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ADHD 약물 치료 효과

약물치료 3개월 차, 삶이 조금 달라졌다.

by 민민

움직이는데 시간이 조금 덜 걸린다.


일을 할 때나 집안일을 할 때, 시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심지어 일을 하기 전에 러프하게나마 계획도 세운다. 집도 조금 깨끗해졌다.


특히 가장 개선된 부분은 아침 기상 패턴이다. 일도 싫고 집안일도 싫지만 이것들을 하러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이었다. 실제로 2년에 한 번 정도는 늦잠으로 12시에 출근했다. (이직한 이번 회사에서는 갑자기 멀쩡한 애가 안오고 연락이 안되니 무슨 일이 있나 싶어 팀장님이 우리 부모님께 전화도 했다더라. 곧 서른에 부모님 연락이라니 창피하기 그지 없었다.) 평소에도 알람을 못듣거나 다시 잠들기가 일쑤여서 알람을 20개정도 맞춰 두었는데, 이 사건이 있고 나서는 핸드폰이 꺼질까봐 아주 시끄러운 자명종도 하나 두는 일상이 되었다. '아침에 못일어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으로 간헐적인 불면증도 찾아왔다. 그런데 약을 먹으니 알람이 울리면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잘 일어나니 걱정이 줄어들어 잘 잔다. 약 부작용 중 불면증이 있다던데, 오히려 잘 자게 된 상태가 되었다.


생각을 끊어낼 수 있게 됐다.


나는 생각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에 파뭍혀가며 살았다. 일을 시작하고 난 뒤부터는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에 일 생각이 났다. 가끔 연애나 돈 같은 것들로 채워지기도 했지만 그 중에 대부분은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들이었다.


대학생때는 불필요한 걱정을 너무 많이 했는데, 걱정을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걱정을 했기 때문에.....

수십 번의 경험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걱정을 그만하고 싶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걱정을 많이 할 수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는 나만의 말도 안되는 징크스를 만들어 걱정을 했다. 그러면 걱정하는 시간이 조금 덜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약을 먹으니 감쪽같이 생각이 멈췄다. 약물 치료 전까지는 ADHD로 인한 증상인지 몰라서 기대도 안했던 부분이었다.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자 삶의 피로도가 낮아졌다. 이쯤되니 남들은 이렇게 사는 거구나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든다. 회사 일이 잘 안되더라도, 원래 하루 종일 생각했을 것을 이제 10분 정도 생각하고 멈출 수 있다. 흔히 ADHD인들이 약을 먹고 '머릿속의 라디오가 꺼진 느낌이다'라고 하던데, 그게 이런 느낌인건가 싶다.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가장 크게 만족하는 부분이다.



'ADHD를 왜 치료하고 싶어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일을 잘 하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었다. 애초에 병원에 찾아간 목적도 그 것이었다. 내 노력만으로는 내가, 회사가, 동료들이 원하는 수준을 맞출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노력은 한다고 하지만 원하는 수준까지 성과가 끌어올려지지 않으니 내 스스로가 컨트롤되지 않는 느낌이었고, 이 생각들을 끊임없이 하며 보냈다.


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6개월 사이에는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는데, 남자친구와 티비로 유튜브 쇼츠를 넘겨가며 보다가 갑자기 일 생각에 빠져 수 분간 가만히 있었다. 한 쇼츠가 대여섯번 반복 재생되자 기다리던 남자친구가 "무슨 생각해?"하고 물었다. 내가 원래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갑자기 왜 일 생각이 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도파민 가득한 쇼츠 사이에서도 일 생각에 빠져 멍해지는 나를 알아 채고 충격 받아 엉엉 울어버렸다.



약을 먹고 단번에 일을 잘하게 되지도 특출난 고성과자가 되지도 않았지만, 일을 떠나 내 인생에 하나의 컨트롤러가 생긴 기분이 든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생각에 빠져있지 않으니 지금 당장 내가 하는일에 더 집중하고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다.


약을 몇 년간 더 먹어야 할지 모르고, 언제 예기치 못한 중대한 부작용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이 몇 알의 약이 가져다 준 만족감은 말로 할 수 없다. '더 빨리 병원에 갔더라면'이라는 아쉬움도 분명히 있지만, 개선된 생활이 3개월쯤 지속되자 의사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까지 들기 시작했다. 물론 병원에 제 발로 찾아간 과거의 나도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