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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폐허

무너져만 가는 심리

by 겨울나무


감정의 폐허 속에서 나는 오늘도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어디서부터 굴러 들어왔는지, 어디로 나갈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무의미한 걸음을 내딛는다. 짙은 안개처럼 깔린 침묵이 나를 감싸고, 발밑에서 부서지는 잿빛 잔해들은 어디선가 희미하게 남아 있던 감정들의 부스러기일 뿐이다. 손끝으로 만져보려 하지만, 차갑고 메마른 바람은 모든 걸 허공으로 날려버린다. 나는 그저 텅 빈 시선으로 무너진 벽들을 바라볼 뿐이다. 이곳은 한때 희망이 피어났던 곳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걸까?


나는 스스로를 아껴주지도, 미워하지도 못한 채 썩어가는 마음을 안고 무작정 걸어간다. 멈추면 안 될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허물어질 것만 같았기에. 그러나 아무리 나아가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폐허 속은 언제나 같고, 시간은 그 안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어쩌면 나도 이곳의 일부가 되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을 맴돌지만, 무거운 발걸음은 나를 붙잡고 또 다른 어둠으로 밀어 넣는다.


바닥에 떨어진 오래된 시계가 아직도 약하게 깜빡이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과 미련만이 깃든 시간 속에서, 나는 희미한 흔적들을 더듬으며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손을 뻗을수록 더욱 깊은 어둠이 나를 끌어당긴다. 꿈은 말라비틀어졌고, 희망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이곳에 갇혀 있다.


오늘도 폐허 속을 걸으며 잔해들을 주워 담는다. 부서진 나의 일부를 맞추듯이. 언젠가는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곳에서 나조차 사라져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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