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냄새로 기억되는 시간들

by 빛새나

고추 방앗간,

매일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매운 고춧가루 냄새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가득했다.


외할머니댁은 경기도 시골의 살림을 접고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가게에 방 한 칸이 딸린 곳,

부엌을 개조해 만든 가게였고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해야 했다.


그곳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지냈다.

엄마는 가게 주변 시장에서 처음으로 과일 장사를 시작했다.

저녁이 되면 짐을 자전거에 싣고 가게로 가져왔다.

하지만 엄마도, 나도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자전거 뒤에 실린 짐의 무게는 늘 벅찼고.

넘어질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외삼촌이 집에 있는 날이면

든든한 보호자가 처럼 마음이 놓였다.


엄마는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일을 하는 게 마음이 더 팬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서울로 전학을 온 시기는 중학교 3학년 때,

항상 주눅 들고, 소심하게 삶을 살아온 나에게

새로운 학교는 낯설고 두려운 세계였다.


친구를 사귀기 것도, 먼저 말을 거는 것도 어려웠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반 친구에게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저기... 집 가는 길이야?"

"응, 너도 이쪽으로 가는구나?"


그렇게 우리는 함께 등하교를 하며 친해지게 되었다.

그 작은 용기가 나의 성격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친구가 생기고, 말도 많아졌다.

학교생활은 미지의 세계에서 점점 익숙한 곳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아빠가 돌아가셨데"

"엄마가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아"


엄마와 내가 사라진 후 매일 술을 마셨고,

간경화가 더 심해져 피를 토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일주일쯤 후에 돌아온 엄마는 막내 동생을 데려왔다.

엄마 낳은 동생,

1학년이었던 동생은 엄마 없이

6개월을 그곳에서 지내야 했다.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지 마음이 아팠다.


식구가 늘어난 방앗간 방

외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돈을 주며

우리 셋이 따로 살 집을 알아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작은 방을 얻어 이사했고,

엄마는 목욕탕 지하에서 밥을 해주는 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엄마의 인생은,

알에서 깨어난 나비처럼

새로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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