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월 남편이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갔다. 결혼식은 4월인데 생각보다 마주 보면서 소통할 일도 많았고 회사도 이미 살고 있는 집 근처라서 살아야만 했다. 2개월 정도 살기 시작할 땐 모든 게 어려웠다. 엄마와 결혼식보다 일찍 떨어져 살아야 했고 독립해서 살아야 하는 출발선의 시작이었다.
일어나면 아무도 없고 기분이 냉랭하였다. 불안한 건가 긴장된 마음인 건가 아님, 어려운 마음인데 고독한 건가, 이도 저도 아닌 중심 잡히지 못한 마음이다. 남편은 역시 이틀은 회사와 떨어져 있어서 더욱더 감정은 고조되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단지날때즘,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큰 산은 지났구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걱정이 눈덩이처럼 달려 나왔다.
35년 동안 분당에서 살다가 인천에 거쳐 또 서구로 이사오니 낯선 환경이 마음을 다 잡아주지 못했다. 친한 친구들은 분당이나 서울 근처에 거주하다 보니 연락은 톡톡이 밖에 되지 않았다. 통화하는 것도 어쩌다 한번, 외롭고 친한 지인들마저 없고 다 새로운 사람들밖에 없어서 그런가, 고립된 기분이 들었다. 은둔형 외톨이는 아닌데 숨어서 지내는 요로족 같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서 서구 지역에 평생학습관이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성당, 공공기관 도서관도 다녀보았다. 하지만 아직도 나 혼자 즐겨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 남편 친구들 모임에 갈 땐 행복했다. 점점 직장 생활할 때 기분도 저하되고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신혼이라 기뻐야 할 시기인데 이러다가 병이 나는 건 아닌지 주변에서 많이 걱정해 주었다.
얼마 후 청라지구라는 신도시에 집을 한번 더 이사가게 되었다. 남편이 가고 싶었던 청라지역, 평소에 청라지역이 잘 사는 사람들만 가는 지역이겠지 생각하며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덧 정말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남편이 혼자 살고 있었던 집을 내놓자마 자 연락이 와서 팔리는 바람에 이사를 한번 더 가게 되었다. 기쁜 소식이지만 나는 이사준비를 한번 더하였다. 남편은 이사 갈 때 준비해야 할 부동산서류, 절차 등등을 다 알고 있다.
난 부동산아빠 딸이지만 부동산 지식 1도 모른다. 법학과 전공자이지만 채권법 단 1조도 모르는 무지상태이지만 남편은 전부 다 알고 있다. 믿고 따라와 주면 된다는 태양, 나만 믿어봐 라는 노래 제목도 있듯, 믿어주기만 한다면 된다 하기에 믿어만 주었다.
큰돈이 왔다 갔다 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많이 모아두면 되는 게 아니라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필요했다. 1평 더 큰 집이지만 마루공간이나 다른 공간은 이전 지역의 방보다 비슷했다. 이사를 하면서 많이 느낀 건 역시 돈도 많아야 하고 남편처럼 집에 혼자 오래 있어본 경험치도 많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은 자격증을 취득해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남편을 보면서 독립이란 바로 이런 일상들이 진실되어 보인다.
아직도 남편처럼 되려면 한참 많이 노력해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는 것들이 무거운 행동은 아니고, 마음은 항상 가볍게, 부담을 가지지 않되, 다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들이라 생각한다.
나도 나중에 남편이 이사준비하기 힘든 상황이 생기변 발 벗고 나서서 준비해야겠다 라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