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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 양윤희 Jun 18. 2023

마법의 통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메타픽션

*색즉시공 공즉시색     

    

외가는 조상 때부터 불교를 믿어왔기에 어머니와 이모는 당연히 절에 다녔고 그래서인지 안방 한편에는 불교 경전이 잔뜩 꽂혀 있었다. 글자란 글자는 모두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어머니의 문갑 책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늘색 표지에 다소 촌스러운 글씨체로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이 염주 알 꾀듯 쏟아져 내리는데 그 주문들을 사이에 수리수리 마하 수리라는 글자도 있어서 화들짝 놀랐다.‘불교는 마법을 가르치나?’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금강경, 아함경, 지장보살경, 대품반야경이라고 쓰인 책들을 손가락으로 짚어보며 이 글들 속에는 어떤 사연이 들어있을까 궁금했다. 집안의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한숨에서 우울함의 정체를 선별하고 부모의 종교에 향수를 느끼니 말이다. 불교는 내게 신비한 철학처럼 느껴졌다.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삶의 비밀 같은 것을 캐고 싶었다. 시험이 끝나 일찍 집에 귀가한 나는 망중한의 기분으로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까만색 자개농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옆 문갑에 진열되어 있는 금강경에 다시 눈이 갔다. 경전을 펼치니 위쪽엔 알아듣지도 못할 염불이 세로로 늘어져 있고 아래 주석처럼 설명이 되어 있었다.... 공즉시색... 색즉시공... 없다는 것은 무릇 있는 것이요,,, 있다는 것은 무릇 없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의미는 뭘까? 뭐가 있고 뭐가 없다는 것일까...... 나는 한 동안 집중을 하고 책을 노려보다가 거실로 갔다. 마침 할머니와 방울 할머니가 차를 드시며 얘기를 하고 계시는 중이었다. 나는 할머니들께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뭐예요?” 하고 물었다. 두 분의 할머니는 뜬금없는 질문에 넋을 잃으셨다. 

   “아가, 왜 그걸 묻누?” 방울 할머니가 물으셨다.

   “그냥 궁금해서요...... 꼭 알고 싶어요.” 두 분의 할머니는 잠시 마주 보더니 내게 금강경 옆에 있는 대품반야경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 방으로 다시 내려가 초록색 대품반야경을 가져왔고 그걸 펼쳐 놓자 두 분의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아가, 여기에 등불이 있다고 하자. 너도 알지? 텔레비전에 나오는 호롱불 같은 것 말이다. 그 등불이 밝혀 있다가 ‘호’ 하고 불면 꺼지지?”

   “네......”

  “꺼진 후에 네가 다시 불을 붙이면 호롱불은 다시 켜질 것이다.”

  “네......”

  “그럼 ‘호’하고 끈 불은 어디로 갔느냐?”

  “네?......”

웃으며 내게 물어보시는 할머니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머리가 아뜩해지며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촛불을 상상하며 애써 쉬운 유추를 하려 했지만 꺼진 등불이 기름으로 다시 침잠했는지 허공에서 녹았는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끝을 흐렸다. 

방울 할머니께서 정리를 해 주셨다. 

  “아가, 등불에 불이 밝혀있지 않을 때 우리는 빛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없는 게 아니지..... 부싯돌과 기름의 인연이 잠시 멈춘 상태로 있는 것뿐이다. 그 둘을 부딪치면 불이 붙지...... 허공에서 불이 난다는 것은 신비이다. 부싯돌과 기름의 인연(因緣)에 의해서 무언가 다른 것이 생겨난 것이야...... 불이 켜지지 않은 상태를 우리는 공(空) 한 상태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인과(因果) 들이 아직 발현만 안 됐을 뿐 짱짱하게 존재하고 있어. 비어 있는 게 아니란 얘기야. 우리는 불이 켜진 상태를 색(色)의 상태라고 말하지...... 색은 차 있다는 것이거든. 하지만 켜진 등불은 반드시 그 빛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언제 든 꺼질 수 있단다. 꺼질 수 없는 것은 등불도 아니지. 없는 것은 있는 것의 기반이요, 있는 것은 곧 없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둘은 결국 같은 것이지...... 좀 더 크면 이해할 것이다.”

    두 분은 소리 내어 웃으셨고 그 웃음 때문에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뭘까? 도대체?’ 할머니들의 유유자적한 모습이 이상스러웠다. 

나도 꼭 모든 걸 알아낼 테야...... 책을 열심히 읽어서........ 두 분의 이야기는 뜬구름 같이 들렸지만 바다처럼 깊은 앎에 대한 여유가 존경심을 일게 했다. 기대고 있는 큰 나무 같은 우리 할머니......                


                                *마법의 통     


    해가 바뀌고 시간이 가면서 우리 둘은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그 당시 나에게 사랑은 몸이 떨리고 열이 오르는 몸살감기와 비슷하게 다가왔다. 옆방에 아저씨가 있다고 생각하면 입술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밥상에서는 먹는데 집중이 되지 않았고, 학교에 가면 빨리 집에 오고 싶고, 집에 있으면 동생 방으로 건너가 아저씨와 얘기를 하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건 좋았다. 헤르만 헤세,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유물론...... 무엇이던 우리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책을 좋아하던 나와 알파라는 문학 서클에 가입한 아저씨의 이야기는 끝이 없을 듯했다. 어느 날 아저씨가 나에게 까만 노끈으로 복사해 묶은 단편 소설 한 권을 읽으라고 주었다. 가을 축제 때 문집에 내야 할 글거리로 서클에서 정한 소설이라고 했다. 그가 내게 왜 그 소설을 내밀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상스럽다. 아마도 그 당시 책에 푹 빠져있는 내게 무언가 생각할 것을 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자신이 문학토론에서 주장하고 싶은 무신론과 사랑에 관한 담론을 내게서 확인받고 싶었을까? 여하튼 그가 읽어보라는 소설을 나는 밤늦게 까지 탐독했다. 재미있고 신비로웠다. 아저씨는 내게 인류의 조상이 짝짓기 대상을 어떻게 찾았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여고생인 나에게는 어렵고 이상한 질문이었지만 생물 시간에 다윈의 진화론이나 멘델의 유전학을 공부하며 어느 정도 교배나 번식에 대한 지식을 갖추었기에 얼굴이 달아오르지도 않았다. 나는 아주 지적인 문학소녀로 인정받고 싶어서 아저씨가 묻는 질문에 세련되게 응답하기로 했다. 

   “맘에 드는 예쁜 상대를 쫓아다녔겠죠......”

   “그러니까 원시인의 눈에 예쁘게 보인 상대는 누구였을까? 그게 궁금하다는 거지.”

   “아니 아저씨는 그걸 질문이라고 하세요? 원시인의 눈에는 예쁜 원시인이 좋았겠죠! 뭘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셔요?”

   질문이 장난 같아서 맘이 상했다. 

   “역사시대 이전 인류의 짝짓기에 대한 생물학적 기록은 없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자연계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연구해서 짝짓기의 진화적 기원을 추적했지. 자연계 동물들의 가장 큰 욕망은 생존과 번식이었을 거야. 아마 번식을 위한 짝짓기가 주된 원동력이었을 텐데...... 이를 위해 동물들은 경쟁을 해야 했지...... 그들은 무얼 가지고 경쟁했을까?”

   갑자기 짝짓기라는 단어가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과 이상한 설렘이 뒤죽박죽 되어 그다음 이야기로 이어지지가 않았다.

   “힘 아니에요? 성적표를 받을 리는 없고...... 뭔데요?”

   “그러니까 그걸 알아보기 위해 이 단편을 읽어보란 말이야......”

아저씨가 내민 너덜너덜한 묶음 책은 영미소설 모음집이었고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이 접혀 있었는데 멜라머드의‘마법의 통’이라는 단편 소설이었다. 제목이 내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 마법이 잔뜩 들어 있는 통이라니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마법의 통속에 동물들의 짝짓기 경쟁 수단이 들어있단 말이야? 

    책을 보는 것에 관한 한 성질이 급했던 나는 얼른 그 낡은 책을 들고 내 방으로 건너가 침대 위에 펄썩 누웠다.

    『마법의 통』은 총망 받는 훌륭한 랍비 레오핑클이 중매쟁이 살즈만을 만나 결국은 그의 타락한 딸 스텔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다. 레오핑클이 신붓감을 찾으려는 것은 결혼을 하면 더 쉽게 신도를 끌어 들일 수 있다는 지인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는 직업 중매쟁이 살즈만에게 이를 부탁하고 그로부터 여러 여자들을 소개받는다. 그러나 소개받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핑클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 과부이거나 노처녀 그도 아니면 나이 어린 절름발이다. 성직자의 위신을 세워가며 이들 모두를 그럴듯하게 거절하고 핑클은 극도로 우울해진다. 이렇게 자신의 기분이 착잡해지는 이유는 뭘까... 그는 살즈만이 꼭 맞는 신붓감을 데려오지 못해서 그럴 거라고 애써 중매쟁이 탓을 하지만 내심 마음이 개운치 않다. 이제껏 애써 감추고 있었지만 어쩌면 자신은 중매에 맞지 않는 ‘속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에 대해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살즈만이 다시 찾아온다. 그는 얼마 전 핑클이 나이가 많아 거절했던 여자가 자신의 실수로 나이가 잘못 기재된 것이라 사과한다. 나이만 빼면 최상의 완벽한 신붓감이었으니 얼른 다시 만나 보라고 말이다. 릴리 허쉬혼... 지적이며 부자이고 훌륭한 자식과 가정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여자다. 레오핑클은 그런 낙원 같은 여자가 왜 여적 시집을 가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이유는 당신처럼 최고를 원하는 특별한 여자이기 때문이지요..”라고 살즈만은 비꼰다. 그들은 데이트를 하고 핑클은 릴리가 광적인 신앙에 사로잡혀 랍비라는 판타지와 결혼하려는 것임을 알게 된다. 자신이 신도를 끌기 위해 결혼하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여인의 태도에 수치심과 역겨움을 느끼면서 그는 공황상태에 빠져 든다. 자신도 그녀처럼 무언가를 보상받기 위해 결혼하려는 것이니 릴리와 레오핑클은 욕망에 관한 한 똑같은 속물이었다. 이제 그는 신을 사랑하는 것도 인간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라는 자책감, 그래서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못한다는 진실과 대면한다. 핑클은 펑펑 운다. 

   그 후로 레오핑클은 바뀌게 된다. 사랑의 절실함을 느꼈기에 더 이상 중매쟁이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살즈만은 사랑도 찾아 줄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처녀들의 사진이 든 또 다른 봉투를 놓고 쏜살같이 사라진다. 처음엔 봉투를 쳐다보지도 않다가 얼마가 지난 후 핑클은 봉투를 펼쳐보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한 여자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녀는 삶에 찌들고 고통받는 듯 애처로운 얼굴을 했지만 기존의 다른 여성들과는 다른 친근감과 묘한 매력이 풍겼다. 레오핑클은 사진에 사로잡혀 중매쟁이에게 그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런데 중매쟁이는 화들짝 놀라며 한사코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여인은 가난하고 비천한 자신의 딸 스텔라인데 사진은 실수로 봉투에 들어간 것이며 고귀한 랍비 지망생과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짐승 같은 삶을 사는 천한 아이라고 말이다.   

    여기까지 내리읽으면서 아저씨가 왜 내게 이 소설을 읽으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설의 결론은 뻔해 보였다. 분명 핑클은 스텔라와 사랑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받고 있는 애처로운 얼굴과 짝짓기를 연관 지으란 것인가? 아니면 신을 대변하는 랍비이니 자신보다 낮고 천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고결한 사랑에 빠졌다는 것일까? 둘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 벌렁 누워 떨리는 마음을 안고 꽃을 든 채 스텔라에게 다가가는 핑클을 상상해 보았다. 빛바랜 봄꽃처럼 예쁜 스텔라를 나로, 바보 같은 랍비 지망생을 아저씨로 떠올렸다.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 《그는 그녀의 얼굴에 깊이 감동했다. 봄꽃같이 어리면서도 뼛속까지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즐길 대로 즐긴 것 같은 남루함에 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에게 끌렸다》......


                    *짝짓기의 진화적 기원     


   한참을 책에 관한 몽상에 빠져 있는데 외할머니가 오셨다. 그렇게 할머니를 좋아하는 내가 할머니가 오신 줄도 모르고 방 안에 가만히 누워있기는 처음이었다. 할머니도 이상했는지 이모의 환대를 받으신 후 곧장 위층 내방으로 오셨다. 문을 활짝 여시며 “아가, 자냐?” 하고 외치시는데 뜻밖에 할머니의 등장에 나는 멍한 얼굴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 뒤로 아저씨가 동생 방에서 느린 몸짓으로 걸어 나와 인사를 했다. 나는 방금 전에 읽은 랍비의 상흔이 아저씨와 연루되어 잠시 현기증이 났고 사랑하는 할머니보다 그 뒤에 서있는 아저씨한테 더 눈이 갔다. 할머니는 깊은 눈빛으로 아저씨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안 하신 채 아래층으로 내려가셨다. 진한 가을이었고 익은 은행이 코를 아리게 하는 십일월 초승이었다. 할머니가 오셔서 찹쌀 전과 매실 부꾸미를 부치실 때가 된 것도 모르고 나는 뭘 하고 있었던가......

   그날 밤, 마당에는 들기름 냄새가 하늘을 메웠다. 마당에 무쇠 솥을 걸고 할머니께서 하얀 행주치마를 두르셨다. 찹쌀 전은 노란 좁쌀가루로 꾸미를 하여 두툼하게 부쳐지고, 작년에 담은 삭은 매실을 으깨어 수수부꾸미 속에 소를 넣었다. 언니와 동생들이 마당에 파라솔 주변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부모님과 이모는 할머니가 부치는 전을 감탄스럽게 바라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나는 그 틈을 타 아저씨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밤 나방이들이 나풀거리며 옥상 위까지 날아올랐다. 저녁이 익어 밤으로 넘어가는 이상한 시간이었다. 마음이 얇은 종이장이 되어 가을바람에 펄럭거렸다. 나는 아저씨께 낮에 읽으라는 소설은 다 읽었고 별반 재미가 없었노라고 투덜대었다. 아저씨는 내게 사랑은 어디서 오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눈이 아프도록 아저씨를 째려보며 사납게 대꾸했다. 아저씨는 얼굴이 붉어지며      

   “넌 좀 다른 생각을 할 거 같아서...... 물어보고 싶었다.” 한다.

   “그런 아저씨는 사랑이 어디서 오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짝짓기의 수단이 뭐라고 그 책에 나와 있다는 거예요?” 

   이 당돌한 질문에 아저씨는 조금은 떨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학교에서 교양 과목으로 유전학을 듣고 있거든?”

    “그런데요?”

    “그게 말이야. 유전학도 사랑과 연관이 되는 거야. DNA는 네 가지 핵산으로 이루어진 이중의 나선 구조인데 이 네 가지 핵산이 꼭 특정 분자 하고만 결합하거든. 아데닌은 티민과, 구아닌은 시토신과...... 다른 것끼리는 결합을 안 한단 말이지.”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예요?”   

    “옛날 그리스에 아리스토파네스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것이 에로스 즉 사랑이라고 말했지. 그는 인간이 태초에는 머리가 둘, 팔이 넷, 다리가 넷 달린 자웅 동체였다는 거야. 그런데 너무 완벽해서 제우스가 인간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반으로 쪼갰다는 거지.”

     “쪼개요?”

     “그래......”

     “쪼개서 머리 하나에, 팔다리가 둘 씩 된 거라고요?”

     “그렇지! 쪼개진 존재라서 서로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거야. 옛날에 완벽했을 때의 향수가 그리워서......”

     “그게 이 소설과 어떻게 연관되는데요?”

     “레오핑클의 잃어버린 반쪽은 스텔라라는 거지. DNA의 네 가지 핵산도 선호(preference)가 있듯이 말이야. 자신의 반쪽을 찾는 데도 반드시 무언가 촉매가 있는 거야. 그런데 어떤 요소가 어떤 요소를 왜 선택하는지는 알 수가 없어...... 그걸 알면 인위적인 짝짓기가 가능할 텐데...... 그건 인간이 판단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거든......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치명적인 매력, 짝을 선택하는데 작용하는 강력한 끌림, 생물학적으로는 선호, 그것이 시간의 우연과 결탁하여 두 존재를 묶으려 할 때, 둘은 사랑에 빠지는 거야..... 사실 생각해 보면 랍비와 천한 여자는 어울릴 수 없잖아......”

      “그들이 떼어진 반쪽이란 거예요?”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랍비와 천한 여자는 우리가 붙인 이름이고, 매력적인 젊은 여자를 갈망하는 허영기 가득한 젊은이와 가난에 지쳐 남루하고 초라하지만 봄꽃처럼 자유분방한 여자가 그 둘의 본래 이름이라고...... 그게 신이 본 그들의 실체거든......”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려는, 그래서 세상에 또 다른 신비한 유전자를 내보내려는 신의 의도를 이루어주는 곳이 바로 마법의 통, 즉 삶이란 거야.” 

      “그러니까 아저씨는 제가 생물 시간에 배운 생존과 번식이라는 인류 진화의 두 축이 선호와 경쟁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때 촉매가 되는 욕망은 실은 신이 발현시키고자 하는 세상을 위한 도구라는 건가요? 만약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끌림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렇지. 사랑은 신의 의지를 펼치는 미끼야. 그때의 감정은 인간이 통제할 수가 없거든.”

   그는 무언가 동의를 구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할머니가 해주신 사랑론에는 위배되는 것이었다. 할머니에게 강렬한 끌림은 인간이 가장 조심해야 할 골치 아픈 영역이었다.

   마당정원에서 여동생이 옥상을 향해 빨리 내려와 수수부꾸미를 먹으라고 소리쳤다. 초여름 벌레들이 나풀나풀 날아다니고 마당 한가운데서 먹는 전과, 부꾸미와, 나물들은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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