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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 Dec 30. 2020

별에 대한 보고서

나에게 별은 따뜻함이다

별의 정의란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별의 정의란 ‘빛을 관측할 수 있는 천체 가운데 성운처럼 퍼지는 모양을 제외한 모든 천체’이다. 과학자들이나 학계의 권위론자들에게는 이 정의가 통용될 것이다. 그러나 연인들에게 묻는다면 다른 정의를 내릴 것이다. 연인들에게 별은 애인에게 따다 주고 싶은 헌신적 사랑의 상징일 것이고 초보 사진작가에게 묻는다면 별이란 평소 사진과는 다르게 셔터 속도를 낮추고 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해서 일정의 흔들림 없이 찍어야 하는 새롭고 흥미로운 피사체일 것이다. 600년 전 세종에게 별은 농업 발전을 이륙하게 해 줄 열쇠였으며, 같은 해 지구 반대편에서 포르투갈의 엔리히왕은 별을 보며 항해술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바다의 지도로 여겼다. 철새들에게 묻는다면 별은 중간중간 목적지까지 안내해주는 친절한 내비게이션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                            *                          *

    

     이처럼 사전적 정의는 하나지만 별은 다양한 사람에게 각자 다른 의미가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별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나에게 별은 따뜻함이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은 나의 대답에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며 ‘말도 안 돼, 별은 몇 천에서 몇 만 도를 왔다 갔다 하는 천체라고!’ 대답하며 지적하거나 조소를 표할지모르겠다. 입대 전의 나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별이란 그저 빛을 뿜어내며 밤하늘을 꾸며주는 천체라고. 입대 후, 정확히는 훈련소에서, 나에게 별은 그저 하늘에 달린 빛나는 장식이 아니라 더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나는 한창 날씨 좋은 5월에 32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나에게 훈련소 생활은 몸도 마음도 고달픈 경험이었다. 독립적인 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제대로 된 운동을 해본 적이 없던 나에게 지인들과 단절되고  힘든 훈련을 버티는 것은 지옥 그 자체였다. 먹는 것에서부터 씻는 시간까지 통제되는 훈련소에서의 갑작스러운 생활은 아무리 성실히 생활해온 사람이라고 해도 고통스러운 경험일 것이다.

     나를 괴롭혔던 훈련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야간행군이다. 안 그래도 각개전투 훈련으로 인해 온몸이 쑤시고 팔다리 여기저기에 멍이 들었는데 20kg가량의 군장을 메고 평소 잘 걷지도 않는 나에게 25KM를 걸어가라니, 야간행군은 나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야간행군이 계획되어있던 날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을 좋아했던 나도 이런 날씨에는 수업을 땡땡이치고 한강에서 소풍을 하러 가자고 졸랐을 법한 날씨였다. 그러나 나와 내 동기들은 좋은 날씨에 절망하고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행군이 취소될 수 있다는 희망에 손발이 닳도록 날씨가 좋지 않기를 빌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날 저녁 우리는 얄미운 하늘 밑에서 두려운 마음을 품은 채, 얼마나 멨다고 벌써부터 군장에 짓눌려 어깨가 아려 오는 것을 느끼며 후들거리는 행군의 첫걸음을 뗐다.


    ‘터벅터벅, 자그락자그락, 텅, 텅.’ 얼마나 걸었을까. 흙을 밟는 소리와 수통이 군장류와 부딪히는 소리만을 의식하며 넋이 빠진 채 걷던 와중 정신이 번쩍 돌아올 만한 소리가 들렸다. “정지! 반쯤 왔으니 20분 휴식하고 간다, 탈모!” “탈모!!” 200여 명의 훈련병들의 복창과 함께 땀에 젖어 반들거리는 계란 같은 훈련병들의 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서 통곡 소리가 들리고 양말을 갈아 신거나 건빵과 맛스타 포장을 뜯느라 분주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군장을 내려놓고 어깨를 주무르면서 그저께 받았던 인터넷 편지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편지 내용 자체는 특별할 것도 없고 길지도 않았다. 며칠 전 언니가 결혼하고 이민을 가서 펑펑 울었고 학교 축제에 어떤 연예인이 오는지에 대한 편지를 써줬으니 영광인 줄 알라고 쓴 장난 섞인 짤막한 글이었지만, 그 편지를 보면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으로 볼을 가리며 눈웃음을 짓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치고 힘든 와중에도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녀와 나는 그다지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친구가 엠티에서 소개를 해줬었다. 엠티가 늘 그렇듯, 주변엔 대여섯 명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거나 술을 마시면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낯가림이 심한 나는 분위기에 맞추기 어려워 그 자리를 금방 피했다. 그렇게 우린 잠깐 얼굴만 소개받고 1학년 내내 모르는 척하기에는 애매한, 어색하게 인사하고 서둘러 지나가는 사이로 지냈다. 그러던 중 2학년 때 우연히 같은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녀는 한 학기 동안 겪어야 할 어색함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인지, 밥을 같이 먹자는 제안을 했고 그때부터 조금씩 친해졌다. 그렇게 적극적이고 웃음이 예쁜 그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속에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성격이 소심하고, 작은 키와 비만으로 콤플렉스가 컸던 나는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그래서 끝내 내 마음을 그녀에게 표현하지 못했다. 나라는 사람을 이성으로써 진정으로 좋아해 줄 만한 존재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를 만날 때면 혹시라도 내 솔직한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올까 봐 가슴에서부터 말을 틀어막았다. 32사단 위병소를 통과하기 전까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마음속으로 서성였지만, 그저 편지 써주면 좋겠다는 말과 잘 있으라는 말만 남기고 폰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녀도 내가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직접 말을 하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아 출발하자, 개인 장구류 확인해보고 착모!” 소대장님의 외침에 나는 생각의 물결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상 없습니다, 착모!” 그렇게 또 시작된 행군, 나는 애써 물집 잡힌 발가락을 무시하려고 노력하며 고개를 살짝 든 채 밤하늘을 보면서 걸음을 내디뎠다. 세종시 부근, 어딘지 모를 논밭 사이로 지나갈 때쯤이었다. 동기들의 거칠어진 숨소리와 개구리와 귀뚜라미 소리에 둘러싸인 채, 몸이 여기저기서 보내오는 고통스러운 신호들을 참으며 멍하니 하늘을 응시했다. 밤하늘에는 사격판에 뚫린 수많은 구멍처럼 별들이 우수수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꼬리를 그리며 별똥별 몇 개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생에 처음으로 보는 별똥별이었다.

    나는 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늘에 박혀 있는 빛나는 점들일 뿐인데 거기에 딱히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를 모르겠다. 어째서 시인들이 별을 찬양하고 노래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별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보통 사람들은 여행 가서 꼭 별을 보고 사진을 찍을 정도로 별이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힘들고 지쳤지만,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내 생에 처음으로 무수히 많은 별 사이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았다고 편지에 적으면 좋아하지 않을까, 적어도 미소는 짓지 않을까 생각했다. 별똥별이 떨어져 내 마음속에 운석을 남긴 것일까,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로 온몸에 머물던 아픔이 전만큼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녀는 내 편지를 읽고 밤하늘처럼 짙은 눈동자에 반짝거리는 별을 담아 눈웃음을 지을 것이다. 그녀를 가슴속에 간직한 채 나는 마음과 함께 몸도 들뜬 기분으로 장정의 행군을 완주했다.


  *                           *                             *


    그로부터 15개월이 흘렀다. 그녀와는 더 연락이 되지 않는다. 현재 그녀는 미국 여행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녀를 위하는 감정의 온도도 식었다. 연락한다고 해도 입대 전과 훈련소 때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별똥별을 보았을 때의 기억만큼은 생생하다. 아직도 나는 밤하늘을 보면 가슴에 작은 운석 하나가 나에게 힘을 주고 따뜻하게 해주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언제든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나만의 별을 선물 받은 셈이다.


그때 당시에는 그 장면이 내 뇌리에 깊이 박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생에 처음으로 별똥별을 보았다는 것과 덕분에 그녀에게 흥미로운 답장을 쓸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는 마음만이 있었을 뿐이다. 행군을 완주하고 불타는 것 같은 발바닥과 몽둥이로 맞은 듯한 어깨가 차츰 나아졌을 때 그때의 기억을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굉장히 뿌듯해졌다.

    나는 별똥별에서 느낀 따뜻함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 그 따뜻함은 당장 지치고 힘들더라도 좋아했던 그녀를 미소 짓게 하고 싶었던 마음과 군대에서 훈련을 받는 고통스러운 시간도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데에서 온 것이다. 소심하고 자존감이 바닥이며 운동이랑 거리가 멀었던 나였다. 그 비대한 몸을 이끌고 소중한 사람을 마음에 간직한 채 남을 생각하고 위하며 행군을 마쳤다는 것에 대해 뿌듯함이 나에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힘으로 나는 나름대로 군 생활을 견뎌왔고 앞으로 전역을 해서도 역경을 헤쳐 나갈 자신이 생겼다. 자대를 배치받은 후에도 탄력을 받아 운동도 하고 살도 빼면서 자존감과 정신도 예전보다 아주 건강해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훈련소와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때 이후로 나는 별을 좋아하게 되었다. 시인들처럼 별에 대한 아름다움을 노래하지는 못해도 별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릴 수는 있게 되었다. 별이란 따뜻함이다. 그 따뜻함은 괴로운 와중에 남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내게도 있다는 것과 그들을 위해 두려움과 고통을 참아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경험에서 오는 힘이다.

   오늘도 아마 나는 야간 경계 근무를 서면서 무거워진 눈꺼풀을 뜬 채 방탄모의 챙 밑에서 밤하늘을 힐끗 볼 것이다. 그리고 남들에겐 그저 사진을 찍고 싶고, 실제로는 빛나는 질소와 먼 짓 덩어리뿐인 별 일지 몰라도, 나는 그 별에서 위안을 얻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앞으로 남은 군 생활에서도 굴곡이 있을 것이며 삶엔 수많은 오르막길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선물 받은 나만의 별을 살짝 개봉하면서,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건빵과 맛스타보다도 마음속에 소중한 사람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할 것이다. 등에 삶의 군장을 메고서 인생이란 긴 행군을 후들거리지만 전보다는 자신감을 찾은 발걸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 나간다.

'터벅터벅, 자그락자그락, 텅, 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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