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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캐슬 Jul 09. 2024

성실함의 천재

낙숫물이 바위도 뚫는다.

 방학 중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드라마 우영우를 몰아 보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천재적인 지능을 지닌 여성 변호사의 성장기. 생각지도 못한 해결책을 제시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우영우를 보며 또 다른 천재 자폐 아동 석훈이를 떠올렸다. 성실함의 천재 우리 반 화분 물주기 담당 석훈이.     


 아무것도 모르던 초임 시절 석훈이는 나의 첫 학생이 되었다. 석훈이는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선 개학하고 며칠 되지 않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반으로 찾아오셨다.


 “선생님, 우리 애가 손이 많이 갈 텐데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데이.” 


 할머니께선 이제 사회로 갓 진출한 병아리 교사에게 연신 고개 숙여 인사하셨다.


 “할머님, 제가…! 부족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탁드린다, 죄송하다 이야기하시는 어르신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건 비단 누구의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고 자기가 원할 때만 이야기를 하던 석훈이었기에 조금 엉뚱하단 생각을 했으나, 다른 아이들에게 해코지하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일이 결코 없었기에 석훈이로 속을 썩인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폐 아동에게 교실 내 역할을 주면 좋다는 글을 읽었다. 시종일관 얌전히 교실에 앉아 있는 석훈이에게 역할을 내어주면 석훈이의 학교생활이 한층 더 즐거워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슨 역할을 주면 좋을까 고민하다 마침 키우던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날 키우던 화분을 가지고 가 탁상 옆에 비치해두고 석훈이를 불렀다.


 “석훈아. 오늘부터 물 이만큼만 매일 주는 거야. 알았지?”


 “네.”


 짧고 강렬한 대답에 마음이 놓였다. 다음날부터 석훈이는 등교 직후 가방을 벗어 던지고 매일 화분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며칠은 노파심에 석훈이를 관찰했지만, 일주일이 지난 후,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석훈이의 보살핌 아래 화분은 무럭무럭 자랐고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었다.     


 방학 직전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한 학기 동안 석훈이는 하루도 늦은 적이 없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유난히 늦어 전화를 돌리고 있었는데, 석훈이가 온몸이 땀과 눈물에 절은 채로 교실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석훈이는 비틀거리며 자기 자리에 쓰러지듯 엎어졌고 괴로운지 쌕쌕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곧바로 티슈로 얼굴을 닦아주고 이마에 손을 대보니 불덩이같이 뜨거웠다. 잠깐 열을 식히고 석훈이를 곧장 보건실로 데려다주고 나니 할머님이 참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가 이렇게 아프면 그냥 집에서 쉬게 하시지. 어째서 학교에 보내신 걸까. 학교에 하루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두 시간쯤 흘렀을까 석훈이가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때마침 쉬는 시간이라 아이를 불러세워 몸은 어떠냐 이야기를 하려는데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화분에 물을 주러 가고 있었다. 저렇게 아픈 와중에도 물을 주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타는 내 마음도 몰라주는 석훈이에게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2학기가 시작될 무렵, 특수학급 선생님께서 석훈이 할머님께서 참관하러 오시니 마치고 함께 상담하자고 제안하셨다. 나는 흔쾌히 응했고 ‘아이가 아프면 학교를 쉬어도 된다.’ 말씀드릴 계획이었다.     


 “석훈이가 학교에서 화분 가꾸는 걸 되게 좋아해요. 예전에 몸이 아파서 펄펄 끓는데 화분에 물 줘야 한다며 기어코 학교에 갑디다. 선생님. 신경 써주셔서 참 감사합니데이.”


 할머니의 말씀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야속한 건 할머님이 아니라 공부가 부족한 나였구나. 내 부족함은 조금도 돌아보지 못하고 남 탓만 하고 있었구나.’ 할머님께 주제넘게 이야기하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웠고 한심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같은 상투적인 말을 반복해 읊조릴 뿐이었다.     


 그 후로 자폐 아동에 관한 공부를 지속해나가고 있다. 더는 내 무지로 인해 아이들이 힘든 일을 겪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누구보다 성실한 아이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부족한 것이 아닌 교사가 부족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준 석훈이에게 부족한 신출내기 교사를 믿어준 할머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책장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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