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도하게 계획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언제 어디까지 어디에 도착하고, 무엇을 먹고자 하는 그런 계획들이 싫다. 어느 순간 여행의 본질은 사라지고 과제 제출을 6시간 남긴 대학생 마냥 중구난방으로 뛰어다녀야 한다.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친구, 가족들한테 미안해지고, 지치기도 쉬워진다.
여행을 이끄는 강력한 유인 동기는 호기심이다. 보지 못한 풍경, 알지 못하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이동에 투자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여행의 즐거움이 일정을 마쳐야 한다는 의무감에 망쳐지지 않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간혹 시도하는 자유 여행은 충분히 즐겁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월요일 현장체험 학습을 간다는 공지를 보고 집결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시였다. 공항 근처에 위치한 우리 고등학교였기에 나는 일요일 새벽에 출발해 월요일 7시 비행기를 타고 집결지까지 도달한다는 매우 기초적인 틀 아래 여행을 간단히 계획했다.
일요일에 여행을 시작하는 자는 흔치 않다. 그래서인지 공항 옆의 숙소는 매우 저렴했다. 소음이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 오후 11시 이후로는 제주공항에 비행기가 드나들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잠만 자고 얼른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정말 최고의 위치다.
일요일 5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그 기분, 잠들어 있는 도시를 가로지르며 기사님과 단 둘이 깬 채로 대화를 나눈다. 비교적 한적한 공항 구석에 앉아 제주도 관광지를 찾아본다. 그저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본다. 지구과학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있던 주상절리를 찾아가기로 했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가로질러야 하는 조금 귀찮은 과정이 내포되어 있지만 버스 안에서 쳐다볼 바깥 풍경이 벌써 기대가 된다. 분주한 공항을 뒤로하고 날아오른 우리 비행기는 1시간이 안되어 제주도에 도착했다.
공항 셔틀을 타고 가면 주상절리 근처까지 금방 태워준다. 40분이면 도착이다. 정류장에서 주상절리까지는 걸어서 약 40분. 평소에 자주 애용하는 공유 바이크를 찾아보니 용케도 있다. 기쁜 마음으로 올라탄다. 페달질을 하려는 찰나.
당첨
애초에 주상절리 근처까지 도달하는 정류장이 있었다고 한다. 무계획에 대한 신념이 꺾이던 찰나였다.
어쨌거나 걷기로 한다.
걷다 보면 제주도의 서늘한 기운이 바람에 실려온다. 마치 추위와 더위를 일평생 느껴보지 못한 이가 맞을 것 같은 바람이었다. 산수화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간혹 쌩 하고 지나가는 차를 보면 야속하기만 하다. 그러나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발길을 재촉한다.
입장료 2천 원, 군경 대상으로 할인을 하고 있다는 표지가 사소하지만 기분 좋게 다가온다.
표를 확인하고 들여보내주신다.
제주 중문 대포 주상절리대, a6000, 50mm f1.4, f2.8, 1/1600s
교과서에서 보던 사진이 눈앞에 있다. 자연물이면서도 인공미가 느껴져 신기하다.
화산섬인 제주도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냉각되고 6방향으로 압력을 받아 세월을 보태면 주상절리가 만들어진다.
인접하게 다닥다닥 붙은 주상절리들은 마치 거북이 등껍질을 연상시킨다.
파도가 치며 깎여나간 바깥 부분으로 갈수록 육각형의 형태가 사라진다. 강력한 파도가 주상절리를 때리면 그 소리가 깨 쏟는 소리와 비슷하다.
a6000, 50mm f1.4, ISO100, F2.0, 1/800s
이 친구의 이름은 바다직박구리. 새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금방 알려줬다.
a6000, 50mm f1.4, ISO100, F5.6, 1/1600s
바다에서 사는 사람은 바다가 매일 보는 풍경이라도 질리지 않는단다. 지구의 생명력을 담아 거대한 땅을 덮은 흐름, 당연하고 간단한 정의이지만 세상 무엇보다 특별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