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들은 일련의 작은 일들이 함께 모여 이루어진다.
<Bathers at Asnieres, 1884>
- Georges Pierre Seurat
사람들은 대부분 관성에 따라 일을 하려 한다. 그간의 경험과 지식이 있으니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기 때문이다. 새롭고 혁신적인 방식이 머리에 떠오르더라도 이를 실행에 옮기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혹시나 잘못되면 성과도 없고 실패의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하니까.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괴짜들은 늘 출현했고 이들이 해당 분야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 갔다.
2018년 런던에 갔을 때 내서널 갤러리에서 아주 특이한 그림을 봤다.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의 <Bathers at Asnieres>란 작품이었는데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했던 모자이크처럼 수많은 점들을 찍어서 그린 그림이었다. 이렇게 그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매우 참신했다.
강변에서 사람들이 놀고 있다. 물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있고 강가에 앉거나 누워 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참 특이한 게, 전혀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보통 야외에서 사람들이 모여 노는 장면은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하고 활기찬 느낌이어야 하는데 이 작품 속 사람들은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였다. 모든 시간이 멈추고 미세한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고요가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비슷한 기법의 그림을 본 기억이 났다. 하도 특이해서 사진을 찍어놨다. 이 작품도 조르주 쇠라 작품이고 제목은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이다. 알고 보니 대형 사이즈(207.5*308.1cm)의 원본은 시카고에 있고, 내가 메트로폴리탄에서 본 작품은 원본을 그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그린 습작이었다. 이 그림에도 사람들이 공원에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자세와 표정이 어색하다. 이 섬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오호, 이 분 스타일이 이렇구나.
이렇게 그리는 방식을 점묘법(Pointillism)이라고 한단다. 보통은 팔레트에서 색을 섞어서 사용하는데 반해, 점묘법은 작은 원색의 점을 무수히 찍어서 보는 사람의 눈에서 색이 섞이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기법이다. 위 작품들에서 시간이 정지되고 정적인 느낌을 받는 건 아마도 점은 선과 달리 운동성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은 화가가 무려 2년 동안 점을 찍어 완성했다고 한다. 이런 혁신적인 방법을 생각해 낸 것도 대단한데 2년씩이나 점을 찍은 인내와 끈기가 존경스럽다. 그림 하나당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면 이 분이 평생 그린 작품은 몇 점 안되겠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다른 점묘법 작품들도 느낌이 비슷하다. 인물들의 모든 동작과 시간이 정지된 것 같다. 한없는 고요함이 전체 분위기를 지배한다. 왼쪽 그림은 노부부가 식사를 하는 장면인데 감정도 없고 활기도 없다. 다들 목석같아 보인다. 오른쪽 그림도 어느 여름날 과수원에 '있는 집' 아낙들이 소풍을 나온 것 같은데 즐거운 대화 소리는 커녕 인물들 간에 침묵이 흐르는 것 같다.
내가 본 몇몇 점묘법 작품들에서 위에 언급한 시간의 정지나 감정의 절제 같은 게 느껴지긴 하는데 실제로 이런 경향성이 있는 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선을 없애고 점만 찍어서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창의적인 기법은 놀랍기만 하다.
p.s.) 작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점묘법은 소소한 보람과 만족들이 쌓여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간다는 내 신조와 일치한다. 그래서 더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