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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당신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다

by 홍종민

내담자의 눈빛을 보라. 당신을 바라보는 그 눈.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 당신이 답을 알고 있다고 믿는 눈. 당신이 운명의 비밀을 꿰뚫어보는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눈.

당신은 어떤가? 솔직해져라. 사주를 펼쳐놓고 불안하지 않은가? '이게 맞나?' '저 사람한테 뭐라고 해야 하지?' '내 해석이 틀리면 어쩌지?'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은가?

바로 이 간극이다.

내담자는 당신이 전지전능하다고 믿는데, 정작 당신은 불안하다. 내담자는 답을 기대하는데, 당신은 답이 뭔지 모르겠다. 이 괴리감. 이게 상담실에서 벌어지는 첫 번째 진실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당신이 그토록 불안해하는데도, 내담자들은 계속 찾아온다. "선생님 말씀이 맞았어요." "선생님 덕분에 결정할 수 있었어요." 이런 말을 남기고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온다. 또 온다.

왜 그럴까?

20년 가까이 사주를 봐왔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늘 불안했다. 사주를 펼쳐놓고 명확한 답이 안 보일 때가 많았다. 재성이 있긴 한데 약하다. 관성이 강하긴 한데 너무 강하다. 이래도 저래도 해석이 가능했다. 어느 쪽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특히 힘들 때가 있었다. 내담자가 "제 사주에 뭐가 보이세요?"라고 물을 때. 그 눈빛에서 간절함이 느껴질 때. 나는 뭔가 확실한 걸 말해줘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그래서 더 공부했다. 고전을 뒤졌다. 선배들의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알게 됐다. 사주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는 걸. 해석은 늘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는 걸.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이렇게 불안해하는데도 내담자들이 계속 찾아왔다. "선생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게 맞았어요."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나는 의아했다. '내가 뭘 그렇게 대단하게 말했나?' 기억을 더듬어봐도 특별한 게 없었다. 그저 사주를 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때 번쩍 깨달았다. 바로 이거다. 내가 고민하는 것과 내담자가 원하는 것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걸.

상담실 문을 여는 순간, 내담자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하나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정신분석가 알레산드라 렘마는 이를 정확히 짚어냈다. 정신분석 치료사는 환자가 말하기로 선택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환자가 그것들을 말하는 방식을 통해서 간접으로 전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경청한다"[1]


겉으로 드러난 말 뒤에 숨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

바로 그거다. 내담자가 "제 사주에 재물운이 있나요?"라고 물을 때, 그 질문은 액면 그대로의 의미만 담고 있지 않다. 그 뒤에는 수십 가지 의미가 숨어 있다. "제가 사업을 시작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제가 돈을 못 버는 게 제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누군가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질문 하나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겹쳐 있다.

렘마는 이어서 말한다. 우리는 "아직 완전히 거기에 있지 않은 것,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 아마 결코 말해지지 않을 것에 귀를 기울인다"[2]

딱 이거다

.

내담자가 말하지 않은 것

.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것

.

그게 진짜다

.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내담자는 상담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당신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당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든, 아직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내담자에게 당신은 이미 '아는 사람'이다. 예외가 없다.

주위를 보라. 상담실에 오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묻는다.

"선생님이 보시기엔 어떤 것 같으세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들은 당신이 안다고 믿는다. 확신한다. 의심하지 않는다. 당신의 불안함은 당신만의 것이다. 내담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한 30대 여성이 상담실을 찾았다.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사주를 펼쳐놓고 보는데, 솔직히 명확하지 않았다. 합궁도 나쁘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사주만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결혼은 신중하게 결정하셔야죠."

그녀가 물었다. "그럼 선생님, 제가 결혼해도 될까요?"

나는 당황했다. '내가 뭘 알겠어. 당신 인생인데.' 하지만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절하게.

그때 깨달았다. 그녀는 답을 구하러 온 게 아니었다.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다만 그 결정에 대한 승인을 구하러 온 것이다. 사주상담가라는 권위자의 승인을.

나는 천천히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그녀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사실... 저도 결혼하고 싶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하시면 어쩌나 싶어서요."

바로 이거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사주 해석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결정을 지지해주는 것.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그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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