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펼쳐놓고 합궁을 보면 된다. 천간이 맞는지, 지지가 충하는지, 형살이 있는지. 기술적으로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절대로.
이 질문 뒤에 뭐가 있는지 보라. "제가 이 사람이랑 결혼해도 될까요?" 겉으로는 궁합을 묻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런 의미들이 겹쳐 있다.
"제가 결혼해도 된다고 말해주세요."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인해주세요."
"부모님이 반대하는데, 누군가 제 편이 되어주세요." "사실 저도 확신이 없어요.
누가 대신 결정해주세요." "이 사람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도망갈 핑계를 주세요."
하나의 질문 안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압축되어 있다. 당신이 "궁합이 좋습니다"라고 답하든, "궁합이 안 맞습니다"라고 답하든, 이 숨은 의미들에는 답하지 못한다. 겉으로
드러난 질문에만 답한 것이다.
바로 이거다. 내담자가 진짜 원하는 건 답이 아니다. 예외가 없다.
한 50대 남성이 상담실을 찾았다. 사업을 접을지 말지 고민된다고 했다. 사주를 보니
정재가 약하고 편관이 강했다. 솔직히 사업보다는 직장생활이 맞아 보였다.
예전의 나라면 말했을 것이다. "사주를 보면 사업운이 약하시네요. 신중하게 결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물었다. "사업을 접으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그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버지한테 얼굴을 못 들겠죠."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셨나요?"
"네. 평생 사업을 하셨어요. 제가 이어받은 거예요."
"아버지께서 지금 어떻게 하고 계세요?"
"돌아가셨어요. 3년 전에."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뭐라고 하셨어요?"
그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네가 이걸 지켜야 한다고... 평생 그 말씀만 하셨어요."
나는 더 들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 번도 "잘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던 것.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이제 내 인생을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30분 넘게 이야기했다. 사주 풀이는 5분도 안 했다.
그가 돌아갈 때 말했다. "선생님, 제가 왜 이렇게 사업을 못 놓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사업이 문제가 아니었네요."
그는 사업 운을 보러 온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네가 이걸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서 벗어나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러
온 것이다.
정신분석가 브루스 핑크는 정확히 이 지점을 짚는다. "환자가 자주 반복하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말은 당시 환자가 의식적으로 생각한 것을 지칭할 뿐이다"[1]
딱 이거다. 내담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실제로 말하는 것"은 다르다. 의식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는 메시지가 다르다. 겉으로 드러난 질문 뒤에 진짜 질문이 숨어 있다.
핑크는 이어서 말한다. "그들은 동일한 순간에 다른 수준에서 자신도 모르는 다른 생각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2]
내담자 자신도 모른다
.
자기가 진짜 뭘 원하는지
.
자기가 왜 이 질문을 하는지
.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데
,
그걸 보지 못한다
.
당신이 사주를 펼쳐놓고 "재물운이 약합니다"라고 말하면, 내담자는 그 말을 듣는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건드리지 않는다. 수면 아래에 있는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내담자는 만족하지 못한다.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다른 점집을 찾아간다. 또 다른 상담사를 만난다. 계속 떠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