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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 양윤희 May 17. 2023

은총

행복의 물리학(단펀소설)

  은총(행복의 물리학)

    

                                                                 Ⅰ     

   

     그녀가 주일 아침 9시 미사를 준비하기 위해 성당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은 새벽 6시 30분. 겨울은 늦게 해가 뜨기 때문에 깜깜한 거리를 가로질러 서둘러 성당으로 가는 길은 춥고 외로웠다. 몇 분의 운전. 굳이 히터를 틀 필요가 없기에 냉한 차가움이 코끝을 시리게 했다. 성당은 그녀의 집 바로 건너편에 위치해서 가깝기는 했지만 나무가 우거진 낡은 곳이라 어둠이 주는 고적함이 길가에 스며들면 음산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성당에 들어서 제대에 불을 켜고 촛방(초를 깎고 제병을 준비하는 곳)에 들어서면 신의 품에 안겨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듯 안온한 격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새벽 일찌감치 성당에 와 기도를 하는 할머니들에게 흠을 잡히지 않으려면 서둘러 초를 깎고, 제병을 놓고, 성수와 포도주를 은쟁반에 담아 놓고 청소를 해야 했다. 겨우 고양이 세수만 하고 총총 서둘러 나왔기에 언제나 그녀에게 풍기는 아르마니 향수의 잔향은 주변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은쟁반을 면포로 닦으며 무엇엔가 골몰한 상념에 빠질 때쯤 그녀의 후각 속으로 이상한 향내가 풍겨 왔다. 장미향이었다. 그녀는 좁은 제대실을 한 번 휘 돌아보았다. ‘꽃이 있나?’ 그러나 작은 백열전구 아래 어지러이 펼쳐진 초의 잔해와 유리잔들, 촛대, 성서 이외에 향기가 펼쳐질 물건은 없었다. 다시 제병을 돌리는 그녀에게 또 한 번 바람이 불 듯 진한 장미 향이 풍겨왔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벽에 걸린 아랍 공주 같은 성모님의 웃는 얼굴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머리에 별이 잔뜩 박힌 금빛 미사포를 둘러쓰신 성모님의 얼굴은 고통과 희생보다는 장난과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장미 향기가 성모님의 숨결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생각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림 속 성모님께 말을 걸고 말았다. “왜요?” 그런데 너무도 신비하게 그 –왜요?-라는 말은 허공중에 반향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화살이 날아가듯 곧바로 그림 속 성모님의 눈 속으로 꽂혔다. 말이 사물처럼 또르르 굴러가 성모님의 눈가에 구슬처럼 퍼지며 거기서 자애가 떨어졌다. 그녀는 너무나 놀라 초상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소리가 들렸다. *카타리나야.... 너는 오늘 행복할 것이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뭐라시는 거야? 행복이라니...... ‘뭐가 행복한 일이 있다는 거야?’ 그녀는 귀를 의심하다가 다시 몸을 돌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마음속에서 환청일 수도 있다는 이성적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뒤를 돌아 어둑한 벽면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는 성모님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신비한 빛이 주변을 흥건히 적시며 소용돌이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것이 환청도 환각도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행복?’ 그녀는 왜 성모님이 자신에게 그런 울림을 들려주시는지 뇌리를 더듬었다. 일 이주 전쯤 성모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 하였다. -저에게도 이제 짜릿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세요. 제 일상은 어쩌면 이렇게도 단조로울까요.... 매 시간은 그 다음 시간으로 물이 흘러가듯 흘러 들어가면서 저는 마치 자동인형처럼 빙글빙글 돌기만 합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또 먹고, 자고, 일하고......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갑갑하고, 재미가 없고,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쓸쓸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 간절히 기도를 했더니 성모님이 오늘 내게 행복을 주시려는 구나....... 아! 무슨 행복이 올까? 생각지도 않은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오는 걸까? 어릴 때 좋아했던 초등 동창? 로또를 사야 하나? 가족들에게 경사가 있으려나?’ 그녀는 남은 하루 동안 일어날 일에 대해 잔뜩 기대가 부풀었다.                               

                                     

                                                            Ⅱ


    9시 미사가 시작되었다. 붉은색 제의를 걸치고 제단으로 향하는 보좌 신부님의 뒷모습을 보니 그녀는 마치 새신랑의 옷을 밤새 곱게 길쌈하여 정성 들여 입혀 놓은 새색시의 마음이 들었다. 어디 구겨진 곳은 없나? 끈과 영대는 제대로 하셨나? 신부님의 모습을 현미경을 보는 듯 관찰하였다. 미사가 시작되고 마치 보스에게 충성을 맹세하듯 십자가에 90도로 예를 갖추는 신부님의 미사 집전을 보며 그녀는 뿌듯한 마음이 밀려왔다. 정말 그날은 미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행복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성마른 기다림으로 가슴이 두근거려 자신의 숨소리가 북소리처럼 귓가에 울렸다. ‘이러면 안 돼...... 미사에 집중해야지......’ 그녀는 자신을 다독였다. 성서 말씀에 행복을 암시할 무슨 단서라도 있을까 강론에 귀를 기울였다. 봄의 느낌이었다. 종다리가 짹짹거리는 듯 밝고 가뿐한 기분...... 오늘 따라 유난히 빛나는 보좌 신부님의 낭랑한 목소리, 그리고 성가의 달콤함, 행복이 올 것 같은 기대감......

     그리 특별한 징후를 주는 성서 말씀은 아니었다. 단지 이해가 안 되는 몇 구절이 있었다. 기다리는 자에게는 언제고 그가 기다리는 대상이 온다는 것이다.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 그분은 오지 않습니다. 스치고 가버립니다. 아니 기다리지 않는 자는 자신 옆을 지나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기다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늘 깨어 그분을 늘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 가십시오- 그래, 그래. 나는 행복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오늘 내게 뭔가 행복이란 사건이 올 거야. 기다리자, 기다리자...... 성모님의 말씀을 믿어보자......

   미사가 끝날 때 즈음 로마 장군같이 당당한 보좌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오늘은 강남구에 있는 모 성당으로 출장 미사를 가야 합니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출발해야 해서 신도님들께 현관에서 인사 못 드리니 양해하십시오.”

     순간 그녀의 동공이 열렸다. 옆 마을 성당 주변엔 그녀가 좋아하는 예쁜 가게들이 많았다. ‘출장 미사?’ 아 그랬었구나. 봉사자인 나에게 보좌 신부님의 출장 미사를 따라가라고 하신 거야. 급하다고 하시니 준비할 것을 챙겨서 같이 차를 타고 가는 거야. 출장 미사 후에 신부님이랑 점심을 먹으라는 건가? 그래! 춥지만 날이 화창하니 작은 소풍이 되겠는걸? 신부님이랑 뭘 먹으면 좋을까... 오는 길에 창이 높고 케이크가 맛난 집에서 민트초코와 티라미슈를 먹을까?...... 어디를 예약할까? 그녀의 머리가 바삐 회전했다. 마음으로 좋아하는 멋진 신부님이었다. 신부님이 그녀의 축일에 플륫을 연주해준 후로 그녀는 젊은 신부님께 사춘기 소녀 같은 연정을 느끼고 있었다. 바삐 가방을 챙기는 신부님 등 뒤에서 까치발을 띠며 그녀가 물었다.

   “저도 따라가는 거죠? 차 타고 가실 거예요? 제 차를 성당 앞으로 가져올까요?” 

신부님이 계단 쪽으로 뛰어 올라가며 말했다. “어딜 따라가신다는 거예요? 지금 늦어서 전철로 가야 합니다. 학생 미사이니 그리 준비할 게 없고 제의는 그쪽 성당에 미리 준비되어 있어요... ”

그녀는 허둥대며 뛰어가는 신부님의 커다란 등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맥이 풀렸다. -아니네...... 뭘까...... 그럼...... 잠시 서 있는 그녀에게 다음 미사를 준비하는 나이 많은 봉사자가 다가왔다. 


                                                           Ⅲ               

   

“카타리나... 내가 오늘 급한 일이 있으니 11시 미사도 좀 봉사해 줄 수 있을까? 정말 미안해!” 

 예기치 못한 소환이었다. 각자 맡은 한 번의 미사를 준비하는 것으로도 몸과 정신이 많이 소모되는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런데 연거푸 두 번의 미사라니...... 그녀는 잠시 정신이 몽롱해졌다. 약간의 현기증이 들었지만 행복을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모든 인연을 열어 놓기로 마음 먹었다. 내게 오는 모든 일들을 일단 받아들여 보자......

      “네, 언니, 걱정 말고 볼일 보세요. 저는 별 약속이 없어요.”

사실 11시 미사는 신자도 많고 주임 신부님이 까다롭기에 긴장이 되었다. 시인의 풍모를 지닌 주임 신부님은 어린 보좌 신부님과는 달리 철저하고 완벽한 성격이어서 미사 전에 모든 곳을 확인했다. 그녀는 제대로 올라가 빠르게 청소를 한 후, 포도주를 따르고, 금 성잔에 성체를 200개 정도 돌려 담은 뒤 신자가 많을 것을 대비하여 여분의 은 성잔을 내어 왔다. 묵묵히 제병을 담는 그녀 옆으로 주임 신부님이 다가왔다. 

      “카타리나...... 수고하시네요. 9시 미사도 봉사하셨을 텐데...... 있다가 미사 끝나고 성당 건너편에서 굴밥 먹읍시다.” 

      “네?”-뜻밖의 점심 제안에 그녀는 주임 신부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인문학적 지식이 박학다식한 주임 신부님은 강론이 훌륭해서 나이 많은 본당 어르신들께 엄청 존경을 받는 터였다. 늘 신자들이 에워싸서 가까이 갈 수조차 없으신 분이 그녀에게 굴밥을 사주겠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제야 왜 보좌신부님과 나드리를 못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오늘 내게 행복한 일은 주임 신부님과 점심을 먹는 거구나. 그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굴밥인데 게다가 시인 같은 신부님이 얼마나 재밌는 말씀을 해 주실까.....

그래, 신자들에게 존경을 많이 받으시는 신부님은 자신을 잘 제어하시는지, 외로운 마음이 늘 성심으로 충만한지, 언제나 행복해 보이는 신부님의 비밀은 무엇인지 여쭤봐야겠어. 마리아님이 내게 주임 신부님한테 물어보라는 거구나......

 11시 미사는 꽤 길었다. 오늘따라 신부님의 강론과 공지 사항이 함지박만큼 많았다. 그녀는 새벽부터 몸을 놀린지라 피곤하여 약간의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면 신부님이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서둘러 정리를 하고 성모 동산 앞으로 가서 신부님을 모시고 점심을 먹으러 가야 했기에 들뜬 마음으로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촛대를 정리하고 제의를 개켜 놓고 있을 때쯤 제대실 문이 빠끔히 열리며 어린 학생하나가 들어왔다.

     “주임 신부님이 갑자기 약속이 생기셨대요. 다음에 식사하자고 전해 드리래요.”

 그녀는 온몸에 기운이 빠지며 멍한 상태가 되었다. 

      - 뭐야? 이것도 아니었어? 그럼 언제, 무슨 행복한 일이 온다는 걸까?- 

시간은 거의 오후 1시가 되어 오전 미사를 마친 신자들도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한산한 공적함이 성당을 메웠다. 그녀는 떨떠름한 어색함을 얼굴에 한껏 묻히고 불 꺼진 성당을 걸래질 했다. 말끔하게 정리해야 오후 4시 미사 봉사자에게 바톤을 넘겨줄 수 있었다. 손을 움직이는 내내 그녀의 머리는 골똘한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Ⅳ


     성당을 나오며 허기를 느꼈다. 아침도 거른 상태였다. 시간은 거의 오후 2시를 향해 깡총거리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던 순간 헤레나가 차 문을 두드렸다. 헤레나는 독서단을 관리하는 성당 임원이었다. 

     “카타리나 언니? 점심 안 드셨죠? 저랑 점심 먹으러 가실래요?”

   그녀는 헤레나의 제안에 반가움을 느꼈다. 

 -그래...... 헤레나랑 굴밥을 먹자! 신앙심이 돈독하고 정보가 많으니 성당 주변 사람에 대해 물어도 보고......-

     차에 사뿐히 올라타는 주근깨 천사 헤레나를 바라보며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하고 건너편 굴밥 집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굴밥과 파전을 주문하였다. 항상 바쁜 헤레나는 식사 내내 집에 있는 수험생 아들과 통화를 하였다. 아들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느라 무슨 음식을 포장해 갈까 묻는 중이었다.

      -저럴 거면 집에 가서 아들과 밥을 먹을 것이지 왜 나한테 점심 먹자고 했어?- 

그녀는 이제 살짝 분이 올랐다. 헤레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교제 범위가 넓어 성당의 모든 사연에 빠삭한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뾰족한 수험생 아들과 전화로 옥신각신하던 헤레나는 굴밥과 파전을 싸들고 집으로 가 버렸다. 

      “언니, 미안해요...... 아들이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에요. 다음에 제가 점심 사 드릴께요. 시험이 얼마 안 남았으니 한 번만 봐주셔요.”

이쯤 되자 그녀는 새벽에 들은 마리아님의 목소리는 제정신이 아닌 우울증 걸린 자신의 판타지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지! 무슨 행복한 일이 있겠어- 그녀는 혼자서 굴밥을 먹었다. 식당을 나와 차에 오르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운동 후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가겠다는 짧은 통보였다.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낭패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눈에 보이는 그녀의 아파트 주차장 진입로가 세 겹의 차에 에워싸여 있는 것이다. 그녀의 집은 백화점 주차장과 맡 붙어 있어 일요일엔 진입로가 아수라장이었다.

      -바겐세일이구나......어쩌나......집에 들어가는데 한 시간도 넘겨 들겠어......- 

바로 옆에 집을 두고도 들어갈 수 없는 난감함......

그녀는 화가 치밀었다. 늘어진 차들을 바라보다 한숨을 푹 쉬고 중앙 차선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유턴을 하였다.

      ‘드라이브나 하자! 어쩐지 집에 가기도 싫으니......’

그녀는 무작정 정면으로 차를 몰아갔다. 얼마쯤 내쳐 달리는데 갑자기 요의가 느껴졌다. 하루종일 화장실 한 번 못가고 움직였던 것이다. 어디다 차를 세워야하나...... 두리번거리던 그때, 눈앞에 커다란 백화점 간판이 보였다. 그곳은 주차 진입로가 그리 붐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곳 지하 3층에 차를 주차 시켰다. 이 백화점은 그녀 동네와는 다르게 조금은 덜 붐비고 4층에 가면 음악이 없는 숨은 카페가 있었다. 가끔 그녀가 책 한 권을 들고 와서 놀다 가는 곳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그녀는 백화점을 한 번 휘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가져온 책이 없을뿐더러 책을 읽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의식은 피곤하고 사유는 푹 퍼진 해파리처럼 분산 되었다. 그냥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어슬렁거림으로 시간을 흘려보내서 자신의 집 주차장으로 간섭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행복에 대한 기대는 져버리지 않았다. 

     -뭐야......뭐냐?......도대체 뭐라는 거야......  그녀는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한참을 걷는데 평소에 그녀가 좋아하던 옷 가게 앞에 [몇 가지 품목 80 퍼센트 세일]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진열된 옷들을 그녀는 이것저것을 들추어 보았다. 털이 블링블링한 스웨터와 가죽 치마, 커다란 인형이 매달린 가방이 있었다. 인형의 볼을 만져보다가 그녀는 밑바닥에 놓인 보라색 빌로드 바지에 눈이 갔다. 

     ‘어? 저거 제 작년에 내가 사고 싶었던 옷 아닌가?’

얼른 바지의 사이즈를 확인했다. 그녀의 사이즈가 아니었다. 그녀의 볼로 웃음이 번졌다. 

    ‘카타리나야, 오늘 너는 엄청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였나?’

이제 그녀는 카페로 들어갔다. 차를 마시니 노곤함과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 핸드폰을 열어 이곳저곳을 확인했다. 카톡의 사진들을 클릭하여 보고 있는데 사촌 언니가 카톡 배경 음악으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를 올린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의 기일이었다. 대학 4학년 때 스스로 하늘나라로 가버린 사촌 오빠의 애정곡...... 언니가 오빠 생각을 하나보다...... 그녀보다 한살이 많던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똑똑했던 오빠...... 최고의 대학 의대를 수석으로 들어가서 그녀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했던 오빠, 그 오빠가 11월 이맘때쯤 그녀의 학교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었다. "아웃 어브 아프리카"를 보여주겠다고 했고 성당에 가자고 했다. 사랑에 빠진 같은 과 여학생이 가톨릭 신자였나 보다. 오빠와 영화를 보았고 명동 성당 앞에서 함박스테이크를 먹었다. 오빠는 내내 보조개가 파인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당시에 읽던 책의 어떤 구절에 대해 계속 질문을 했던 것 같다. 

    “오빠!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사건은 질량보존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거지? 외관만 바뀔 뿐 본질적인 물질의 성향은 새로 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행복만큼의 불행을 견뎌야 하고, 불행만큼의 행복이 어떤 식으로든 다시 온다는 건가? 진실은 평정하고 아무 자극도 없는 그런 거라는 거야? 그거야?”

     대답 대신 특유의 코를 찡그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강아지 쓰다듬듯 쓰다듬어주던 오빠......

그런 만남을 가진지 일주일 후쯤 오빠가 트럭에 몸을 던져 바람 속으로 날아가 버린 사건은 언제나 오늘 일처럼 그녀의 마음에 각인 되어 있었다. 충격이었고 슬픔이었으며 삶의 어떤 밝은 면을 한 점의 먹물이 망쳐버린 일이었다. 오빠는 사랑하는 연인의 변심에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 사건은 하얀 화선지에 검정 먹물이 순식간에 번져 펼쳐지듯 언제 어떤 기쁨도 단번에 어둠으로 가져가는 힘으로 작용했다. 오빠가 좋아했던 클라리넷 A장조가 이어폰 속에서 실타래를 뽑듯 흘러나왔다. 그녀는 모든 감각이 몸을 빠져나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창밖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이다. 퍼뜩 짐을 챙기고 차 값을 계산한 그녀에게 드는 생각은 빨리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휘황한 1층 로비를 가로질러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바쁘게 걸어갔다. 362 버스는 금방 도착했다. 이 백화점에 오면 항상 어둑해질 때쯤 나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한 그녀는 온 집안에 불을 켜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루는 정말 길었다. 손을 씻고 식탁 위에 가방을 홀랑 뒤집어 모든 물건을 쏟아 냈다. 물건 정리를 해야 했다. 성서, 미사포, 초콜릿 껍질, 주보, 동전 지갑, ...... 오늘의 전리품들이 식탁 위로 와르르 쏟아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묵직한 자동차 키가 툭 소리를 내며 식탁 위로 중력을 과시한다. 순간 그녀의 머리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했다.

    차!...... ! 자동차를 백화점 주차장에 놓아두고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이건 뭔가? 시계를 올려다보니 8시가 다 되어 있었다. 백화점 폐점 시간이다. 그녀는 소파에 털썩 내려앉았다. 고개를 숙이는데 두 줄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분해서였다. 완전히 망친 하루......           

                                       

                                                                 Ⅴ            

  

   ‘행복을 주신다더니...... 이게 행복이야?’ 차는 내일 찾아야 한다. 밤새 주차시켜야 하니 주차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꼼꼼한 남편의 잔소리가 귓전을 메운다. 그녀에게 하루 동안의 모든 사건들이 파노라마를 펼치듯 죽 되새김질 되어 왔다. 한 번의 사건 뒤에 연이은 실망감,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의문과 공허감. 죽은 오빠의 상흔까지...... 그녀의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바로 그때 그녀가 털썩거리며 앉는 바람에 깔고 앉은 리모콘에 저절로 텔레비전이 켜졌다. 울고 있는 그녀의 눈앞에 커다란 화면과 어떤 한 남성이 보였다. 눈물이 앞을 가려 어릿한 형상이 분별이 되지 않았다. 무슨 과학 방송에 저절로 접속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형상이 말을 한다. 

     “저는 모 대학에 000 교수입니다.” 

그녀는 귀를 의심했다. 오빠와 이름이 같아... 목소리 톤도. 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텔레비전을 눈여겨보았다. 커다란 우주가 배경으로 깔려있고 양자역학을 설명한다고 했다. 천천히 또박또박 강의를 하는 강연자의 얼굴은 전혀 오빠와 닮지 않았다. 그런데 긴 문장을 말하고 끝에 가면 더듬는 말투가 오빠와 같았다. 어김없이 긴 문장 뒤에 마지막 단어의 반복......

     ‘말을 더듬네? 오빠처럼......’ 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마치 빨려 들어가듯 강의에 집중했다.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가 만나면 물이 됩니다. 우리는 물을 보면 물을 느끼지만 그것에서 산소와 수소를 보지는 못합니다. 또 수소와 산소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물을 연상할 수도 없습니다. 만유의 물질은 서로 인연으로 만나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찰라에 멸합니다. 이것을 물질세계의 연기론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들이 인연의 상태를 유지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듯 보이지만 그건 순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망상입니다. 모든 것이 무상입니다.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자성은 없습니다. 없, 없습니다.”

    “숲은 없습니다. 나무의 모임을 숲이라 합니다. 바다는 없습니다. 물의 모임을 바다라고 합니다.” 

    그녀는 꽤 차분하게 강의를 들었다.

    “없다는 거야? 그거야?”

    “어느 순간의 특성을 다음 순간에 이어서 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효과적 작용이 없는 것은 존재가 아니고, 어떤 물체를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작용이지 그 물체의 특성이 아니란 뜻입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주변 존재들을 행복으로 인식하는 겁니다. 행복이라는 작용을 하는 원인에 해당하는 실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우주에는 어떤 작용을 하면서 자신의 본성을 유지하는 실체란 없습니다. 작용을 하면 본성은 변하고 본성이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존재로 인식하지 못, 못합니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무언가 우리를 기쁘게 하는 사건의 촉발을 의미합니다. 목이 마르지 않다면 물의 행복을 모르고, 공기가 없어 보아야 호흡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 됩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결핍에서 충족으로 변환되는 순간의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항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 아니라는 겁-겁니다. ”

-그럼 이상에서 물질세계와 양자역학에 대한 강의를 마치, 마치겠습니다.-

   강의를 끝낸 교수는 미소를 띠고 코를 찡그렸다.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오빠, 오빠야?” 

   “오빠였어?”

저 먼 다른 별나라에서 오빠가 TV 강연자를 통해 그녀에게 행복에 대한 답을 주었다. 

    “바보야...... 일상이 다 행복이야......!” 오빠의 하얀 주먹이 그녀의 머리 꼭지에 군밤을 먹인다...

텔레비전 옆 테이블에 놓인 성모상도 그녀에게 자애로운 미소를 보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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