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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 양윤희 Jun 20. 2023

먹던 떡 같은 서방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메타픽션

                                          *신체의 접촉          

    

신체의 접촉은 존재에게 커다란 균열이다. 이미지가 찢어지며 그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간다. 그곳에서 내 감각은 내 것이 아닌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시 나를 봉합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상대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팽창되어 나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아저씨가 내 팔을 꽉 쥐고 바싹 끌어당겨 그의 얼굴과 숨결이 내 귓불에 닿았을 때 너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의 눈빛과 손아귀에 잡힌 그 순간은 마치 엿가락처럼 시 공간을 늘리어 그 부푼 시공간의 무게에 압사당하여 숨이 멈출 것 만 같았다. 기절할 것 같은 따가운 순간은 뭔지 모를 흥분감으로 계속 들뜬상태가 유지되면서 심장이 뛰고 괴로운 느낌이 들었다. 아저씨는 새벽 여섯 시가 되면 어김없이 초인종을 누르고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긴 밤 동안 밖에서 새벽 6시를 기다리고 있다가 5시 59분이 지나면 준비하고 있던 손가락으로 ‘꾹...’ 벨을 누르는 것 같았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시계의 초침이 내 온 세포를 깨우면서 그가 누르는 벨 소리로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 완벽한 상사병이었다. 내 몸을 깨우는 이상한 희열은 새벽을 지나 아침까지 긴 소나타의 선율처럼 내 목을 줄줄 감고 있다가 아침 밥상에서 그를 보는 순간 냉정함을 찾았다. 상상은 늘 현실을 압도했으므로 추려한 모습의 그를 똑바로 쏘아보는 순간 뜨거운 그의 숨결도, 내 입술에 닿았던 목의 감촉도, 내 모든 감각이 나를 속이고 있음을 명정 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밤 새 감각이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되는 찰나 끝이 닳아빠진 초췌한 그의 소매 깃이 내 눈을 파고들었다. 거지 같은 그의 모습이 미치도록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그를 염려하면 할수록 그는 점점 초라해지고 작아지고 그의 날카로운 눈빛만이 초인종처럼 내 살갗을 눌렀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침 밥상에서 불안하고 서투르고 당황했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 지고 있는 큰 짐 덩이가 된 것 같았다. 몸이 무겁고 거추장스러워 감당이 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동생과 아저씨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면 나는 고개를 숙이고 감정의 정리를 해야 했다. 다시 말끔하게 맑은 내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심호흡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모는 나를 알아보셨다. 어릴 때부터 키워주신 분이니 내 감정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눈치챈 것 같았다. 나는 점점 여위어가고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우리 증조할아버지도 어린 수영에게 나 같은 마음 이셨을까?              


                                *            *           *          

    


      외길을 따라 걷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상대를 피하려고 오른쪽으로 틀면 그 사람도 오른쪽으로 튼다. 내가 다시 왼편으로 가면 또다시 그도 왼편으로 온다. 몇 번을 엉거주춤 맞닥뜨린 후에 두 사람은 겸연쩍게 서로 갈 길을 간다. 이런 경우 참 당황스럽다. 상대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판단의 순간은 마치 영겁처럼 길게 느껴져 잠깐이지만 무한한 허공에 매달려 있는 듯 불안함 마음이 가득 퍼져 나온다. 그때 우리가 인지하려고 하는 것은 오로지 상대의 방향이다. 그가 가야 나도 가기 때문이다. 불가역적인 시간을 사는 인간에게 결정의 순간이 얼마나 고통인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일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가만히 있는 것일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것, 기다리는 것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를 너무 배려하기 때문에 더 기다리지 못한다. 내가 길을 막고 가만히 서있는 것이 무례한 것이라 생각하나 보다. 아저씨와 내가 맺어지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과 비슷하다. 아저씨에 대한 나의 마음은 언제나 엇박자였다. 나는 그를 더 많이 배려하려다, 혹은 더 많이 기쁘게 해 주려다 일을 망치고 만다. 오후 느지막이 빈 방에 누워 있다가 문득 몽블랑 빵집이 떠올랐다. 용기를 내어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단발머리에 하얀 운동화를 신고 떨리는 몸으로 초록색 철 대문에 기대어 그의 이름을 이야기하던 수줍은 여고생의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 말을 전해 들은 하숙집 아주머니가 삐거덕거리는 철 계단으로 올라간 지 몇 분후 후줄근한 운동복 차림에 놀란 그가 내려왔다. 그가 내려올 동안 초록색 대문 오른편에 붙어 있던 주소를 머리에 욱여넣었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때 그의 눈빛이 어땠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말없이 길을 따라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왔고 나는 그에게 문학공부를 하면 꼭 우리 이야기를 쓰겠노라고 약속했다.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내 목소리를 받아들이며 무표정하게 앞만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지금 내 눈앞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때 그 소녀가 지금의 나와 얼마나 먼지 아니면 똑같은지 정의 내릴 수가 없다. 마치 전혀 모르는 영화 속의 한 인물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새털 같이 많은 순간들이 충만히 들어찬 영민한 여고생을 지금 만난 듯도 하다. 



                          *잉어 연                

   

   몽블랑 이층 집에 다녀온 후 나는 더욱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이 한 시도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고3이 되었으니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어야 하는데 전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하루 종일 거실 마루에 누워 창밖으로 하늘만 바라보았다. 오늘은 그가 오려나...... 내일은 그가 오려나...,, 매일 그 생각뿐이었다. 그의 쓸쓸하고 딱딱한 얼굴이 계속 아른거려서 그 무엇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었다. 헤세의 ‘지와 사랑’을 읽고 또 읽으며 마치 그와 내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니까....... 딱히 원하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간절히 만나고 싶다거나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자유롭게 사귀고 싶다는 그런 당돌한 계획을 세웠던 것도 아니다. 누렇게 들뜬 얼굴을 하고 평소의 나답지 않게 침울한 표정으로 지내자 부모님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셨다. 동생의 성적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아저씨를 못 오게 할 수도 없었고 어두워진 내 표정을 바꿀 방법을 부모님은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면서도 단호함을 잃지 않았는데 그 단호함의 의미를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내 상황을 그저 사춘기 한 때 지나가는 열병으로 생각하셨을 것이다. 어느 집이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아저씨의 성실함과 차분함을 믿고 조금은 거리를 두고 관망하듯 지켜보셨던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이 가볍게 여길 그런 중량의 일은 아니었다. 나는 아저씨에 대한 열병으로 성적이 떨어졌고 몸이 많이 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만날 수 없는 그를 사랑하는 일은 지극히 쾌락적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그는 이상적이고 완벽하게 나를 충족시키는 기사가 되어 여왕인 나와 춤을 추었다. 그러나 실재의 냉정하고 고집스러운 눈빛을 떠올릴 때는 마치 사랑에 목매는 여왕을 기만하는 악마처럼 내 애를 태웠다.  

   11월이 되었다. 스산한 가을의 공간이 할머니께서 마당에 걸어 놓은 색색의 잉어 연들을 바람결 따라 위로 들어 올려 내 방 창문으로 바라보는 정경이 소스라치게 아름다웠다. 마침 하이쿠 시집에 잉어 연에 관한 시가 있어 더욱 감흥이 더했다.     

                       

                       바람이 부니 

                       잉어가 올라오네     


잉어 연이 바람에 들리는 모습을 보니 울컥 슬픈 마음이 들어 눈물이 가슴 가득 고였다. 바람이 부는데 잉어가 하늘로 나부끼는 메타포는 아름답고 찬연했다. 인간의 마음속 갖가지 욕망, 상념, 그리움, 존재의 아픔이 잉어 연만큼 너풀거리며 딸려 올라온다. 바람은 바닷속 잉어를 공중에 띄울 수 없다. 그러나 상상은 저렇게 고운 색깔의 잉어 연을 연이어 바람으로 들어 올릴 수 있다. 메타포는 실재보다 아니 실재를 초월하여 압도적인 의미를 생성해 낸다. 물 자체는 우리를 매료시키지 못한다. 그 물질이 상징이 된 후 정서적 비약이 추가될 때 그 매료의 권력이란 무섭도록 강하다. 동생의 입시가 끝나면 아저씨는 오지 않겠지..... 11월의 아름다움과 그리움을 담아 편지를 보냈건만 그가 내게 답장을 할리는 전혀 없고 혹시 집에서 마주치면 그의 눈빛에서 따뜻한 마음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새벽 6시에 동생 방으로 들어가 8시에 곧장 집 밖으로 나갔다. 시험이 가까워오자 아침 식사는 늘 이모가 남동생 방으로 갖다 주었기에 우리는 마주칠 일이 없었다. 게다가 주말엔 부모님이 집에 계셔서 그와 말을 섞을 수가 없고 동생 방에서 나온 후엔 짧은 인사말과 함께 총총히 사라졌다. 나는 그와 이별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저에게 찾아가고 편지까지 썼건만 다정한 눈길 한 번 주지 않다니...... 

    이제 자존심과 자존심이 부딪치는 묘한 오기가 들기 시작했다. 답장은 고사하고 주소를 잘 못 외어 그가 편지를 못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궁금함만이 나를 괴롭혔다. 사실 어떤 진실을 우회적인 느낌이나 분위기로 파악하려면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만의 성에 갇혀 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소통이란 실오라기만큼의 가능성도 없는 듯하고 타자의 마음 안으로 들어갈 다리를 놓는 일은 돌기둥에 구멍을 내는 듯 힘겹다.  

   드디어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그가 왔다. 안데레센 동화집의 외다리 병정 인형처럼 굳은 표정을 하고 방금 물고기의 뱃속에서 나온 듯 푹 젖은 모습이었다. 내가 문을 열어 주었는데 현관을 들어서서는 나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동생의 시험이 잘 끝나서 인사차 들렀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의 성실한 마음을 반기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내 편지를 못 받은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부모님은 우리 둘이 밋밋하게 대하자 마음을 놓으신 듯 아저씨께 오랜만에 와인을 곁 드린 저녁 식사를 하자고 친절을 베푸셨다. 모두가 모인 따뜻한 저녁 시간이었다. 이모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남동생 방에서 여동생, 언니와 체스를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 방에 들어가지 않고 말없이 부엌에서 이모를 도와 김을 재었다. 어머니 때문에 그들과 합류할 수가 없었다. 조금 있다 저녁 식탁 앞에 모두 둘러앉게 되었는데 남동생이 키득키득 웃으며 아저씨께 묻는 것이었다.

  “아저씨, 날치스가 뭐예요?”

  “날치스?”

순간 머리가 빙 돌았다. 세로로 ‘나르치스에게’라고 쓴 내 편지가 또렷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번 담요 사건으로 부모님께 큰 곤란함을 겪었던 우리는 순간 서로를 마주 보다 얼굴이 굳었다. 

   “너 가방 뒤졌니?”       

아저씨가 차분하게 물었다. 그러자 동생은 “아저씨 가방 속에 편지 봉투......” 하며 깔깔 웃었다. 동생은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제 누나라는 것은 모르는 듯했다. 수신인과 발신인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로 했으니 알리가 없었다. 나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소화제를 가져오겠다며 수저를 놓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곧바로 동생 방으로 들어가 아저씨의 낡은 고동색 가방을 들들 뒤졌다. 맨 밑바닥에 내가 보낸 편지가 봉투채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얼른 빼서 뒤춤에 감추고 방을 나왔다. 숨이 가쁘고 손에서 땀이 났다. 그런데 생각보다 두툼했다. 답장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내 방으로 들어온 나는 문을 잠그고 서둘러 편지를 꺼냈다. 예상대로 내가 보낸 편지와 포개진 그의 답장이 빼곡하게 눈에 들어왔다.      


천사에게......

밤이 늦도록 하얀 형광등 불빛이 공간을 가득 메운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너의 편지를 읽고 또 읽는다. 너의 하얀 얼굴과 진홍빛 입술이 내 연습장을 가득 메운다. 뜨겁고 답답한 마음에 잠시 고개를 들어 별비 쏟아질 것 같은 밖을 내다보면 천사와 내가 쌍곡선을 그리며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립고 그립지만 갈 수도, 만날 수도 없어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었다......            



처음으로 확인한 그의 마음이었다. 놀랍고 떨리고 짜릿했다. 하지만 나는 이 답장의 수신인이 될 자신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아저씨와 얽히는 것이 아주 많이 위험스러울 거라는 감이 들었다. 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 자신을 방어하는 유일한 길은 그냥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모든 사유를 막아 버리고 빨리 편지를 제 자리에 갖다 놓아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내가 이 답장을 본 걸 알면 다시는 그가 집에 못 올 것 같았다. 나는 까치발을 띄고 동생 방으로 들어가 편지를 가방 속 책갈피 안에 쑤셔 넣었다. 아래층에서 밥 안 먹을 거냐고 소리치는 어머니의 재촉이 들리고 뒤이어 아저씨가 상기된 표정으로 2층으로 올라왔다. 마침 동생들이 계단참에 들어서지 않았기에 나는 날카롭게 아저씨를 쏘아보며 “왜 그걸 갖고 다녀요?” 하고 책망하듯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이 벌게져서는 동생 방으로 들어가 옷과 가방을 챙겨 나왔다. 부모님께 저녁 식사를 맛있게 했다고 인사를 하고 잰걸음으로 돌아가 버렸다.     

                  

                                   *먹던 떡 같은 서방     


      할머니의 문갑 아래 서랍에는 요깡, 모나가, 박하사탕 그리고 청자 담배와 명랑이 가득 차 있었다. 할머니는 아랫목에 선비상을 놓아두고 언제나 책을 읽으셨다. 난 외숙모가 구워 준 쫀드기를 씹으며 배를 깔고 누워 할머니가 읊조리는 책의 구절구절을 흉내 내고 있다. 노란 방바닥으로 슬그머니 기어들어 온 따사로운 햇볕까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따라 일렁거린다. 

  “아가, 여자에게 제일 좋은 신랑감은 어떤지 아누?”

  “몰러...”

  “먹던 떡같이 수더분한 떡빙이 같은 사내란다.”

  “떡빙이가 뭐여?”

  “배고플 때 먹다가 배부르면 벼름박에 붙여놓고, 또 배고플 때 뜯어먹는 떡 말이다. 음전하고 편안한...... 게다가 그 떡은 내가 먹던 떡이라 다른 사람들은 욕심내지 않거든!”

   “그리고 우리 강아지는 꼭 먹성이 좋은 서방을 만나야 해...... 입이 짧으니 명을  지켜줄 서방을 만나야 한단다......”

   할머니께서 늘 말씀하시던 내 신랑감은 천성이 순하고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떡빙이 같은 사내였다. 하지만 아저씨는 천성이 순하지도 먹는 것을 중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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