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읽었던 기억을 가지고, 영화 <붉은 수수밭>을 보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중간고사를 보고 난 여유로움과 함께 조금은 설렘으로 클릭했다.
7월 9일 시집가는 날, 조부모님의 이야기라고 나레이션이 나왔다. 나팔수의 신호에 맞춰 풍악을 울리며 가마를 흔들어대는 가마꾼의 노랫소리가 참으로 기이하게 퍼져 나왔다. 붉은 공단의 가마 안에는 여주인공 공리였다. 참으로 유명한 여배우가 곱게 새색시로 단장한 채 잔뜩 겁먹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우리 외할머니께서도 꽃가마 타고 외할아버지를 만나셨다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지금은 하늘 저편에서 우리를 지켜만 보실 뿐 손잡아드릴 수 없어 너무 안타깝기만 한 우리 외조부모님이시다. 같은 동양이라는 공통점이랄까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1988년 중국 영화를 세계적으로 알린 대표적인 중국의 5세대 감독으로 꼽히는 장이머우 감독의 데뷔작인 <붉은 수수밭> 감독에 대해서 잠깐 궁금해졌다.
그는 영화감독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영화를 지향하며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를 허문 것으로 평가 받는다고 나왔다. 작품으로는<국두>, <홍등>등이 유명하다는데 나는 아직 다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가마꾼의 풍악은 우리가 시골에서 농부 어부들이 부르는 노동요가 들어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힘든 노동의 애환을 흥겨움으로 승화시키려는 혼이 깃든 것과는 너무도 다른 내용이어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새신랑의 몰골을 비아냥대며 새신부를 놀리기 위해 장난스럽게 불러대는 노랫소리에 가마 안의 새신부 쥬알은 작은 가위를 손아귀로 감싸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다부지고 굳은 결기를 보여 주는 모습은 우리의 조상, 사대부집의 아낙네가 은장도를 가슴에 품고 절개를 지켜냈다는 드라마의 장면이 겹쳐졌다.
이어지는 장면은 십팔리 고개를 넘고, 귀신들이 판을 치는 곳으로, 씨뿌리는 이도 거두는 이도 없다는 키 큰 수수밭의 수숫대는 바람에 세차게 흔들거렸다. 그 흔들거림은 마치 앞으로 전개될 영화의 극적 전개를 암시하듯 상징성 있는 장면으로 다가왔다. 길고 가느다랗게 뻗은 수숫대의 줄기는 강한 민족성과 어떤 억압과 역경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전대를 노리는 도적을 만났을 때, 쥬알의 결기는 결코 여린 여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가마꾼 중의 한 사람인 유이찬아오와 눈길을 주고받으며 도적을 넘어뜨려 위기를 탈출하는 장면은 훗날 당당하게 불의와 맞서 싸우리라는 것을 엿볼 수 있어 약간의 긴장감을 주어 지루하지 않았다. 비록 여장부는 아닐지라도, 요즈음, 뉴스에 가끔 등장하는 우리나라의 여인, 임은정 검사가 떠올랐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선택적 정의를 일삼고 있는 검사들의 민낯을 들어내 보이고픈 한 여검사의 모습과 겹쳐졌다. 자신의 조직의 부패를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 하는게 그리 쉽지 않을 일터인데 정말 엄지척이다.
여장부의 결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이어졌다. 리씨가 누군가의 죽임을 당하고 난 뒤, 여기서 손자는 사실 조부일 것이라고 나레이션 하지만 그 해설이 없었다면 극의 전개가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조금 아쉬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 느낌은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이어지는 영상에 빠지고 말았다. 화면 가득한 십팔리 언덕의 석양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장면 중의 하나였다. 이십 년이 지난 영상이었지만 지금의 영상과 비교된다 해도 결코 손색이 없었다. 아주 훌륭했다.
갑작스런 리씨의 죽음으로 양조장은 혼란스럽지만, 여주인공 쥬알은 양조장의 문을 닫기는커녕, 떠나려는 인부들에게 함께 양조장을 일으키자고 역설하는 장면은 여주인공의 의지에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9월 9일 새 술을 빚어 액운을 날려버리자며 당당하게 나서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나갔다. 하지만, 유이찬아오의 오줌술은 유명해져서 '십팔리 홍고량'이라는 이름으로 팔린다는 이야기는 현실과는 거리감을 주었다. 오줌술이 아닌 다른 술을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중국이라는 역사성에 비추어 볼 때, 뛰어난 발상이라고 작가와 감독은 손뼉을 마주쳤을지 모르겠다.
그 직후에 라오한이 양조장을 떠난후, 독립투사로 일본에 맞서 싸우는 게릴라에 가담했다가 잡혀 가죽이 벗겨지는 그를 보면서 마을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하게 되는데, 나 또한 소름이었다. 그것은 흡사, 일제 강점기의 어둠을 헤치고 나오신 우리 독립운동을 위해 애쓰신 분들, 그 넋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말살당하는 민족의 아픔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가슴을 아파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단칼에 죽여 준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다.” 죽임을 당하는 순간에도 마지막으로 토해내는 절규가 잊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가장 가깝다는 일본과 많은 문제로 NO 일본을 외치고 있다.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참 변함없는 민족임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영화는 숨가쁘게 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쥬알과 유이찬아오의 아들의 등장으로 긴장을 풀어주어 다행이었다. 양조장의 독을 들락날락거리며 뛰노는 모습은 내가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놀던 어렸을 적 그때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어 피식 웃고 말았다. 참 좋았다.
리오한 억울한 죽음 소식에 유이찬아오와 쥬알의 지휘 아래 인부들은 수수밭에 폭발장치를 설치하면서 영화는 절정에 이르렀다. 기관포를 앞세운 일본군에게 마을 사람들은 고량주에 불을 붙여 대항하려 하지만, 쥬알은 기관총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한발 늦게 터진 폭발장치로 수수밭은 붉디붉은 불길에 휩싸였다. 바로 “붉은 수수밭” 이 된 것이다. 뛰어난 영상으로 화면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붉은 불기둥 앞에서 아들은 어머니 쥬알의 죽음 앞에서 “이 세상의 근심 모두 떨쳐 버리고 극락에 가라 가! 아들의 외침은 절규 그것이었다.
그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가여운 여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주어진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어려움을 온몸으로 이겨내려는 굳건한 의지를 보여 주는 영화였다.
무엇을 볼까,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붉은 수수밭>을 선택한 건 정말 멋졌다.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