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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Apr 08.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64

그래도 선거판이 훨씬 깨끗해졌다.

<An Election Entertainment, 1754-1755>

- William Hogarth


선거철이다. 각 당의 후보들이 다양한 방식의 선거운동을 통해 표를 달라고 호소(또는 애원)한다. 수년에 한 번 유권자가 대접받고 존중받는 시기이다.


작품 오리지날을 본 건 아니지만 책에서 봤던 선거 관련 그림이 떠올랐다. 18세기 영국화가 William Hogarth의 <The Humours of an Election Series>다. 4개 그림 연작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영국 옥스포드셔(Oxfordshire)에서 휘그당(Whig)과 토리당(Tory)이 격돌한 실제 선거를 기반으로 당시 선거판의 부정부패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이 선거 이전 40년간은 옥스포드셔가 토리당의 독무대였는데 모처럼 휘그당에서 강력하게 도전해 옴으로써 당시 영국 전역에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연작 그림 네 개 가운데 당과 후보자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표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장면을 담은 첫번째와 두번째 그림을 소개한다.


<An Election Entertainment>. Delphi Classics <Hogarth>에서 다운로드.

휘그당(오렌지색 깃발이 휘그당 상징)에서 유권자들을 구워삶을 요량으로 잔치를 열었다. 60-70년대 우리나라의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를 떠올리면 된다.


왼쪽에 있는 두 사람(푸른 옷을 입은 젊은이 & 그 뒤에 있는 약간 나이든 사람)이 휘그당 후보자들이다. 배 나온 한 중년부인이 젊은 후보의 볼에 입을 맞추는 것 같다. 나이 많은 후보자에게도 주정뱅이 두 명이 달라붙어 있다. 한 명은 귀를 깨물고(키스하고?) 있고, 머리에 꽃을 꽂고 빨간옷 입은 다른 한 명은 팔을 만지고 있다. 두 후보 모두 표를 위해서 신체까지 '제공'하는 봉변을 감수하고 있다. 요즘으로 치면 아무리 싫어도 유권자들이 원하면 억지로 악수하고 포옹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유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표를 받기 위해서.


테이블 맞은편 빨간옷을 반쯤 벗고 뒤로 쓰러지려 하는 사람은 시장(Mayor)이고 굴을 많이 먹어서 기절한 것이라고 한다. 또 시장 옆에 바닥에 쓰러지는 사람은 선거관리위원인데 창문 밖에 있는 토리당(푸른 깃발) 사람들이 던진 벽돌에 맞은 것이라 한다. 선거를 공정하게 이끌어야 할 선관위원히 특정 정당의 향응에 참가했으니 벽돌 맞아도 싸다. 이렇게 Hogarth는 당시에 표를 구걸하기 위해 유권자들에게 '찐하게' 향응을 베푸는(심지어 선관위원에게도) 부패한 상황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Canvassing for Votes>. Delphi Classics <Hogarth>에서 다운로드.

저 뒤쪽에 너른 들판이 보이는 걸로 보아 배경이 시골이다. 도시나 시골이나 선거판이 혼탁한 건 마찬가지라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여관이면서 토리당 임시 선거본부라고 한다. 지나가는 젊은 농부를 사이에 두고 양당의 선거운동원이 자기네 후보를 홍보하고 있다. 양측 모두 이 유권자에게 돈인지 상품권(?)인지 뭔가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에는 선거판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다고 하니, 18세기에는 각종 금품과 향응 제공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설명에 따르면, 중간쯤에 약간 높이 앉아 있는 사람이 후보자라고 한다. 후보자는 앞에 앉아 있는 상인에게서 매표행위용으로 물건을 구입해서 건물 발코니에 있는 여인들에게 주려는 중이다. 후보자, 당 관계자, 유권자 할 것없이 죄다 썪어있는 당시 선거판을 그리고 있다.


William Hogarth는 선거과정의 부정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한 언론의 역할을 한 셈이다. 이 언론보도로 인해 이후 선거판이 조금이나마 깨끗해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18세기 민도(民度)에선 향응제공과 금품수수가 어찌보면 당연했을텐데 이걸 문제삼을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대단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요즘은 우리나라 선거판에서 Hogarth 그림에 나오는 부정부패 사라졌으니 말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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