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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May 23.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75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Brera Museum) 방문

주말에 밀라노에 다녀왔다. 몇달 전 갑자기 특가 항공권이 나왔길래 빛의 속도로 예약을 완료, 서울-부산 항공권 가격으로 갔다오는 행운을 얻었다. 가끔 이렇게 운이 따라주면 사는 맛이 배가된다. 밀라노에 가면 기본 관광지 외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두 군데 있었다. 바로 이태리 3대 미술관 중 하나라고 불리는 브레라 미술관(Brera Museum)과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Santa Maria della Grazie) 수도원이다. 폭탄세일 항공권 덕에 소원 풀었다.


브레라 미술관은 나폴레옹이 약탈했던 미술품을 관리하던 곳이었는데 나폴레옹이 물러간 후에도 작품은 그대로 남아 미술관에서 고스란히 소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은 두 개였다. 바로 Francesco Hayez의 <키스>와 Caravaggio의 <엠마오의 저녁 식사>다. 이 둘만 봐도 입장료 15유로 본전은 뽑는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Francesco Hayez <The Kiss>

브레라 미술관의 대표 선수라 그런지 출구 직전 마지막 방에 있다. 왠지 다급한 상황에서 남성이 잠깐 연인에게 찾아와 격정적인 키스를 하는 순간인 듯하다. 자세를 제대로 잡기 위해 남성은 왼발을 계단에 올리고 있고 키 차이 때문인지 여성의 몸이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다. 누가 이 장면을 훔쳐보고 있는지 저 뒤쪽에 작은 그림자가 하나 보이는 거 같다. 이 키스는 사랑스럽고 아름답다기 보다는 좀 애절해 보인다.


이 작품에는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이 작품이 그려진 1859년은 제2차 이태리 독립전쟁(프랑스와 사르디니아 왕국 vs. 오스트리아 제국)이 있던 때인데, 이 때 프랑스와 이태리 사르디니아 왕국의 동맹을 표현한 것이다. 남성의 초록색 외투와 빨간 바지는 이태리 국기를, 여성의 흰 셔츠와 푸른 원피스는 프랑스의 국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런 정치적 은유를 떠나, 이 작품은 '키스'를 주제로 한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힌다. 이태리에서도 19세기 작품 중 가장 복제품이 많이 제작되는 인기작이라 한다.


Caravaggio <Supper at Emmaus, 1606>.

누가복음 24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엠마오라는 동네에 가서 저녁을 먹을 때 제자 두 명 앞에서 자신이 예수임을 밝히는 장면이다. 중앙에 있는 예수님이 본인의 신분을 밝힐 때 우측 제자는 깜짝 놀랬는지 왼손으로 테이블을 꽉 잡고 벌떡 일어서려는 것 같다. 왼쪽 제자 역시 두 손을 벌리고 놀라워하고 있다. 배경은 어둡고 중앙에 빛이 비친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는 눈빛과 표정이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다. 딱 봐도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Caravaggio <Supper at Emmaus, 1605>. 런던 내셔널 갤러리.

카라바조는 <엠마오의 저녁식사>라는 제목으로 두 작품을 그렸다. 다른 하나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사실 런던에 있는 작품이 좀 더 유명하긴 하다. 내셔널 갤러리 소장작은 예수님 비주얼이 성자라기 보다는 통통한(?) 일반인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또 상차림이 푸짐하다는 점이 다르다. 등장인물도 한 명 적다. 전체적인 화풍은 비슷하다. 생초보 눈엔 둘 다 역대급인데 런던 소장품이 좀 더 유명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좌측 상단에서 시계방향으로 1.<영아학살> 2.<하갈과 이스마엘> 3.<목욕하는 밧세바> 4.<이삭의 희생>

이 두 작품 외에도 내가 전에 포스팅했던 반가운 주제의 작품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헤롯왕의 영아학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는 아브라함', '목욕하는 밧세바', '이삭의 희생' 등이다. '수태고지'와 '동방박사의 경배'는 어느 미술관이든 다 있어서 반갑다기 보단 그냥 아는 동네형 만나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종교개혁 이전 서양미술 주요 작품은 거의 신화와 성경 내용이고, 성경 스토리도 테마가 몇 가지로 분류되는 거 같다. 화가와 화풍이 달라도 같은 주제의 작품들이 웬만한 미술관에는 다 있다. 기독교가 일상과 생각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화가들이 성경 내용 외에는 달리 생각할 겨를이 없었나 보다. 생초보가 그간 선정한 주제가 완전 허튼 건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도감도 들었다.


그 외에도 라파엘로, 티치아노, 루벤스 등 우리가 잘 아는 분들의 작품들도 소장되어 있었다. 브레라 미술관에서 본 작품들로만 해도 브런치 스토리 몇 개는 더 쓸 수 있겠다. 보고 배우고 느낀 것에 비하면 입장료는 공짜나 다름없단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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