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규봉암에서 만난 신통력의 진실

라캉과 불교가 만나는 순간

by 홍종민

필자는 호기심이 지나치게 많은 편이다. 사주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통력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깊은 산속 암자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정말로 투시력이나 천이통 같은 걸 지녔는지 말이다.


상징계의 균열: "더는 그대로 있을 수 없겠다"


반복되는 업무와 지친 일상 속에서, 어느 순간 **"더는 그대로 있을 수 없겠다"**는 균열이 생긴다. 라캉의 말로 하면,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언어·관습·제도 등 '상징계'(Symbolic) 곳곳에서 틈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적 규범은 완벽하지 않기에, 거기서 느껴지는 **결여(lack)**가 결국 우리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도록 만든다.

나에게는 그것이 무등산 등반이었다. 영화 《와일드》 속 주인공 셰릴이 큰 상실을 겪은 후, 무작정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에 뛰어들어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듯, 나도 산길을 걸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었다.


코로나 시국, 한적한 곳을 찾아서


그러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절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더해져, 결국 무등산 규봉암으로 향하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본 조용헌 선생의 암자 기행 영상을 보고 "언젠가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한몫했다. "붐비는 곳보다 한적한 암자가 기운(氣運)을 느끼기엔 오히려 제격이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도 있었다.


라캉의 삼계: 상상·상징·실재를 오가는 등반


무등산의 상상계적 위로


무등산은 광주 도심을 푸근히 둘러싸듯 자리하여, 흔히 **"광주의 어머니 산"**이라 불린다. 이는 라캉의 상상계 개념과도 연결된다.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포근하다", "정겹다" 같은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해발 900m 부근까지 올라가 보면, 숨이 차고 땀이 흐를 만큼 결코 만만치 않은 구간이 이어진다. 이는 실재(Real)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어머니 품"이라는 포근한 이미지를 아무리 덧씌워도, 자연 앞에서 내가 가진 체력과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장불재에서 느낀 안도감


이날 내 1차 목표는 장불재였다. 토끼등 코스를 거쳐 장불재에 올랐을 때, 영화 속 셰릴이 고갯길 너머 펼쳐진 광활한 평원을 마주했을 때가 떠올랐다.

갈대숲으로 유명한 이곳은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지난날 고민들을 쓸어내는 듯 느껴진다.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규봉암으로 가는 길: 실재의 위압감


장불재를 지나 규봉암으로 향하는 길은 무등산 등산객들 사이에서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풍광이 바뀐다.

갈대숲의 낭만을 뒤로하고 능선을 타고 오르면, 주상절리가 솟은 웅장한 암벽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실재(Real)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다.

몇 차례 이 코스를 오르며 규봉암이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직감했다. 조용헌 선생의 방송에서 **"기도발이 세고 영험하다"**는 말도 들었고, "여기라면 코로나 시국에 시끄러운 도심을 벗어나 제대로 기(氣)를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있었다.


정인 스님과의 운명적 만남


규봉암은 주상절리 기둥 틈에 자리한 암자로, 무등산에서도 손꼽히는 영험한 곳이다. 처음에는 풍광을 즐기러 왔지만, 여러 번 찾다 보니 규봉암의 주인장 정인(正人) 스님을 직접 뵙는 기회가 생겔다.

대웅전 마당에서 마주친 스님께 **"조용헌 선생 자주 오십니까?"**라고 먼저 묻자, **"요즘 바쁘신지 몇 년째 못 뵀네"**라며 웃으셨다.


6시간의 깊은 대화


스님이 신도들을 맞이하는 다도방으로 들어갔는데, 겉에서 볼 때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분위기에 경건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6시간이 훌쩍 지났다. 현대미술, 앤디 워홀, 양자물리학, 심지어 사주명리학까지 줄줄이 이어졌다. 해발 900m 산중 암자에서 이런 지식이 어떻게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조용헌 선생의 소스(源頭)가 여기인 걸까?" 문득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신통력의 실제 체험: "혹중혹부중"의 순간들


첫 번째 충격: "어머니 병원에 계시죠?"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가벼운 인사 정도였다. 그런데 스님이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어머니 걱정이 많으시군요. 지금 병원에 계시죠?"

나는 깜짝 놀랐다. 실제로 어머니가 그 시기에 건강검진차 병원에 입원해 계셨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때로는 보이는 것이 있어요. 하지만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죠."


두 번째 충격: 휴대폰이 울리기 전에


다도방에서 6시간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눴다. 갑자기 스님이 말했다.

"아, 방금 누군가 당신을 찾고 있네요. 휴대폰을 확인해보세요."

정말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산 아래에서 동료가 **"언제 내려오냐"**며 전화를 건 것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산에서는 때로 소리가 멀리서도 들려와요. 하지만 이것도 집착하면 안 되는 것이죠."


세 번째 충격: 마음을 들여다보다


가장 놀라운 건 이거였다. 내가 최근 직장에서의 고민을 털어놓으려던 찰나, 스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상사와의 관계 때문에 힘드시죠? 그 분은 겉으로는 까칠해 보이지만 사실 당신을 아끼고 계시는 분이에요. 다만 표현이 서툴 뿐이죠."

완전히 적중이었다. 그동안 내가 오해하고 있던 부분을 정확히 짚어준 것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파도와 같아서, 때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 파도와 겹치기도 해요. 하지만 이것에 의존하면 진정한 깨달음에서 멀어지죠."


불교의 육신통: 신통력의 진실


불교에서 말하는 **육신통(六神通)**은 이렇다:

신족통(神足通): 어디든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능력


천안통(天眼通): 투시력, 멀리 떨어진 것을 보는 능력


천이통(天耳通): 멀리서 소리를 듣는 능력


타심통(他心通):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능력


숙명통(宿命通): 전생을 아는 능력


누진통(漏盡通): 번뇌에서 해탈하는 능력

그런데 이런 신통력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인연이 맞아야만 랜덤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적 증명이 어렵고, 불교에서도 오히려 수행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본다는 것이다.


스님의 가르침: "꽃이 목적지가 아니듯이"


모든 신기한 체험을 마친 후, 스님이 핵심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이런 능력들은 수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마치 길을 걷다가 꽃을 보는 것과 같아요. 꽃이 목적지가 아니듯, 신통력도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수행은 이런 현상들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존재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자비심을 기르는 것이죠."

이 말씀이 정곡을 찔렀다. 나는 신통력 자체에 호기심을 갖고 왔는데, 정작 중요한 건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관세음보살을 잊지 않는 내공


특히, 이후 몇 차례 전화 통화에서도 스님은 끝맺을 때마다 늘 **"관세음보살"**을 빠뜨리지 않았다.

**"스님, 대화 중간중간 항상 '관세음보살'을 놓치지 않으시네요."**라고 여쭈었더니,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규봉암에서 대화할 때, 관세음보살을 잊은 적이 없다네."**라고 답하셨다.

이 대목에서 **"정인 스님은 대단한 내공이 있는 수행자이자, 분명한 고승(高僧)"**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무등산의 호랑이 산신처럼 범접하기 어우면서도, 사람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아우라가 있었다.


까마귀가 전한 메시지?


그날 장불재 벤치에서 쉬고 있을 때, 커다란 바위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가 우리가 길을 나서자 사라졌다. 하산길에 다시 그 바위로 돌아오니 똑같은 까마귀가 앉아 있었다.

"이건 그냥 우연이 아닐지도 몰라."

정인 스님의 독특한 에너지와, 높은 산에서 까마귀가 상징하는 신성함을 떠올리니, 영화 《와일드》 속 셰릴이 자연 속에서 '신호'를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깨달은 것: 진짜 힘은 따로 있다


고승들이 일반적으로 신통을 수행의 부산물로만 볼 뿐, 그것이 중심이 될 수는 없다고 보는 이유를 알겠더라. 고려 시대 지눌 스님도 "수행자가 신통을 얻기를 바라면서 도를 닦게 되면 필경 삿된 길로 빠지게 된다"고 경계했다고 한다.

신통력보다 더 중요한 건 자비심과 지혜였다. 정인 스님이 보여준 놀라운 능력들도 결국은 다른 이의 고통을 헤아리고 도움을 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산: 내 안의 '와일드'를 만나다


하산길에 들어서니, 비로소 무등산이 왜 "어머니 품" 같다는 말을 듣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힘들게 올라오는 길은 거칠고 날것의 실재를 보여주지만, 결국은 포근한 안도감으로 감싸준다.

영화 《와일드》의 셰릴이 **"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강인해졌다"**고 고백하듯, 나도 산을 내려오며 배낭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라캉에 따르면 결여와 욕망은 우리 존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계기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쓰이고, 또 다른 형태로 발현될 수 있다.


마무리: 작은 결심이 만든 '새로운 길'


무등산에서 내려오면서 작은 변화를 느꼈다. 큰 준비나 완벽한 조건이 아니라, 작은 결심으로 내딛은 한 발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컨테이너 박스 하나로 시작해 거친 절벽에 도량을 세운 스님의 이야기에서 삶의 희망을 봤다. 신통력보다 더 신통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규봉암에서의 하루는 **"혹중혹부중"**의 묘미를 느끼게 해줬다. 신기한 현상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지만, 더 값진 건 진정한 수행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거창한 준비나 완벽한 여건이 아니라, **"이제는 움직여봐야겠다"**라는 작은 결심이었다. 그 한 걸음이, 결여를 단순한 공허함이 아닌 새로운 욕망의 에너지로 바꿔준다.

기회가 되면 마음을 열고 산을 찾아보길 권한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경험 자체에 매달리지 말고, 그 너머에 있는 진짜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자.

결국 《와일드》처럼, 우리의 삶에도 또 다른 **'와일드'**가 찾아올 수 있다. 그때 가장 중요한 건, 주저하지 말고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다. 그렇게 작게나마 실천하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무등산과 정인 스님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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