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공부 연애

by 고홋

기타를 1년 반 동안 쳤어.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무언가에 이끌리듯 헤비메탈 밴드에 가입했고 기타를 시작했지. 동아리방에서 7시간씩 연습을 하기도 했어. 물론 비효율적인 방법이었지만 시간 가는 줄도 몰랐지. 1학기엔 별로 어려운 수업 내용이 없어서 학점도 그럭저럭 괜찮았어. 그렇게 첫 정기 공연을 해내고, 두 번째 정기 공연도 성공적으로 마친 뒤 동아리 회장까지 맡았어.


그러다 내 인생 첫 여자친구인 그녀를 겨울 정기 공연이 끝난 12월에 만나게 됐지. 그러니 자연스럽게 기타랑 멀어지더군. 공부, 기타, 여자친구. 이 중 하나만 선택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최소한 둘은 골라야 했기에 결국 기타를 떠나보내게 되었어. 2학년 1학기 마지막 정기 공연곡으로 내가 연주해 본 것 중 가장 어려운 솔로인 Pearl Jam의 'Alive'를 하기로 했으면서도, 정작 연습에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지. 아니, 투자하지 못했지. 기타를 잡고 연습에 막 흥미가 생기려던 순간에도 현실적인 이유들이 늘 그 흥미를 덮어버렸으니까.


공연 당일, 솔로는 열정적으로 마쳤지만 직접 돌려보기엔 부끄러운 수준이더군. 결국 도망치듯 동아리에서 멀어졌어. 1년 반 동안 손때 묻힌 기타를 헐값에 팔아버렸지. 그렇게 빈손으로, 하지만 그녀의 손만은 꼭 잡고 군대에 왔는데 결국 헤어졌어. 그녀와는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지금 여기서 다 말하지는 않을래.


운 좋게 카투사가 된 나는 주말의 남는 시간을 이용해 종종 수원에 있는 학교를 찾아갔어. 친구들도 만나고 동아리방도 다시 가보면서 말이야. 오늘은 동아리 선배의 졸업식에 갔어. 반가운 얼굴들도 많았고 친했던 선배도 만났지. 그 선배도 상근이라 정기 공연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처지인데, 최근에는 기타 학원을 다니고 있대. 나랑 똑같이 대학 들어오면서 기타를 잡은 사람이야. 학점도 괜찮고. 내 전 여자친구와 절친인 아이가 바로 이 선배의 여자친구지.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야. 선배, 선배 여자친구, 아마도 내 전 여자친구. 그 커플은 아직 깨지지 않았더군. 선배가 잘해주나 봐. 내가 그토록 놓치기 싫었던 공부, 기타, 여자친구를 지금까지 모두 잘 지켜온 사람인 거지.


고작 20초 남짓 대화했을 뿐인데 부대로 복귀하면서 참 센티멘털한 감정이 느껴졌어. 왜일까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복합적인 일들이 얽혀 있었기 때문인가 봐. 다시 기타를 잡고 싶어졌어. 하지만 난 일단 학점이 최우선이야. 공부 잘하고 돈 많이 벌어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거든. 여자친구는 지금 없으니 고려 대상이 아니지. 그런데 다시 기타를 잡게 되면 예전과 같은 일이 또 반복될까 봐, 그게 걱정돼서 선뜻 시작을 못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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