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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판결을 내리는 순간, 그들은 입을 닫는다

by 홍종민

상담실에서 가장 흔히 벌어지는 실수가 있다.

"당신 사주는 사업운이 약해요." "이 궁합은 안 맞아요." "올해는 조심해야 해요."

판결이다. 선고다.

당신이 재판관이 되어 내담자의 운명을 판결하는 것이다.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내담자가 입을 닫는다. 방금까지 이것저것 물어보고,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던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돌아간다. 다시는 오지 않는다.

바로 이거다. 판결을 내리는 순간, 대화가 끝난다. 예외가 없다.


한 40대 여성이 있었다. 남편과의 관계가 힘들다고 했다. 사주를 펼쳐놓고 보니 편관이 강하고 정인이 약했다. 예전의 나라면 말했을 것이다. "사주를 보면 남편분이 좀 강하시네요. 당신이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런데 그날은 물어 보았다. "남편분과 어떤 점이 힘드세요?"

그녀가 한참을 말했다. 남편이 무시한다는 것. 자기 의견을 하나도 안 들어준다는 것. 항상 자기가 옳다고 우긴다는 것.

나는 더 물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기분이 드세요?"

그녀가 눈물을 글썽였다. "화가 나요. 근데 화를 내면 더 싸우니까... 참아요."

"참으면 어떻게 되세요?"

"속이 막혀요.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아요."

30분 넘게 이야기했다. 남편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시어머니 이야기, 친정엄마 이야기까지 나왔다. 어릴 때부터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것. 항상 눈치를 봤다는 것. 화를 내면 사랑받지 못한다고 배웠다는 것.

그녀가 돌아갈 때 말했다. "선생님, 오늘 처음으로 제 얘기를 다 한 것 같아요. 친구한테도 못 했던 얘기를."

나는 거의 듣기만 했다. 사주 풀이는 5분도 안 했다. 판결도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만족했다. 왜?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만약 처음에 "남편분이 강하시네요"라고 판결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그녀는 "네, 그래요"라고 대답하고 입을 닫았을 것이다. 친정엄마 이야기까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문제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분석가 알레산드라 렘마는 해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해석은 하나의 가설이다. 환자는 해석에 대해 원하면 논평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시할 수 있다"[1]

바로 이거다. 해석은 가설이다. 정답이 아니다. 당신이 "사업운이 약해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건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그런데 내담자는 그걸 판결로 받아들인다. 왜? 당신이 권위자니까. 당신이 '아는 사람'이니까.

렘마는 이어서 말한다. "해석은, 설령 치료사가 아직 알지 못한다고 해도, 그가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환자에게 말해주는 것일 뿐, 사실에 대한 진술이 아니다. 오히려, 해석은 적합할 수도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는, 또 다른 관점을 고려해보도록 초대하는 것이다"[2]

“초대” 이 단어가 핵심이다.

해석은 초대여야 한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판결이 아니라 초대.

당신이 "사업운이 약해요"라고 판결을 내리면, 대화가 끝난다. 하지만 "사주를 보면 이런 부분이 보이는데, 당신은 어떻게 느끼세요?"라고 초대하면, 대화가 시작된다. 내담자가 말하기 시작한다. 자기 생각을, 자기 감정을, 자기 이야기를.

그런데 왜 우리는 판결을 내리고 싶어 할까?


솔직해지자. 판결을 내리는 건 편하다. "당신 사주는 이래요." 끝.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담자도 답을 얻었고, 나도 할 일을 했다.

하지만 그게 진짜 도움이 되는가?

렘마는 이렇게 경고한다. "문제가 밝혀지기도 전에 대답을 제공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3]

문제가 뭔지도 모르면서 답을 주고 싶어 하는 것

.

그게 바로 우리의 함정이다

.

내담자가 "재물운이 있나요?"라고 물을 때, 진짜 문제가 뭔지 아직 모른다. "재물운이 좋아요"라고 답하면 편하다. 하지만 그게 진짜 문제에 답한 건가? 내담자가 왜 재물운을 궁금해하는지, 그 뒤에 뭐가 있는지, 아직 모른다.

렘마는 더 나아가 말한다.

"분석적으로 작업하기 위해서, 우리는 알고자 하는 욕구를 버려야만 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우리의 소망을 떠나보내야만 한다"[4]

알고자 하는 욕구.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소망. 이게 우리를 판결로 이끈다. "나는 안다. 나는 해결할 수 있다." 이 욕망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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