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이렇게, 행동은 저렇게: 제 1 탄

by 홍종민



말은 이렇게, 행동은 저렇게: 라캉이 말하는 언행불일치와 분열된 주체 이야기


� 들어가며: 우리의 말과 행동은 왜 자꾸 어긋날까?


여러분,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나는 시끄러운 곳이 정말 싫어" 라고 말하면서도, 주말이 되면 클럽이나 파티에 가서 신나게 시간을 보낸 적? �


"이번에는 반드시 다이어트를 성공하겠다" 고 선언해놓고, 밤마다 야식 유혹에 시달리는 모습? �


"내 일이 너무 힘들어서 더는 못 견디겠어" 라고 호소하면서도, 정작 새로운 자격증·외국어·대학원 공부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경우? �


� 이 모든 게 그냥 '의지 부족'일까?


이런 상황을 흔히 언행불일치라고 부르죠. 우리는 이런 모습에서 약간의 '코미디'나 '모순'을 느끼며 "왜 저럴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돼요.


단순히 "거짓말"이나 "의지 부족"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당사자들 역시 스스로도 진심이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


� 라캉이 제시하는 새로운 관점


정신분석—특히 **라캉(Lacan)**의 관점으로 보면, 인간이 이렇게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하는 것은:


우연도 아니고 ❌


간단히 도덕적 비난으로 해결할 문제도 아니에요 ❌


오히려 라캉은 말해요:


"인간은 원래 분열된 주체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 자기 욕망을 표현하려 할 때, 무의식적 동기는 종종 다른 경로로 드러난다."


오늘은 이 흥미로운 이론을 함께 살펴보며, 우리의 언행불일치가 사실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알아보려고 해요! ✨


� 분열된 주체를 설명하는 두 가지 관점


라캉 정신분석에서 인간의 '분열된 주체' 개념은 크게 두 맥락으로 설명돼요.


� 1. 삼계(三界)라는 틀


**상상계(Imaginaire), 상징계(Symbolique), 실재계(Réel)**를 통해:



인간은 이미 거울 단계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상상적으로 파악하고 �️


언어(상징계) 속에서 자기 욕망을 조직하며 �


동시에 완전히 상징화되지 않는 실재의 균열을 마주하게 돼요 ⚡



이로 인해 주체는 통일되지 않고 늘 분열된 상태에 놓인다고 해요!


� 2. 언어적 구조: 기표와 기의의 미끄러짐


라캉은 이렇게 말해요: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언어가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로 구성되는데:


문제는:


기표와 기의가 딱딱 매칭되지 않아요 ❌


"기의가 기표 아래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



결과:

인간은 언어로 세계와 자신을 표현해 보려 해도


의미가 고정되지 않거나 끝없이 지연되면서


스스로도 완전히 "자기 자신을 말"할 수 없어요 �



� 두 관점의 연결점


결국 이 두 관점은:


서로 다른 설명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결론—인간은 분열된 주체라는 사실을 향해 가요


우리는 결코 완전히 통합된 '나'가 될 수 없다는 거죠! �



� 삼계: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가 만드는 분열


� 상상계(Imaginaire): 거울 속 나는 진짜 나일까?


거울 단계에서의 착각:


아기는 자신의 거울 속 이미지를 보고 "저것이 나"라고 동일시해요 ��


하지만 사실 거울 속 '나'는 내가 아니에요!


이때부터 인간은 상상적 동일시에 기초해, **"나는 온전한 하나"라는 착각(상상)**을 형성해요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를 어떤 이미지로 상상하며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여요 �


예: "나는 조용하고 우아한 사람"이라고 믿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습 �


이 상상계는 스스로를 통일적이고 매끄러운 존재로 보이게 하나, 실제로는 균열을 감춰요



� 상징계(Symbolique): 언어의 질서 속에서


상징계의 구성:


언어, 법, 규범, 사회적 구조 등으로 구성돼요 �


인간은 이 언어의 질서(기표의 질서) 속에서 "말"을 배우고


욕망을 표현하려고 시도해요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라캉은 언어가 기표들 간의 연쇄로 이루어지며


어느 한 점에서 완전한 기의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봐요 ("기의가 미끄러진다") �


결과적으로, 말로 자신을 설명하려 해도 무언가가 항상 남거나 과잉으로 생겨요 ⚡



�️ 실재계(Réel): 말로 담을 수 없는 것


실재계란:


상징화할 수 없는 어떤 근본적 균열이나 결핍 �


혹은 트라우마적 지점으로 설명돼요


쉽게 말하자면, 언어로 도저히 포착되지 않는 '찢어진 틈' 같은 것! �️



중요한 포인트:


상상계와 상징계가 아무리 견고해 보이더라도


실재계에서 비롯되는 충격이나 결핍은 인간을 분열된 존재로 만들어요



� 삼계에서 주체가 분열되는 과정


주체의 분열이란:



내가 상상하는 "온전한 나" �


언어로 표현되는 "규범적·사회적 나" �


그리고 결코 언어로 지워지지 않는 "결핍의 실재" �️


이 셋이 서로 충돌하면서 생기는 결과예요! 인간은 이 셋을 완벽히 합치시킬 수 없기에, 늘 갈라지고 균열된 상태로 살아가요



� 기표와 기의: "기의가 기표 아래서 미끄러진다"는 말의 의미


� 기표 vs. 기의


기표(signifiant):


한 언어 표현의 소리·문자·형식적 측면 �


예: '나무'라는 단어의 음성이나 글자 자체



기의(signifié):


그 기표가 지시하는 개념이나 의미 �


예: 우리가 떠올리는 "뿌리를 뻗고 줄기와 잎이 있는 식물" 같은 이미지나 개념



� 기의의 미끄러짐


라캉은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언어학을 재해석해:


기표와 기의가 1:1로 고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해요 ❌


전통적으로는 "기표 ↔ 기의"라는 대응을 상정했으나


실제로는 기의가 기표에 딱 붙지 않고 계속 미끄러진다고 봐요! �‍♀️



예시: '사랑'이라는 기표


어떤 이는 "로맨틱 감정"을 떠올리고


또 다른 이는 "헌신"을


혹은 "집착"을 떠올릴 수 있어요


거기에 하나의 '정답'이 고정되지 않죠!


결과: 의미(기의)는 늘 유동적이고, 어느 하나의 기표 아래에서 확실히 붙잡히지 않아요 �


� 기표 사슬의 연쇄와 주체의 분열


기표 사슬의 특징:


기표 하나로 끝나지 않아요 ❌


기표가 또 다른 기표를 불러오고 �


그 기표는 또 다른 기표를 불러오면서


의미가 연쇄적으로 생성·이동해요 ⚡



주체의 딜레마:


이 과정에서 주체는 **"내가 진짜 하려는 말"**을 찾으려 해도


결국은 기표 사슬 속에서 완전히 포착되지 못해요 �‍�


욕망도 마찬가지로 기표를 좇아 끝없이 움직여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언어로 딱 고정해서 표현하기 어려워요!



이렇게 언어(상징계)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정체성을 하나로 응축하지 못하고 분열된 상태로 남아요


� 두 관점의 통합: 어떻게 연결될까?


� 삼계의 역할


삼계에서:


상상계는 자아의 통일감을 제공하지만 허상에 가까워요 �


상징계는 언어의 질서이자, 기표들이 얽힌 체계예요 �


실재계는 결코 상징화되지 않는 "잔여물"이자 결핍이에요 �️



이 셋이 충돌·맞물리면서 주체는 분열돼요!


� 기표-기의 미끄러짐의 효과


상징계의 핵심인 언어는:


기표 사슬로 구성되고


기의가 그 아래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하나로 고정되지 않아요 �‍♀️



결과:


인간은 언어로 욕망을 표현하려 해도


항상 실패나 누락이 발생해요 �



� 통합된 이해


즉, 삼계의 틀로 볼 때:


우리가 살아가는 주 무대인 상징계에서 이미 기의가 고정되지 않고 미끄려요 �


상상계는 마치 나를 하나로 묶어주는 듯하지만 결국 허상이고 �


실재계는 말로 포착 불가능한 구멍이에요 �️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 보아도, 인간은 결코 **"완전한 자기 동일성"**에 도달하기 어려워요. 이것이 바로 **"분열된 주체"**가 되는 원인이에요! �


�‍♀️ 언행불일치: 분열된 주체의 자연스러운 결과


�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프로이트가 발견한 것들:



말실수 �


꿈 �


증상 �


이런 것들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억압한 것이 다른 형태로 '되돌아오는' 사례예요!


라캉은 이것을 이렇게 요약해요: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어떻게 작동하나요?



의식적으로는 "이건 말해야지" 혹은 "이건 말하지 말아야지"라고 하지만 �


기표 사슬이 억압된 기의를 완전히 지워내지 못하기에 �


어느 순간 말실수나 행동(증상)으로 튀어나와요! ⚡



� 언행불일치는 말실수나 증상과 닮았다


구체적 사례들:


� "힘들다"면서 계속 몰두하는 사람



표면적 말: "나는 요즘 너무 힘들고 지쳤다. 쉬고 싶다" �


실제 행동: 새로운 공부(예: 독일어), 대학원 진학, 주말 세미나 참석 등 더 바쁘게 일정 채우기 �


분석: 의식 차원에서는 힘듦을 호소하지만, 무의식 차원에서는 "멈추면 내 가치가 사라진다"거나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작동하고 있을 수 있어요 �



� "시끄러운 건 싫다"면서 주말마다 클럽·파티를 즐기는 사람


표면적 말: "나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좋아. 떠들썩한 곳은 질색이다" �‍♀️


실제 행동: SNS를 보면 주말마다 밤늦게까지 파티·클럽에서 신나게 춤추고 노는 모습 �


분석: 의식 차원에서는 "조용한 사람이 되고 싶다(혹은 그렇게 보여야 한다)"라고 믿지만, 무의식 차원에서는 "흥을 발산하고, 사람들과 에너지를 공유하며 쾌락을 느끼고 싶다"는 욕망이 살아 있어요 �



� "이제 정말 다이어트한다"면서 야식 폭식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



표면적 말: "이번엔 반드시 살을 빼야 해. 더 이상 야식은 안 돼" �


실제 행동: 밤마다 야식·치킨·피자 유혹에 흔들리고, 결국 폭식 후 자책 �


분석: 의식 차원에서는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을 말하지만, 무의식 차원에서는 음식이 주는 위안·쾌락, 혹은 다른 정서적 보상 욕망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



� 새로운 관점: 단순한 '실패'가 아니다


이러한 언행불일치 상황은:


단순히 "거짓말"이나 "의지 부족"으로 일축할 수 없어요 ❌


라캉적 관점에서는, 말(언어)로 표현되는 욕망과 무의식 차원의 욕망이 일치하지 않아서 나타나는 ⚡


분열된 주체의 자연스러운 징후라고 봐요! �


이는 말실수나 특정 증상과 유사한 구조를 지녀요. 말실수나 증상도, 억압된 욕망이나 기억이 우회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언행불일치와 닮아 있어요! �


� 빈 말과 꽉 찬 말: 왜 언행이 엇갈리는 말만 계속하게 될까?


여기에서 라캉의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이 등장해요! 바로 **빈 말(parole vide)**과 **꽉 찬 말(parole pleine)**이에요.


� 빈 말(parole vide): 겉돌기만 하는 말들


빈 말의 특징:


무의식을 직접 건드리지 못하고 �‍♀️


주체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말이에요 �


예시들:


"힘들다"는 입버릇



"힘들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하더라도


실제로 "왜 내가 이렇게까지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나?" 하는 무의식적 이유를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 말은 **'빈 말'**에 머물러요


(예: 인정 욕구, 불안 등을 인식하지 못함)



다이어트 선언이나 "시끄러운 건 싫다"는 발언도 마찬가지:



말 자체가 얕은 수준에 머물러 �‍♀️


무의식적 욕망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행동은 말과 다르게 흘러가게 돼요 �



� 꽉 찬 말(parole pleine): 진실을 드러내는 말들


꽉 찬 말의 특징:


말하는 순간 발화자(주체)의 무의식적 진실을 정면으로 드러내고 �


그 진실을 인식함으로써 주체가 변화할 가능성을 여는 말이에요 ✨



예시들:


진정한 고백의 순간


"사실 나는 멈춰 버리면 내가 가치 없게 느껴질까 봐 쉬지 못해. 그래서 '힘들다'고 하면서도 더 많은 공부를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어"



이런 고백이 나온다면:


이 말은 "힘들다"는 문장을 훨씬 넘어서서 �


주체의 무의식적 동인을 드러내요


즉, 꽉 찬 말이 되어, 이전의 언행불일치를 재해석할 계기가 되죠!



자기 인식의 순간



"시끄러운 걸 싫어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과 흥을 함께 즐기며 내 억압된 에너지를 발산하는 걸 정말 좋아했어"



이런 인식도 마찬가지예요:



이 고백 순간, 과거의 빈 말("시끄러운 건 싫어")을 극복하며 �


주체가 새로운 자기이해를 얻게 돼요 �



� 언행불일치의 해소 혹은 재인식


빈 말에 머무는 한:


언행불일치는 반복돼요 �


표면적 선언(A)과 실제 행동(B) 간의 간극은 계속 벌어져요 �


꽉 찬 말로 전환되는 순간:


주체는 "아, 내가 (의식적으로) 말하던 것과 (무의식적으로) 원하던 것이 달랐구나"를 자각하게 돼요 �


이때 주체는 행동을 조정하거나 �


혹은 적어도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깨닫고 스스로의 모순을 좀 더 주도적으로 다룰 수 있게 돼요 �



� 말실수, 증상, 언행불일치: 모두 억압된 무의식의 귀환


라캉과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억압된 욕망이나 기억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되돌아와요:


� 다양한 귀환의 형태들


말실수


"난 결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라고 하려던 순간


"사랑… 아니, 싫어해"라는 식으로 말을 잘못 내뱉는 경우


증상


알 수 없는 신체적 통증


혹은 반복 강박 행동이 특정 억압된 욕망을 우회적으로 표현


언행불일치


표면적으로 말하는 내용과 실제 행동이 달라


무의식적 욕망이 다른 경로(행동)로 표현되는 현상



� 공통된 메커니즘


즉, 빈 말로는 가려진 무의식을 꽉 찬 말이 제대로 붙잡지 않는다면:


행동이나 증상 등 다른 방식으로 그 억압된 부분이 표면화돼요 ⚡


이 점에서 언행불일치가 말실수나 증상과 닮았다는 라캉적 해석이 가능해요! �



� 요약: 언행불일치, 빈 말과 꽉 찬 말, 그리고 분열된 주체


� 핵심 포인트들


1. 구조적 원인 �️


언행불일치는 기표(언어)와 기의(의미)가 완벽히 합치되지 않는 라캉적 구조에서 기인해요


인간은 분열된 주체이므로, 말(의식)로는 A를 외치면서 행동(무의식)은 B를 지향하기 쉬워요



2. 빈 말의 함정


빈 말(parole vide) 상태라면, '힘들다'든, '다이어트한다'든, '시끄러운 곳은 싫다'든


언어적 선언이 무의식적 욕망과 접속하지 못해


행동이 계속 달라지는 언행불일치가 반복돼요 �



3. 꽉 찬 말의 힘


**꽉 찬 말(parole pleine)**로 전환될 때


주체는 왜 자신이 그런 말을 해왔는지, 왜 행동이 어긋났는지를 무의식의 차원에서 자각하고


언행불일치를 재배치하거나 통합할 실마리를 얻어요 ✨



4. 무의식의 귀환


이러한 언행불일치는 말실수나 증상처럼


억압된 무의식이 다른 통로로 발화하는 장면에 가까워요



� 새로운 관점으로 나 자신 바라보기


결국, 언행불일치는:


분열된 주체가 "내가 말로 욕망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구조" 안에 살기 때문에 발생해요


이 모순을 단순히 비난하기보다는 �‍♀️


**"무의식이 지금 무엇을 말해주려 하는가?"**로 해석해 볼 필요가 있어요 �


요컨대, 라캉의 "빈 말 vs. 꽉 찬 말" 개념은:


언행불일치가 단지 '말과 행동의 모순'을 넘어


무의식적 진실을 회피하는 말과 그 진실을 통찰하는 말 사이의 차이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보여줘요


그리고 이것은 곧, 말실수나 증상처럼 무의식의 귀환과 다름없는 현상으로 볼 수 있어요



� 결론: 분열된 주체로서 언행불일치를 바라보는 새로운 법


� 라캉의 명확한 메시지


라캉에게 있어, 인간은 원래 분열되어 있다는 명제는 명확해요:


삼계를 통해 보든 �


기표-기의의 미끄러짐을 통해 보든 �


우리는 상징계 안에서 욕망을 표현하면서도 결코 그것을 완전히 붙들지 못해요


거기에 더해:


상상계가 주는 허상적 통일감 �


실재계가 초래하는 말로 담기지 않는 결핍 �️


이 모든 것이 맞물려, 주체는 끊임없는 균열 상태에 놓여요


� 언행불일치의 새로운 의미


언행불일치는 바로 이 균열에서 생겨나요:


말(상징적 표현)로는 A를 표방하지만 �


무의식적 욕망은 다른 기표 사슬(행동, 증상)을 통해 B를 실행하게 돼요 �‍♀️


이때 A와 B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모순이나 갈등을:


의지 박약이나 거짓말로만 보아선 안 돼요 ❌


오히려, 그것은 기표 아래서 미끄러지는 기의가 완전히 억압되지 못하고 드러나는 흔적 �


혹은 실재계에서 뻗쳐 나오는 균열일 가능성이 높아요 ⚡


� 새로운 기회로서의 언행불일치


결국, 분열된 주체로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언행불일치는:


하나의 모순적 사건이 아니라 ❌


**"왜 내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를 통해 무의식적 욕망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돼요 ✅


자각의 순간:


"나는 이런 이미지를 말로 주장하지만, 행동에서는 또 다른 소망을 드러내고 있구나"


이런 자각이 생기면,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거예요


� 라캉의 통찰


라캉이 말한 핵심: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며, 억압된 것은 돌아온다"


이 통찰도 바로 여기에 맞닿아 있어요!


� 마지막 메시지


"기의가 기표 아래에서 끝없이 미끄러지는 한,


주체는 상상적 통일성을 결코 완벽히 얻지 못하고,


상징화되지 않는 실재 앞에서 분열된 상태를 유지한다."



이 명제가 바로:


인간이 언행불일치를 피하기 어려운 이유이자 �


동시에 자기 욕망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라캉 이론의 핵심이에요 �


우리는 모두 분열된 주체예요. 그리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 조건이에요. 언행불일치를 통해 우리는 오히려 자신의 진정한 욕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거죠! �✨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 을 통해 알림을 받아 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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