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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Apr 13.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65

어렵지만 일단 예쁜 건 인정!

<Victory Boogie Woogie, 1942-1944>

- Piet Mondrian


청년 시절 가요를 즐겨 들었다. 당시 내게 가요란 감미로운 목소리와 심금을 울리는 가사로 영혼을 정화시켜 주는 멜로디를 의미했다. 이문세-변진섭-신승훈 등이 진정한 가수였다. 그러다가 1992년이었나, 대중가요에 대한 기존 관념을 파괴하면서 등장한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청년 셋이 나왔는데 복장도 춤도 기괴했다. 멜로디 없이 흥얼거리기만 하는 랩이라는 걸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도무지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이후 한동안 가요 프로그램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지금은 이런 곡들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좋은 지는 모르겠다.


미술작품도 비슷하다. 생초보 아저씨로서 내가 미술작품에 감흥을 느끼는 건 후기 인상주의까지다. 그 이후 현대미술의 영역부터는 어렵기만 하다. 책을 읽고 어느 정도는 머리로 이해하기는 해도 직관적으로 감동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디자인이 예뻐서 박수를 치는 사람은 있다. 바로 피터 몬드리안이다.


헤이그 시립미술관 전경. 구글 다운로드.

헤이그 시립미술관에는 몬드리안의 작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세계에서 몬드리안 작품이 가장 많다고 함). 네덜란드에 살면서 국립미술관과 고흐 미술관은 여러 번 가봤어도 여기는 딱 한 번 가봤다. 몬드리안은 영 끌리진 않아서. 그래도 매우 유명한 분이니 한 번 뵙기는 해야할 거 같아서 한 번은 다녀왔다. 


(좌) Oostzijdse Mill in Moonlight(1907), (우) Mill in Sunlight(1908).

그래도 초창기에는 멀쩡한(?) 그림을 그리셨다. 고흐 작품처럼 분위기가 약간 우울해 보이기는 해도 이 정도면 크게 특이하진 않다. 다만 오른쪽 <Mill in Sunlight>부터는 전통적인 풍차의 모습을 조금씩 단순화시키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좌) The Grey Tree(1911), (우) Flowering Apple Tree(1912).

직장생활 초년기 때 보고서 관련해서 상사로부터 늘 듣던 말이 있었다. 핵심만 남기고 쓸데없는 수식어들 다 빼면 한 꼭지당 두 줄로 정리할 수 있다고. 몬드리안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나 보다. 몬드리안은 꽃을 그릴 때도 화병이나 기타 장식물들은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즉 본질이 아닌 곁가지들은 다 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무를 그릴 때도 형태를 완전히 단순화했다. <The Grey Tree>까지만 해도 나무임을 알 수 있겠지만 <Flowering Apple Tree>쯤 가면 전이과정을 보지 않았다면 이게 나무인지 바로 알기는 어렵다. 이렇게 몬드리안은 본질만 남을 때까지 줄이고 또 줄였다. 


(좌) Tableau 1(1921), (우) Composition with red, yellow, black, blue and grey.

몬드리안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격자무늬와 원색이다. Susie Hodge에 따르면, 그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직선과 원색만 남을 때까지 그림 속 곁가지들을 계속 줄이고 단순화했다고 한다. 몬드리안은 이 의미를 다음과 같이 멋있게 표현했다. '아름다움이 감정은 대상의 외형에 의해 항상 가려진다. 따라서 오브젝트는 그림에서 제거되어야 한다'고. 초기 작품에서는 우중충한 검은색 선이 면과 면을 분할하고 있는데 후기 작품에서는 밝은 노란색으로 대체된다.  


(좌) 몬드리안 스타일로 꾸민 아이의 방, (우) 몬드리안 스타일로 디자인한 원피스.

솔직히 몬드리안 작품에서 렘브란트나 베르메르 작품을 볼 때 느끼는 예술성까지는 잘 모르겠다. 대신 디자인으로는 예쁘기는 하다. 실제 미술관 안에는 몬드리안 작품 디자인을 차용한 아이의 방과 여성 원피스가 전시되어 있다. 그림만 볼 땐 잘 몰랐는데 이렇게 방을 꾸미고 나니 꽤 정갈하고 예쁘다. 원피스도 평소 입고 다니기엔 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특별한 날에 한 번 입으면 관심을 받을 것 같다. 


Victory Boogie Woogie(1942-1944).

<Victory Boogie Woogie>는 몬드리안의 마지막 작품이다. 2차 대전의 전운이 드리움연서 1940년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브로드웨이에서 재즈음악 부기우기를 알게 되고 맨하탄의 역동성에 매료됐다고 한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캔버스 모양이 마름모꼴이라는 게 특이하다. 어떤 설명에서는 이 그림이 맨하탄 밤거리의 반짝이는 빛과 북적이는 도시의 삶의 속도를 전한다고 한다(음..그런 거 같기도 하고..). 다만 확실한 건 이전 격자무늬 작품들보다 밝고 생동감이 있어 보이긴 한다. 


유명 영화제 대상작이라고 해서 보긴 봤는데 한참을 생각해도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예술영화를 본 느낌이다. 공부를 더 하고 시립미술관에 다시 한 번 가면 새로운 것들이 보일까. 


자료를 보니 집에서 1시간 거리인 Amersfoort라는 도시에 그 분 생가가 있다고 한다. 소풍 삼아 일단 거기부터 다녀오면 열정이 더 샘솟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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