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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캐슬 Jul 09. 2024

누구를 위한 선물일까?

선물의 의미 재고

 근래 육아를 시작한 오랜 기간 친하게 지내던 형과 잠깐 차를 마실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형은 오랜만에 자유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신이 났는지 신나게 육아의 갖은 어려움에 관해 늘어놓았다.


 "아이는 3시간마다 깨고 자는 시간은 5시간이 채 되지 않으며....."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입장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형의 기분을 맞춰주고자 열심히 맞장구를 치며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 이번에 강원도에 애 데리고 갔다가 진짜 죽는 줄 알았다."


 형은 강원도까지 운전만 4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애를 데리고 가니 쉬어가야 하고 달래야 해서 6시간이 넘게 걸렸다며 그래도 강원도의 폭포를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 순간 오랫동안 생각해 온 해묵은 의구심이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강원도를 가는 게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일까?'


 물론 찌는 듯한 더위와 아이를 데리고 먼 곳까지 준비해 가는 형 부부의 정성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아이가 바라는 것인지.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묻고 싶었다.


 부모가 되지 못했기에 조금도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론 돌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5~6시간의 이동은 굉장히 비합리적이다.


 만약 아이가 한글을 깨우쳐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니 아이의 말을 해석할 수 있는 초하이 테크놀로지가 있어 아이의 의사를 물을 수 있었다면 나는 단연코 아이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형에게 넌지시 물었다.


 "형... 그런데 그게 애가 바라는 일일까요? 애는 아직 눈 뜨고 일어나 있는 것도 힘들 정도로 어린데... 흠... 저는 형이 본인이 주고 싶은 걸 주는 부모가 되기보다는 아이가 받고 싶은 걸 주는 부모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자 형은 유년 시절 아이의 미적 체험과 여행이 아이의 정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며 장황한 지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없었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 그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선물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기보다는 상대방이 받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정말 희한하게도 정말 많은 사람들은 부모가 되면 자신이 주고 싶은 것을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고자 한다. 무엇이든 내어주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지만 그것은 부모의 마음이지 아이의 마음이 아니다. 아이들의 표현을 조금 빌려 말하자면 "내 마음도 있지. 네 마음만 있냐?" 같은 상황이 돼버린다.


 당연하게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는 많은 선물을 받은 아이는 즐거울 수도 있지만 충분히 불행할 수도 있다. 여러분도 상상을 해보면 알 수 있듯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 아이에게 좋아하는 캐릭터 피규어와 굳즈들을 선물로 주면 기뻐 날뛰겠지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이에겐 이상하게 생긴 쓰레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이가 원하지 않는 선물(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모든 것들)은 아무리 부모의 마음이 위대하고 고귀할지라도 아이에게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골동품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선물을 받고 느끼는 감사와 존경은 미미할 것이고 짜증과 분노나 쌓이지 않으면 다행일 일이다.


 언젠가 부모가 되어 아이에게 무언가를 내어주고자 한다면, 아이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는 부모로서의 마음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자식으로서 받아야만 하는 아이의 마음도 한 번쯤은 고려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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