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왜 인간을 바꾸지 못할까

by 닌자

요즘 영화 「단종」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단종의 삶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비극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서 쫓겨나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단종 개인의 비극만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역사 전체를 보는 시선일까 하는 의문이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왕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은 이미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었다. 왕권이 안정되지 않은 시대에는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숙청이 반복되었다.


이방원은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왕비 원경왕후의 친정인 민 씨 가문의 외척 세력을 제거했다. 이어 아들인세종의 왕비인 소헌왕후의 집안인 심 씨 가문도 무사하지 못했다. 이는 왕권을 흔들 수 있는 외척 세력을 미리 약화시키려는 정치적 판단의 결과였다.


세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이 되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많은 사람들을 제거했다. 단종을 폐위시키고 복위를 시도했던 사육신까지 처형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세조를 떠올릴 때마다 단종의 비극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가 생긴다. 세조는 불심이 깊었다. 불경 간행을 후원했고 사찰을 중창하는 등 불교에 깊이 귀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훌륭한 아버지까지 둔 인물이다.


그런데 불교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줄이고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가르침 아닌가.


그렇다면 왜 세조는 불법과는 반대되는 삶을 살았을까.

이 질문을 하다 보면 결국 종교와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좋은 가르침이 있다고 해서 인간이 반드시 그 가르침대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를 보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항상 선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종교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좋은 가르침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하지만 그 가르침을 따르며 살아가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다.

종교가 문제라기보다 결국 인간의 욕심과 권력이 문제였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종교의 이름보다 삶의 태도를 더 생각하게 된다.

어떤 종교를 믿느냐보다,

얼마나 욕심을 줄이고 남을 해치지 않으며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어쩌면 모든 가르침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착하게 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종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정말로 그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욕심을 줄이고, 남을 돕고, 조용히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종교가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 덕분에 다시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단종의 이야기는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서 쫓겨나고 결국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의 삶을 떠올리면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냉혹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단종의 이야기를 슬프게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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