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홍종민 Dec 11. 2025 brunch_membership's
"저는 잘 들어요."
상담 초보자들이 늘 하는 말이다.
틀렸다. 당신은 듣지 않는다.
귀가 열려 있다고 듣는 게 아니다. 고개를 끄덕인다고 듣는 게 아니다. "네, 네" 대답한다고 듣는 게 아니다.
그건 소리를 수신하는 것이다. 듣기가 아니다.
진짜 듣기는 말 뒤에 있는 것을 듣는 것이다. 표면 아래를 듣는 것이다. 말해지지 않은 것을 듣는 것이다.
이건 정답이다. 예외가 없다.
한 50대 남성이 있었다.
사업이 안 된다고 했다. 경기 탓, 직원 탓, 거래처 탓. 30분을 쉬지 않고 말했다.
나는 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 안에서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답답함. 숨이 막히는 느낌.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
그건 내 감정이 아니었다.
그의 감정이었다.
그가 말을 멈췄을 때 물었다. "지금 많이 답답하신 것 같아요."
잠시 멈칫하더니 그가 말했다. "네... 사실 답답해요."
"뭐가 제일 답답하세요?"
"아내가... 이해를 안 해줘요."
거기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됐다.
사업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와의 관계가 문제였다. 집에 가면 말이 없어진다는 것. 대화가 사라졌다는 것. 20년을 살았는데 점점 남남이 되어간다는 것.
만약 내가 말만 들었다면?
"경기가 안 좋으시네요", "직원 문제가 힘드시겠네요" 하고 맞장구만 쳤다면?
진짜 문제에 영원히 닿지 못했을 것이다.
내용이 아니라 방식이다.
뭘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다.
그 50대 남성은 사업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방식에서 답답함이 묻어났다. 숨 막히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걸 들어야 한다.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 어쩌면 영원히 말해지지 않을 것. 그게 핵심이다.
그는 사업 이야기를 하면서 아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해지지 않은 것이 그의 답답함 속에 들어 있었다.
그걸 듣는 게 진짜 듣기다.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균등하게 분배된 주의.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이다.
무슨 뜻인가?
어떤 말은 중요하게, 어떤 말은 대충 듣는 게 아니다. 모든 말에 동일한 비중을 두는 것이다.
내담자가 "재물운이 어때요?"라고 물을 때, 그 질문만 중요하게 듣지 않는다. 그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표정으로 물었는지, 목소리 톤이 어땠는지. 모든 것에 동일한 주의를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