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 가족 로맨스, 신데렐라 환상, 그리고 부모 자녀 관계의 무의식 구조

by 홍종민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이 말했다. 자녀는 처음부터 부모를 싫어하고 있었다(최명기, 2024).


이 한마디가 꽂혔다. 충격적으로.


우리는 보통 반대로 생각한다. 원래 사이가 좋았는데 어느 순간 나빠졌다고. 자녀가 사춘기가 돼서, 결혼을 해서, 성인이 돼서 달라졌다고. 부모는 그렇게 믿는다. 그런데 최명기 원장이 뒤집는다. 아니다. 자녀는 훨씬 전부터 이미 치가 떨리고 있었다. 그냥 갈 데가 없으니까, 겁이 많으니까, 괜찮은 척했을 뿐이다.


이걸 들었을 때, 나는 즉각 프로이트를 떠올렸다. 가족 로맨스. 신데렐라 환상. 거지 왕자 이야기. 아이들이 품는 그 은밀하고 강렬한 환상. 이 부모는 진짜 내 부모가 아니다. 진짜 부모는 다른 곳에 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구조가 같다. 프로이트가 100년 전에 발견한 것이 최명기 원장의 임상 관찰 속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부모 자녀 관계의 무의식 구조. 그걸 오늘 펼쳐보려 한다.



1. 자녀는 처음부터 부모를 싫어했다 — 그 구조부터


최명기 원장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자녀는 이미 부모를 싫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기 전까지 갈 데가 없으니까, 겁도 많으니까, 괜찮은 척했다(최명기, 2024). 부모 입장에선 사이 좋았던 관계다. 자녀 입장에선 치가 떨리는 관계였다.


부모는 자녀가 말을 잘 들으면 관계가 좋다고 생각한다. 자녀는 그 순간 속으로 욕하고 있었다. 표면 아래에 있는 것. 말하지 않는 것. 그게 진짜다.


핵심을 짚어보자. 왜 자녀는 처음부터 부모를 싫어했는가.


단순히 부모가 나빠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놓이는 그 구조. 부모는 강자다. 아이는 약자다. 완전한 의존. 부모가 없으면 아이는 죽는다. 그 절대적인 의존 관계 속에서 아이는 무엇을 느끼는가.


공포. 그리고 분노. 아이는 그걸 말할 수 없다. 말할 언어도 없다. 표현할 방법도 없다. 그냥 삼킨다. 오래오래 삼킨다.


이것이 최명기 원장이 말하는 구조다. 초창기에는 부모는 강자, 자녀는 약자. 그리고 마지막에는 역전된다. 부모는 약자, 자녀는 강자.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이 역전을 인정하지 못할 때 관계가 터진다(최명기, 2024).


40살 자녀가 70살 부모에게 뭔가 말하면, 70살 부모는 마치 30살 아버지에게 야단맞는 다섯 살 아이처럼 무섭고 속상하다(최명기, 2024). 강자와 약자가 뒤바뀌었는데 아무도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인정의 실패가 관계를 파괴한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멈추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다. 왜 자녀는 처음부터 부모를 싫어했는가, 이 질문에 최명기 원장보다 더 깊이 파고든 사람이 있다. 프로이트다.



2. 가족 로맨스 — 이 부모는 가짜다


1909년 프로이트는 짧고 강렬한 논문을 발표했다. 「가족 로맨스」(Der Familienroman des Neurotikers). 신경증자의 가족 소설이라고도 불린다.


핵심 주장은 단순하다. 아이들은 어느 시점에 이런 환상을 품는다. 이 부모는 진짜 내 부모가 아니다.


이 환상은 이상하지 않다. 거의 모든 아이가 경험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의 권위에 의문을 갖게 될 때 이 환상이 시작된다. 부모가 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부모도 틀릴 수 있고, 부모도 실망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인식하는 순간.


그때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재구성한다. 진짜 부모는 따로 있다. 이 사람들은 가짜 부모다. 진짜 부모는 더 훌륭하고, 더 부유하고, 더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지금 오해 속에서 살고 있다.


이게 가족 로맨스다. 가족에 관한 소설. 아이가 혼자 쓰는 비밀 소설.


여기서 두 가지 버전이 나온다. 하나는 신데렐라 환상. 하나는 거지 왕자 환상.



신데렐라 환상: 여자아이 버전


신데렐라는 가난한 집에서 구박받으며 산다. 그런데 진실은 다르다. 신데렐라는 실은 귀족의 딸이다. 그 사실을 아는 요정 대모가 나타나고, 결국 왕자가 그녀를 알아본다. 진짜 신분이 드러난다.


이게 여자아이의 가족 로맨스 구조다. 나는 사실 이 집의 딸이 아니다. 진짜 내 부모는 더 좋은 곳에 있다. 지금 내가 여기서 구박받는 건 오해 때문이다. 언젠가 진짜 내 신분이 드러날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 환상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결된다고 봤다. 어린 여자아이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런데 어머니가 경쟁자다. 어머니를 제거하고 싶다. 그 욕망이 너무 위험하니까 변형된다. 어머니는 진짜 내 어머니가 아니다. 가짜다. 그러니 나를 이렇게 대해도 된다는 명분이 생긴다.


동시에 아버지의 사랑을 향한 욕망은 보존된다. 진짜 아버지, 혹은 진짜 아버지를 대체하는 왕자 같은 남자가 나타나서 나를 알아볼 것이다. 그 환상.


신데렐라는 그냥 동화가 아니다. 인류가 오랫동안 품어온 무의식의 구조다. 수백 년 동안 그 이야기가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 환상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거지 왕자 환상: 남자아이 버전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1882). 왕자와 가난한 소년이 서로 옷을 바꿔 입는다. 진짜 왕자가 거지로 살아야 하는 상황. 결국 진짜 신분이 드러난다.


남자아이 버전의 가족 로맨스다. 나는 사실 이 집의 아들이 아니다. 실은 높은 신분의 사람이다. 지금 내가 이 평범하고 때로는 초라한 가정에서 사는 건 일종의 실수이거나 시련이다. 언젠가 진짜 내 신분이 드러날 것이다.


이 환상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결된다. 아버지를 제거하고 싶은 욕망. 어머니를 독차지하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이 변형된다. 아버지는 진짜 내 아버지가 아니다. 가짜다. 진짜 내 아버지는 더 훌륭한 사람이다.


두 환상의 공통점이 있다. 지금 이 부모는 진짜가 아니다. 진짜 부모는 더 좋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임시적이다. 언젠가 진짜가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 최명기 원장이 말하는 "자녀는 처음부터 부모를 싫어했다"의 심층 구조다. 아이들이 부모를 싫어하는 건 단순히 부모가 나빠서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이 부모가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부모, 진짜 사랑받을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열망. 그리고 현실 부모에 대한 실망.



3. 부모 자녀 관계의 시간표 — 강자와 약자의 역전


최명기 원장이 그린 부모 자녀 관계의 시간표를 따라가 보자(최명기, 2024).


초등학교 4학년까지가 가장 행복하다. 왜인가. 이 시기에 부모는 여전히 강자다. 아이는 여전히 약자다. 그 구도가 안정적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빛나는 미래를 투영한다. 아이가 말이 많으면 머리가 좋다고 믿는다. 아직 현실 검증이 안 됐다. 환상이 유지되는 시기.


중학교 2학년부터 틀어진다. 시험이 시작된다. 현실이 들어온다. 부모의 투영이 검증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는 처음으로 묻는다. 옛날에는 내가 활발하고 리더십 있다고 좋아하더니, 왜 지금은 애들이랑 논다고 싫어하는 거지?


이 질문이 핵심이다. 아이는 발견한다. 부모가 나를 사랑한 건 내가 가진 특성 때문이 아니었다. 조건이 붙어있었다. 내가 기대에 부응할 때만 사랑받았다.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었다.


이게 가족 로맨스의 붕괴 지점이다. 아이는 깨닫는다. 이 부모는 내가 바랐던 그 부모가 아니었다. 무조건 나를 알아주고 사랑해주는 진짜 부모가 아니었다.


대학 입학으로 잠시 소강된다. 설정이 났으니까. 어느 대학이든 일단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취업에서 다시 갈등이 폭발한다. 또 기대와 현실이 충돌한다.


그리고 마지막 갈등은 부모가 늙고 아팠을 때 온다. 이 시점에서 완전한 역전이 일어난다. 부모가 약자가 되고 자녀가 강자가 된다. 그런데 부모는 이 역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강자의 위치에서 자녀에게 요구하고 부탁한다. 40살 자녀는 어릴 때 부모에게 쌓인 것들을 꺼낸다. 70살 부모는 충격을 받는다.


이 구조를 프로이트의 언어로 다시 읽으면 이렇다. 아이는 가족 로맨스를 통해 현실 부모에 대한 실망을 견뎌낸다. 진짜 부모는 따로 있다는 환상으로 현실의 고통을 버텼다. 그 환상이 성인이 되면서 하나씩 무너진다. 그리고 무너질 때마다 현실 부모와의 갈등이 폭발한다.



4. 핑크가 말하는 요구와 욕망 — 말하는 것과 원하는 것


라캉 정신분석을 미국에 소개한 브루스 핑크는 이렇게 구분한다. 요구와 욕망. 우리가 말하는 것과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다르다(핑크, 2021: 57).


부모 자녀 관계에서 이 구분은 결정적이다.


부모가 말하는 것: "너 왜 전화 안 하니." "다음 주에 와." "밥은 먹었어."


부모가 진짜 원하는 것: 나를 기억해줘. 내가 아직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해줘. 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자녀가 말하는 것: "바빠서요." "다음에 갈게요." "괜찮아요."


자녀가 진짜 원하는 것: 나를 조건 없이 인정해줘. 내가 뭘 하든 네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


핑크는 말한다. 분석가가 분석주체의 요구에 쉽게 응한다면, 분석주체는 자기 요구를 단순한 실제 욕구나 직접적인 욕구로 받아들일 것이다(핑크, 2021: 57).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뒤에 숨은 욕망은 영영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


부모가 "왜 전화 안 하니"를 듣고 자녀가 "죄송해요, 바빠서"라고 답하면 끝난다. 요구에 응한 것이다. 그런데 그 요구 뒤에 있는 욕망은 전달되지 않는다. 부모는 여전히 배고프다. 자녀도 여전히 불편하다. 그리고 이 구조가 수십 년 반복된다.


핑크는 또 말한다. 청자는 화자의 말을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다(핑크, 2021: 82). 정확히 그거다. 부모의 말이 자녀에게 어떻게 들리는지가 관계를 결정한다. 부모는 걱정으로 말하는데 자녀에게는 간섭으로 들린다. 자녀는 독립 선언을 하는데 부모에게는 거부로 들린다.


이 엇갈림이 부모 자녀 갈등의 본질이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의 불일치. 요구와 욕망의 불일치.



5. 가족 로맨스의 숨겨진 기능 — 왜 이 환상이 필요했는가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왜 아이는 이런 환상을 품어야 했는가.


프로이트는 가족 로맨스를 병리로 보지 않았다. 정상적인 발달 과정의 일부로 봤다. 모든 아이가 이 환상을 통과한다. 왜인가.


이 환상이 없으면 아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환상이 필요하다. 부모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인정은 너무 고통스럽다.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 전체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실망스럽다는 건 세상이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아이는 환상을 만든다. 이 부모가 진짜가 아니다. 진짜 부모는 따로 있다. 그 환상이 있어야 현실 부모에 대한 실망을 버틸 수 있다. 부모로부터 점점 분리되는 과정을 견딜 수 있다.


김형경은 이렇게 설명한다.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감정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대물림된다. 아이들은 부모 행동을 고스란히 흡수하듯 배운다(김형경, 2017: 145). 부모가 자기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고통이 아이에게 전달된다. 투사다. 그리고 아이는 그 고통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가족 로맨스는 그 고통에 대한 아이의 방어다. 이 고통은 진짜 내 고통이 아니다. 진짜 부모가 나타나면 이 고통은 사라질 것이다. 그 환상이 아이를 지탱한다.


문제는 그 환상이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된다는 점이다. 변형된 형태로. 로맨스 관계에서 완벽한 파트너를 찾는 것. 직장에서 자신을 알아줄 진짜 상사를 찾는 것. 상담실에서 마침내 나를 이해해줄 누군가를 찾는 것. 모두 가족 로맨스의 연장이다.



6. 상담실에서 만나는 가족 로맨스의 잔해들


사주 상담실에서 나는 매일 가족 로맨스의 잔해들을 만난다.


40대 여성이 온다. 남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 남자는 진짜 내 남자가 아닌 것 같다. 진짜 내 남자는 더 나를 알아줄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감각이 있었다고 한다. 나를 진짜로 알아줄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


이게 신데렐라 환상의 성인 버전이다. 진짜 나를 알아줄 왕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내 파트너는 가짜다. 진짜는 따로 있다.


50대 남성이 온다. 사업이 잘 안된다. 자기는 원래 이 정도 사람이 아닌데. 뭔가 잘못됐다. 진짜 자기 실력이 발휘될 상황이 오면 다를 것이다. 지금은 조건이 맞지 않는 것뿐이다.


이게 거지 왕자 환상의 성인 버전이다. 나는 원래 높은 신분의 사람이다. 지금 상황은 임시적이다. 진짜 내 신분이 드러날 날이 올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상담자로서 나는 조심해야 한다. 이 환상을 곧바로 해체하면 안 된다. 그 환상이 그 사람을 지탱해온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걸 단번에 무너뜨리면 사람이 무너진다.


핑크의 말이 여기서 유효하다. 분석가가 판단을 내리는 것 자체가 이미 분석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핑크, 2021: 54). 환상을 판단하지 말라. 그 환상이 왜 필요했는지를 먼저 이해하라.


그 다음에 천천히 물어야 한다. 진짜 나를 알아줄 왕자가 나타나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세요? 그때도 지금처럼 이 감각이 남아있을 것 같으세요?


이 질문이 환상을 가로지르는 시작이다. 환상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환상 너머로 걸어가기 시작하는 것.



7. 부모 자녀 관계 회복의 진짜 조건


최명기 원장은 부모 자녀 관계 회복을 위해 가급적 자녀의 말을 들어라고 한다(최명기, 2024).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왜 그게 어려운가.


듣는다는 건 단순히 귀를 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강자였던 시절의 환상을 내려놓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너의 부모다. 너는 나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그 환상을 포기하는 것이 진짜 듣기의 전제조건이다.


반대도 성립한다. 자녀도 환상을 내려놓아야 한다. 진짜 이상적인 부모가 나타날 것이라는 환상. 이 부모에게서 끝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받게 될 것이라는 환상.


프로이트의 가족 로맨스가 건강하게 해소된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이 부모가 진짜 내 부모다. 완벽하지 않지만.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이 사람들이 나를 낳고 키운 실제 부모다. 그 인정이 있어야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


브루스 핑크는 분석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신경증자의 분석은 타자나 타자의 욕망으로부터 그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핑크, 2021: 57). 부모의 욕망이 자녀에게 이식된다. 자녀는 부모의 욕망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며 산다. 그 분리가 일어나야 진짜 자기 욕망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이 분리는 단절이 아니다. 분리되어야 비로소 진짜 만남이 가능하다. 부모의 욕망에서 분리되어야 비로소 부모를 진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내 환상 속의 나쁜 부모도 아니고, 내 환상 속의 이상적인 부모도 아닌, 실제 그 사람으로.


그때 비로소 관계가 달라진다.



8. 강자의 자리를 내려놓는 법


최명기 원장이 그린 마지막 갈등 지점이 있다. 부모가 늙고 아팠을 때. 부모가 약자가 됐을 때(최명기, 2024).


이때 어떤 자녀는 어릴 때 쌓인 것을 꺼낸다. 부모에게 야단친다. 최명기 원장이 말한다. 40살 자녀가 70살 부모에게 하는 말이 30살 아버지에게 다섯 살 아이가 야단맞을 때처럼 부모에게 느껴진다고(최명기, 2024). 부모도 무섭고 속상하다.


이 장면이 비극이다. 약자였던 자녀가 강자가 됐을 때, 강자였던 부모가 약자가 됐을 때, 그 역전을 두 사람 모두 감당하지 못한다.


강자는 약자가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이제 더 이상 강자가 아니라는 것을. 자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수치스럽지 않다는 것을.


김형경은 이렇게 쓴다. 부모 세대가 자녀에게 심리적으로 나쁜 것들을 물려주었다는 사실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본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것, 자기 마음이나 행동을 성찰하기 전에 불편함부터 표현하는 태도가 자녀를 힘들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좋을 것이다(김형경, 2017: 147).


불편함을 먼저 표현하는 것. 이게 핵심이다. 자녀가 뭔가 말하면, 부모는 방어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나는 너를 위해 다 했다. 네가 몰라서 그렇다. 이 방어가 관계를 막는다.


가족 로맨스의 구조를 이해하면 이 방어의 의미가 보인다. 부모 자신도 가족 로맨스를 품고 있었다. 이상적인 부모에 대한 환상.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받는 것에 대한 환상. 그 환상이 채워지지 않은 채 부모가 됐다. 그래서 자녀에게 다시 투사한다.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미완성의 환상들. 그것이 부모 자녀 갈등의 심층이다.



9. 멀어지는 것이 행복이라는 역설


최명기 원장이 관찰한 것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이 있다. 부모는 관계가 파탄났다고 생각하는데, 자녀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최명기, 2024).


자녀는 연락을 끊으면서 독립했다고 느낀다. 해방됐다고 느낀다. 처음으로 자기 욕망대로 사는 것 같다고 느낀다.


프로이트의 언어로 이건 가족 로맨스의 성숙한 해소다. 이 부모로부터 분리됐다. 진짜 나를 알아줄 다른 부모를 찾겠다는 환상도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 그냥 혼자 살아보겠다. 이것.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완전한 단절이 해소가 아니다. 핑크는 말한다. 욕망은 한 대상에 잠시 안착할 수 있지만 그것에 영원히 놀아앉지 않는다(핑크, 2021: 57). 부모로부터의 분리는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지, 관계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멀어지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자녀들 중 많은 경우, 실은 부모 없는 것이 행복한 게 아니다. 부모의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한 것이다. 그 차이가 중요하다.


부모의 욕망에서 벗어나되, 부모라는 사람과의 관계는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관계. 그게 건강한 부모 자녀 관계다. 환상 없이, 실제 두 사람으로 만나는 관계.



10. 결론 — 이야기를 다시 쓰는 것


최명기 원장의 임상 관찰로 시작했다. 자녀는 처음부터 부모를 싫어했다.


이 명제를 나는 정신분석적 구조로 읽는다.


아이들은 가족 로맨스를 통해 이 부모는 진짜가 아니라는 환상을 품는다. 그 환상이 성인이 돼도 변형된 형태로 남는다. 진짜 나를 알아줄 사람을 찾는 것. 진짜 내 실력이 발휘될 상황을 기다리는 것.


부모 자녀 갈등은 이 환상들의 충돌이다. 부모의 이상적인 자녀에 대한 환상과, 자녀의 이상적인 부모에 대한 환상이 현실 속에서 부딪힌다.


해소의 길은 환상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이 부모가 진짜 내 부모다. 완벽하지 않아도. 이 자녀가 진짜 내 자녀다. 내 기대와 달라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거기서부터다.


그 인정이 있어야 비로소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날 수 있다. 환상이 아닌 실제로.


핑크는 이 과정을 분석의 목적으로 말한다. 분석주체가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도록. 타자의 욕망이 아닌 자기 욕망을 살도록(핑크, 2021: 57). 부모 자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욕망도 아니고, 자녀의 욕망도 아닌, 두 사람이 각자 자기 욕망을 살면서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가능한가. 어렵다. 하지만 가능하다. 그 가능성의 조건이 있다.


강자일 때 강자임을 인정하는 것. 약자가 됐을 때 약자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두 사람이 각자 환상 없이 서로를 보는 것.


신데렐라의 왕자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거지 왕자의 진짜 신분은 영영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환상이 무너지는 고통을 견디고 나면, 비로소 실제 사람들과 실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가족 로맨스는 끝나야 한다. 그때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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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브루스 핑크/ 맹정현(2021). 『라캉과 정신의학』. 민음사.

김형경(2017). 『소중한 경험』. 사람풍경.

맹정현(2022). 『프로이트 패러다임』. 서울: 위고.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덕하 역(2021). 『끝낼 수 있는 분석과 끝낼 수 없는 분석』. b.

최명기(2024). 「부모와 자녀 간 관계 악화의 심리적 원인」. 유튜브 채널 '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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