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할 틈 없는 밴쿠버의 일상 속에서, 가끔은 지도를 펴고 경계의 끝을 찾아 떠나고 싶어 집니다.
오늘 제가 발길을 돌린 곳은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남쪽으로 40분 거리, 국경 마을 사우스 써리에 숨겨진 두 개의 보석, 바로 화이트락과 크레센트 비치입니다.
화이트락은 이름 그대로 해변에 놓인 거대한 흰 바위 하나에서 시작된 낭만적인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바위가 아니라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나간 화이트락 피어(White Rock Pier), 바로 그 긴 데크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닷가를 따라 걷기 시작하면, 한쪽에는 조용히 철길이 바다를 따라 달리고, 그 옆으로 곧게 뻗은 산책로가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길 끝에서 마침내 만나게 되는 이 데크는 마치 망설임 없이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데크를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풍경은 드라마틱하게 변합니다. 저 멀리 바다 건너 희미하게 보이는 산들과 섬들. 저곳이 미국 땅이라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국경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합니다.
방파제가 있는 데크의 끝까지 걸어가는 길, 그 곳곳이 모두 포토 포인트입니다. 어느 방향을 배경으로 카메라 앵글을 잡아도, 하늘과 바다, 그리고 긴 데크의 선이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데크에서 해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가파른 산자락에 촘촘하게 들어선 집들이 또 다른 이국적인 감성을 자아냅니다.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이 집들의 풍경이야말로 화이트락의 시그니처 중 하나이죠.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분명 데크 위를 걷는 것이지만, 여유가 있다면 기찻길 옆 산책로를 따라 더 오래 걸어보거나, 비치 쪽에서 햇살을 만끽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주차장 건너편 도로를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저는 이곳의 공기와 바다 냄새에 젖어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로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화이트락에서의 낭만적인 시간을 뒤로하고, 차로 불과 20여 분을 달려 크레센트 비치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화이트락의 활기찬 분위기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조용하고 아늑한 바닷가 마을입니다.
마을 전체가 품고 있는 듯한 잔잔한 해변은 피크닉 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특히 여름에는 수심이 깊지 않은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기기 좋아, 이곳은 분명 사우스 써리의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입니다.
이곳 데크의 끝자락 역시 낚시를 하거나 작은 게를 잡아 올리는 이들로 항상 활기가 넘칩니다. 그리고 이 비치의 숨겨진 즐거움!
해변을 살짝 파보면 조개들이 꽤 많이 나온답니다. (물론 조개를 잡을 수 있는 시기는 꼭 관련 웹사이트에서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한번 잔뜩 잡아와 칼국수를 끓여 먹어보았는데, 제 스타일은 아니더라고요. 역시 조개는 사 먹는 것이 가장 맛있는 것 같습니다!)
여행의 마무리는 언제나 석양입니다. 만약 저녁 늦게까지 머무를 예정이라면, 이곳 크레센트 비치에서의 석양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풍경입니다.
잔잔한 바다 위로 붉게 물드는 하늘은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고, 오래도록 기억될 아름다운 여운을 남겨줄 것입니다.
바다와 국경, 낭만과 평화가 교차하는 곳. 사우스 써리의 두 해변은 밴쿠버에서의 일상에 가장 아름다운 쉼표를 찍어주는 공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