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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 양윤희 Jun 19. 2023

도깨비가 좋은 이유

두 달 뜨는 밤-포스트코로나시대의 메타픽션-

*인연 없음의 인연


      그리스의 철학자 호레이스는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신성이란 다름 아닌 질서와 고상함, 아름다움이라고 정의 내렸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이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잠재된 정서가 고상하고 선해서 그 영혼으로부터 향기가 뿜어 나오면 거기에 행복이 맺힌다. 생각이 서로 통하여 맑은 친구와 서로 마주 보고 소리 내어 웃거나 아름다운 경관에 압도되어 잠시 자신을 잊을 때 느끼는 기쁨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런 기운이 사람에게서 나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런 사람을 탐하고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자는 논어에서‘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말하였다. 어떤 사물에 대하여 혹은 사람에 대하여 즐길 수 있다면 그는 최고의 선을 맛보고 있다는 것이겠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우리의 인연은 인연 없음의 인연으로 치닫고 있었다. 

   또다시 정원의 해바라기가 버석거리는 늦가을이 되자 집안은 한 마디로 고요했다. 아저씨는 틈나는 대로 일찍 귀가하여 동생의 공부를 봐주느라 정신이 없었고 부모님의 걱정도 각별해서 우리 집은 도서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저녁을 먹고 나면 이층에 둥그런 상을 펴고 나, 언니, 남동생과 아저씨, 꼬맹이 여동생까지 다섯 명이 둘러앉아 각기 자신의 공부를 하였다. 초저녁이면 열어 놓은 창으로 꽃바람과 때 이른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들은 모두 공부에 열중하는 듯했지만 둥그런 달이 창 밖에서 밝은 금가루를 분사하면 아저씨의 안경테 그늘 속으로 그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 아닌지 살폈다. 묘한 설렘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그가 나를 보기에 설레고 그 바라봄이 나를 좋아하는 증거라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그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우리들은 떠들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간식을 챙겨 주신다고 시시각각 이층으로 올라오셨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아무 말 안 하시지만 아저씨와 너무 친한 걸 드러내면 곤란해질 거라는 예상이 자연스럽게 인지되었다. 그런데 예상이 현실로 일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밤 열한 시가 너머 책에 지친 우리들은 슬슬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제법 날씨가 쌀쌀해지자 여동생이 춥다고 불평을 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남동생이 벌떡 일어나 담요를 가지러 간 것이다. 뒤 따라 여동생이 제 오빠를 쫓아가고 언니는 코코아를 타오겠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와 둘 만 남겨진 아저씨는 조금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어색함을 없애 보려고 영문법 책에 적혀 있는 어떤 내용을 물어보았다. 

   “아저씨! 보어가 뭐예요?”

   “보어?”

   “네...... 주어랑 목적어는 알겠는데 보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 질문에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그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나 보다. 그는 내게 문법책에 있는 예문을 좀 봐야겠다고 말했고 난 예문을 보여주기 위해 책을 내밀어 아저씨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진한 비누향이 확 풍겼다. 그때 동생들이 쿵 쾅 거리며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여동생이 계단참에서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남동생이 담요를 던져 뒤집어씌운 것이다. 꽤 두꺼운 밍크 담요여서 거기서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아저씨가 돌아보며 남동생에게 장난하지 말고 얼른 책상에 앉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담요에서 빠져나온 두 동생들은 깔깔거리며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내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와 아저씨를 향해 담요를 덮어씌운 것이다. 머리가 서로 부딪치고 숨이 막혔다. 나오려고 버둥댈수록 더 엉키었다. 아마도 아저씨와 내가 서로 버둥거리니 담요가 더욱 엉키어 벗겨지지 않는 듯했다. 밖에서 동생들이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의 뜨거운 입김이 내 코끝에 닿았고 머리가 부딪쳐 차가운 철제 안경의 딱딱함에 이마가 아팠다. 아저씨가 담요 속에서 내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따랐고 그렇게 하자 스르르 담요가 미끄러져 내렸다. 머리는 엉클어지고 아저씨의 안경이 내 땋은 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정신이 아뜩하고 몹시 화가 나서 동생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머리를 들어 주변을 보자 부모님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아버지는 몹시 불쾌한 얼굴이었고 어머니는 짜증 섞인 표정이었다. 

   “너희들 뭐 하는 거냐?”아버지가 물으셨다. 담요를 손에 쥐고 아저씨는 머뭇거렸는데 그때 뜻밖에 대답이 남동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누나랑 아저씨가 이불속에 있어서 우리가 담요를 벗긴 거예요......”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어머니를 쳐다보고 아버지는 몹시 화난 얼굴로 발소리를 내시며 아래층으로 내려가셨다. 어머니는 내게 부엌으로 따라오라고 하셨다. 일어나 어머니를 따랐고 부엌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를 식탁 밑으로 욱여넣으신 뒤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이것아, 동생 시험이 얼마 안 남아 걱정인데 너는 왜 틈만 나면 저 녀석이랑 같이 있는 거야...... 정신이 있어? 이 철없는 것아......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얼굴이 후끈거리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철없는 동생들이지만 이렇게 이상한 상황을 만들다니......             

                    


               *           *           *


    어떤 때는 악하고 못 되게 굴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우가 있다. 타자에게 화를 내고 공격적인 일면을 보임으로써 그들이 나를 멀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던지 상대의 단점을 심하게 우벼 파서 그들이 모멸감에 나를 싫어하게 하면 된다. 쌔디즘 같은 가학성을 말하는 것인데 그 못됨이 보호막이 되어 삶의 번잡스러움에서 나를 보호해 준다. 누군가라도 존재와 너무 거리가 가까우면 짜증이 난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타자는 지옥이다.’라고 했는지 모른다. 타자는 내게 항상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생각이 많은 날은 그런 눈빛을 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너무 귀찮았다. 아저씨가 곧 우리 집에서 떠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국어 시간에 신라 향가인 공무도하가를 설명하시는 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시조의 슬픈 사연이 마음에 침윤되어 적적하고 가슴이 아린 기분이었다.      

                   


                  공무도하(空無渡河)

                 공경도하(公竟渡河)

                  타하이사(墮河二死)

                  당내공하(當奈公河)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그예 물을 건너고 말았네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임이여 이를 어이할고       


회색빛 감정이 친구들의 재잘거림에 변색되는 것이 싫어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사실 담요사건 이후로 부모님은 아저씨께 매우 싸늘해졌다. 어머니가 아저씨 밥그릇 옆에 맛있는 반찬을 놓아주지도 않고, 아버지도 요즘 대학가가 어떤가?라는 노상 입버릇 같은 대화를 중단하셨다. 나는 마음이 불안하고 착잡했다. 밥을 풀 때도 예전처럼 아저씨 밥공기에 수북하게 밥을 올릴 수 없었다. 어머니가 매의 눈으로 쏘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모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이모도 도리질을 치며 내 시선을 외면했다. 부모님과 이모의 냉랭한 태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가장 힘든 건 아저씨 때문이었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한 그는 부드럽고 온화하던 모습 대신 성나고 공격적인 태도로 돌변했다. 밥상에서도 금방 식사를 끝내고 서둘러 남동생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공부만 했다. 뭔가에 감정이 많이 상한 듯 초점 없는 눈빛이 내 가슴을 찔렀다. 게다가 연이은 개인과외금지 뉴스가 매일 밤 9시 뉴스에 대문기사로 떠올랐다. 종례시간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비밀과외를 하다가 적발되면 퇴학이라고 엄포를 놓으셨기에 내 착잡한 감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런 화를 어머니에게 투사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밥을 잘 먹지 않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입이 짧고 몸이 약한 내가 먹는 걸 거부하면 모든 가족들은 노심초사였다. 어릴 때 결핵을 앓은 전적이 있기에 더욱 파장은 컸다. 

   어머니는 여자의 직감으로 내가 아저씨에게 남 다른 감정이 있음을 알아채셨다. 집안끼리 중매로 만난 부모님들의 전적이 나의 첫사랑에 더 큰 장애가 되었다. 어머니는 그 당시 다른 엄마들이 다 그렇듯이 가난한 고학생인 아저씨와 내가 특별한 감정을 갖는 것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집요하고 잔인한 데가 있었다. 성격이 뾰족하고 예민한 나와 자존심 강한 아저씨를 둘 다 우회적으로 망신을 주어 스스로 떨어지게 하려 한 것이다.

   어느 날 식탁에서 어머니가 날카롭게 말씀하셨다. 

  “너 그렇게 끼적거리고 밥을 안 먹는 것을 보니 또 가슴 사진 찍어 봐야겠구나...,,, 어느 놈이 데려갈지 참 걱정이다. 지난달에 다리가 부어서 대학 병원에서 조직검사 하느라고 만만치 않게 돈이 들었는데 이제는 또 밥을 안 먹어! 그래서야 어디 평범한 집안으로 시집가겠어? 시아버지가 대학병원 의사라도 돼야 내가 마음을 놓겠네...... 애물단지...... ”

   거침없이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기가 죽었다. 아저씨한테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던가...... 나는 어머니의 퉁박이 아저씨의 마음을 얼마나 찌를지 짐작이 갔다. 고개를 들어 앞에 앉은 아저씨의 낯 색을 살폈다. 갑자기 가슴이 콱 막혔다. 그가 안경 너머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보면 볼수록 멀어지지는 이상한 눈빛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쏘아보며 “나 밥 많이 먹고 있잖아! ” 하고 밥숟가락이 넘치게 밥을 퍼서 입에 욱여넣었다. 어머니가 한심스럽다는 듯 나와 아저씨를 번갈아 보았다.               


                           

              *도깨비가 좋은 이유          

  


     삶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아이러니 중에 하나는 좋은 것과 싫은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혹은 동질감과 이질감 같은 상보적인 감정이 하나의 대상에 들러붙어 있는 경우에 일어난다. 신화에서는 이런 혼돈스러운 상황을 괴물의 등장으로 비유하지만 사실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폭력적 결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란 없다. 누군가 ‘나는 어떤 것이 너무 좋다’라고 선언한다면 그 결정에 시간이라는 접착제를 발라보라. 아무리 나를 완벽하게 사로잡는 매력적인 존재라도 시간의 할큄은 황홀함을 앗아가고 그것이 쓸려간 자리에 권태의 씨앗이 싹틀 것이다. 그건 감정을 가진 사람뿐 아니라 일방적인 소통으로 내게 평화를 주는 사물에서도 다를 바 없다. 언젠가 어떤 물리학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아무리 작은 물질이라도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공간을 굴절시킨다는 것이다. 물질이 공간을 건드려 그 파장으로 인해 그 옆을 지나가는 빛이 휘어지게 된다. 이는 비록 소통이 없더라도 타자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내 삶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하물며 인식으로 서로의 감정을 얽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서야......

   상상해 보라. 하얀 눈이 바람에 팔랑거리며 날아오르는 까만 밤, 문창지 너머 달빛을 보며 비단 이불에 누워있다고... 풀을 먹여 빳빳한 옥양목 요위로 연탄아궁이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온기가 퍼지고 외풍이 심한 방안이라 코끝이 살짝 시려 온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노란 백열전구의 알몸뚱이와 약간 내려앉은 쥐 오줌으로 얼룩진 천장 가장자리이다. 쥐들이 줄달음쳐 지나치는 소리를 들으며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곤두세워 ‘야~옹, 야~옹’ 하고 읊조려본다. 내 옆에는 두 분의 할머니가 누워 계신다. 바로 옆에서 안경을 쓰고 언문책을 읽으시는 우리 외할머니와 아무 말도 없이 나처럼 천장을 바라보시는 수영 할머니... 외할머니께서 이야기를 해 주신다. 


  “아가... 옛날 산속 외딴 오두막집에 긴 겨울밤을 외롭게 지내던 할아버지가 있었단다. 그는 말벗할 동무가 그리웠지. 어느 날 밤, 할아버지에게 도깨비가 찾아왔지! 등잔불 밑에 모습을 드러낸 도깨비의 얼굴은 파란 얼굴에 날이 선 듯 큰 뿔이 돋치고, 코와 입은 함지박만 한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하지만 “술 나와라 뚝딱, 고기 나와라 뚝딱!” 소리에 맞춰 와르르 쏟아지는 호사스러운 물건들이 도깨비의 끔찍한 몰골을 참을 수 있게 해 주었지. 게다가 질펀한 잔치와 눅진한 이야기에 이어지는 덩실 춤은 외로운 할아버지에게 큰 선물이었단다. 그러나 행복했던 이들에게 사건이 찾아온단다. 봄이 되어 세수를 하러 나온 할아버지가 고요한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야. 살짝 뿔이 움트며 도깨비를 닮아가는 중이었어. 삐죽이 뿔이 움트는 머리꼭지를 보며 할아버지는 생각했지! ‘인간인 내가 흉측한 도깨비를 닮아 가는구나...... 이러다 내가 도깨비가 되는 건 아닐까?’ 고민에 빠진 할아버지는 자신이 도깨비가 될까 봐 겁을 먹고 친구를 내치기로 결정한단다. 그는 도깨비에게 자신은 세상에서 돈이 제일 무섭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어. “하얀 말의 피라오... 난 말 피가 있는 곳엔 가까이 가지 못하오...” 도깨비가 대답했지. 할아버지는 그 대답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의 피를 구하여 집안 곳곳에 흥건히 뿌렸단다. 이제 밤이 되어도 도깨비는 할아버지의 집에 올 수가 없어. 얼마가 지나 달이 휘영청 밝은 쓸쓸한 밤, 할아버지는 우두커니 방에 앉아 도깨비를 생각했단다. 바로 그때 짤그락, 잘그락, 좌와...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방 안에 콕 들어박혀 나올 줄을 모르던 할아버지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문을 열었지. 쩔렁거림이 난무하는 마당 밖에서 슬픈 얼굴의 도깨비가 엽전을 쏟아붓고 있었어. “나쁜 영감! 그토록 싫어하는 돈이나 실컷 가져라. 영감이 말의 피를 온 집안에 발라두어 내가 들어갈 수 없으니 나도 보복으로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돈을 던지는 게야..... 담장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도깨비는 마당 밖에서 지금도 계속 돈을 던진다는구나! 애처롭지?”     

   


     쥐오줌이 얼룩진 천장 위로 마당에 그득 쌓인 엽전을 밟고 있는 할아버지의 시무룩한 표정과 성난 듯 방망이를 쳐대는 도깨비의 슬픈 얼굴이 그려졌다. 

  “도깨비가 불쌍해! 할아버지가 나빴어......”

  “그랴? 그럼 울 애기는 머리에 함지박만 한 뿔이 돋쳐도 좋누?”

두 분의 할머니가 장난기 어리게 웃으신다.  

    깊은 겨울밤, 일렁이는 화롯불 앞에서 좋은 벗과 덩실덩실 춤을 추며 두런두런 나누는 서사가 엽전보다 못한 것이라면 왜 도깨비들은 요술 방망이를 가지고도 끊임없이 인간들을 찾아오겠는가. 또 내 머리에 돋치는 흉측한 뿔이 벗과의 친애를 상징하는 표시라면 좋은 것을 얻기 위해 하나의 흉측함은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끊임없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솎아 내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실상은 어렵다. 세상에 딱 떨어지게 소원을 성취해 줄 대상이 존재하던가? 우리의 선택은 늘 넘치거나 부족하다. 존재에서 우리가 싫어하는 부분을 떨궈 내면 그와 더불어 좋은 부분도 반드시 사라지는 법이다. 또 혐오하는 대상에게도 나름대로의 매력은 꼭 존재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싫은 것과 좋은 것이 들러붙어있는 혼돈의 상태에서 어느 쪽을 없앨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붓다가 염화시중에게 들어 보인 연꽃의 의미도 어쩌면 진흙탕 속에서 진흙이 되지 않고 연꽃으로 피워 오른 그 긍정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          *          *     

    

      그 당시 왜 밤에 누우면 어릴 적 할머니께 들은 그 도깨비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맴 날아다녔던 걸까...... 어머니의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머니는 내게 아저씨는 짝이 될 수 없다고 노골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유는 내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유치한 것이었다. 그와 내가 연분이 아니라는 것, 즉 궁합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원진살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가면 서로 미워하게 된다고 하였다.‘빨간 도깨비 같이 생긴 녀석이 뭐가 좋다는 거야? 넌 눈을 어디다 달고 다니는 거냐 이것아....... 저런 걸 내 큰 사위라고 어디다 내놓느냔 말이야......’ 차라리 가난해서 내가 고생할 거라고 말했다면 그 당시 텔레비전에서 보는 로맨틱한 드라마 속의 주인공과 우리 둘을 동일시하며 미래를 꿈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엔 그런 내용의 드라마가 많았으니까......, 그러나 연분이 아니고 궁합이 안 맞는다는 말은 나에겐 고뇌를 주는 말이었다. 대대로 점술을 믿는 집안이고 외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는 항상 할머니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먹던 떡 같은 성격에 명 지켜줄 궁합 맞는 서방 만나야 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것이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는 부모님이 명문대학에 다니는 성실한 아저씨를 가난하다고 거절하실 이유는 없었다. 분명 할머니의 무슨 사주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나에게 그런 느낌이 들었고 먼 훗날 나의 그 느낌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집안 식구들이 각자 자기의 일 때문에 바빠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늦은 밤 거실에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둘 다 얼굴에 홍조를 띠고 서로의 서사를 징검다리처럼 건너뛰어 숨결을 맞추었다. 그는 내 입술만 바라보았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매료되어 달큼한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내 느낌엔 아저씨와 내가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좋았고 행복했고 같이 계속 붙어 있고 싶었다.          

                              

                            *이별     

     


       물을 마시러 내려오다가 아버지가 아저씨에게 따라 들어오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하도 완고해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까치발을 띠고 안 방 문 옆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는 아저씨께 다음 학기 등록금이라며 봉투를 건네는 것 같았다. ‘아! 등록금 주시려 부르셨구나!’하고 돌아서려는데      “그러니 나가주게......”라는 말이 또렷이 내 귀로 들려왔다. 내 이름이 언급되고 대학 입시를 위해 한창 공부할 나이라는 둥, 사춘기 어쩌고 하는 긴 사족의 장황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나는 올게 왔구나 하는 생각과 가슴을 저미는 듯 긴 통증이 동시에 왔다. 눈앞에 갑자기 아주 큰 동공이 생기는 듯 허무한 허전함이 밀려왔다. 잠시 후 벌컥 방문이 열리며 아저씨가 튀어나왔고 나는 당황하여 그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아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쿵쿵거리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가슴이 뛰었다. 마치 이 집에 가족이란 아저씨와 나 둘 뿐인데 그중 하나가 떠나게 된 것 같은 분리 불안이 밀려왔다. 어머니는 동생의 공부가 미흡한데 성급하게 내보내는 게 아니냐고 아버지에게 분을 내셨고 이모와 언니도 겨울인데 하숙집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 동정을 구했다. 아버지는 제안을 하나 하셨다. 매일 새벽 여섯 시까지 우리 집에 와서 아침을 먹고 학교 가기 전까지 남동생 공부를 봐준 후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 다시 와서 남은 공부를 봐주면 계속 학비를 주겠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셨다. 그러니까 부모님의 속뜻은 아저씨가 늦은 밤 나와 이런저런 시간을 갖는 게 염려되었던 것이다. 아저씨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사촌형이 있는 하숙집으로 잠시 이사를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동생의 공부는 책임지고 계속 자신이 맡겠다고 말이다.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는 간단한 짐을 챙겼다. 옷가지와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부피가 컸다. 너무나 부지불식간의 이별이라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후딱 짐을 챙겨 큰 절을 한 후 아저씨가 현관 밖으로 나갔다. 나는 먹먹하여 거실 소파 위에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딱한 듯 바라보다가 내 손에 만원짜리 지폐를 들려주시며 아저씨께 택시 타고 가라고 전해주라 하셨다. 아마도 우리 둘의 마음을 눈치채고 이별의 시간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돈을 들고뛰어 나갔다. 아저씨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골목 어귀까지 뛰어가 아저씨를 불렀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그가 큰 가방을 메고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그냥 그의 뒤를 터덜터덜 따라갔다.

   “어디로 가세요? 제가 찾아가도 돼요?”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길을 걸어갔다. 가슴이 메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잠시 후 그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약수동 언덕바지, 몽블랑 빵집 2층이야.....”

나는 더 자세히 들으려고 그에게 바싹 다가섰다. 아마도 그가 내 기척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왜?” 그가 부드러운 눈빛에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택시 타고 가시래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돈을 내밀었다.  안경테가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빛에서 날카로운 노여움 같은 게 느껴졌다. 그는 내 팔을 세차게 잡고 바싹 끌어당긴 채 마치 수천 개의 바늘 같은 따가운 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뜨거운 숨결이 내 귓불 위로 꿈틀거리며 타고 올라왔다. 굉장히 긴 영원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순간 겁이 나서 한 발을 물러섰다.

  “팔 아파요......” 내가 모기 소리만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는 내 손을 놓아주고 내가 내민 돈을 땅바닥에 패대기치듯 집어던졌다. 

   너무 놀라 그를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의미로 환원할 수 없는 모멸감이 느껴졌다. 그가 쿵쿵거리며 시야에서 멀어지자 나는 쪼그려 앉아 돈을 주웠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어깨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할머니였다.

  “고이연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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