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상처 위로 스며든 향기
퇴근길 마음 하나 내려놓지 못한 채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낮에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네 살 아이가 친구를 깨물었다. 사실 처음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고 그때도 어렵게 서로의 마음을 달래며 지나왔다. 그런데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깨무는 행동’은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사고 중 하나다. 말로 표현이 서툰 아이들이 감정이나 불편함을 몸으로 먼저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더 세심하게 지켜보고 더 빠르게 손을 내밀며, 아이의 마음이 말로 풀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돕는다.
깨문 아이도, 깨물린 아이도 모두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 없는 자리, 그 사이에서 나는 그저 두 아이의 마음을 모두 끌어안고 서 있어야 했다.
이미 한 번 상처를 받았던 부모에게 다시 같은 말을 건네야 하는 원장의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서는 또 다른 부모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일 역시 고통이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울고 싶었다.
아이들을 태우고 하원 차량을 운전하던 길, 도로 한쪽에 꽃을 파는 노점이 보였다. 식목일을 앞두고 아이들과 함께 심을 꽃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기에 나는 반가움에 차를 세웠다. 그저 ‘꽃을 사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먼저 나를 붙잡은 것은 꽃의 빛깔이 아니라 향기였다. 나는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마음 어딘가가 툭 하고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끌어당긴 꽃이 있었다. 보라색 히아신스였다. 진하게 퍼지는 향기가 마치 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던 걱정과 무거움을 살그머니 밀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그 꽃을 집으로 데려왔다. 집에 돌아와 히아신스를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놓고 물을 주었다. 방 안에 향기가 가득 퍼졌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밤, 나는 히아신스의 꽃말을 찾아보았다. 슬픔, 용서, 그리고 영원한 사랑.
밤새 방 안을 채운 향기를 들이마시며, 나는 이 꽃이 내게 건넨 말을 문장으로 옮겼다.
아이의 물림 사고로 상처 입은 두 어머니에게, 그리고 자책하던 나 자신에게 전하고 싶은 기도를 담아서.
4월의 인사 — 히아신스처럼
혜솔 황보영
4월의 첫날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는 꽃을 만났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히아신스는 소곤소곤 피어 있었습니다
슬픔이 머문 자리마다
다시 꽃은 피어나고
서운함이 쌓였던 시간 위에도
용서는 숨결처럼 스며든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절을 바꾸어 다시 온다는 것을
이 작은 꽃이 가르쳐 줍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에도
하나의 히아신스가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조금은 부드럽게
조금은 따뜻하게
그리고 끝내는 오래도록 남을 향기로
4월은
그렇게 시작해도 좋겠습니다
나는 이 시와 함께 짧은 메시지를 적어 두 분의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전했다. “어머니, 우리 아이들이 자라며 겪는 이 아픈 계절을 함께 잘 지나가 보아요. 히아신스 꽃말처럼 미안함도 속상함도 조금은 부드러워지길 기도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문 아이 어머니에게서 답장이 왔다. “원장님, 이 꽃이 지금 제 처지와 너무 닮아 마음이 울컥해요. 아이를 잘 교육시키고 있는데 죄인이 된 기분으로 울적한 심정, 원장님의 시에 담긴 히아신스의 향기가 저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상처 입은 아이 어머니의 휴대전화는 고요했다. 그 정적 앞에서 나는 불편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사랑으로 쌓아온 시간들이 순간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서운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멈춰 섰다. 내가 이토록 무거운데 상처 입은 아이와 어머니의 마음은 오죽할까.
나는 그 고요함을 억지로 깨지 않기로 했다. 상처는 때로 말보다 긴 침묵 속에서 천천히 아물기 때문이다.
꽃 향기가 번지듯 용서의 마음 또한 각자의 시간으로 스며들어야 할 테니까.
꽃 향기가 코끝에 닿는 데도 시간이 걸리듯, 용서의 향기가 그 댁의 거실까지 스며드는 데에도 분명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오늘도 내 방에는 히아신스가 피어 있다. 보랏빛 꽃이 살며시 말을 건넨다. 아이들은 자라나는 중이고 부모도, 우리도 모두 자라나는 중이라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다시 마음을 내고 사랑해 보자고.
누구에게는 즉각적인 위로가, 누구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기다림이 되는 것.
히아신스는 그렇게 각자의 속도에 맞춰 향기를 전하고 있었다.
4월이다. 지금은 조금 아플지라도 우리는 결국 다시 사랑으로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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