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사계절을 지나며
얼마 전, 행복 인문학회 김용진 학회장님과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그분은 허허롭게 웃으며 한마디를 건네셨다. “황보영 박사님은 정직해서 좋아요.”
짧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여운은 온종일 마음의 수면 위를 소리 없이 떠다녔다. ‘정직’이라는 가치가 내 삶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한 화두였기 때문이다.
정직은 찬양받아야 할 미덕이라 불린다. 그러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그것은 종종 ‘손해 보는 선택’이나 ‘융통성 없음’으로 오해받곤 한다. 조금만 포장하면 근사해 보이고 적당히 타협하면 덜 다칠 수 있다. 그런 순간들 앞에서 정직은 늘 느리고 투박하며 고집스러워 보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가치를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정직이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분명한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나침반은 지름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가는 방향이 어긋나지 않았는지를 말없이 가리킬 뿐이다. 정직하게 산다고 삶이 곧바로 화려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수고와 설명을 요구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안다.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는 선택은 결국 나라는 존재의 뿌리를 흔든다는 것을 말이다.
행복 인문학자로서 나는 행복을 이렇게 정의하곤 한다. “행복이란 기쁨의 총합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어긋나지 않는 상태”라고.
정직하지 않은 선택은 당장의 편안함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살아내는 나’ 사이의 간격은 벌어진다. 그 괴리가 생기면 영혼은 혼란스럽다. 그 어떤 성취로도 채워지지 않는 생경한 공허를 느끼게 된다. 반대로 정직한 삶은 크게 웃을 일이 적을지라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밤이 깊어 홀로 남았을 때 거울 속의 나 자신과 조용히 마주 앉아 평온하게 눈을 맞출 수 있다. 그 평온함이야말로 정직이 주는 가장 귀한 보상이다.
학회장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문득 가슴 한구석에 간직해 온 기억들이 떠올랐다. 1년 전,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정동균 전 양평군수님께서는 나를 보며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 말씀해 주셨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도, 내 삶의 고비마다 만난 인연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건네곤 했다.
사실 그런 과분한 칭찬을 들을 때마다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끄러웠다. 그러나 이제 그 부끄러움 너머의 충만함과 자부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인생의 사계절을 두루 거쳐온 지금까지 나는 탄탄대로가 아닌 거친 길을 걸어왔다. 그 속에서도 ‘순수하게 살고 싶다’ 던 나의 소망이 마침내 누군가의 가슴에 닿았다는 사실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성취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선택은 나에게 정직한가?” 이 질문 앞에 서면 삶은 조금 느려진다. 하지만 방향만은 틀리지 않는다. 그 느림 속에서 비로소 나의 영혼은 숨을 쉬고 나는 고요한 평온에 가 닿는다. “무엇보다 네 스스로에게 정직하라. 그러면 밤이 낮을 따르듯 너는 누구에게도 거짓되지 않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이 문장처럼 정직은 세상을 이기는 기술이 아니다. 거친 풍랑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게 하는 고귀한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라는 토양 위에서만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지속 가능한 행복’은 조용히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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