결된 것들은 관련 있다고 받아들인다. 이 가정을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뇌는 패턴을 찾으려 한다. 연결된 것들 사이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없어도 만들어낸다. 이걸 "아포페니아(apophenia)"라고 부른다. 무작위 속에서 패턴을 보는 경향.
"그리고"로 연결하면 뇌가 패턴을 만들어낸다. 둘 사이에 관계를 부여한다. 실제로 없어도.
광고가 아는 것
광고 제작자들은 이 원리를 정확히 안다. 수백억을 들여 연구한다.
"당신은 운전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가족의 안전을 생각합니다."
볼보 자동차 광고다. 두 개의 사실이 연결된다. 운전을 좋아한다, 가족의 안전을 생각한다. 둘 다 부정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운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뭐, 그렇지"라고 넘어간다. 가족 안전 생각 안 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리고 그 뒤에 볼보가 나온다.
무의식은 연결한다. "운전을 좋아하고 가족 안전을 생각하면 볼보다." 광고는 직접 말하지 않았다. "볼보를 사세요"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시지는 심어졌다. "그리고"가 연결해줬다.
코카콜라 광고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순간. 그리고 시원한 콜라 한 잔."
친구와 콜라는 원래 별개다. 친구 만날 때 물 마셔도 된다. 주스 마셔도 된다. 하지만 연결되면 "친구와 함께할 때 콜라"가 자연스러워진다. 수십 년간 이 연결을 반복했다. 이제 친구 모임에 콜라가 빠지면 뭔가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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