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코로나시대의 메타픽션
*첫 만남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져 내리던 사월 첫날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째, 이제야 겨우 낯섦을 거두어 냈다고 해야 할까... 중학교 친구들과 헤어져 고등학교에 오면서 얼마나 마음이 춥고 애가 탔는지 모른다. 그나마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인 현이가 유일하게 같은 여학교에 배정을 받아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교실은 일층이고 현이는 사 층이라 점심시간 빼고는 볼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주었다. 모르는 것은 언제나 어렵고 두려웠으니까. 할머니께서는 내게 옛날 중국의 여희 이야기를 해 주셨다. 여희는 국경을 지키는 자의 딸이다. 진나라 포졸들에게 잡혔을 때 그녀는 가족과 떨어지는 것이 두렵고 서러워 눈물로 옷깃을 적시며 반항하였다. 그런데 진나라 궁전에 들어가 편안한 침대에서 누워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자 옛날에 자기가 울고 불었던 것을 부끄럽게 여겨 시까지 지었다는 것이다. “새 친구들과 곧 정들게야... 더 좋은 인연이 있을 거고... 울 아가가 정이 많아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두렵고 슬픈 게로구나...... 하지만 누가 아누? 여희처럼 나중에 서글퍼한 것이 너무 부끄러워 후회하게 될지?”
친구들과 거리를 좁히고 다시 마음의 평안을 얻은 것은 그 당시 텔레비전에서 ‘장희빈’을 방영했기 때문이다.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옛이야기 덕분에 역사에 나오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손바닥 보듯 환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장희빈 일화는 어느 야사에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흔한 얘기지 않은가. 나는 신 윤복의 ‘씨름하는 사람’이 삽화로 그려 있던 ‘이조 오백 년 야사’를 책가방에 넣고 다니며 친구들과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환상의 세계에 빠졌다. 교복에 짧고 빨간 넥타이를 매던 우리는 넥타이를 빼서 머리에 댕기처럼 질끈 동여매고 ‘예, 마마......’를 반복하며 서로서로에게 벼슬을 내렸는데 제일 인기 벼슬은 역시 무수리였다. 자유롭고 수다스럽고 천박하게 지껄여댈 수 있으니 무엇이 부럽겠는가...... 나는 왜 후궁들끼리 그렇게 질투를 하고 싸워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리는 모두 국사 선생님께 푹 빠져있었다. 젊고 잘 생긴 미남 선생님이 아니라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 넘은 노신사셨다. 선생님은 역사를 마치 손바닥에 장기판을 올려놓고 말을 움직이듯 논리 정연하고 이치에 맞게 설명하셨고 그 여백에는 반드시 유머러스한 일화를 부록처럼 끼워 넣으셨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호랑이 젖을 먹고 자랐다는 둥, 동천왕의 애첩인 제 꾀에 넘어간 관나 부인의 이야기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러브 스토리를 해 주실 때마다 이야기에 한 발 앞서 먼저 얼굴이 붉게 상기되시는 선생님의 특이한 제스처였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는 국사 선생님께 흠뻑 빠졌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친한 친구들은 모두 국사 선생님을 사모하여 매번 서로 번갈아 가며 미제 봉봉 사탕을 교무실 책상에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아무도 질투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생님의 따사로운 눈빛과 칭찬이 머무르는 친구에게는 등짝을 때려가며 환호하였다. 친한 친구들과 한 남자에게 시집가서 한 집에 살면 얼마니 좋을까! 하는 생각에 찬반 투표를 하기도 했다.‘일부다처제’ 얼마나 멋진가...... 그건 아마도 어릴 적부터 할머니께서 해 준 이야기 속 처첩들이 늘 사이가 좋은 탓이었나 보다.
“그래서 장나인이 중전이 되는 거야?”
“그럼, 경종의 엄마야...”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은 내 옆자리로 몰려와 어제 본 사극의 내용을 요약하고 그다음 전개될 내용을 간추려 들었다. 교실 창으로 햇볕도 스며들어와 몸을 길게 누이고 내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따뜻하고 향기로운 분꽃내음과 라일락 향기, 친구들의 종다리 같은 재잘거림......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종을 칠 때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 등나무 아래는 이야기들이 맴돌고 있으리라.
아 참! 사월의 첫날이라고 했던가?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그날 나는 우산 없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바람에 온몸이 홀딱 젖었다. 신경질적으로 벨을 누르고 집안에 들어서자 물이 줄줄 흐르는 내 모습을 꽤 여러 사람이 보고 있었다.
“얘가 우리 집 큰 애야, 여고 1학년... 문영이”
팽팽 돌아가는 부엉이 오목 렌즈에 볼이 빨간 낯선 사람이 날 바라보았다.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고집이 세고 답답해 보였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안경이 두꺼워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순간 왜 그렇게 참을 수 없는 뾰로통한 마음이 들었을까. 낯이 설어서? 아니면 비를 맞아 엉망진창이 된 내 몰골 때문이었을까? 둘 다 아닌 것 같다. 이후에도 난 항상 그 사람 앞에 있으면 화를 향해 감정이 움직였으니까...... 갑갑하고 그냥 계속 감정에 신경질이 났다.
그때부터 우리는 한 집에 살게 되었다. 대가족이었다. 우리 가족 다섯 명, 수진 이모와 햿니, 아저씨, 강아지 포미, 그리고 한 번 오시면 두어 달식 머무르셨던 외할머니, 수영할머니, 방울할머니.
* * *
어릴 땐 눈에 보이는 외관으로 너무나 자신 있게 좋고 싫음을 판별했다. 내게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이고 추한 것은 나쁜 것이었다. 팥쥐 엄마나 뺑덕어멈, 장화와 홍련을 물에 빠뜨리러 데려가는 의붓 엄마의 머저리 아들, 그들의 외관은 어떤 동화책에서 보아도 흉측하고 비뚤어져 있었다. 우선 얼굴엔 너 나 없이 큰 점이나 사마귀가 있고 이빨은 뻐드렁이에 음침하고 사악하다. 혹여 멋진 왕자나 아름다운 공주가 추한 몰골을 하고 있다면 그건 어김없이 마법에 걸렸을 때뿐이었다. 그리고 그 마법은 책의 뒷장에서 휘황찬란하게 변신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서는 마법은 있으되 풀림이 없다는 것을 삶을 잘 관찰한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밉고 추한 것은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한다. 그걸 변신시키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우리의 사유이다.
어머니가 남동생의 공부 선생님으로 가정교사를 두겠다고 말했을 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영상은 주근깨 혹은 여드름 자국이 움푹 파인 팽팽 돌아가는 안경을 쓴 빡빡머리의 남자 대학생이었다. 왜 그런 영상이 떠올랐는지 지금도 이상스럽다. 낯 선 것을 몹시도 불편해라는 성격이었기에 화를 내며 반대를 했다.
“싫어, 모르는 사람이랑 어떻게 한 집에 살아...”
어머니는 내 이런 반응을 직감했는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딸아이의 감정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고모할머니가 그러는데 아주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라더라... 집안도 뼈대 있고, 성씨가 예전엔 정승 집안이야. 어쩌겠니.., 네 동생 좋은 고등학교 보내려면 할 수 없지 않니?”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까까머리 해맑은 아들의 고교 입시를 벌써부터 걱정하고 계신 거다. 고모할머니의 시누이 댁 아저씨라고 했다. 여하튼 어머니의 짤막한 설명을 뒤로한 채 새로운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우울한 고투를 해야 했다.
*향기로운 일상
이모의 이름은 수진이었다. 어머니와 고종사촌 지간이니 나와는 오촌인 셈이다. 수진 이모는 어릴 때 중국에서 들여온 옷이나 서양과자만 먹을 만큼 귀이 자랐지만 시집가서 오 년 만에 남편을 잃었다. 눈이 왕방울처럼 크고 뚱뚱한 이모에게는 두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하나는 결벽증이고 다른 하나는 가끔 오르는 신기였다. 우선 이모의 결벽증은 상식을 초월했다. 손에는 늘 행주가 들려있고 가는 곳마다 청소를 하고 다녔는데 실오라기 같은 탑세기 하나에도 흥분을 하고 소리를 쳤기에 우리들은 모두 살얼음판을 내딛듯 살살 까치발을 띠며 불안해했다. 장롱이고 찬장이고 할 것 없이 그야말로 은쟁반처럼 반짝이며 청결해야 했고 속옷을 꺼낼 때도 옆에 있는 다른 옷의 각을 흩트리면 서랍장을 홀랑 쏟아내어 다시 개키곤 했다. 청상과부가 되자 이모는 하나뿐인 딸을 고모할머니께 맡기고 새 시집을 갔다. 하지만 새 이모부의 잇따른 사업 실패 탓에 두 사람은 항상 불협화음을 이루었고 잦은 손찌검에 신물이 난 이모가 어느 날 옷 보따리 한 개만 달랑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어머니와 이모는 어릴 적 한 집에서 자라서인지 사촌 지간인데도 우애가 돈독했다. 이모는 새 이모부한테 하도 맞아서 허리가 부러졌다고 울고 불면서 누워있기만 했다. 외갓집 식구가 모두 모이고 외할머니, 고모할머니의 오랜 상의 끝에 이모는 새 이모부와 갈라서고 우리와 함께 살기로 했다. 어머니는 늘 일로 바빠서 우리를 살뜰하게 돌봐주지 못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외할머니가 잘 됐거니 하신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기쁜 일이었다. 수진 이모와 같이 사는 게 좋았다. 이모한테는 늘 비누 냄새와 코티 분가루 냄새가 진동했고 집안은 항상 청결했으며 명랑함이 감돌았다. 온 세계가 향기로워지고 게다가 언니까지 생기지 않느냔 말이다. 빳빳이 다림질한 옷들, 풀 먹인 이불 홑청, 부엌에서 끓고 있는 김칫국, 집안일을 하며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너무 그립다. 이모는 삶의 주변을 꽃밭처럼 아름답게 가꾸었다. 엄마는 그래야 하는 것이다. 엄마의 손놀림과 발걸음으로 온 집안에 생기가 일어난다. 엄마의 한 걸음에 꽃이 피어나고 엄마의 손놀림은 행복의 마법 가루를 흩뿌린다. 꽃처럼, 봄기운처럼, 온기가 아지랑이가 되어 모락 거렸다. 그 당시 우리 집 유리창은 늘 반짝거리고, 노란 행복이 거실 바닥에 깔려 있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낙양성, 십리 하에, 크고 작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냐......”
이모가 일을 하며 노래를 부르면 어느 땐 쫓아다니며 박자를 넣었지만 심기가 불편하면 신경질을 부리고 투덜거렸다. 어느 봄날이었던가. 이모가 거실 마룻바닥에서 양말을 꿰매며 일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방에서 단어를 외우던 나는 노랫소리가 귀에 거슬려 거실로 나가 이모 옆에 앉았다.
“시끄러워 죽겠어. 이모! 공부 안되잖아.”
이모가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나를 둥그런 눈으로 쏘아보듯 바라보았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네 년은 공부 안 해도 박사 돼...... 남자랑 눈 맞아서 명 재촉만 하지 말어.”차가운 소름이 확 끼쳤다. 허공을 보는 건지 내 눈을 보는 건지 이모와 눈이 맞추어지지가 않았다.
이모의 하나뿐인 딸 혜정언니는 성적이 좋지 못해서 야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는 언니를 줄임말로 햇니라고 불렀다. 그 당시 야간 학교가 다 그렇듯이 언니는 오후 느지막이 등교하여 열 시가 너머서야 집에 돌아왔다. 밤 열 시쯤이 되면 우리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저 먼 차도를 바라보며 언니가 오기를 기다렸다. 초여름 마당에서 라일락 향기가 부유하여 옥상까지 가득 메웠다. 코가 메워져라 흘러 들어오는 꽃향기와 함께 가끔 나방이들이 나풀나풀 날아들었다. 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박혀있었다. 빛나는 까만 밤이 주는 온화함이란 여름밤의 정서와 어울리면 거의 천국 같은 기분을 주는 법이다. 밤 융단 위에 다이아몬드처럼 알알이 박힌 별들을 보며 마치 그것들이 외할머니의 곤색 빌로드 숄 가장자리에 달린 보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짝, 반짝, 반짝....... 갑자기 어떤 사유가 떠올랐다. 이렇게 진하고 압도적인 밤의 정경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혹시 깊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면 별과 시간의 검열에서 벗어나 늙지도 죽지도 않는 것이 아닐까?
옆에 아저씨가 있었다. 아마 내가 마음속의 생각을 쫑알거리며 얘기한 것 같다. “산속 깊이깊이 들어가면 별과 시간의 검열을 피할 수 있냐고?”
같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더 잘 보이지...... 바보야......”
별빛을 조명삼아 굵은 안경테 너머로 소박하게 웃고 있는 마음이 보였다. 나는 한참 동안 아저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 신이 나듯 들뜨고, 말하고 싶고, 같이 있는데도 또 같이 있고 싶었다.
* * *
그 당시 저녁 메뉴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에 군침이 돈다. 옹기색 된장 뚝배기에 이모는 늘 뽀글 된장을 끓여주셨다. 조치원에서 고모할머니가 보내주신 충청도식 된장의 맛은 씁쓰름했는데 계란찜과 비벼먹으면 달착지근한 감칠맛 때문에 밥이 금방 없어졌다. 감자채볶음과 소시지 부침이 올라오는 날 우리들의 젓가락질은 바빠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저씨가 무얼 먹는지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아저씨는 늘 배가 고파보였고 숟가락에 유난히 밥을 듬뿍 올렸다. 들기름에 잰 김에 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 담고 무생채를 곁들여 볼이 메이도록 싸 먹던 아저씨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시골에서 자라서 소시지 같은 가공식품은 별로 손대지 않았지만 가끔 어머니가 간식으로 내주셨던 스펀지케이크에는 두 눈을 반짝이며 신나 했던 것 같다. 타고난 모성본능 때문인지 나는 아저씨가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즐거웠다. 충청도 태생인 아저씨는 말투가 늘어지고 행동도 유달리 답답했다. 눈이 많이 나빠서 아주 두꺼운 오목렌즈를 썼는데 원시까지 겹치는 바람에 밖에서 바라보는 우리는 아저씨와 눈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성품은 조용하고 성실했으나 작은 눈에 고집이 서려있었다. 남동생은 아저씨가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공부를 가르치자 이 방 저 방으로 도망을 다녔다. 어느 날 아저씨는 학교에서 실험을 하다가 끊어진 반도체 쇠뭉치를 가져왔다. 어른 손바닥 길이만 한 얇은 쇠막대기였는데 그걸 뒤춤에 감추고 도망 다니는 남동생을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내가 피아노에 열중해 있으면 유독 자주 내 방 문간에서 동생을 찾아 댔다. 나는 그가 동생을 찾는다는 핑계로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동생방과 내방은 복도를 중심으로 마주 보았다. 나는 햇니와 한 방을 썼고 남동생은 아저씨와 같은 방을 썼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첫 기말고사를 치를 쯤이라 신경이 많이 쓰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늦게 까지 공부를 하는 아저씨에게 지기 싫다는 오기가 들었다. 불이 꺼진 어두운 복도에 나와 서서 동생 방을 바라보면 문틈으로 환하게 불빛이 새어져 나왔다. 그 불빛은 아저씨가 아직 자지 않고 책을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 불이 꺼질 때까지 나도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건 정말 고통스러운 도전이었다. 그 방은 좀처럼 불이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귀를 의지하고 단어를 외우거나 수학 문제를 풀다가 자정에 이르게 되면 어김없이 졸음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때도 동생 방의 전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길고 긴 유랑 같은 밤이었다.
* * *
순박하고 겁이 많은 남동생은 중학교에 가서도 혼자 화장실을 가지 못해 요강을 놓아줄 만큼 둘챙이였고 막내인 여동생은 죽으라고 나를 쫓아다니며 온갖 참견을 다하는 귀찮은 존재였다. 늘 그렇듯이 우리들이 마루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오뉴월 호박처럼 나뒹굴고 있는데 아저씨가 학교에서 돌아와 거실로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왔다. 부엌에서 이모와 혯니가 옥수수를 삶으며 다투는 소리가 간혹 들려왔다. 나는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이라는 책에 빠져 있었고 남동생은 선풍기에 바싹 입을 갖다 대고 ‘아......’ 소리를 내며 목소리가 떨리는 바이브레이션을 즐기고 있었다.
“심심해...”
여동생의 한 마디에 우리는 모두 동의하듯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저씨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내가 노래 가르쳐줄까?”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은 모두 아저씨 옆에 다가앉았다.
“무슨 노래요?” 내가 물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배시시 웃으며
“니들한테는 금지곡인데......”한다. 우리 셋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싹 다가앉자 아저씨는 지휘하듯 두 팔을 흔들면서
“첫날밤에........ 첫날밤에....... 첫날밤에....... 첫..... 날... 밤..... 에........ 그냥 잤네.”
우리 모두는 박장대소를 하고 부엌에서 옥수수를 찌던 이모와 언니까지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 상황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여 저절로 피아노 건반에 손이 갔다.
‘중 가리가리, 중 가리 가리....’
‘우우우우우.......’
여동생은 우우 소리를 내며 코러스를 넣고 남동생은 곱사춤을 추며 중가리가리 중가리가리를 계속 염불 외듯 외쳐 댔다. 반복되는 곡조였기에 나는 그 음계를 잡아 피아노를 두드렸다. 언니가 양은 사발에 옥수수를 가지고 나오다가 젓가락으로 그릇을 때리며 합류했다. 우리들은 정말 굉장한 품바 떼였다.
*화 과자가 실어 나른 사랑
어느 날 아버지께서 명동의 꽤 유명한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신 뒤 화 과자 네 개를 선물로 받아 오셨다. 빨간 문향이 촘촘하게 새겨진 종이 껍질에 두툼한 월병이 싸여 있었다. 거기서 나는 냄새는 외갓집 양단 이불을 연상케 했다. 생강이나 계피와 비슷한 화함이 강렬한 단향과 섞이어 새롭고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하는 향기였다. 마침 시험 때라 마루에 큰 상을 펴고 우리 셋과 햇니, 아저씨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술이 거나하게 취하시어 기분이 좋으신지 우리들 옆에 앉아 차례차례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월병을 상위에 올려놓으셨다.
“자, 우리 강아지들, 이거 한 개식 먹고 공부해라...... 우리 맏딸 이거 좋아하지?”
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각자 한 개씩 집어 들었고 뒤이어 언니도 한 개를 집어 들었다. 이제 상 위에 동그라니 한 개의 월병이 놓여 있었고 아버지는 웃으시며 그 나머지 한 개를 내 손에 꼭 쥐어 주셨다. 그때 갑자기 마음이 저렸다. 아저씨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맘에 두지 않는 듯했다. 막내 동생이 포장지를 북 뜯어 한 입을 베어 물었다. 향이 진했다. 언니와 남동생도 자기 몫을 먹었다. 나는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부러운 듯 우리를 바라보다가 얼른 책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가 애처로웠다. 내 화 과자를 나눠주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옆에 계시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께 나중에 먹겠다고 말씀드린 뒤 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마 그때부터 아저씨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화 과자가 사랑으로 변신하여 그에게 간 것이다. 그날 밤, 모두가 잠든 새벽녘에 공부를 하다 말고 남동생 방 앞으로 걸어갔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니 아저씨도 잠이 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숨을 죽인 후에 살짝 노크를 했다. 잠시 후 그가 문을 열고 나와서 내게 “왜?” 한다. 나는 빨간 봉지의 월병을 아저씨께 내밀며 “배탈이 나서 못 먹어!”하고 뾰족하게 쏴 부쳤다. 가만히 월병을 바라보던 아저씨가 멍하니 나를 쳐다보다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그는 슬그머니 월병을 손에 쥐었다. 나는 달빛처럼 따뜻한 내 마음이 좋았다.
누구나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게 마련이다. 사랑을 감성이나 우연이 아닌 생각으로 공유하고 싶었다. 사실 아저씨와 나의 교감은 서로의 문집에서 시작된 것이다. 여름이 가을로 익어갈 무렵 학교에서 일찍 귀가한 나는 동생 방문이 빠끔히 열린 것을 보고 문득 그 방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새벽 두세 시까지 공부를 하느라 입술이 심하게 부르터 아팠지만 마치 아름다운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혼을 빼앗기는 뱃사람처럼 밤이 펼쳐진 무언의 시간 속에 그가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덕분에 성적도 많이 올랐다. 아저씨의 책상에는 많은 책이 꽂혀 있었는데 너무나 가지런히 정리가 잘 되어 무엇 하나 뺄 수가 없었다. 주로 대학 전공 서적으로 영어로 된 굵은 글씨의 원서였던 것 같다. 눈을 가녀리게 뜨고 책꽂이 왼쪽부터 오른쪽 끝까지 샅샅이 훑어보았다. 무언가 그를 알려줄 정보가 그 안에 있을 것 같았다. 어릴 적 버려진 사과 상자에서 사과를 찾는 기분으로 한 참을 들여다보다가 드디어 나는 사과를 발견했다. 연도가 굵게 인쇄된 다이어리였다. 펼쳐보니 정성 들인 문집처럼 졸졸이 글이 넘쳐나고, 시와 산문 게다가 삽화까지 덧붙은 보물 창고였다. 흥분되어 눈이 점점 커졌다.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레 한 장 한 장을 넘겨보았다. 일기장처럼 날짜와 요일이 적혀 있고 그 아래로 서간체의 글들이 빽빽한데 수신인은 모두 알파벳 S로 되어 있었다.
S여 오늘도 나는 그대를 만났노라.
그대의 따사로운 미소가 피곤한 나의
눈에 번지듯 들어와 심장까지 따스하게
적셔주었노라...
S여, 초록이 가득한 캠퍼스 풀밭에 누워
그대를 처음으로 또렷이 바라본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워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S가 누굴까? 엄청난 호기심이 일었다. 그 후 나는 매일 같이 아저씨의 일기장을 훔쳐보았다. 재밌고 즐거웠다. 글 읽기를 좋아하는 내가 매일 풀 방구리 쥐 드나들 듯 남동생 방을 기웃거리자 어머니의 눈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사랑은 어디서 오는 걸까? 왜 우리는 어떤 사람을 그토록 알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말하고 싶고, 무엇이든 가진 것을 주고 싶고, 그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걸까......
어느 토요일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때, 일기장을 훔쳐보러 또 살금살금 동생 방으로 건너갔다. 책상 위에 일본 시집이 펼쳐 있고 하이쿠 한 수가 눈에 들어왔다.
달구경 하는 사람들
구름이 잠시
쉴 틈을 주네......
-바쇼-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오후라 책상 위 열린 서쪽 창으로 설익은 밤의 냄새가 스며들었다. 하늘은 청회색으로 물들고 그 아래로 오렌지 빛 커다란 해가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 둥그렇게 걸려 있었다. 묘한 아이러니였다. 일몰을 맞이하는 해건만 마치 떠오르는 달덩이처럼 그늘진 붉은빛에 광채를 내며 도도하게 석양 위에 걸려 있다니... 너무나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에 함몰당하여 시집에서 눈을 떼고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마치 진짜 달구경을 하며 쉬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왼쪽 어깨에 따스한 열기가 느껴졌다. 아저씨도 뒷짐을 진 채 내 옆에 서서 창밖의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는 점점 더 붉은빛으로 물들고 그 빛의 번짐 따라 우리 마음도 뭔지 모를 설레는 연정으로 함께 물드는 듯했다. 그 상황이 어색하고 답답하여 나는 불쑥 한마디 말을 뱉어 냈다.
“아저씨, 시 좀 지어 볼래요?”
그가 물끄러미 바쇼의 하이쿠를 내려다보다 한 마디를 읊었다.
붉은 석양이
잠시
사랑의 쉴 틈을 주네......
결의에 찬 얼굴로 단단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