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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찬 May 15. 2024

생초보 아저씨의 미술관 도전기-74

'오늘도 무사히'.

<Goodbye Father>

- Bernard Johannes Blommers


예전에는 버스에 타면 운전석 옆에 한 소녀가 간절히 기도하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귀와 함께. 운전기사의 안전운전을 기원하는 그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의 안전은 온 가족의 생계가 걸려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따라서 가족들은 가장(주로 아빠)이 일 끝나고 무사히 귀가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네덜란드 헤이그 중심에서 서쪽으로 5km정도 가면 스헤브닝언(Scheveningen)이라는 바닷가가 나온다. 2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 여왕이 독일 침공을 피해 배를 타고 영국으로 피난갔던 그 바다다. 지금이야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1세기 전만 해도 가난에 찌든 어민들이 그냥저냥 삶을 영위했던 곳이다. 19세기 말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 중에는 이곳 어민들의 일상을 그린 그림들이 많다. 그 중 고기잡이 나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라는 가족들을 묘사한 19세기 버전 '오늘도 무사히' 몇 개를 소개한다.


Bernard Johannes Blommers <Goodbye Father>. 구글 다운로드.

고기잡으러 나가는 배를 향해 엄마와 두 아이가 손을 흔들고 있다. 19세기 말에는 지금보다 바다에서 조업하다가 사고나는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아빠에게 사고가 나면 이 가족들의 삶의 궤적도 크게 달라질 것이므로 출항하는 배 앞에서 모두 가장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아빠에게 힘껏 손짓하는 아들과 아이를 높이 치켜들고 있는 엄마에게서 애처로움과 간절함이 느껴진다.


(좌) David Artz <Scheveningen Woman>, (우) Jacob Maris <On the Lookout>. Mesdag Collection.

왼쪽 작품을 보면 엄마와 아이 둘이 같이 모래언덕 위에서 저 아래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다. 아마 남편의 고기잡이 배가 출항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다. 애들은 아직 아무 것도 모르고 엄마와 아빠 손에 이끌려 나왔을 듯하다. 아마 아빠는 가족들을 가볍게 안아주고 일하러 떠났을 것이다. 엄마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남편이 안전하게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표정이다. 


오른쪽 작품 속 인물은 젊은 여인인지 할머니인지 잘 분간이 안된다. 어쨌든 여인이 혼자 모래 언덕 위에 앉아 바다와 배를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일하러 나간 남편 또는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하다.


Hendrik Willem Mesdag <In Distress>. Mesdag Collection.

한밤 중에 벌어진 극적인 상황을 포착하고 있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작은 구조선이 달려나가고 있다. 가족들은 횃불을 들고 발을 동동구르며 남편의 무사귀환을 고대하고 있다. 달빛이 은은하게 바다를 비춰주고는 있지만 어둠 속에서 혹시나 발생했을지 모를 사고 가능성이 관람자에게 긴장감을 주고 있다. 아빠가 타고 오는 배가 사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족들은 얼마나 놀랬을까. 


Jean Francois Millet <Fisherman's Wife>. Mesdag Collection.

<만종>, <이삭줍기>로 유명한 장 프랑수아 밀레도 비슷한 테마의 작품을 남겼다. 제목이 <Fisherman's Wife>이니, 아마도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며 바다를 내려다 보는 장면일 것이다. 그림 사이즈가 작아서인지 자세히 봐도 바다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제목을 보지 않았다면 바다를 바라보는 건지 알 수 없었을 거 같다. 그냥 밀레가 그렸다고 하니 좀 있어 보이는 거 아닐까. 


반백년 넘게 살아보니, 가족의 안위(安危)만큼 중요한 게 없더라. 나도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 와이프와 아이들이 하루 일 마치고 무탈하게 귀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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