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홍종민 Dec 25. 2025 brunch_membership's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찾아온 40대 남성이 있었다. 첫 상담에서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별로 슬프지 않아요. 원래 관계가 안 좋았거든요."
표정도 담담했다. 목소리도 평온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면 나는 "그러셨군요"라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가 '슬프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 것이 아닌 슬픔이 밀려왔다. 투사적 동일시다. 그가 느끼지 못하는(혹은 느끼지 않으려는) 감정이 나에게 전염된 것이다.
"슬프지 않다고 하셨는데... 혹시 슬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가 멈칫했다.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했다.
"어머니가... 저한테 잘해주신 적이 없어서요. 슬퍼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거기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됐다. '슬프지 않다' 뒤에 '슬퍼할 자격이 없다'가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평생 인정받지 못한 아들의 상처가 있었다.
렘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직 완전히 거기에 있지 않은 것,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 아마 결코 말해지지 않을 것에 귀를 기울인다"1]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 그 40대 남성은 '슬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무의식은 슬픔을 보내고 있었다. 말로는 "슬프지 않아요"라고 했지만, 그의 몸이, 목소리가, 침묵이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렘마는 이어서 말한다. "때로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은 실제로 말해진 것보다, 우리에게 어떤 것이 전달되는 방식에 있다. 또 다른 때에는, 말에 담긴 것이 별로 없는 반면에, 침묵이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2]
말해진 것보다 전달되는 방식. 침묵이 말해주는 것. 이게 말 뒤에 숨은 것을 듣는 핵심이다.
브루스 핑크는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 "분석에서는 아무것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환자의 말이나 행동이 그대로 어떤 진정한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3]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슬프지 않아요"를 "아, 슬프지 않구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말 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한다.
핑크는 구체적인 예를 든다. "환자가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기 때문에 목요일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왜 하필 분석가와 약속한 바로 그날에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하는가?"[4]
왜 하필 그날인가. 이 질문이 중요하다. 내담자가 이유를 대면, 그 이유 뒤에 뭐가 있는지 물어야 한다.
핑크는 이어서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실', 다시 말해서 분석을 방해하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 심리적인 현실이다. 환자의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5]
심리적 현실. 내담자가 "슬프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 객관적으로 슬프냐 안 슬프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왜 슬프지 않다고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그 말의 심리적 의미가 중요하다.
한 30대 여성이 있었다. 남자친구 이야기를 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다 좋아요."
"다 좋다"는 말이 걸렸다. 세상에 다 좋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다 좋으시다고요? 혹시 아쉬운 점은 없으세요?"
그녀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글쎄요... 가끔 연락이 안 될 때가 있긴 해요. 근데 바쁘니까 그럴 수 있죠."
"연락이 안 될 때 어떤 기분이세요?"
"...불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