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촉(觸): 보이지 않는 감각의 세계

by 홍종민

목차

제1부 촉의 발견 —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

1장 촉(觸): 보이지 않는 감각의 세계

2장 촉이란 무엇인가 — 직감과 직관의 차이

3장 말하지 않아도 다 들린다

4장 내 마음이 너에게 전해지는 이유


제2부 촉을 깨우다 — 감각을 여는 법

5장 일상에서 시작하는 5분 명상법

6장 숨은 언어를 읽는 순간

7장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8장 상담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다

9장 마주 앉은 그 순간

10장 내 감정의 출처는 한 겹이 아니다

11장 나지오의 삼중 공감

12장 민델과 코틀러 —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다

13장 비온이 발견한 것

14장 옥덴과 베르모토

15장 케이스먼트와 가발드

16장 슈나이더의 40개 커피포트

17장 볼라스와 렘마

18장 빈 그릇이 통로가 되려면

19장 사주팔자가 읽는 것

20장 촉은 열리는 것이다


제3부 촉으로 살다 — 관계와 결정의 기술

21장 촉을 키우되 휘둘리지 않는 법

22장 직관이 돈을 번다

23장 말하지 않아도 다 전해진다

24장 기묘한 우연의 순간들



— 말보다 먼저 오는 것 —


나는 한동안 틀렸다.

천간지지를 완벽히 외우고 신살을 정확히 적용하면 사주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이론을 갈고 닦으면 언젠가 완벽한 상담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이론은 쌓이는데 뭔가가 빠져 있었다. 내담자 앞에 앉으면 알 수 없는 감각이 먼저 왔다. 논리가 아니라 느낌이. 계산이 아니라 이미지가. 그게 뭔지 오랫동안 몰랐다.

그걸 촉(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의식의 표층에서 작동하는 논리적 사고를 넘어, 무의식의 심층에서 포착되는 미묘한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 그런데 이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오래 써왔는데도 아직 이 감각이 어디서 오는지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게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한 도반이 있었다.

함께 사주를 공부하며 인간 정신의 신비를 탐구했다. 그는 선천형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뭔가가 열려 있는 사람이었다.


번화가를 걷다가 그가 갑자기 멈췄다. 스쳐 지나가는 청년을 가리켰다. 저 사람, 최근에 직장을 잃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군. 아마 3개월 안에 큰 결정을 내릴 것 같아.

나는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느껴져. 마치 그 사람 주변에 정보가 떠다니는 것처럼.

몇 달 후, 우연히 그 청년이 실업급여를 받으며 창업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청년인가. 그것이 이상하다. 설명하려고 할수록 더 이상해진다.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도반은 무언가를 읽었다.

말하지 않은 것이 왔다.

볼라스는 이것을 사고되지 않은 앎(unthought known)이라고 불렀다. 알고는 있지만 아직 사고되지 않은 것. 의식이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먼저 알고 있는 것(볼라스, 2010: 82). 그 청년의 무의식이 자기 자신도 아직 말로 꺼내지 못한 것을 도반의 무의식에 먼저 전달한 것이었다.


더 이상한 일이 있었다.


처음 보는 술집 종업원에게 도반이 불쑥 말했다. 애인이 해경에서 일하시는군요. 종업원의 표정이 굳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정말 신기하네요.

또 다른 날에는 술집 사장에게 말했다. 남편분을 대학교 유아교육과에서 만나셨죠. 사장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확했다.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촉이야. 그냥 느껴져. 나는 그걸 읽을 뿐이야.


이 두 사례는 앞의 청년 사례와 다르다. 청년은 걸어가고 있었다. 종업원과 사장은 도반과 직접 마주했다.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도반이 읽은 것은 그 말 안에 없었다. 말 밖에 있었다.

왜 애인이 해경에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는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왜 그것이 먼저 왔는가.

말보다 먼저 오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이게 핵심이다.

볼라스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타자가 아직 도달하지 않은 어떤 것을 향해 오고 있다는, 타자의 말에 경청하고 있는 자기의 직관. 이러한 느낌은 타자의 무의식 작업에 대한 자기의 무의식적 지각으로부터 온다(볼라스, 2013: 197). 무의식과 무의식이 먼저 대화한다. 말은 그 다음이다.


그런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거였다.


비 오는 날, 도반과 차를 타고 한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던 중 그가 말했다.

저기, 비 오는 날마다 아이가 우는 게 보여.

나는 속으로 또 시작이군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 아파트 단지 앞은 몇 년 전 어린 아이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곳이었다. 부모가 매년 그 자리에 백합을 놓고 간다고 했다.


이 사례가 앞의 두 사례와 다른 이유는 하나다.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청년의 사례에서는 청년이 있었다. 종업원과 사장의 사례에서는 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 사례에서는 아무도 없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중이었다. 비 오는 날이었다. 그런데 도반은 아이가 우는 것을 봤다.

살아있는 사람의 억눌린 감정만이 아니었다. 공간에 새겨진 것도 왔다. 비 오는 날마다. 반복적으로.

이 세 장면이 이야기하는 것은 같다. 말하지 않은 것이 왔다. 살아있는 사람을 통해서도, 공간을 통해서도.


내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50대 여성이 사주를 보는 내내 특별한 일은 없었다. 상담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당황스러웠다. 슬픈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그때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 저 요즘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아무에게도 울 수가 없었어요.


왜 그녀는 힘들다는 말을 상담 내내 하지 않았는가. 왜 그 말이 끝에 가서야 나왔는가. 그리고 왜 나는 그녀가 말하기 전에 먼저 울었는가.

내 슬픔이 아니었다. 그녀의 것이었다. 내 몸이 그녀의 것을 먼저 받은 거였다.

이것이 역전이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내담자의 무의식이 상담사의 무의식에 신호를 보낸다. 말보다 먼저. 논리보다 먼저. 몸이 먼저 받는다. 볼라스의 표현으로 하면, 환자를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그를 찾아야만 한다(볼라스, 2010: 269). 내 눈물이 그녀를 찾아낸 것이었다.


그렇다고 항상 맞는 것은 아니었다.


도반도 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완전히 빗나가기도 했다. 촉도 컨디션의 영향을 받는다는 증거였다. 이게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관리가 필요한 감각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촉에 너무 빠지면 위험하다.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촉을 과신하다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을 봤다. 한 지인은 모든 의사결정을 직감에만 의존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사업은 망했고, 인간관계는 파탄 났으며,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촉은 보조적인 도구다.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감각이지, 전능한 신탁이 아니다.


그리고 촉은 소진된다.


내가 지쳐 있으면 촉도 지친다. 힘든 상담들이 연속으로 있었던 어느 시기, 나는 그냥 버텼다. 그게 실수였다. 결국 탈이 났다. 상담 중에 집중이 안 됐다. 이미지도 안 떠올랐다. 촉이 사라졌다.

빈 그릇이 아니라 가득 찬 그릇이 됐기 때문이다. 그릇이 내담자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신호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볼라스가 말한 것처럼, 분석가가 자신 안에서 감정, 환상, 스쳐 지나가는 느낌들을 교란이나 방해로 간주한다면, 환자의 무의식적 삶과의 관계를 끝장내고 있는 것이다(볼라스, 2010: 269). 내가 내 것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내담자의 신호는 들어오지 못한다.


촉이 작동하려면 조건이 있다.


비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채워져 있어야 한다. 빈 그릇이어야 받을 수 있지만, 부서진 그릇이어서는 안 된다. 이 둘은 다르다. 비어 있다는 것은 내 것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는 것이다. 채워져 있다는 것은 내 중심이 서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해야 촉이 작동한다.


이게 어디서 오는 건가. 내담자가 말하기도 전에 내 몸이 먼저 아는 것.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그 앎. 이건 단순한 감이 아니다. 그렇다고 신비로운 초능력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규칙적이고 반복적이다.

세 장면을 다시 본다. 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청년. 상담실에서 울 수 없었던 여자. 비 오는 날의 아파트 단지.

역설의 강도가 다르다. 청년의 경우는 이해할 수 있다. 어딘가에서 신호가 왔겠거니. 종업원과 사장의 경우는 조금 이상하다. 말 안에 없는 것을 어떻게 읽었는가. 아파트 단지의 경우는 완전히 뒤집힌다.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무언가가 왔다.

세 장면이 같은 원리로 설명된다. 말하지 않은 것이 왔다. 그것을 받는 것이 촉이다.


감과 촉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촉은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가. 무의식은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 질문들이 나를 다음으로 데려갔다.


참고문헌

크리스토퍼 볼라스 / 이재훈 외 역(2010). 『대상의 그림자』. 한국심리치료연구소.

크리스토퍼 볼라스 / 이재훈 외 역(2013). 『끝없는 질문』. 한국심리치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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