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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 Dec 30. 2020

좀비는 심장이 뛸까

나는 좀비였다

      인간은 심장이 멎게 되면 살 수 없다. 질긴 근육으로 이루어진 이 주먹만 한 기관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쿵쾅거리며 운동을 한다. 만약 심장이 멎은 채로 누군가 계속 움직인다면 우린 좀비가 나타났다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것이다.

       그렇다면 좀비가 된 사람이 다시 심장이 뛰면 어떻게 될까? 우린 다시 그것을 인간으로 쳐줄까? 아닐 것이다. 다른 것은 생각지도 않고 오로지 욕망에만 움직이며 해를 끼치고 다니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좀비가 심장이 뛴다고 해서 인간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특이한 좀비일 뿐이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인들은 다르게 보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심장을 마음의 기관이라고 여겼다. 심장은 그들에게 피를 공급해주는 육체적으로 중요한 기관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게 해주는 심적으로 중요한 기관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심장이 뛰는 좀비는 다분히 인간적일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까?

    근육으로 이루어진 육체적 심장과, 좀비처럼 물질과 욕망의 충족에서만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닌 정신적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마음의 심장 말이다. 근육을 이용해 혈액을 심방과 심실에 들인 후 혈관을 통해서 다시 온몸으로 생명을 공급해준다면, 마음의 심장은 심방과 심실 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어 혈관을 통해 우리에게 감정과 행복을 몸에 공급해주는 것 같다. 육체적 심장이 마비되면 인간은 죽지만 마음의 심장이 마비되면 영혼 없이 텅 빈 채 본능과 욕구만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가게 된다. 외관만 멀쩡한, 그저 육체적 심장이 뛰는 특이한 좀비의 삶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마음의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점이다. 우리는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몸이 최적화된 상태가 어떤 지 알고 있고, 최적화된 상태에서 이상이 생기면 대개 증상이 나타나며 이를 진단할 수 있는 장치도 많다. 그러나 마음의 경우에는 그렇게 녹록지 않다. 우리는 마음이 최적화된 상태가 어떤지 모르고, 표면적으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진단해줄 수 있는 도구도 없다.

      나는 지금까지 내 마음이 병들어 마음의 심장이 마비되었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아왔었다. 잠깐잠깐 심장이 회색 빛에서 희미한 불그스름한 빛을 띠며 살아날 때도 있었겠지만, 대체로 마비된 채 살아왔다. 외관만 멀쩡한 좀비였던 것이다. 이러한 내가 최근에 친구를 통해서 마음이 다시 뛰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내 친구 H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모델이다. 그는 평범한 키에 유난히도 크고 네모난 정사각형의 얼굴을 갖고 있다. 손재주 없는 나도 H만큼은 쓱쓱 하고 그릴 수 있다. 친구를 미니어처로 만든다면 차 앞자리에 놓는 버블헤드(bobble head) 인형을 쏙 빼닮았을 것이다. 그는 어린 주제에 아저씨처럼 몸 전체를 흔들면서 껄껄껄 웃고, 농담할 때 양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 올리는 특유의 버릇이 있다. 이때 호응을 해주지 않는다면 소심하게 팔을 내리고 말끝을 흐리면서 대개 한숨으로 끝맺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이른 아침부터 자정까지 함께 공부하고 이후 대부분의 동기들이 재수를 선택하면서 각자의 괴로움과 우울함을 속에 간직한 채, 주말마다 모여서 술 한잔하는 게 의례였다. 담배도 이때부터 피웠던 것 같다. 그러나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던 그들의 두 번째 수능이 끝나자, 좀처럼 예전 같이 모이는 일이 없어졌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대학생활과 아르바이트, 구애활동에 파묻혀 서로를 먼지 쌓인 이삿짐처럼 기억의 모퉁이 저편에 두고 각자의 일상에 몰두했다.

           저번 달, 나는 임관식 준비에 부랴부랴 일을 하고 있었다. 부대에서 일 년에 몇 번 없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로, 참모총장 님부터 사령관 님까지 말로만 듣던 분들이 직접 오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창 바쁜 임관식 전날 오후에 평소처럼 사무실에 전화가 걸려왔다. “통신보안, 상병 000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립니까?” “000 상병 님 지금 시간 되십니까… 안 좋은 이야기를 전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는 지지직거리는 군용 수화기 너머로 H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눈물도, 실감도 나지 않았다. 그저 심장이 쿵. 쿵. 거리며 미여 오는 것을 의식하는 정도였다.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통보에 마음 한구석에선 장난 일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탓에 감정이 작게 일렁일 뿐 온몸에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임관식 준비를 어떻게 끝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전화를 걸면 “그걸 믿냐”라며 비웃는 그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머릿속에 되풀이했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저녁 늦게까지 임관식 준비를 마치고 퇴근한 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수화기를 천천히 내렸다.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요금이 부과된다는 친절한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아득히 먼 곳에 있는 라디오 소리처럼 언뜻 들었던 것 같다. 손이 떨리고 몸에 열이 퍼지며 털이 쭈뼛쭈뼛 돋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친구들 전화번호를 적어 놓은 닳고 닳은 작고 누런 노트를 넘겼다. 내게 소식을 전달해준 친구의 전화번호를 하나씩 꾹 눌렀다. “뚜우우…뚜우…여보세요….” 평소 활발하고 장난 섞인 목소리를 자랑하는 그에게서 낯선 무게감이 느껴졌다. 사인은 심장마비, 저녁 7시 홀로 쓸쓸히 자취방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아침에 시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장례식은 오늘 저녁까지이며 내일 오전에 발인을 한다.

     그제야 하루 내내 심장에만 머물러 있던 감정이 몸 구석구석까지 혈관을 따라서 솟구쳐 흘러 들어갔다. 감정이 몸에 퍼지면서 어두운 바닷속에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팔이 저리고 목과 가슴이 막히면서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이내 입에 짠맛이 느껴졌다.

    H가 세상을 떠났다…. 22살의 어린 나이에 자취방에서 혼자 심장을 움켜쥔 채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아버지처럼 한의사가 된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방에 내려가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를 했다. 밤낮 구분 없이 아르바이트와 과외에 치이고, 유급이라는 공포에 쫓겨 공부에 몰두하며 살았다. 그랬던 그가 꿈의 날개를 뻗고 미약하게나마 날갯짓조차 해보지 못한 채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가 피던 말보로와 그가 사줬던 게임 캐릭터, 매일 드나들던 술집과 지겹도록 우려먹지만 매번 웃게 되는 농담들이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런 그를 다시는 볼 수 없다


나는 공중전화부스에서 서둘러 나와, 애써 터져 나오는 눈물을 머금은 채 사람 없는 곳을 서둘러 찾아 들어가 울었다.

     감정은 눈물에 맺혀 천천히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인지,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자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그러자 다른 감정보다 후회와 회의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평소에 그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을 계속 미루고 재수 생활 이후 H와 만난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던 것이 생각났다. 입대 후에도 똑같이 그를 소홀히 대했었다. 저번 휴가 때 나는 그가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했었다. 밀린 영화와 게임이 생각났으며 무엇보다 그를 보러 대구까지 가는 시간이 금 같은 휴가를 아깝게 쓰는 일이라고 판단했었다. 나는 그를 당연한 존재라고 여겼던 것 같다. 오랜 친구이기 때문에 항상 내 곁에 있을 것이고 연락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만나고 싶을 때 그저 만나면 되는 사람으로 여겼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심장의 중요성을 평소에 느끼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머리로는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고 심장이 뛰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지 않나 싶다. 그리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 여기는 존재는 H뿐만이 아니었다. 부모님, 친구들 그리고 함께 고생하며 서로 신경 써주는 고마운 전우들. 나는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홀히 대하고 있었다. 그들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으며 오히려 그들보다 덜 중요한 일에 욕구를 채우려고 내 시간과 마음을 기울였었다. 나는 스스로를 마음의 심장이 죽은 채 껍데기만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때로는 알아도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움직이고 활동하지만 욕구만을 쫓는 좀비랑 다를 것이 있을까? 좀비들이 서양 공포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장 빨리 자본주의를 접하게 된 그들은, 자본주의에 물들어가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잊은 채 욕망만을 충족하려고 좀비가 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경계해야 하는 것인지 느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는 공포영화의 대상이 되어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휴가를 나가서 H의 납골당을 방문했다. 한여름에 전투복 차림이었다. 납골당 안으로 들어가자 에어컨 바람 때문인지 뜨겁게 데워졌던 몸과 마음이 가라앉고 식는 느낌이 들었다. 어두운 차콜색의 대리석으로 된 납골당 안은 높고 길었으며 수많은 벽감 밑에 번호가 적혀 있었다. 입구 쪽에 있는 차가운 안내 기계에 H의 이름을 입력하니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는 회색 항아리에 보관되어있었다. 항아리 왼쪽에는 카드 보드지로 만든 조그만 책상과 그 위에 좋아하던 게임 사진이 붙여진 작은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오른쪽에는 어린 쌍둥이 여동생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다. 그의 영혼은 이런 좁은 곳에 만족을 하고 있을까. 나는 바깥보다 집을 좋아했던 그의 영혼이 옆에 있는 조그만 컴퓨터와 가족,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친구들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 모습을 조심스레 상상해보았다. 임관식 전날부터 가슴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어둡고 묵직했던 빙하가 녹는 느낌이 들면서 몸의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H의 죽음은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의 첫 죽음이었다. 앞으로 나이가 들면서 이런 죽음이 많아질 것을 안다. 나는 벽감 유리에 비친 전투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결국 군 복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H의 관도 친구들과 같이 들어주지 못했고, 그의 몸이 활활 타올라 차가운 재로 변할 때에도 없었다. 나는 분명 힘들 때도 많지만 H와 같이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군 복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 보호만 받고 남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도 그들을 위하여 무언가 노력하고 지켜주고 있다.

     벽감 유리에서 시선을 돌려 H의 유골이 있는 쪽을 마지막으로 한번 바라보았다. 그의 죽음으로 나의 회색 심장이 다시 붉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정말 그들을 내 심장처럼 소중하게 대하고 있는지 가슴속에 되새겼다. 다시는 좀비가 되지 않으리라.


나는 베레모를 벗고 작은 목례로 H에게 인사한 후 납골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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