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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홋 Apr 12. 2024

정해진 길에도 새로움은 있다.

항동철길을 정처없이 걸어보자.

나는 여행에서 목적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2월 친구들과 함께 떠난 일본 오사카 여행 중 근교 도시 “니시노미야”에서 오후7시경 동네를 걸었다. 하고자 하는 것은 없었다. 단지 길가의 신호등 소리와 고즈넉한 가정집 풍경이 기억에 남았다. 대학 입학 후 2주 정도가 지나고 그런 기억이 떠올라 산책에 가까운 느낌으로 걸을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았다.


막 상경한 촌놈인 나는 겨우겨우 7호선을 타고 의왕역에서 내렸다. 지금은 폐선 된 경인선이 다니던 ‘항동 철길’이다. 해가 지는 일몰 시각에 맞추어 철도의 중간 지점에 도달하고자 했다. 그렇게 오후 5시 무렵 철길의 시작점에 들어서자 생소한 풍경을 접하였다. 


빌라 바로 앞에 철길이 놓여있었다. 

마침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표지가 수백 톤의 기차가 다니던 길에 놓여있다는 것이 재밌었다.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어린이 보호구역(시속 80km/h로 달리며)

주거지역을 지나 5분 정도 걷다 보니 비로소 내가 상상했던 기찻길이 나타났다. 

그러나 상상했던 기억과 너무 똑같았던 이유에서 감흥은 없었다. 


“그냥 기찻길이구나….” 

싶어 걷기를 재촉했다. 

파스텔 톤을 띠는 나무가 심심한 기찻길을 꾸며준다.

뚜벅뚜벅, 기찻길에 뿌려져 있던 자갈이 발에 치이니 도망가듯 굴러간다. 간혹 레일의 침목 사이에 발을 빠지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집중하며 징검다리 건너듯 도약한다. 그러다 집중력이 깨지면 녹슬었지만, 여전히 곧음을 유지하고 있는 레일 위로 올라가 평균대 위의 기계체조 선수처럼 아슬아슬하게 걸어본다. 


기찻길이 끝나지 않고 있다. 

슬슬 이상한 감정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더 가기는 귀찮고 무섭다. 

안 가면 후회할까, 걱정이 들기도 한다. 

새로운 길을 걷거나 생소한 곳을 찾아갈 때만 나오는 감정이 아니다. 


입시를 하면서 자정을 넘기는 순간에도 그랬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후회할까 잠에 들지 못했다. 공부가 되던 때도 있었고, 의미없이 피로만 더해진 날도 있었다. 


그 비율이 거의 5대5였다. 

나는 요새도 그런 습관이 나타나면 애써 억지로 누우려 하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되는대로 사는 것이다. 모든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다. 


두고두고 후회하기 보다는 수긍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그래서 마음이 끌리는 대로 계속 나아갔다. 

앞에 펼쳐질 사건들을 친구들과 나눌 생각을 하니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갈수록 기찻길은 황량해졌다. 대략 4km를 걷고 나니, 비닐하우스가 나타나고 할머니 집의 친근한 냄새가 난다. 내가 생각한 수도권의 모습은 아니었다. 유리 궁전, 수많은 차가만들어내는 두 색깔인 빛의 띠… 하지만 오히려 생각하지 못했던 풍경이라 마음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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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좀 피곤해보였다.

걷다가 진돗개와도 만났다. 

녀석은 내가 무슨 철도 위를 5km나 걸어가고 있는 미친 사람인 것, 마냥 날 쳐다보았다. 

슬레이트 패널이 우리를 막기 전까지 째려보았다. 


갈림길이 나왔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서로를 별종으로 바라보는 그 눈빛. 

오직 정처 없이 폐선 된 철길을 걸어본 2명만 알아볼 수 있었다. 


인사 없이 지나쳐 갔다. 인사를 하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그러나 무엇인지 모를 동지애가 느껴져 가볍게 꾸벅했다.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광기의 갈림길

짧은 만남이 끝났다. 그 이후로는 황량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한번은 잔디구장이 나타났다.  굴러온 공을 주워 차주었다. 


어린 시절엔 공을 차서 돌려주던 분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공을 많이 차보지 않은 누나도, 관절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도, 조기 축구회를 다니실 것 같은 아저씨도 각자의 방법으로 공을 차주었다. 


정말 감사한 마음을 담아 꾸벅 인사하고 고개를 든다. 그러면 그들의 활짝 펼쳐진 미소가 돌아오고 곧 우리에게 전염된다. 간혹 화려한 발기술을 보여주시기도 한다. 웃기기도, 신기하기도 해서 나와 친구들은 배꼽이 달아나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마침 이 장소가 내가 축구를 자주하던 해 지는 오후, 공터와 같이 넓은 지역이었기에 그 시절로 고스란히 돌아간 듯 했다. 잔디구장의 친구들도 감사인사로 대답한다. 


부끄러웠다. 기분은 좋았다. 어른들의 기분도 이랬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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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져 100m 이후의 풍경도 안 보일 정도가 되었다. 지도를 켜고 지하철역을 찾았다. 가장 가까운 역이자 (공교롭게도) 여행이 시작되었던 의왕역에 도착하고 기숙사에 돌아왔을 때는 오후 8시였다. 

그날 하루의 일정을 정리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찍은 사진과 마음 속의 글을 엮어두고 과제를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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